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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불교와 힌두교가 함께 벌이는 카트만두의 수레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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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3 년 5 월 [통권 제121호]  /     /  작성일23-05-05 13:53  /   조회2,75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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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네팔 달력의 마지막 달인 차이트라(Chaitra)의 말일경에 카트만두에서 유서 깊은 기우제祈雨祭 성격의 축제가 열린다. ‘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라는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이 축제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어서 올해는 반드시 참석하려고 몇 번씩 날짜를 확인해 보고 포카라에서 야간버스로 갈아타고 카트만두로 향했다. 

 

관음보살로 변용한 쉬바

 

이 축제는 2023년 양력 3월 29일부터 3일간 카트만두의 명물 시장인 아산(Asan) 근처에 위치한 잔바할(Jan Bahal) 사원에서 시작되었다. 카트만두 인근에서는 큰 수레를 끌고 시내 곳곳을 행진하는 거창한 ‘라트(Rath)’ 축제가 몇 개 열리고 있다. 그 중 ‘세토 마친드라나트 자트라(Seto Machindranth Rath Jatra)’는 불교 쪽 시각으로 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축제의 또 다른 명칭인 ‘아르야바(하얀) 로께스바라(Aryava Lokeshwara)’라는 말에서 보듯이 관음보살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주1)

 

사진 1. 잔바할 사원의 삼존불상. 중앙의 석가상 이외의 좌우 협시보살상은 역시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진 2. 아산(Asan) 시장 근처 잔바할 사원의 정문 처마 밑에는 황동으로 만든 티베트 불교의 중요한 아이콘인 ‘팔길상八吉祥(Tashi taggye)’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필자가 이 축제를 눈여겨보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 첫째는 네팔에서 “힌두교와 불교가 어떤 상관관계를 이루며 공존해 왔는가”라는 화두와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마친 축제는 분명히 힌두교 고유의 자트라(Jatra)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불교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이른바 종교간의 변용變容이 일어난 것이다. 이 축제의 주인공이며 비의 신 마친드라나트를 슬며시 로께스바라(Lokeshwara), 즉 관음보살(Avalokiteshvara)로 대체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전해 오는 전설에서 과감하게 곁다리를 쳐내고 나면 힌두교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로드 쉬바(Lord Shiva)’가 ‘비의 신’이란 역할로 관음보살로 변용된 것이다. 고대에서는 브라만교, 불교, 힌두교 간의 변용이 빈번했지만(주2) 중세 이후에는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하얀 관음의 거리축제’가 갖는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사진 3. 잔바할 사원 경내에 있는 사면석불상四面石佛像. 힌두교의 영향을 볼 수 있다.

 

고행승의 아이콘인 쉬바(Shiva)가 젊은 시절에 유랑을 하며 명상 수련을 하던 때였다. 당시 쉬바는 로께스바라라는 구루(Guru)를 만나 비전의 술법을 전수받았다. 그런데 이를 자랑하고 싶었던 쉬바는 부인 빠르바띠(Parbati)에게 떠들어대고 말았다. 한편 제자가 혹시 천기를 누설할지로 모른다고 생각했던 스승은 물고기로 변신하여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듣고 있을 것이란 낌새를 챈 쉬바가 “누구든지 내 말을 엿듣는 자가 있다면 저주를 내릴 것이다.”라고 하자 이때 물고기로 변해 있던 스승이 나타났다. (중략) 이에 쉬바는 스승과의 약속을 깨고 스승에게 저주를 내린 것에 대하여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사진 4. 잔바할 사원에 모셔져 있는 하얀색의 로께스바라(관음), 마친드라나트 소상.

 

다시 한번 위 설화를 정리해 보면 이미 힌두교 판테온(pantheon)에서 쉬바는 힌두 3신의 한 명으로 매우 중요한 신이었다. 하지만 중세 농경국가에서는 제때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의 덕목이었다. 이에 쉬바는 이 역할마저 맡아서 물고기를 의미하는 ‘마츠야(Matsya)’에서 ‘마친드라나트’라는 화신(Avarta)으로 변하여 메이저 신으로서의 자리를 지켜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지역 축제로 정착한 거대한 수레 축제

 

카트만두 분지에서 거창한 수레 축제의 원조는 고도 파탄(Patan)에서 열리는 ‘라토(Rato:Red) 마친드라나트 자트라’인데, 이것이 ‘붉은 수레 축제’이다. 이어서 오늘의 주인공 ‘하얀 수레 축제’가 생겨났고, 나아가 또 다른 2개의 마을인 초바르(Chovar)와 나라(Nala)까지 총 4개의 축제로 늘어났다.

 

사진 5. 잔바할 사원 뒤편에 자리 잡은 야외무대. 하얀 관음상이 꽃단장을 하고 있다.

 

물론 모종의 필요에 의하여, 또한 약간의 차별화도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것이다. 말하자면 종주격인 파탄지역이 붉은색으로 신상을 치장하여 ‘비의 신’ 역할을 하게 한 반면, 카트만두는 흰색[Seto]으로 신상을 치장하여 ‘장수의 신’으로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또한 다른 2곳의 후발주자들인 초바르(Chovar)에서는 붉은색으로 칠하고 ‘아난디 로께스바라(Ananddi L.)’라며 ‘질병을 다스리는 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고, 네 번째로 나라(Nala)에서는 흰색으로 칠하고 ‘스리스티칸타 로께스바라(Sristikanta L.)’라고 부르며 ‘창조의 신’ 역할을 강조하는 식이다.

