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로 엮는 현대불교사]
고려대장경의 번역과 삼장법회의 구성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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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순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09:59 / 조회2,719회 / 댓글0건본문
구술로 엮는 현대불교사 3 |봉선사 조실 월운스님 ③
▶ 불경 번역과 역경원 설치를 누가 제일 먼저 제안했습니까?
불교정화라는 격동기인데, 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싸움을 만든 사람 중 하나예요. 사실 불교정화가 힘들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바로 잡아진 거예요. 그래서 종단이 안정되었지요.
동국역경원의 발족에 얽힌 이야기
운허스님이 불경 번역하시던 중에 종단이 안정되어 갔지만 대법원에서 할복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 대법원 판결이 있는데 비구승이 지면은 망하게 되고, 이기면 흥하게 되는 판결이었어요. 그런데 법관들이 그 판결을 안 해 주려고 그랬어요. 그때 6비구들이 대법원에 난입하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거기서 할복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엄청 혼란했어요.
운허스님은 우리가 비구와 대처 간의 싸움에 쫓아다니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어요. 비록 전쟁이 나더라도 후방병을 양성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스님의 뜻에 따라 싸움도 아니고 후방병을 했지요.
운허스님은 종단이 안정되면서 역경원 설립을 구상하셨어요. ‘존호심(存乎心)이면 형어외(
形於外)’라고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는 법이라 운허스님이 마음먹은 것이 우리 눈에도 보여요. 중이 멱살잡이 하는 것은 꼴불견이지만 큰 흐름으로는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운허스님도 이해하셨어요. 종단이 안정되면 ‘역경을 해야 되겠다’라고 마음을 잡수셨는데, 그 당시 대법원의 할복사건으로 비구승에 대한 사회적인 이미지가 나빠졌어요.
그때 대법원 판결은 6비구가 2층으로 침투하여 올라갔지만 변호사를 시켜서 ‘계단 2층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이렇게 고쳐 써서 판결했어요. 이건 비사秘事예요. 2층에 올라가 난동을 부렸으면 나쁜 사람들이 되지요. 그래서 ‘2층이 아니라 계단 2층을 올라서다 말았다’고 썼어요. 그러니 대법원에 난입한 것이 아니지요.
그때 우리 운허스님이 청담스님을 설득하고, 김법린 동국대학교 총장에게 줄을 놔서 문교부 장관을 찾아갔어요. 동국대학에서 고려대장경 번역을 위해 역경원을 설립할테니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해 달라고 했어요. 그것이 신문에 빵하고 떠버린 거예요.
▶ 운허스님은 주지 발령보다 한글번역이 중요했군요?
다른 분들은 대처승 쫓아내고 주지하려고 마음 뒀는지 모르지만, 운허스님은 불교정화가 되고 나자 발 빠르게 역경원을 발족한 거예요. 그때 나는 운허스님을 따라다니면서 듣고 보고 했지요. 그런데 내 연령에는 아직 맞지 않았지만 그 상황들은 계속 주시하고 있었어요.
“운허 노장님이 앞에 나가 싸움은 안 하지만 뒤에서 역경원 설립을 잡아주시는구나.” 난 그렇게 판단했어요. 그때 나한테도 역경의 중요성을 여러번 이야기를 하셨지요. 종단이 안정되면서 역경원이 거의 동시에 출발해요. 그때 초대 총무원장이 청담스님이에요. 청담스님하고 운허스님은 의견이 상당히 잘 맞았어요. 그리고 또 종단의 스님들이 운허스님 말씀이라면 다 존경했고, 그래서 역경원 설립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그래서 용주사에 역장譯場을 만드셨어요.
나도 스님의 그 판단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왜 맞느냐? 나도 여기까지 오기까지 투자한 시간이 상당했어요. 그런데 한문으로 된 것들을 위해 약간 투자해서는 알 수가 없어요. 경전은 다 한문과 한자가 들어가 있는데 글에 담긴 감정을 바꾸고, 시제를 바꾸고, 상황을 바꾸는데 그것을 읽어낼 사람이 몇 안 돼요. 사실 그때 불교계는 딱했어요.
▶ 스님께서 처음으로 번역하신 경전은 어떤 경전인지 기억나세요?
