[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남북조불교의 사상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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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2 년 9 월 [통권 제113호] / / 작성일22-09-05 09:26 / 조회3,504회 / 댓글0건본문
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21 | 탕용동湯用彤 1893-1964 ③
탕용동湯用彤(1893~1964)은 특히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었던 남북조 시대 불교를 분석하고 사상적 이해를 시도하였다. 남북조 시대에서 남조는 동진이 멸망하면서 장강 남쪽에 세워진 송宋, 제齊, 양梁, 진陳 나라를 말하고, 북조는 5호 16국을 통일한 북위北魏와 동위, 성위, 북제, 북주의 다섯 왕조를 말한다. 이처럼 왕조가 자주 바뀌었지만 불교는 동진 시대를 계승하여 크게 발전하였고, 중국에서 인도와 다른 동아시아 불교가 자리를 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시기였다.
한역 불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면서 불교의 여러 학파들이 성립되었고, 불교교단의 세력이 강해지자 북위 태무제와 북주 무제의 폐불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도교와의 대립도 남북조 시대 불교의 특징이다. 북위 낙양, 남조 건강의 아름다운 불교 사원의 건축과 미술이 발전하였고, 운강석굴, 용문석굴의 불교문화도 이 시대 세워진 것이다.
송나라 시대 열반과 불성에 대한 논의들
탕용동은 송나라 시대 불교학에 세 가지 중요한 전승이 있다고 하였다. 그 세 가지는 구마라집의 반야학, 제바의 비담학, 담무참이 번역한 『열반경』이다. 구마라집 문하의 4철 중의 일인인 축도생竺道生(?~434)이 이 세 가지 성과를 모아 대성하는 한편 열반사상을 계승하였다. 또 법현이 서역에서 가져온 『열반경』을 각현이 6권으로 번역하였다. 도생은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에 의거해서 불성의 학설을 천명하고, 이로 인해 열반학이 성행하게 되었다.
도생은 반야, 비담, 열반의 세 학문에 능통해서 중국불교사에서 손꼽히는 사상가인데, 탕용동은 도생의 일생을 고증하고 그가 제시한 불교 교리를 선명하게 제시하였다. 도생은 불성佛性의 의미, 법신에 색色이 없다, 부처는 정토가 없다, 선善은 보응을 받지 않는다 등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이라고 할 사상을 확립하였는데, 이는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다. 특히 그가 주장한 일천제一闡提 성불설, 즉 평범한 그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과 돈오頓悟 사상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해 송나라 초기에 돈오·점오에 대한 논쟁이 유행하였다.
탕용동은 이 시기 중국 남방 지역의 열반과 불성에 대한 학설들을 정리하였다. 불성에 관한 학설은 『열반경』의 중심 사상이지만, 이를 연구하는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이해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법요法瑤는 이理를 정인의 불성으로 삼고 돈오 대신 점오를 주장하는 등 도생의 학설에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보량寶亮의 경우에는 중생의 진여를 불성체로 보고 이 체體 위에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구하는 용用을 세웠다. 양무제는 열반의 학설을 특히 중시해서 전문적인 소疏를 지었고, 불성이 바로 신명神明이라고 보고 마음이 불성의 체라고 보았다. 이외 남북조 시대에는 불성의 본유本有·시유始有에 대한 논쟁도 존재하였다.
남북조 시대 선·정토·계율 연구 정리
진나라 말엽과 송나라 초엽에 구마라습鳩摩羅什(Kumārajīva, 334~413)과 각현覺賢(Buddhabhadra, 359~429) 두 사람이 선불교 경전을 번역하면서 선불교가 크게 기세를 떨치게 되었다. 이전 시기인 한나라와 진나라 초중엽에 유행한 선법은 주로 염안법, 부정관, 염불, 수능엄삼매의 네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진나라 말엽과 송나라 초기에는 선불교가 남방 지역에서 상당히 성행하였고, 선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좌선 수행은 숲속의 조용하고 그윽한 곳이 적합하기 때문에 특히 숭산은 여러 선승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북위 시기 낙양으로 수도를 옮긴 뒤 효문제는 숭산에 소림사를 지었다. 효문제 이후 선법은 북방에서 특히 성행했지만, 많은 승려들이 경전의 교리에는 밝지 못한 채 수행에만 치중하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 뒤 혜사惠思, 지의智顗 대사는 선정과 지혜는 반드시 함께 수행해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탕용동은 아마도 북조시대 승려들이 지나치게 수행에 치우친 태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결국 선정과 지혜를 함께 수행하는 풍조가 형성되어서 수나라, 당나라 시대의 각 종파가 흥기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
북위 시대에 영향력이 가장 큰 선사는 서역에서 온 보리달마(Bodhidharma, ?~528)이다. 탕용동은 『낙양가람기』와 『속고승전』의 기록에 근거하여 달마의 사적과 주요 학설을 서술하였다. 그는 달마가 전한 남인도 일승종에 해당하는 불교는 실제로는 『반야경』의 법성法性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달마가 수행한 대승선법은 벽관법壁觀法이고 증득한 도는 진眞과 속俗이 둘이 아니라는 진속불이眞俗不二 사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달마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이입사행二入四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탕용동은 선법의 영향을 크게 네 종류로 분석하였다. 탑을 짓고 불상을 제작하여 공덕을 바라는 풍속을 바로잡았고, 선법이 강남까지 들어가서 전국에 전파되었고, 정定과 지혜智慧를 동시에 닦는 것을 강조하였다. 보리달마의 이러한 선법은 스승에게 전수받는 것을 중시하였으므로, 탕용동은 달마를 수·당 시대 불교의 문호를 연 중요 인물로 평가하였다.
