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A급 전범 처형 입회자가 바라본 일본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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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령 / 2022 년 10 월 [통권 제114호] / / 작성일22-10-05 09:24 / 조회3,283회 / 댓글0건본문
제114호 | 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21 | 하나야마 신쇼 花山信勝 1898~1995
하나야마 신쇼花山信勝(1898-1995)는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石川縣金沢市 출신으로 도쿄제국대학 인도철학과를 졸업한 후, 도쿄대학과 국학원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하나야마는 자신의 대표 저서인 『쇼토쿠태자 어제 법화경 의소 연구聖徳太子御製法華経義疏の研究』(1933)로 학사원 은사상(1935)을 수상하는 등 학자로서의 성과를 확실히 낸 인물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하나야마 신쇼를 2차 세계대전 후, 스가모巣鴨 구치소에 수감된 A급 전범자 처형에 입회한 교화사로 기억한다. 하나야마는 1946년부터 스가모 구치소의 교화사가 되었으며,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포함한 A급 전범자 7명의 담당 교화사로 활동했다. 하나야마가 입회한 A급 전범자 처형 당시의 모습은 『평화의 발견-스가모의 삶과 죽음의 기록』(1949)에서 상세히 소개되었다.
정년퇴임 후에는 정토진종의 해외포교사로 활동했다. 1982년에 발간한 자서전 『영원의 길』에서는 자신을 ‘스가모 구치소의 교화자’로 소개했다. 이는 ‘쇼토쿠태자 연구의 최고 권위자’, ‘불교학·계율연구의 주류’ 등 학자로서의 모습을 버리고, 자신을 교화자로서 정체성을 부여했다. 본 글에서는 교화자가 아닌 학자로서의 하나야마 신쇼를 다시 소환시키고자 한다.
일본불교의 본질
1930〜40년대 일본 문부성에서 발간한 『국체의 본의国体の本義』(1937)는 많은 이들의 필독서였다. 이후 국체의 본의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국체본의해설총서』(교학국, 1942)가 간행되었다. 하나야마는 일본불교 집필자로서 『국체본의해설총서』에 참여했다.
『국체본의해설총서』에 수록된 『일본불교』는 이미 하나야마가 1936년에 발표한 「일본불교의 특질」을 그대로 옮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서 가장 일본적인 요소를 ‘진호국가鎭護國家 정신’으로 봤다. 하나야마가 『일본불교』를 저술한 목적은 모든 종파를 쇼토쿠태자로 환원시키
고, ‘국체國體’가 현현한 것이 불교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황실과 불교와의 관계를 아는 것은 국가와 불교와의 관계를 아는 것이다”라고 언급해 황실과 국가가 동일하다는 논리를 개진했다. 하나야마의 ‘황실=국가’라는 시각은 그의 전문분야인 쇼토쿠태자聖徳太子 시기의 불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야마는 쇼토쿠태자의 ‘일대승一大乘’ 교학이 일본불교의 기조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일본불교』의 본질장에서는 쇼토쿠태자로 상징되는 일본불교의 본질을 ‘일승평등주의一乘平等主義’로 정의했다. 일승평등주의를 대표하는 승려가 조정에서 인정받고, 일본불교의 복잡한 양상은 단순화되었다고 일본불교의 발달사를 서술했다.
“쿠카이空海·호넨法然·신란親鸞·도겐道元·니치렌日蓮의 입장과 그들의 사상표현은 모두 다르다 할지라도, 모두 한결같이 일승一乘의 경전을 근거로 한다. 한결같이 일승주의를 표방한다. 일체중생이 평등하게 성불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쇼토쿠태자 이후 일본불교의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쇼토쿠태자가 세운 화엄일승은 사이쵸의 천태일승으로, 쿠카이의 금강일승으로, 호넨의 염불일승으로, 신란의 서원일승으로, 에이사이榮西와 도겐의 불심일승으로, 니치렌의 법화일승으로 이어졌다. 일본불교는 쇼토쿠태자의 일대승을 토대로 한 일승불교에서 바뀐 적이 없었다.” (『일본불교』 중 일부)
흥미로운 점은 하나야마가 ‘일승평등주의’를 전개하면서 차용한 이들(호넨, 신란, 에이사이, 도겐 등)이 가마쿠라불교鎌倉佛敎의 조사들인 점이다. 즉, 쇼토쿠태자 시대 이후 일본불교의 본질을 나라시대와 헤이안시대(8〜12세기)가 마치 없었던 것처럼 무시하고, 바로 가마쿠라시대(12〜14세기)로 건너뛰었다.
