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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죽비, 깨우침의 소리로 거듭나는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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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3 년 4 월 [통권 제120호]  /     /  작성일23-04-05 11:15  /   조회3,768회  /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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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 죽비 장인, 류시상 

 

성품이 곧고 정의로운 사람을 흔히 ‘대쪽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절개가 단단하고 곧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떤 기세에도 꺾이지 않을 것처럼 푸르고 곧게 자란 대나무와 마주서 있노라면 확실히 세상에 존재하는 수목樹木들과는 다른 대나무만의 특별한 정서가 있다.

 

푸른 절개의 상징

 

옛 사람들의 눈에도 대나무의 고아한 성품과 우아한 군자적 기품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조선시대 묵죽화에 있어서 유덕장柳德章·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꼽히는 탄은灘隱 이정李霆(1554~1626)의 대나무 그림을 보더라도 그 안에 기세당당한 강인함과 자연에 동화되는 평온함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조선의 이름난 문장가인 간이당簡易堂 최립崔岦(1539~1612)은 이정의 작품집인 『삼청첩三淸帖』의 묵죽墨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한다.

 

사진 1. 곧고 푸른 대나무 군락.

 

“내 그대가 그린 대나무를 보니 성글어도 즐거움이 있고, 빽빽해도 싫지가 않다. 소리가 나지 않아도 들리는 듯하고, 색이 같지 않아도 참되다. 기운을 형상하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닥치듯 하고, 덕은 베풀어지지 않았는데도 의젓하여 공경할 만하다. 이것은 뜻과 생각에서 나와 저절로 만족스럽게 된 것이니 이것이 내가 아는 그대의 대나무다.”

 

이정의 대나무 그림을 통해 최립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표면적 미감뿐 아니라 작가의 심상까지 공감하며 서로 교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2. 이정의 묵죽도.

 

많은 문인들은 대나무를 주제로 글과 시로, 그림으로 저마다의 감흥을 표현하고 즐겼다. 때로는 속세를 떠나 대나무의 공간에서 머무르기도 했다. 죽림竹林은 탁한 속계와는 멀리 떨어진 장소로서 청담淸談을 논의하는 데 적절한 장소라고 인식되어 있었고, 자연과 함께하는 사유의 공간, 정신적 수련과 구도를 위한 신성한 공간을 상징하였다.

 

사진 3.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한 공구들.

 

인류가 대나무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시경詩經』에도 대나무의 고아한 모습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어느덧 대나무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혹은 닮고 싶은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섬피기오贍彼淇奧 기수淇水 저 너머를 보라 

연죽의의緣竹猗猗 푸른 대나무 청초하고 무성하구나.

유비군자有匪君子 고아한 군자가 바로 거기 있도다.

여절여차如切如磋 깎고 갈아낸 듯

여탁여마如琢如磨 쪼고 다듬은 듯

슬혜한혜瑟兮僩兮 정중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여.

혁혜훤혜赫兮喧兮 빛나고 뛰어난 모습이여

유비군자有匪君子 고아한 군자가 바로 거기 있도다.

종불가훤혜終不可諼兮 결코 잊지 못할 모습이여.

- 『시경詩經』

 

깨우침의 소리로 태어나는 대나무

 

배우고 싶었던 대나무는 사람의 손길을 통해 배움의 도구로 재탄생하게 된다. 깎아내고 다듬고 쪼아내고 갈아내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통해 죽비竹篦라는 불가의 법구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죽비는 선가에서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되는 도구로 참선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고요한 적막 중에 들려오는 죽비의 굵고 짧은 일침一鍼은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는 참선의 안내자이다. 죽비소리는 범종이나 목탁 등의 여느 법구와는 다르게 단호하면서도 정중한 위엄을 갖춘다. 본디 대나무의 태생이라 그 성품이 죽비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듯하다. 

 


사진 4. 3절 죽비. 

 

선원에서 사용하는 죽비를 만드는 류시상 죽비 장인은 경북 상주시 낙양동 공방에서 30여 년을 한결같이 대나무와 함께하고 있다. 다른 종류의 나무를 사용해서 만드는 죽비도 있지만 그런 것은 대나무 죽자를 쓰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 것이다. 장인은 선원에서 사용하는 견고하면서도 터지지 않는 죽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터지지 않는 죽비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찾아 죽비 만드는 기술을 전수 받는 일과 스스로 그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긴 세월을 보냈다.

  

사진 5. 7절 죽비.

 

“대나무는 나무와 풀의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어요. 반대로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특성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나무에서 채취한 호두기름과 풀에서 채취한 들기름을 적정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대나무에 기름 먹이는 과정도 중요하고요. 물론 제작에 최적화된 전용 공구는 직접 만들어 씁니다. 하나의 죽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나무를 선별하여 채취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연마하고 기름 먹이는 작업을 통해 마지막 실을 감아내는 작업까지 과정마다 만들어가는 비법이 있답니다.” 