내가 처음 번역한 불경이 『살담분다리경』이에요. <법화부>인데, 그것이 내가 처음 번역을 한 경이에요. 그래서 내 딴에는 여러 분야를 골고루 해본다고 율부律賦도 했는데 사실 불경은 속세의 책을 보는 거 보다 더 많이 알아야 돼요. 일반학문을 더 알아야 되는데 그것이 중국문화예요. 불교는 서양과 인도 문화가 섞여 있어요. 그것을 우리말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운허스님이 말씀하시는데 나도 그런 견해에 호감을 가졌지요. 우리 스님 일을 돕다가 자연스럽게 역경을 했을 뿐만 아니라 6.25전쟁 중에는 강사를 하고 있었데, 그때는 일본말로 된 것들도 곧잘 번역했어요. 내가 학인들 보는데 필요한 『구사대강』이라든가, 글은 짧은데 그거 읽느라 세월아 네월아 읽고 있으니까 이론이 하나도 안 되는 거예요.
동국역경원장으로 임명장을 받다
나는 주지 싸움할 재주는 없고 역경을 해서 원고료 주니깐 돈 쓰기도 좋았지요. 그러니까 자연히 역경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운허스님 돌아가시고(1980) 여러 해 역경을 쉬었어요. 그런데 김영삼 씨가 대통령 후보(1992)로 나왔어요. 그 분이 선거운동 다니는데 불교계는 청년회 조직이 강했지요. 출마해서 불교방송에서 면담을 했어요. 그 연설 끝에 공약을 봤는데, 불교계는 운허스님이 역경을 다하지 못했는데 그걸 마저 지원해 달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김영삼 후보가 지원해 주겠다고 공약했어요. 그리고 나서 대통령 되었어요. 1년 동안 공약을 이행하는가 지켜봤는데, 그 당시에 동국대학교 역경원의 역경원장이 공석이었지요.
김영삼 대통령 측에서 동국대학교로 뭐라고 연락이 왔냐면, 역경원을 도와주려고 해도 원장도 없고 공석인데, 그 공약 없던 걸로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동국학원 이사장이 녹원스님이었는데, 큰일 났다고 해요. 나에게 당장 역경원장을 하라고 했지요. 아무 예고도 없이요. 다른 사람도 많은데 나를 지목한 것은 녹원스님이 잠결에 잘못 짚었나 했어요.
▶ 역경에 대해 스님만한 경륜을 지닌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잘 짚으신 거지요.
녹원스님이 날 지목하고 오라고 전화가 왔어요. 나는 “왜 그러십니까?” 하니까, 대답 들을 거 없이 빨리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가니까 역경원장 임명장을 줘요. 나는 날벼락이었지요. “내가 역경원장을 어떻게 합니까?” 하니까 “잔소리 말고 역경원장 하라.”고 그러시더군요. 정부에서 돈을 준다는데 이 때 일을 해야 한다는 거였지요. 녹원스님은 “월운스님이 운허스님 모시는 것 하며 나도 보는 게 있다.”고 하시더군요. 하여튼 나도 사양을 했는데 전혀 받아들이지를 않았어요. 내가 역경원장을 하고 싶어 한 건 아니었지요.
나는 임명장을 받고서 역경 상황을 파악했어요. 그동안 역경원이 출발할 때 내가 그 과정을 압니다. 처음 슬로건이 “합천 해인사의 <고려대장경>을 번역한다.” 그랬거든요. 그건 왜 그러냐면 대장경이 참 많아요. <고려대장경>, <거란장경>, <중국장경>, <속장경>, <척사장경> 그걸 다 하려면 끝이 없으니까 <고려대장경>을 딱 못 박아서 “번역하라.” 그러니까 사람들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 “정화하고서 절이나 뺏으려고 하더니 지각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된 거지요.
역경원장이셨던 우리 스님(운허스님)께서 돌아가시고 원장 자리가 공석으로 그냥 있었어요. 물론 그 사이에 2대 원장에 영암스님, 3대 원장에 자운스님이 계셨지만 이때는 역경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었지요. 그렇게 몇 년간 역경원이 공전하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당시는 역경원에 원장도 공석으로 있으니 대선 공약은 없던 걸로 하자고 했던 겁니다. 그러니 녹원스님이 “무슨 소리냐, 역경원장 후보가 있다.” 지금 임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반박했어요. 그리고 나를 오라고 한 거였지요.
