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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대종사 열반 30주기와 정심사 창건 37주년 기념식을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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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스님  /  2023 년 3 월 [통권 제119호]  /     /  작성일23-03-03 12:34  /   조회2,88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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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스님 정심사 회주 

 

금년은 성철 큰스님께서 열반하신지 30주기가 되는 해이다. 30년 만에 큰스님의 사리탑 조성을 원만히 마쳤다. 나아가 올해는 정심사 창건 37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정심사는 큰스님께서 열반하시기 7년 전에 창건되었다. 모두 큰스님께서 남기신 크고 뚜렷한 그림자이다. 

 

두 보살님의 발원으로 창건된 정심사

 

정심사 창건은 큰스님을 모시기 위한 신심에서 시작됐다. 한 보살님은 큰스님이 계실 처소를 마련해 드리고 싶었고, 또 한 보살님은 큰스님의 가르침에 따른 기도할 법당을 마련하고 싶었다. 두 보살님이 만나서 정심사 불사를 시작하게 시작되었다.

 

사진 1. 하남 정심사 전경.

 

백련화 보살님은 꿈에 두 스님이 제천으로 가자는 말을 듣고, 이곳에 찾아왔다고 한다. 1984년 정월이 다 지나가기 전에 원택스님과 함께 이곳에 왔다. 큰길을 벗어나 마을에 들어오며 보니 뒷산 머리에는 눈이 하얗다. 이곳에는 돌무더기가 널려 있고 눈이 없었다. 돌아서서 보니 저 멀리 도봉산이 훤히 넓게 보였다. 며칠 후 보살님 댁에 갔더니, 훗날 집이 마련되면 소납에게 와서 지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이렇게 큰스님 계실 때 집을 하나 마련해 두면 나중 큰스님 가시고 계시지 않을 때 문도 스님들께서 걸망을 벗어놓고 쉴 수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얼마 후 법당을 세우고자 했던 보살님들과 함께 만났다. 우선 그 땅을 사서 건물을 하나 짓기로 했다. 소개한 사람이 이곳은 그린벨트 지역이지만 오래지 않아 해제될 것이라고 했다. 이 일은 두 보살님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원했던 것이라 매우 빨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공사를 착공한 이후 준공을 얻기까지 한 해가 채 걸리지 않았다. 이듬해 부처님 열반일에 개원식을 했다. 1985년 음 2월 15일이다. 큰스님께서 정심사正心寺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다. 훗날 큰스님께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여기에 짧은 기간 두 번(1990년과 1991년 가을) 머무셨다. 오래된 큰 소원을 이룬 것이다.

 

사진 2. 정심사 대적광전 삼존불과 목각 후불탱화.

 

이렇게 하여 건립된 건물이었지만 그 동안 법이 바뀌고 시절이 변하여 더 이상 보존하기 어려워 여러 논의를 거쳐서 옛 건물을 철거했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에 여러 스님들이 쉴 수 있도록 2층짜리 새 건물로 신축하였다.

 

대적광전 낙성과 삼존불 봉안

 

정심사의 대웅전은 큰스님께서 열반한 이후에 건립되었다. 큰스님의 사리탑을 건립하기 위해 온 문도스님들이 힘을 합해서 노력하고 있을 그 때, 원택스님께서 말했다. “정심사는 큰법당을 건립하는 것이 큰스님 사리탑 건립만큼이나 중요하니 이 불사를 잘 하십시오.” 원택스님의 배려 깊은 말씀에 신도들은 더욱 신심을 내게 되었다. 

 

사진 3. 정심사 대적광전과 사리전각.

 

그린벨트에 관한 법적인 제약은 여전했지만, 문도스님들의 후원과 신도들의 열망이 합쳐져서 마침내 큰법당인 대적광전 낙성식을 했다. 서기 2,000년 10월이다. 목조로 지은 60평 규모의 전통법당 건물이다. 세 분 부처님을 새로 조성하여 모셨다. 2년 후에는 단청불사도 모두 마쳤다. 

대적광전 건립 불사를 원만히 회향하고 그 기념으로 신도님들과 함께 인도 성지순례를 갔다. 이때 나는 일행과 떨어져서 혼자 산치대탑을 참배했다. 큰스님 사리탑을 만들기 전에 반드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성지순례에서 돌아와서는 사리탑전을 구상했다. 건물의 실내에 사리탑을 세우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린벨트 관리법에도 변화가 생겨서 큰법당 주변에 약간의 건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 입적하신 묘운행 보살님께서 유언으로 큰스님의 사리탑전 건립을 위한 큰 불사금을 남겨 주셨다.

 

법주사 원통전을 본뜬 사리탑전

 

사리탑전 건물의 형태를 구상하면서 여러 곳을 두루 살피며 다니던 중, 속리산 법주사에서 원통전을 보니 크게 공감이 왔다. 그 건물의 지붕 모양이 바로 건너편 5층 탑 모양이었다. 이리하여 정심사의 사리탑전은 탑형의 4각 지붕으로 하게 되었다. 건물 크기도 관음전과 비슷한 규모로 건축하게 되었다.

 

사진 4. 사리탑전 상륜부.

 

사리탑전은 신축하는 공양간 위에 건립하였다. 기초공사를 하는 중 탑전 구역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공사에 크게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곳은 원래 밭이었던 곳이므로 매우 의외였다.

