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 울어 쌓지만 나는 그냥 잠자네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월간고경 연재기사

월간고경

[시와 禪, 禪과 시]
꾀꼬리 울어 쌓지만 나는 그냥 잠자네


페이지 정보

서종택  /  2024 년 9 월 [통권 제137호]  /     /  작성일24-09-05 10:38  /   조회1,223회  /   댓글0건

본문

골목길에서 오랜만에 분꽃을 만났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옛날에는 집 안은 물론 골목길이나 조그만 빈터만 있으면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보기가 쉽지 않은 꽃입니다. 분꽃은 특이하게도 오후에 피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시드는 꽃입니다.  

 

분꽃

 

꽃자루가 길쭉해서 나팔꽃처럼 생겼습니다. 여자아이들은 분꽃을 따서 귀 뒤에 꽂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꽃대롱을 빨면 약간 단맛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맡아보면 은은한 향이 있지만, 기억 속에 향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꽃봉오리도 많고, 시들어 떨어진 꽃도 많아서 전체적으로 깨끗하진 않습니다. 

 

사진 1.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나는 분꽃.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수많은 식물이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유럽인에 의해 그 식물은 일본으로 건너가고 다시 한국으로 건너옵니다. 남미나 멕시코 원산 식물에는 의외로 우리 뇌리에 각인된 식물이 많습니다. 코스모스, 분꽃, 채송화, 해바라기, 다알리아, 사루비아(샐비어) 등이 그런 꽃입니다. 어릴 때부터 많이 보아온 꽃들이라 토종식물 같지만, 사실은 다 새로 들어온 꽃들입니다.

 

사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 수많은 사람이 코스모스, 분꽃, 채송화 같은 작은 꽃을 들여다보며 근심 걱정을 잊곤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다알리아가 사랑을 받았지만 코스모스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심미안에는 코스모스와 다알리아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화엄의 세계관, 즉 화엄의 경지에서 세계를 보면, 일화일세계一花一世界요, 일엽일여래一葉一如來입니다. 즉 꽃도 하나의 세계요, 이파리 하나도 여래입니다.(주1)

 

아름다운 풍경이나 예술 작품을 보면 내적인 만족감이 옵니다. 욕망과 관련 없는 미적 만족은 그토록 찾던 고요와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체이며, 풍경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개인적인 나를 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적 초월은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하는 것보다 훨씬 자유로운 기분을 가져다 줍니다.

 

이제부터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리

 

물론 꽃을 보고 깨달은 사람도 있습니다. 당나라의 영운선사(9세기)는 복사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20년, 30년 참선하고도 깨치지 못했는데 복사꽃을 한 번 보고 깨쳤다니 이 얼마나 황당하고도 행복한 소식입니까. 위산(771~853) 문하에 앙산(807~883)과 향엄(?~898)이 유명하지만 영운(?)도 그들 못지않으며, 가장 널리 애송되는 오도송을 남겼습니다. 

 

사진 2. 복사꽃 한 번 보고 깨달은 사람도 있다네.

 

영운은 위산의 설법을 듣고 밤낮으로 피로를 잊고, 마치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정진하니, 그와 견줄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30년 동안 정진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무심히 고개를 들어 복사꽃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아, 원래 이것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게송을 한 수 지었습니다. 

 

삼십 년 동안이나 검劍을 찾아 헤맸으니

꽃 피고 싹 트는 것 몇 번이나 보았던가

(진짜) 복사꽃을 한 번 본 후로

이제부터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리(주2)

 

언어로만 접근한다면 평생을 노력해도 제대로 알지 못할뿐더러 모두 미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 역시 불이, 진아, 무념, 무심, 무아, 공空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날이 더러 있었습니다. 생각의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그 집중력이 내부를 향할 때 상당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이를 선가에서는 흔히 상기증上氣症 또는 선병禪病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운은 30년 동안이나 무명無明을 잘라낼 지혜의 칼을 찾아 수행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우리가 현재의 세계를 순전히 객관적으로 고찰하는 경지에 올라가면, 그 객관에 의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주3) 영운은 복사꽃을 보다가 그렇게 자신의 개별성을 초월하여 순수 객관에 도달한 황홀경을 오도송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세계를 긍정하는 것이며, 거짓된 이해를 제거함으로써 얻게 되는 최고의 행복감을 말합니다.

 

지금도 봉은사, 송광사, 범어사, 환성사(하양), 은해사(영천), 개심사, 마곡사, 구룡사 등에 가면 심검당尋劍堂이란 당호가 붙은 건물이 있습니다. 대체로 선원 아니면 강원이라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절집에 웬 칼劍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심검당은 바로 영운의 오도송에서 따온 것입니다. 영운의 오도송은 아직도 이처럼 우리 곁에 살아 있습니다.

 

5막 14장의 장대한 드라마, 『유마경』 

 

영운은 한 번 보고 깨달았는데 우리는 왜 복사꽃을 수없이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이것이 문제, 즉 화두입니다.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집착 때문입니다. 심리적 집착을 버릴 때 우리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이원적 집착 너머 불이不二를 체득해야 한다는 불교의 이상을 희곡처럼 5막 14장으로 엮은 것이 『유마경』(주4)입니다.