  

사진 6. 다양한 절의 죽비.

 

일반적으로 만나는 죽비는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이리 보고 저리 만지면서 세세한 손길을 주어야만 쓰임에도 편안하면서 좋은 소리를 지닌 죽비가 된다. 전체적인 제작 과정을 보면, 먼저 좋은 대나무를 채취한 뒤 건조, 껍질 벗기기, 불로 굽기, 반 가르기, 마디 만들기, 깎기, 톱밥 메우기, 교정세목 만들기, 연마작업, 옻칠, 기름칠, 실 감기, 마무리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사진 7. 대나무 가르기 작업.

 

자연 속에 자라는 야생의 대나무를 찾고, 채취하는 시기를 잘 고르는 것이 좋은 죽비 만드는 첫 번째 요건이다. 주로 ‘분죽粉竹’이라는 대나무를 뿌리 부분에서부터 채취하고 껍질을 벗긴다. 마디는 2절에서부터 시작해서 3절, 4절, 5절, 7절 등 그 숫자에 따라 죽비의 음색도 다르고 절이 많을수록 희소성이 있고 맑은 소리를 지녀 귀하게 여긴다. 준비한 대나무는 일정기간 자연에서 건조시키거나 열처리 과정을 통해 건조시킨다. 적당한 불을 쪼여 가며 건조시키면 오랫동안 갈라지지 않고 사용하게 된다. 

 

사진 8. 용두 죽비를 만들고 있는 류시상 장인.

 

이때 불의 세기에 따라 노란 죽비, 암갈색 죽비, 밤색 죽비 등 다양한 색상으로 옷을 입는다. 대나무의 튀어나온 마디는 줄로 갈아낸다. 손잡이 부분은 재단하고 쓰임과 보기에 좋게 한참 동안 손질하게 된다. 대나무를 가르는 작업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쪼갤 대나무 마디를 단단한 끈이나 철사로 고정시키고, 가를 위치에 홈을 내어 원하는 길이만큼 갈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용 칼을 이용해 대나무를 쪼갠다. 이때 적당한 깊이로 틈을 내고 뒤틀어지지 않게 불을 입혀 준다. 칼로 음관을 칼질해 도려내고 그곳에 톱밥을 넣어 건조시킨다. 갈라짐을 방지하고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그만의 비법이다.

 

사진 9. 완성된 용두 죽비.

 

아름다운 죽비를 만들기 위해선 외관에 연꽃이나 다양한 문양을 넣는다. 손잡이에 끈을 돌려 묶어 장식을 만들고 죽비걸이도 만든다. 손잡이 부분에 입체적인 용머리가 새겨지면 용두죽비가 된다. 무엇보다 죽비가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대나무 못을 갈라진 죽비의 반대쪽에 박아 넣는 작업이 중요하다. 죽비는 다시 오므라지는 특성이 있어 대나무로 된 교정쇠목을 만들고 이를 보관할 구멍을 손잡이 끝에 톱밥을 이용해 만들어 준다. 사용자를 위한 특별한 배려이다. 또 톱밥을 음통 마디마디에 밀어 넣어 접착한다. 묵직하고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한 비법이고 오랫동안 갈라지지 않게 하기 위한 보조 장치이다. 

 

사진 10. 잘 다듬어진 죽비.

 

견고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지는 죽비는 류장인의 작품을 넘어선 자존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재의 견고하고 어디에 내 놓아도 자신 있는 죽비가 탄생되기까지는 결코 혼자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처음 선가의 전통죽비와 인연을 맺어 주신 경주 골굴사 적운寂雲 큰스님과 전통죽비 제작을 전수해 주신 송광사 지묵知默 큰스님, 선가의 죽비가 만들어 질 때까지 돌봐주신 상주 남장사 주지스님 성웅性雄 어른스님 등 많은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사진 11. 깨우침의 소리 죽비.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죽비를 다듬는 일만큼은 한국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이라는 그의 자부심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의 수행과 같은 노력, 함께 동행해 준 고마운 인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도 그는 모양만 죽비가 아닌 깨우침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죽비를 완성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대쪽같은 마음으로 그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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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중현中玄 김세리金世理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 다산숲 자문위원. 성균예절차문화연구소, 중국 복건성 안계차 전문학교 고문. 대한민국 각 분야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연구 중. 저서로 『동아시아차문화연대기-차의 시간을 걷다』, 『영화,차를 말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공감생활예절』 등이 있다.
sinbi-10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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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전정애님의 댓글

전정애 작성일

중현 김세리 선생님의 '깨우침의 소리로 거듭나는 대나무' 글 잘 읽었습니다
선가 죽비 장인 류시상 선생님의 장인정신도 대나무처럼 푸르고 아름답지만 중현 김세리 선생님의 글과 마음도 대나무를 닮아 푸르고 아릅답게 느껴집니다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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