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벽화 이야기]
사천왕 헌발과 설산동자의 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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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2 년 9 월 [통권 제113호] / / 작성일22-09-05 11:01 / 조회3,637회 / 댓글0건본문
발우는 범어 파트라pātra를 음사한 것으로 한자 표기로는 발다라鉢多羅라고 한다. 흔히 발우·바리때라고도 하며 중생들의 뜻에 따라 양대로 채운다고 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해석한다.
사천왕四天王 헌발獻鉢
불교수행법을 요약해서 보여 주는 12두타행에는 출가 수행자가 지켜야 할 의식주衣食住의 기본원칙 가운데 다섯 가지가 식생활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 출가자가 따라야 할 원론적인 식생활의 원칙은 발우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출가 수행자들은 무소유가 원칙이지만 발우만은 각자의 필수품으로 인정되어 온 경우에 비추어보아 발우는 이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출가 수행자라는 것을 대변하는 중요한 법구이다.
이와 같은 발우의 기원에 관한 내용을 그린 사천왕 헌발 벽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의외로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한 상황에서 근래에 그려진 경북 청도 호거산 운문사 대웅보전의 내부 벽화(사진 1)는 매우 귀중하다고 하겠다.
사천왕 헌발에 관해서는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32권 「이상봉식품二商奉食品」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본 벽화는 경經의 내용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언급하였듯이 발우는 스님들의 공양구일 뿐만 아니라 재가신도들도 수련회 등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발우공양의 기원과 의미도 벽화를 보며 새겨봄직하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차리니카 숲에서 77일 동안 해탈락解脫樂에 들어 계셨다. 이는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 이래 삼매의 힘으로 이제까지 목숨을 지탱해 오신 것이다. 그때 마침 북천축으로부터 크게 이익을 얻고 돌아가는 두 상인 타풋사Tapussa와 발리카Bhallika는 차리니카 숲에서 멀지 않은 곳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그곳 차리니카 숲을 수호하는 숲의 신[樹神]이 몸을 감추고 가만히 소를 붙잡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두 상인은 크게 두려운 마음이 들어 수레에서 서너 걸음 물러나서 합장하고 모든 천신에게 정례한 다음 지극한 마음으로 빌었다.
“우리에게 지금 만난 재앙과 괴변의 두려움을 빨리 멸하게 하옵시고 편안하고 다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때 차리니카 숲의 수호신은 곧 색신色神을 나투어 그 상인들을 위로하였다.
“그대들은 두려워 말라. 여기는 아무런 재화도 재앙도 없으니 겁내지 말라. 이곳에는 오직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시고 오늘 이 숲 안에 계시노라. 다만 여래께서 도를 이루시고 49일이 지나시도록 공양을 안 드셨으니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제일 먼저 보릿가루와 꿀 경단을 받들어 공양을 올리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오랜 밤에 편안하고 안락하여 큰 이익을 얻으리라.”
두 상인은 숲 신의 말을 듣고 곧 각각 보릿가루, 우유, 꿀 경단을 가지고 상인들과 함께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다. 그곳에 이르러 부처님을 보니 단정하고 훌륭하여 세간에 비길 데 없으며 허공의 뭇 별과 같이 몸의 모든 상을 장엄하였다. 이를 본 상인들은 마음에 크게 공경하는 마음과 청정한 믿음을 발해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저희의 이 청정한 보릿가루, 우유, 꿀 경단을 받으소서.”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내 이제 어떤 그릇으로써 발우를 삼아 음식을 받을 것인가?’ 생각을 하셨다.
부처님께서 이런 마음을 내자 사천왕은 각각 사방에서 금발우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올렸으나 부처님은 “그와 같은 금발우를 받는 것은 출가자에 합당치 못한 것이다.”며 안 받으셨다. 그 사천왕들은 다시 각각 은발우를 올리며, “세존이시여, 이 그릇으로 음식을 받으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에게 큰 이익과 큰 안락을 짓게 하소서.” 하였으나 부처님은 역시 받지 않으셨다. 사천왕들은 다시 파리, 유리, 진주 발우를 가져 왔으나 받지 않으셨다. 사천왕은 다시 각각의 권속을 거느리고 자기의 궁전으로 가서 각각 돌발우를 가지고 와서 발원하고 부처님께 받들어 올렸다. 부처님은 이를 받아 신통력으로 하나로 만든 다음 상인들이 올리는 음식을 받아 드셨다.
