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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는 지금]
미국에 처음 불교를 소개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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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  2023 년 2 월 [통권 제118호]  /     /  작성일23-02-03 10:58  /   조회2,64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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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는 지금 2 | 미국 ② 

 

미국불교를 이야기 하면서 미국불교의 시작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불교의 시작은 불교에 대한 연구가 앞선 유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도에서 활동했던 영국인 윌리엄 존슨(William Jones)이 이끄는 아시아 학회(Asiatik Society)에서 발행하는 학회지가 미국으로 흘러들어와 북동부 미국 종교인들과 지식인들에게 읽혀졌다. 

 

미국불교의 시작

 

프랑스 학자 외제네 뷔르노프(Eugène Burnouf, 1801~1852)와 크리스띠앙 라센(Christian Lassen, 1800~1876)이 공동으로 쓴 최초의 팔리어 문법서 「팔리어에 대한 논문(Essai sur le Pali)」이 처음 출판된 것은 1826년이다. 유럽 최초의 팔리어 문법서였다. 불교언어인 팔리어 문법서 발행이 중요하지만 유럽에서 본격적인 불교연구 시작은 뷔르노프의 ‘『인도불교사입문』(Introduction àl'histoire du Bouddhisme indien, 1844)’이라는 주장이 많다.

 

사진 1. 외제네 뷔르노프(Eugène Burnouf). 사진 2. 크리스띠앙 라센(Christian Lassen).

 

뷔르노프의 저작을 예일대 교수인 엘브리지 솔즈베리(Edward Elbridge Salisbury 1814~1901)가 1844년 5월 28일 미국 동양학회(The American Oriental Society) 첫 연례모임에서 발표한 「불교역사에 관한 연구보고(Memoir of the history of Buddhism)」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솔즈베리의 강연이 있기 몇 달 전에 엘리자베스 피바디(Elizabeth Peabody 1804~1894)는 초월주의자들이 발행하는 ‘다이얼’지에 싣기 위해 뷔르노프의 저작으로부터 한 구절을 번역한 바 있다.

 

사진 3. 뷔르노프의 책, Introduction à l'histoire du Bouddhisme indien 표지. 사진 4. Essai sur le pali 표지. 

피바디는 『법화경』의 불어 번역본에서 그 구절을 따왔다. 1844년 해설이 달린 피바디의 번역과 솔즈베리의 강연이 미국인들에게 불교 논의를 촉발시켰다. 피바디는 당대의 지도적 여류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고 교육자, 개혁가, 저술가, 편집자 그리고 출판업자였다. 그녀는 에머슨의 권유로 『다이얼』지의 편집을 맡았다.

 

사진 5. 엘리자베스 피바디(Elizabeth Peabody). 사진 6. 엘브리지 솔즈베리(Edward Elbridge Salisbury).

 

『다이얼』지에는 에머슨이 편집인으로 있을 때부터 동양에 관심을 보이며 소수민족 경전들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불교인이 뚜렷하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불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상태였고 관심의 대상이었으므로 담론이 시작된 1844년을 미국불교의 출발이라고 트위드는 주장하고 있다.

 

건국시기 이후 19세기까지 미국인들의 세계종교 이해

 

미국이 영국으로 독립한 것은 1776년 7월 4일이다. 이 1776년은 조선의 정조가 왕위에 오른 때이다. 정조는 1800년까지 왕으로 있었다. 이 시기에 천주교는 조선 백성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했다. 그에 따른 조선 왕조의 대응도 있었다. 즉 조선에 천주교가 시작되던 시절이다.

 

이러한 무렵에 미국인들은 동양을 대표하는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트위드의 책 『미국과 불교의 만남』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들이 아는 종교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주였고 나머지 종교는 잘 몰랐다. 대부분 미국인 해석자들은 종교계 지도를 (1) 그리스도교, (2) 유대교, (3) 마호메트교, (4) 이단, 혹은 이교도로 그렸다. 종교를 구별할 줄 아는 해석자들에게는 기독교 외에 이슬람교, 유교, 힌두교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1840년대 들어 서양인들의 불교 지식은 조금 확장되었다. 

 

사진 7.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사진 8. 월트 휘트먼(Walter Whitman).

 

1830년대와 1840년대에 두 가지 진전된 상황이 있었다. 유럽인들의 불교연구 개시와 뉴잉글랜드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의 출현이다. 불교인들은 이 초월주의자들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에머슨, 그리고 법정스님, 함석헌 등이 큰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월든』(Walden)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시인 월트 휘트먼(Walter Whitman, 1819~1892) 등이 여기에 속한다. 소로는 비록 불교를 잘 몰랐지만 그 당시에 명상을 하고 생태주의적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장 전형적인 불교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사진 9. 초월주의자들이 발행한 잡지 The Dial. 1841년에 발행된 제3호의 표지.

 

이들의 기관지 『다이얼』(The Dial)에서 『법화경』을 소개한 것이 1844년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1840년대와 1850년대에 붓다는 종교 창시자로 예수, 마호메트, 공자와 함께 합류했다. 동시에 붓다가 세운 전통이 힌두교 및 기타 이단의 구성요소와 구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인 독자들의 인식이 확 바뀌지는 않았다. 

