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심우소요]
걸출한 고승들을 배출한 수행처 수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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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 / 2023 년 6 월 [통권 제122호] / / 작성일23-06-05 10:22 / 조회2,490회 / 댓글0건본문
거연심우소요居然尋牛逍遙 32| 청암사·수도암④
전국의 사찰을 순례하다 보면, 오랜 역사 속에서 목조로 된 당우들이 소실되고 중건되기를 반복한 곳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고, 그런 상황 속에서 불상이나 비석들도 원래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이 적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정확한 사지寺誌가 남아 있지 않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찰에는 그 불상 등이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를 확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도암 동·서 3층 석탑과 석물
대적광전 앞마당에는 3층 석탑이 양쪽으로 서 있다. 이 석탑도 9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사진 1). 동탑은 단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1층 탑신에는 네 면에 사각형의 감실을 두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새겨놓았다. 2층과 3층의 탑신에는 각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사진 2). 서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1층 탑신에는 각 모서리에 기둥이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두 탑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3층 석탑은 도선국사가 창건할 당시에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을 갖추고 있어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는 말도 있는데, 이 또한 전설 같은 이야기다.
이 앞마당에는 ‘창주도선국사刱主道詵國師’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석물이 서 있는데, 글씨는 일제식민지시기에 새겨진 것으로 본다. 2019년에 탁본을 통하여 ‘김생서金生書’, ‘원화3년元和三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는 글씨가 판독되어 이 석물의 건립 시기에 관한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석물에는 여러 행의 글씨가 새겨진 흔적이 있는데, 거의 보이지 않는 글씨 위에 ‘창주도선국사刱主道詵國師’라는 큰 글씨를 깊이 파놓은 것이다(사진 3). 그러나 그 내용이 그렇더라도 김생이 이 글씨를 직접 쓴 것인지 아니면 후대에 그런 내용을 다른 사람이 써서 새겨놓았는지는 더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석물에 새겨진 글씨를 놓고 바로 확정함에는 이를 보강하는 다른 증거 자료들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동문선』에 수록된 도선국사에 얽힌 기록
도선국사에 대해 더 살펴보면, 사실 도선국사에 대한 당대의 자료는 없다. 그가 실제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그에 관한 최초 기록은 그가 죽은 지 250여 년이 지난 고려시대에 최유청崔惟淸(1093~1174)이 지은 「백계산옥룡사증시선각국사비명병서白鷄山玉龍寺贈諡先覺國師碑銘竝序」라는 글이다.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도선국사의 탄생, 풍수지리를 터득한 내력, 왕건 탄생과 고려 건국 예언 등의 내용이 나오고, 이것이 후대 조선시대에 와서 계속 내용이 가감되면서 여러 책에 실리게 된다.
그 내용도 부모가 누구인지 불확실하고, 어머니의 성도 강씨, 최씨, 온씨 등으로 어지럽게 나오고, 어머니가 구슬을 먹고 잉태했다거나 오이를 먹고 잉태하였다고 하고, 태어난 뒤에는 내다버렸는데 비둘기, 학, 독수리 같은 새가 보살펴 키웠고, 중국에 들어가 풍수지리를 배워와 전국 산천을 돌아다니며 비보사찰을 세웠다는 등의 이야기다. 건국설화나 위인들의 탄생설화와 같은 황당한 이야기다. 왕건과 연관된 이야기는 도참술사들이 왕권과 연결시켜 꾸며낸 것인지 왕건이 도선이야기를 끌어들여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문제의 『도선비기道詵祕記』라는 것도 출처를 알 수 없는 황당한 내용의 것이다. 도선이라는 이름도 어쩌면 도참술사나 풍수쟁이들이 불교승려에 가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에서도 풍수 등이 당나라 때 불교에 스며들기도 했는데, 싯다르타가 풍수나 도참을 진리로 말한 바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산도 없고 먼지 날리는 평원에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가 있을 여지는 아예 없었으리라.
이 앞마당은 공간이 좁아 대웅전 당우들과 석탑과의 사이가 좁다. 그렇지만 이 앞마당에 서면 앞으로 탁 트인 공간으로 시야가 열려 가슴이 시원하다. 멀리 가야산 봉우리가 보인다.