그리고 상인들에게 삼귀의와 오계를 주시자 상인들은 부처님 발에 엎드려 예배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였다. 이에 따라 타풋사와 발리카는 최초로 삼귀의와 오계를 받은 우바새가 되었다.
『불본행집경』의 이 내용을 남방 불교권에서는 특별히 숭앙하여 스리랑카, 라오스, 태국 등에서는 두 상인이 부처님께 올리는 최초의 공양 장면을 다양하게 그리고 있는데(사진 2) 우리의 벽화 소재로도 참고할 만하다.
설산동자의 구법
설산동자의 구법을 소재로 삼은 벽화는 위의 사천왕 헌발 벽화와 달리 우리나라의 사찰 벽화로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소재 중의 하나이다. 설산동자의 구법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본생담으로 아득한 과거세에서 보살인행을 할 때의 내용을 그린 벽화이다. 고운사 대웅보전의 설산동자의 구법 벽화(사진 3)나 운문사 대웅보전 내부에 그려진 벽화(사진 4)는 모두 이를 소재로 한 것인데, 구도나 표현상의 차이는 있으나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선혜행자가 한 수행자의 몸을 받아 정진할 때의 모습으로 『대열반경大涅槃經』 「성행품聖行品」을 통하여 자세히 알 수 있다. 즉, 설산동자는 오로지 해탈을 구하기 위하여 인연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크게 발심하여 설산에서 정진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제석천왕이 흉악한 형상의 나찰로 변하여 지난 세상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게송의 반을 읊었다.
“모든 것은 무상한 것[諸行無常] 이것이 생멸의 법이네[是生滅法].”
동자는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은 비길 데 없이 기쁘고 환희로웠고, 깨달음의 등불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듯 무한한 기쁨에 가득 차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변에는 험상궂은 나찰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지켜보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찰에게 “당신은 어디서 그토록 거룩한 게송을 들었습니까? 그 게송의 나머지를 들려주실 수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찰은 험상궂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행자여, 그런 말씀 마시오. 여러 날 굶어 허기가 져서 나도 모르게 헛소리를 했을 뿐이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설산동자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 게송을 마저 일러주시면 당신의 제자가 되어 모시겠습니다.”라며 재차 청하였다.
이 말을 들은 나찰은 오히려 지친 듯 나무라며 “당신은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욕심뿐, 자비심은 없구려, 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설산동자는 나찰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먹습니까?” 하니 나찰은 “그것은 묻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왜냐하면 단지 사람들을 무섭게 할 뿐이니까 말이오.” 설산동자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 “여기에는 그대와 나밖에 없으니 어서 말해 보시오.”
“정히 그렇다면 답하리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더운 살과 끓는 피요.” 설산동자는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내가 더 살고 죽는다 해도 진리를 얻지 못하면 소용이 없으니, 나머지 게송을 일러주면 이 몸으로 공양하겠소.”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나찰은, “어리석도다. 그대는 겨우 여덟 글자의 게송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려 하는가?”라고 하니 오히려 설산동자는, “참말로 그대는 무지하구나! 옹기그릇을 깨고 금그릇을 얻는다면 누구라도 기꺼이 옹기그릇을 깰 것이다. 무상한 이 몸을 버리고 금강신金剛身을 얻으려는 것이니 게송의 나머지 반을 들어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도 없다. 어서 나머지 게송을 일러주오.”
이에 나찰은 지그시 눈을 감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게송을 읊었다.
“일어남과 사라짐이 사라진 적멸이 열반의 즐거움이다[生滅滅已 寂滅爲樂].”
동자는 게송을 듣자 환희심이 샘솟았다. 게송을 깊이 새기고는, 이대로 죽으면 이 귀중한 진리를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으니 바위나 돌, 나무 등에 게송을 써 두고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나찰에게 몸을 던졌다. 그러자 그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나찰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수행자를 받아 땅에 내려놓으며 찬탄하고, 여러 천신과 함께 발아래 엎드려 예배를 올렸다. 법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정진력을 설산동자의 구법 벽화는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정진을 다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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