역경원에 들어가서 며칠간 번역 상황을 조사했어요. <고려대장경> 중에서 번역된 한글대장경이 전체 페이지수로 할 때 얼마나 되며 또 번역할 게 얼마나 남았는지 살펴봤지요. <고려대장경> 말고 다른 번역본까지 하면 상당히 많은 분량이 번역되어 있었어요. 그렇게 된 이유는 <고려대장경>만 번역 출판하면 인기가 없어 안 팔린다는 겁니다. 역경을 하려면 비용은 자꾸 써야 되는데 예산 나오는 곳은 없으니까 팔리는 책만 번역 출판했던 거지요. 그러다 보니까 <고려대장경>이 아닌 내용들만 출판했던 겁니다.
▶ 월운스님 역경원에 들어가시기 전에 일어난 일이군요?
내가 역경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고려대장경> 번역을 하겠다고 해놓고는 정작 작업은 <보조국사 어록>과 같이 다른 것들을 많이 작업했어요. 물론 그것도 볼 만하고 좋은 것은 맞지만 <고려대장경>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내가 “안 되겠다. 앞으로는 <고려대장경>을 중점으로 번역해서 옛날 어른들이 이 사회에 거짓말한 과오를 하지 않겠다. 이미 발주한 것은 마감하고, 새로운 발주를 내자.”고 결의를 했어요. 그런데 돈이 부족하다 하기에 “그것은 내가 후원회를 만들어서 보증하겠다.”고 했습니다.
역경원 후원회 삼장법회의 조직과 활동
제가 날벼락처럼 역경원장 발령을 받아서 가보니 난감했어요. 1964년도 역경원이 출발할 때 합천 해인사의 <고려대장경>을 번역했다고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고려대장경>이 아닌 것들을 상당히 번역했더군요. 구체적으로 조사시켜 보니까 <고려대장경>은 전체의 삼분의 일 정도가 번역됐고, 전체를 합하면 <고려대장경>의 절반 정도 번역한 분량이라고 그래요.
내가 생각하기로 당시 어른들이 하신 걸 물려받아 출발했으면 우리는 그것을 마무리해야 될 의무가 있어요. 이 때문에 “앞으로는 <고려대장경>만 번역하자. 그리고 <고려대장경>이 아닌 것은 아무리 인기가 좋고 사람들이 원하더라도 그건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어요.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인기 있는 걸 만들어야 책이 팔리고 돈이 돌아가는데, 그런 책을 내지 않으면 돈줄이 막히게 되는데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지요. 그래서 “그건 내가 후원회를 만들어서 보충하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후원회를 만들어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석주 노스님한테 가서 졸랐어요. “상황이 이러이러한데 제 힘 가지고는 안되겠습니다. 스님을 우리 스님처럼 생각하고 모시고 할테니까 후원회장 직함을 좀 맡아주십시오. 결코 스님보고 모금해 오라고 하진 않겠습니다.”하고 부탁드렸더니 스님께서 그러라고 하셨어요. 그게 정월 며칟날인데 봉은사 법당을 빌려 가지고 동국역경원 후원회를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봉은사는 역경원을 설립하고 종회에서 종단적으로 역장譯場을 지정한 절이에요. 나는 사실상 역경원장 하는 동안에 후원회에 많은 힘을 썼어요. 그래서 정부의 보조가 잘 나오도록 했지요. 그 작업은 사람들을 통해서 했지만, 후원회가 있어서 정부와 유대가 잘 되고 그랬어요. 역경원장으로 발령받은 후 서둘러 “후원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알 만한 사람들을 봉은사로 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석주 노스님을 모시고 봉은사 법당에서 동국역경원 후원회를 만든 거예요.
▶ 역경원 후원회를 발족하시기 위해 전국을 다니시면서 호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후원회를 발족함과 동시에 요즘말로 언론플레이를 해서 불교TV라든가 신문사 모두 오라 그래서 알려 달라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언론들을 몰고 다니는 거예요. 석주스님이 역경원 후원회장이고 또 그 어른께서도 어디를 가나 “아, 내가 역경원 후원회장이야.” 그러시고. 그래서 후원회를 열심히 했더니 그게 의외로 호응이 좋은 거예요.
전국을 다니면서 모금했어요. 어떻게 모연을 했냐면 역경원에 ‘전체주의 개념’을 도입한 거예요. 국민이 세금 납부의 의무가 있듯이 불교 신자도 부처님께 바치는 돈을 꼭 정기적으로 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세대가 무조건 한 구좌씩 들어라.” 이 소리로 후원회를 전국적으로 했는데, 참 모두가 말을 잘 들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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