다양한 선수행 방법의 제시
탕용동은 당시 실행된 다양한 선수행 방법들을 제시하고, 그 역사적 맥락을 서술하였다. 염불수행은 타력신앙으로 왕생을 주장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유행하는 정토의 가르침은 미륵정토와 아미타정토이다. 북방에서 정토염불의 수행법을 크게 진작시킨 승려는 북위의 담란曇鸞(476~542)으로, 후세에 미친 영향이 대단히 크다. 담란은 정토교의 초조初祖에 해당하는 인물로서 그의 정토종 사상은 이후 일본에 전해서 신란親鸞 등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그가 행한 염불은 염불삼매이고, 부처의 명호를 외우는 염불과는 성격이 다르다.
북조 시대 불교는 한나라 시대 불교 색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고, 예컨대 수명을 연장한다는 설이 여전히 유행하였다. 당시에는 일반 사람들이 불교를 믿을 때 선악의 응보와 보시의 공덕을 특히 중시하였다. 담정曇靖은 『제위경』이라는 위경을 만들었는데, 그 목적은 악을 막고 선을 권장하는 데 있었다. 그는 불교의 오계五戒, 유학의 오륜五倫, 오행五行 사상을 결합하였고, 한나라 이래 음양가의 방법을 여전히 활용하였다. 이 북조 시대에 유행한 신앙의 결정체가 바로 삼계교三階敎이다. 불교는 이미 말법시대에 들어왔다고 보고 선정과 고행 등을 장려하여 북조 시대에 이미 유행하였고, 보시에 대해 강조하였다는 삼계교의 내용을 개설하였다.
북조 시대 불교의 종합·분석
탕용동은 북조 시대 불교사상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서술하였다. 『고승전』에 의하면, 남조와 북조의 불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어서 남방은 주로 공空 사상이 성행하고 북방은 유有 사상에 치우쳤다고 한다. 북조 불교의 경우 소승불교로는 비담종, 성실종 등이 유행하였고 대승불교로는 『열반경』, 『화엄경』, 『지론』 등이 유행하였다. 정영혜원의 『대승의장』에 근거하여, 북방의 불교는 비담의 유有 사상을 시작으로 성실종의 공空 사상, 그리고 결국 묘유妙有 사상의 『열반경』으로 귀결한다고 결론지었다.
북조 시대 초기에는 불교가 미약하다가 북위 효문제 시기 이후부터 크게 일어나기 시작하였다고 보았다. 구마라습의 후학인 승승, 승연 등이 불교를 전파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열반경』은 남북조에서 모두 유행하였는데, 효문제 이후에는 특히 북방에서 성행하여 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리 판석에 대해서도 많은 이설이 있었고, 지론사들이 세운 사종설四種說이 특히 그 영향이 크다고 분석하였다. 사종은 비담을 주로 하는 인연종因緣宗, 성실종에 해당하는 가명종假名宗, 『열반경』을 중심으로 하는 부진종不眞宗, 『열반경』·화엄종·지론을 말하는 진종眞宗이다. 이 중 부진종 외에는 모두 북조의 불교에 속한다고 하였다. 비담은 일체유부에 속하는데 위진남북조 시대에 가장 중시한 경전은 『아비담심론』, 『잡심론』이다. 비담 학설은 북조에서 지극히 성행하였고, 대표적 인물은 혜숭慧崇과 그의 제자들이다. 성실종 역시 북방에서 처음에는 유행하지 않다가 후에 강남에서 유입되면서 공부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탕용동은 법상종 경전이 남조와 북조 시대가 다른 점을 분석하였다. 북방은 지론사이고 『십지경론』을 숭상하였고, 남방은 섭론사를 위주로 하고 『섭대승론』을 숭상했다는 것이다. 『십지경론』은 보리류지, 늑마나제, 불타선다가 번역하였고, 그 이후 지론사는 남북 두 파로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북방파는 보리류지菩提流支(?~727)가 개창하였고 그 후 상당히 전파되었지만 역사 자료가 부족하여 자세한 논증이 어렵다. 남방파는 늑마나제가 개창하였고, 지론사의 원조이자 사분율학의 대가로서 선불교 명승으로 이름난 혜광이 대표적인 제자이다.
남방에서는 진제眞諦(499~569)가 법상유식학을 전파한 대가이다. 진나라와 수나라 시대 북방 지론학자의 대부분은 진제가 번역한 『섭대승론』을 연구하였는데, 탕용동은 진제가 가진 번역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불교사상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하고, 그의 사상에 대해 논의하였다. 진제야말로 동아시아 불교의 초석이 된 사상을 전개하였는데, 그가 번역하였다고 전해지는 『대승기신론』이 인도불교와 다른 동아시아 불교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대승기신론』이 인도 마명의 작품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빈 중국인이나 진제 자신의 작품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진제가 번역한 『대승기신론』은 이후 동아시아 불교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금강경』· 『원각경』·『능엄경』 등과 함께 불교전문강원의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예로부터 학습되어 왔을 정도였다. 탕용동은 진제 이후 『섭대승론』의 학설이 제자들에 의해 북방으로 전파된 상황을 추적하였다. 북위 말엽에는 『십지경론』이 유행하면서 『화엄경』을 공부한 점을 들어 지론사를 화엄사라고 논증하였다. 그리고 『화엄경』 연구의 중심지인 종남산에서 두순, 지엄 등의 수당 시대 화엄종 시대를 열게 된 점을 강조하며, 이후 시대와의 역사적·사상적 연결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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