 

사진 10.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1844-1912 표지.

 

미국에서 불교 교수를 비롯해서 미국불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1893년 시카고 종교회의를 미국불교의 시작이라고 주장하였고, 이것은 대부분의 기존 미국불교사에서 주장한 내용이었다. 또한 기존 한국불교계에도 이 주장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토마스 트위드(Thomas A. Tweed)가 쓴 『미국이 만난 불교』(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1844-1912)라는 책을 통해 제기되었다. 이 책을 미주현대불교에서 2008년 9월부터 한창호씨의 번역으로 연재하면서 1844년이라는 주장을 소개하였다. 이 번역은 2014년에 한국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고, 한국사회에 이 주장을 소개하였다.

 

동부의 불교담론과 서부의 중국사찰

 

미국불교의 담론은 동부에서는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구체적으로는 1844년 초월주의자들이 발행하는 『다이얼』지에 싣기 위해 뷔르노프의 저작으로부터 한 구절을 번역한 것이다. 서부에서는 골드러시 시기에 캘리포니아로 입국한 중국인들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었는데, 1852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미국 최초의 사찰인 ‘Tin How Temple’이 ‘체얍 조합’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당시 중국 스님들이 있었다. 주로 관혼상제와 사찰 관리 일을 했다. 1864년에는 그 경쟁회사가 두 번째 사찰을 세웠고, 1875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8개의 사찰이 있었다. 이들은 1850년대 골드러시 때 들어온 중국인들이었다고 미국불교사 책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사진 11. 미국 최초의 사찰 Tin How Temple.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사찰이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미국은 1844년을 시작으로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회의로, 불교가 미국에 널리 알려졌고, 1950년대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에 의한 선의 대유행, 2000년대 인드풀리스(Mindfulness) 명상 확산, 이렇게 대략 50년 주기로 큰 변화가 있었다.

 

자발적 담론의 시작과 오해

 

미국에 불교전파의 특징 중의 하나는 불교가 없는 지역에 스님들이 들어가서 포교를 한 것이 아니라 불교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불교에 대한 담론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담론은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주도하였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수십 년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이들은 “붓다의 가르침은 무신론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비관주의적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즉 이들은 붓다의 가르침이 인간의 타고난 종교적 성향의 본질을 놓고, 기존의 관점과 모순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불교가 처음으로 퍼졌고, 계속 성장한 점을 해명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불교가 인도에서 급속하게 널리 퍼졌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세계 인구가 반 혹은 그 이상에 이르기까지 계속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붓다에 대한 긍정이 증가하였는데 붓다는 존경할 만한 자질과 성공적 개혁을 인정하면서, 붓다를 루터와 같은 부패된 종교와 사회체제의 개혁가로 묘사했다. 이를테면 불교를 ‘인도의 개신교’로 제시했다. 루터가 카톨릭의 개혁 속에서 종교적 문제를 처리하며 평등주의 정신을 표현했듯이, 붓다도 인도의 종교적 전통을 쇄신하고 동시에 억압적인 카스트 제도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트위드는 그의 저서에서 1844년에서 1912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불교에 대해 생생하고 공식적인 논의를 전개했다고 많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고 1893년에서 1906년 사이에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이 아시아 종교에 대한 개종자로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공감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조선에 서양인들이 출현하고 천주교가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에 미국 동부 보스톤에서는 불교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었고, 서부에서는 중국인들에 의해 절이 건립되었다. 미국의 불교 논의는 1844년 피바디가 초월주의자들의 잡지를 위해 프랑스어 불경을 영어로 번역하고, 솔즈베리가 미국 동양학회에서 불교 관련 강의를 했을 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1893년 시카고 종교회의가 미국불교의 시작이라는 주장에 반하는 주장이다.

 

이들은 불교에 관한 많은 담론을 하였고, 이 담론 집단의 미국인 구성원 대부분은 영국 출신으로 신교도 유산을 물려받은 교육받은 뉴잉글랜드 남성들이었다. 동부지역에서 강연과 출판을 통해 불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불교 옹호론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기독교와 문화적 긴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크게 남아 있었다. 

 

불교가 마침내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음에도,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던 시절과는 달리 불교를 포교하는 스님이 없었기 때문에 불교 포교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 서부에서는 1882년 5월 6일 체스터 A. 아서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중국인배척법(中國人排斥法) 때문에 중국인들의 미국이민이 금지되었다. 이 법은 미국 역사상 자유 이민에 대한 가장 무거운 제한 중 하나였다. 1882년 이후 중국인들과 중국인 스님들은 더 이상 미국에 들어올 수 없었고, 중국인에 의해 서부에 세워졌던 사찰들은 점차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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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미주현대불교 편집인 및 발행인.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전북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9년 뉴욕에서 월간 잡지 『미주현대불교』를 창간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 사단법인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을 설립하여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남북불교교류 활동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북한사찰순례단을 조직하여 2005 년부터 4차례에 걸쳐 단체로 북한사찰순례를 하면서 북한불교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정부의 북한 여행 금지로 인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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