사리탑전은 큰법당의 좌측에 위치하며, 삼층 탑형의 4각 지붕 건물이다. 상부에는 석가탑의 상륜부를 본뜬 돌을 조각하여 올렸고, 사방 벽은 모두 유리문으로 하였다.

 

탑전 옆에는 참선방을 건립했다. 큰스님께서 평생 강조하신 참선을 널리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그 곁의 홍보관은 큰스님의 설법집과 자료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한 공간이고, 홍보관의 윗층인 장경각에는 여러 종류의 대장경 책들을 보관하고자 했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사리탑전 건축 공사는 2015년에 완공되었다.

 

다보탑을 본뜬 사리탑

 

사리탑은 사리탑전이 준공된 이후에도 한참 후에 완성되었다. 사리탑에 대해서는 먼저 고려 지광국사탑을 주목했다. 큰스님께서 생전에 이 탑을 좋아하셨다. 당시 이 탑은 경복궁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스님께서 직접 가서 보시고 아름답다고 하셨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서 새 도면을 만들었다.

 

사진 5. 사리탑의 최종 도면.

 

그러나 이 형태로 만들기는 매우 어렵겠다고 여겨졌다. 재료는 나무로 한다고 해도 장식적인 조각의 내용이나 조각 기법 등등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불국사 다보탑을 유심히 보았다. 학계에서는 이것이 사리탑의 변형이라고 한다. 다보탑의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구했다. 다보탑의 구성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모아서 비교하고 분석하였다. 이때 부여 정림사에 대한 일본 사람의 연구와 연구 방법이 매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사리탑의 기초도면을 완성했다. 기초도면을 근거로 하여 변형도 만들었다.

 

사진 6. 옻칠 단청을 하기 전의 사리탑.

 

이것은 여러 가지 독창성이 있어서 큰스님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다보탑을 기준으로 하여 재해석한 것이다. 세부 조각이 없어서 제작도 어렵지 않게 여겨졌다. 나무로 제작하여 실내에 모시기로 했다.

 

기초도면이 완성된 무렵, 두 사람이 새로 동참하게 되었다. 오래 전 큰 법당 불사에서도 함께 일을 했던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기초도면을 기준으로 하여 여러 곳을 새로 수정하고 보완했다. 기초도면에서 상륜부 구조, 난간 모양, 연꽃 장식, 기둥 모양 등이다. 가장 많이 보완한 곳은 사리장치이다.

 

사진 7. 사리장엄구.

 

다보탑에 관한 자료인 묵서지편의 존재도 알게 되었지만, 사리를 어느 층에 어떻게 모셨는지는 알 수 없었다. 또 사리구가 보이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주변에서는 모두 반대했지만, 보이도록 시도해 본 이후에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이리하여 마침내 사리탑의 기본 형태가 완성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최종 사리탑의 형태를 마무리했다.

 

3층 목탑으로, 사리와 사리구가 보이는 구조이다. 수정의 사리구를 연꽃 모양 사리용기 안에 안치하였다. 사리는 백련암에서 원택스님이 보관하고 있던 큰스님 진신사리를 모셔 왔다. 

맨 윗단에는 사리용기를 모셨다. 단의 옆으로는 8개 광창을 설치했다. 또 탑의 2층 천정을 그물모양으로 하여 탑의 아래에서도 위쪽의 사리용기가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탑의 높이가 있어서 사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사리용기를 모신 부분에는 법당 건축에 단청을 하듯 옻칠을 한 후에 채색했다. 

 

 

 

중간 단에는 큰스님의 설법상을 모셨다. 처음에는 CNC라는 기법으로 조성하려고 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여러 모습으로 만들었으나, 생전에 큰스님에게 느꼈던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모습을 느낄 수 없었다. 결국 조각하여 동상으로 모셨다. 해인사 큰법당에서 설법하시기 직전 입정한 모습이다. 큰스님께서 입정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대중들이 침묵하며 설법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다. 

 

사진 10. 사리탑전에 모셔질 성철 대종사 설법상 석고조각.

 

하단의 8개 기둥은 원형으로 하고, 여덟 개의 목판을 둘렀다. 그 안쪽에는 다시 별도의 팔각 통을 만들어서 큰스님의 설법집, 신도들의 사경 글, 불사에 동참한 사람들의 명단 등을 함께 넣었다. 8개 목판에는 탑비처럼 각각 큰스님과 관련한 것들을 새기려고 했다. 생활한 곳 8 곳, 상좌스님과 손상좌 스님들 명단, 임종게 등을 새기려고 했다. 그러나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포기했다.

 

되돌아보면 정심사 창건은 1984년 큰스님께서 머물 수 있는 단층의 요사채 신축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발판이 되어 서기 2천년에는 큰법당인 대적광전 건립이 완성되었고, 2년 후에는 단청불사를 마쳤다. 이후 다시 큰스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탑전 등의 건립 불사를 진행하면서, 대적광전의 삼존불 개금불사도 함께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큰스님의 설법상을 모셨다. 큰스님에 대한 존중과 부처님 봉안이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사진 11. 정심사 회주 원영스님.

 

이제 이 오랜 기간 동참한 사람들을 위해 축원한다. 지난 37년 간 지속된 이 오랜 불사에 동참한 모든 사람들과 이 불사에 인연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세세생생 불보살님이 계시는 법계에서 한가롭게 오가기를 기원한다. 또 불사 기간 중 입적한 사람들은 훗날 함께 모두 극락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또 장차 이 사리탑의 설법상에 절 한 번 하는 사람들도 모두 안양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나무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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