나아가 일승평등의 본질에 따른 실천으로 ‘진속일관眞俗一貫’을 제시했다. 일본불교는 출가와 재가를 없애고, 남녀비천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진속일관의 불교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하나야마의 이러한 주장은 계율연구자 이시다 미즈마로石田瑞麿(1917~1999)의 진속일관과 연결된다.(『고경』 2022년 4월호) 이시다가 “하나야마 신쇼에게 배웠다.”고 말한 것처럼, 이시다의 진속일관은 하나야마가 (의도적으로) 가볍게 다룬 사이쵸最澄에 집중했다. 다시 말해, 하나야마의 ‘쇼토쿠태자→가마쿠라 불교’를, ‘쇼토쿠태자→사이쵸→가마쿠라 불교’로 진속일관을 연결시켰다.
가마쿠라 불교의 비상
1930~40년대는 일본불교의 원류를 인도가 아닌 일본의 고대불교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화된 시기이다. 하나야마의 쇼토쿠태자론 역시 이러한 배경하에서 나왔다. 하나야마의 일본불교론의 특징은 ‘일본에만 있다’라는 고유성일 것이다. 동일한 구조론(쇼토쿠태자→가마쿠라 불교)을 주장한 이에 나가 사부로家永三郎는 하나야마와 달리 ‘일본에도 있다’라는 보편성을 역설했는데, 이 점이 두 사람의 대비되는 지점이다.
쇼토쿠태자나 가마쿠라 불교를 일본불교의 키워드로 언급한 이들은 비단 하나야마나 이에나가
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야마의 스승이었던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郎와 무라카미 센쇼村上専精가 「불교국민」과 「일본불교의 특징」에서 이미 언급했다. 무라카미 센쇼는 일본불교의 구조를 정리했고, 다카쿠스 준지로는 센쇼의 일본불교론을 이어받아 다른 나라와 대비되는 일본불교의 우위성을 전개했다. 하나야마는 이들의 일본불교론을 받아들여서 좀 더 심화시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패전 이후, 하나야마는 쇼토쿠태자와 연결된 일본불교론 연구에서 한발 물러났다. 하나야마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일본불교와 황실, 국가를 분리하려는 경향들이 지속되었다. 결국, 황실과 국가가 떨어져 나간 일본불교에는 가마쿠라 불교만이 남게 되었다. 하나야마와 이에나가는 살아남은 가마쿠라 불교가 최상의 일본불교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더해서 가마쿠라 불교를 ‘민중성’으로 정의했다.
도겐道元과 신란을 일본불교의 최정점에 올려놓은 ‘가마쿠라 신불교 중심사관’은 하나야마와 이에나가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여기에는 각 교단이 대학을 설립해 가마쿠라 불교에서 일본불교의 원류를 찾고자 하는 학술적 노력이 기반이 되었다. 학계에서는 가마쿠라 불교와 서구의 종교개혁을 비교해 민중성을 도출해 냈다. 나아가 도겐과 신란의 사상은 서구의 사상과 견줄 수 있는 일본사상으로 그 우위성을 제시했다. 가마쿠라 불교의 갑작스런 대두는 패전으로 황폐화한 일본 사회가 다시 일어서고자 한, 혹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이들의 가마쿠라 불교 재조명 이후, 불교계 출판물의 키워드가 ‘가마쿠라 불교’와 ‘민중’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940년대 대표적 저서로는 핫토리 시소服部之総의 『신란 노트』(1948)나 이에나가의 『중세불교 사상사 연구』(1947)를 꼽을 수 있다. 저서들은 신란親鸞을 쇼토쿠태자와의 연결성을 강조한 국가와 황실의 신란이 아닌, 민중을 해방시킬 수 있는 불법을 제시하는 새로운 신란상을 창출해 냈다. 특히 이에나가가 제시한 ‘고대=구불교=국가적/ 중세=신불교=민중적’이란 도식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까지도 불교·역사·문화 분야에서 통용되고 있다.
하나야마 신쇼는 일본불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논할 때, 시점이 바뀌는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쇼토쿠태자를 연결하는 국체론의 시각에서 일본불교의 본질을 바라봤지만 패전 후에는 국체론을 버리고 국가가 아닌 민중을 택했다. 패전 이후 하나야마처럼 국체론과 결부된 불교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은 대부분 침몰했다. 하나야마가 가마쿠라 신불교를 대두시켰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역시 학문적 침몰자 중 하나였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러한 판단에는 패전 후 그의 연구가 진전이 없었다는 이유가 크다. 반면 하나야마의 ‘일본불교’는 부정된 것이 아닌 단순히 포기된 것이며, 이에나가 사부로에 의해 보강되었다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아울러 패전 후 간행한 그의 저서들이 ‘반권력적 자유주의’란 평가를 얻으며 독자를 확보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또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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