일년 중 절반 이상의 날을 흥겨운 축제를 벌이는 네팔이란 나라이기에 이런 종교 간의 변용에 따른 전설 또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간략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사진 6. 카트만두의 중심지, 쟈말 거리에서 ‘하얀 관음상’을 태우려고 조립한 거대한 라트.

 

네팔의 중세 말라(Malla) 왕조의 야크샤(Yakshya) 왕 때이다. 당시 사람들은 신성한 강에서 목욕하고 스얌부나트(Syambunath) 대탑을 참배하고 그곳에서 기도하면 사후에 천국으로 간다고 믿었다. 이에 죽음의 신, 야마라지(Yamaraj)도 대탑을 방문하였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야크샤 왕과 그의 딴트릭 구루(Tantric Guru)에게 붙잡혀 감금 상태가 되었다. 할 수 없이 야마라지는 ‘아라야 관음(Arya A.)’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관음보살이 물에서 나타났는데, 하얀 몸에 눈을 반쯤 감은 상태였다. 그렇게 등장한 관음보살의 중재로 사태는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두 강이 교차하는 곳에 사원을 짓고 신이 수레를 타고 돌아다니며 중생들을 축복할 수 있도록 해마다 성스러운 라트 축제를 열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사진 7. 자말 거리에 도착한 하얀 관음을 태운 거대한 라트를 둘러쌓은 엄청난 군중. 

사진 8. 삭발한 승려들에 의해 작은 가마에 태워져 좁은 골목을 행진하는 하얀 로께스바라 소상.

 

여기서 내가 눈여겨보는 대목은 티베트 불교를 상징하는 탄트릭 요기가 왕과 같이 나타나 야마라지를 사로잡았다는 대목과 그를 구하고자 아발로끼데스바라, 즉 관음보살이 나타나 사태를 수습했다는 상황 설정이다. 이는 탄트릭의 세력이 기존 힌두이즘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눈여겨볼 대목은 딴트릭 불교에서 관음의 변용인 따라보살(Tara B.)이 다시 하얀색과 녹색으로 분리되면서 힌두에서도 하얀 로께스바라가 생겨나는 변용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불교사적으로도 분수령으로 꼽을 수 있는 상황이다.

 

3일간 계속되는 하얀 수레 축제

 

이 축제는 아산(Asan) 시장 근처 잔바할에서 시작된다. 이 사원에 모셔져 있는 마친 신상은 평소 때는 하얀 얼굴과 발만 보일 뿐 다른 부분은 모두 옷과 보석으로 가려진 채 중생들의 뿌쟈(Puja)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다가 축제일이 다가오면 삭발한 불교식 힌두 사제들에 의해 찬물, 뜨거운 물, 우유, 버터, 꿀로써 정성스럽게 목욕재계沐浴齋戒를 거친다. 그리고 축제 당일이 되면 작은 수레에 옮겨져 수많은 악대들의 인도 아래 산스크리트 대학이 있는 구 왕궁 거리인 자말(Jamal)이란 곳으로 이동하여 거대한 라트로 옮겨진다.

 

사진 9.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귀여운 민속악대들. 

사진 10. 네팔의 독자적인 불교 깃발.

 

높이가 약 35피트에 달하는 뾰족한 시카라(sikhara)형 수레를 ‘라트(Rath)’라고 부른다. 이 수레는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약 300개의 나뭇조각을 베다 끈으로 묶어서 수레의 본체를 만들고 노간주 나뭇잎으로 전체를 장식한다. 2층에는 방을 만들어 그곳에 오늘의 주인공인 하얀 관음상을 모시고 사방에는 황동색의 수호신 사천왕상으로 장엄한다.

 

이 라트는 4개의 나무 바퀴에 의해 움직이는데, 정면에 달린 긴 나무 봉에 매여 있는 로프를 수백 명의 사람들이 끌어서 앞으로 나아간다. 동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인력으로만 움직이는 이 거대한 수레 행진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일대 장관이다. 하지만 수레 앞뒤에서 분위기를 돋우는 ‘구르주야 팔탄(Gurjuya paltan)’이란 네팔 왕국의 전통 군악대와 카스트 별로 구성된 수많은 악단들의 행렬과 그들이 연주하는 요란한 소리도 일대 장관이다. 

 

사진 11. 하얀 라트 축제의 바퀴 앞에선 필자. 



사진 12. 빨간 라트 축제의 바퀴 앞에선 필자. 

 

무엇보다 직, 간접적으로 축제에 참여하는 수천 명의 군중들이 만들어 내는 열기야말로 엄청난 매력이다. 깔려 죽을 각오를 감수하고 행렬에 끼어든 필자였지만 “우와 정말 굉장하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각주>

(주1) 일명 ‘자나바하 됴(Janabaha Dyo), 아발로끼데스바라(Argya A.)’, ‘아르야바(백색) 로께스바라(Aryava Lokeshwara)’, ‘까루나마야(Karunamaya)’라고도 부른다.

(주2) 그러나 불교사적 시각으로 보면 이미 쉬바는 힌두의 많은 신들과 같이 마헤슈바라(Maheśvara)라고 하는 신격으로 불교에 수용되어 대자재천大自在天 또는 자재천自在天이 되었다. 이는 우주를 생성하고 유지하고 파괴하는 커다란 능력이 있는 신인데 불교의 판테온으로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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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현재 8년째 ‘인생 4주기’ 중의 ‘유행기遊行期’를 보내려고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로 들어와 네팔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틈틈이 히말라야 권역의 불교유적을 순례하고 있다.
suri11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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