 

사진 3. 찬란하게 쏟아지는 하늘 꽃이여.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 거사는 대승불교의 종교적 이상형으로 재가 신자이자 부자였습니다. 불경 가운데 재가자가 주인공인 불경은 『유마경』과 『승만경』뿐이라 둘 다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집니다. 유마힐이 병상에 누웠을 때, 세존의 명으로 문수보살과 32명의 보살이 수행하여 유마 거사와 주고받은 문답이 『유마경』입니다. 희곡처럼 문답으로 되어 있어서 그 맛을 보기 위해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유마의 집에 천녀天女가 한 명 살고 있었다. 천녀는 보살들의 설법을 듣고 기쁨에 가득 차서, 자신의 실제 몸을 나타내고 하늘 꽃을 이들 대보살과 대제자들 위에 흩뿌렸다. 그러자 보살들 몸에 뿌려진 꽃은 땅에 떨어졌지만, 대제자들 몸에 뿌려진 꽃은 그들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대제자들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이 꽃을 떨어뜨리려고 하였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천녀가 사리불舍利弗(주5)에게 물었다.

 

“왜 꽃을 떼어내려고 하십니까?”

사리불이 대답했다.

“이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출가자의 몸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떼 내려 합니다.”

천녀가 말했다.

“이 꽃을 법답지 못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이 꽃은 아무런 분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리불 당신이 스스로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일 뿐입니다. 만일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받들어 출가하고서도 분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법에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분별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다운 것입니다. 저 보살들을 보십시오. 꽃이 달라붙지 않는 것은 (보살들은) 이미 분별하는 마음을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주6)

 

여기서 사리불은 소승불교의 대표자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꽃은 세속의 장식물이지 종교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이라는 두 범주가 있어서 모든 것은 그중 하나로 분류되어 버립니다. 이런 분별에서 집착이 생기고, 그 집착에서 모든 잘못된 행위와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유마경』은 그 분별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불교에서 ‘분별’이라는 것은 일상적 의미와는 달리, ‘둘로 나누는 것, 곧 판단 혹은 분석적 사유’로서, 이것은 언제나 미혹의 근거라는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유마경』은 쉬운 말로 주고받는 캐치볼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의 문답 속에는 엄청난 사고의 풍경이 펼쳐져서 읽는 사람을 오싹하게 합니다.

대승 경전 중에는 『유마경』이나 『법화경』처럼 희곡을 연상시키는 것 같은 경전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수준은 다양하지만, 불교 전통이 가진 풍부함과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꾀꼬리 울어 쌓지만, 나는 그냥 잠자네 

 

『유마경』이나 『법화경』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에게 애호되고, 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마경』과 문학의 관계를 이야기하려면 시불詩佛로 칭해졌던 왕유(699?~751)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북종선의 보적에 사사하고 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불교에 심취했으며 자字를 마힐摩詰이라 할 정도로 유마 거사를 좋아했습니다.

 

복사꽃 밤비 머금어 더욱 붉은데

푸른 버들잎 아침 안개 둘렀네

꽃잎 떨어져도 아이는 아직 쓸지 않았고

꾀꼬리 울어 쌓지만, 나는 그냥 잠자네(주7)

 

복사꽃 만발하고 버들잎 새로운 아침 풍경입니다. 어젯밤 내린 비에 수없이 떨어진 꽃잎은 아직 쓸지 않았고, 꾀꼬리가 울어 쌓지만 은자隱者인 나는 늘어지게 자고 있습니다. 얼마나 한가하고 느긋하며 자유로운 정경인지 모릅니다.

붉은 복사꽃과 푸른 버들잎, 밤비와 아침 안개, 꽃잎과 꾀꼬리, 아이와 늙은 은자, 청소와 잠 등의 모든 시구가 짝을 이루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여운을 남깁니다.

 

사진 4. 김홍도,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이건희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왕유는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으며, 공주의 환심을 살 정도로 비파도 잘 탔습니다. 그는 불교를 신실하게 믿었고, 평생 오신채를 먹지 않았으며, 화려한 복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내의 사후에는 재혼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30년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찻잔과 약탕기밖에 없는 방, 경전을 놓은 책상 앞 새끼줄로 엮은 의자에 앉아(주8) 그는 이 시를 통하여 『유마경』적 삶의 본질에 대해서 말합니다. 

 

“유유자적, ‘분별’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순전한 축복이고 순전한 기쁨이야. 그게 인생이지.” 

 

<각주> 

(주1) 남회근南懷瑾, 『주역계사강의』, 2011.

(주2) 『祖堂集』(952), 卷第十九, 靈雲和尚, “三十年來尋劍客 幾逢花發幾抽枝 自從一見桃花後 直至如今更不疑”

(주3)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 38. 미적 만족을 느끼는 주관적 조건.

(주4) 『維摩經』은 구마라집 역 『維摩詰所說經』(406)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玄奘 역으로는 『說無垢稱經』(650)이 있다. ‘維摩詰’이란 산스크리트어 ‘비말라키르티’를 음사한 것이고, ‘無垢稱’은 의역한 이름이다. 

(주5) 사리불은 붓다의 10대 제자 중 한 명으로 ‘지혜 제일’이라고 불린다. 샤리푸트라, 즉 ‘샤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한역 문헌에서는 사리불舍利弗, 사리자舍利子로 음사한다

(주6) 鳩摩羅什 譯, 『維摩詰所說經』(406), 觀衆生品第七, “時維摩詰室有一天女 見諸大人聞所說法 便現其身 卽以天華 散諸菩薩 大弟子上 華至諸菩薩 卽皆墮落 至大弟子 便著不墮 一切弟子神力去華 不能令去 爾時天女問舍利弗 何故去華 答曰此華不如法 是以去之 天曰 勿謂此華爲不如法 所以者何 是華無所分別 仁者自生分別想耳 若於佛法出家 有所分別 爲不如法 若無所分別 是則如法 觀諸菩薩華不著者 已斷一切分別”

(주7) 『全唐詩』 卷一百二十八, 田園樂 其六, “桃紅復含宿雨 柳綠更帶朝煙 花落家童未掃 鶯啼山客猶眠

(주8) 『舊唐書』, 列傳 王維傳.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서종택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