수도암은 도선국사의 창건설화 이래 ‘터가 좋다’고 하는 말이 끊이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참선수행하는 납자들이 수도암을 많이 찾고 실제로도 참선수행이 다른 곳보다 잘 된다고 한다. 터로는 약광전이 최고라는 견해도 있고, 나한전이 최고라는 견해도 있다. 붓다의 길로 가는 참선수행이 마음의 문제가 아니고 터에도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가기는 어디를 가느냐 앉은 자리가 깨닫는 자리다.”라고 일갈한 당나라 마조馬祖(709~788) 선사가 들으면 난리가 날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수행처
근래 수도암이 납자들 사이에 수행처로 선호된 것은 그간 이곳에서 수행한 스님들 중 대단한 고승 대덕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리라. 근대에 들어와 수도암에 선원이 시작된 것은 경허鏡虛(1849~1912) 선사부터로 본다. 그 이후 근대 이후 한국불교에 큰 족적을 남긴 한암漢岩(1876~1951) 선사, 고암古庵(1899~1988) 선사, 전강田岡(1898~1975) 선사, 구산九山(1909~1983) 선사, 관응觀應(1910~2004) 대종사, 보성菩成(1928~2019) 대화상 등이 수행을 하였고, 전강선사는 조실로 주석하기도 했다. 한암선사가 경허선사에게서 인가를 받은 곳도 이곳이다. 6·25전쟁 후 폐허가 된 수도암을 지금의 모습으로 중창한 일은 법전法傳(1925~2014) 대종사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에 붉고 노란 단풍들이 산에서 합창을 해대는데도 절간은 낮에도 적막하기만 하다. 수행하는 스님들은 보이지 않고 가끔 수행승들을 보좌하는 스님의 그림자만 사립문 너머로 간혹 보일 뿐이다.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인간이 고苦Dukkha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사는 도道Marga-satya를 행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인간이 생겨난 후 지금까지 온갖 역사를 몸소 겪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 도달한 지점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각자 자기가 원망願望(desire, want, need)하는 바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하고 싶을 때 일 하고, 알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탐구하고, 자기 생각을 세상에 자유로이 표현하고, 침묵하고 싶을 때 침묵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신앙을 가지고 싶으면 가지고 싫으면 가지지 않고, 자기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재산을 모아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나라가 잘못하면 자유로이 비판하고, 더 나아가 죽고 싶으면 죽고, 살고 싶으면 살고… 등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원망을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게 공동체를 지키고(강병强兵), 모든 인간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게 부유해야 한다(부국富國)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를 부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온갖 권력에 대하여 저항하고 투쟁한 인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이란 각자 ‘무엇을 하고 싶다[願望]’고 하는 존재이고,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욕망慾望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각자 자기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으면 그 길이 자아실현이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의 생각 끝에 설계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수 천년을 살아오면서 온갖 고통과 재난과 전쟁과 국가의 폭압을 겪으면서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낸 결과들이 축적된 결론이다.
다만, 이렇게 살더라도 각기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함께 살려면, 자신의 행복은 남의 행복을 해치지 않는 경계선까지라는 것과 자신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지점까지라는 것도 찾아내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데는 사상이나 철학, 종교적 사유도 기여한 부분이 있고, 이론가와 실천가들이 기여한 것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실존적 인간의 주체적인 결정으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를 정당화한 연구와 글은 전 세계에 넘치고 넘친다.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이런 것을 법적으로 확실한 힘을 가지게 하고자 ‘개인이나 국가가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것’으로 설정하여 ‘권리(right)’라는 대못을 단단히 박았다. 이를 ‘인권(human right)’이라고 하고, 오늘날 문명국가에서는 공동체에 살고 있는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권력까지도 규율하는 최고법인 헌법에서 이를 분명하게 정해 두고 있다. 그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스스로 정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유有이고, 인간은 ‘욕망의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냥 생명체로서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나와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다가 죽는 존재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각자 ‘하고 싶은 것’을 권력자는 권력자대로 못하게 하고, 종교는 종교대로 못하게 하고, 가족은 가족대로 못하게 하고, 인간이 모인 집단이나 단체는 그 힘으로 개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한 일들을 수도 없이 겪은 일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넘치고 넘친다.
그 결과 인간이 실존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개개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힘이 있든 없든 재산이 있든 없든 남녀노소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존귀함, human dignity)을 인정받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인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간이란 본능과 이성과 감정과 감성과 오성 등이 혼합되어 있는 생물학적인 자연 유기체이기에 어떤 특정한 인간에게만 존엄성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그렇기에 신분이나 특권적 지위라는 것도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 되는 사회적 악이어서 모든 문명국에서는 법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무無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이중적인 삶이거나 자기분열적인 상태에 빠져 있게 된다. 그렇다면 싯다르타가 발견하여 우리에게 말해 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우리는 불법佛法 dharma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가? 힌두라고 부르는 인도인의 전통 신앙 또는 철학에서 최고의 이상으로 삼은 것은 현실 사회를 규율하는 법규범을 말하는 다르마, 재산적 부富를 말하는 아르타artha, 해탈을 말하는 목샤moksha, 성적인 사랑을 말하는 까마kama인데, 붓다는 목샤만 인정한 것인가?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에서 모두 재산적 부를 높이 평가하여 지금도 이 사람들이 세계에서 비즈니스와 돈 버는 일에는 귀재들인데, 불교에서만 부를 부정하였다는 것인가? 인도에서 불교가 ‘세상을 버리는[棄世]’ 가장 과격하고 급진적인 종교로서의 모습을 가지는 것은 세상을 버린 ‘수행자’에게 요구되던 것이었다. 그러면 수행자가 아니고 그냥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현실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 불교는 어떤 것일까? 조용한 공간에 모여 명상冥想(meditation)하는 것이라고? 그건 아닐 것이다.
싯다르타가 태어나 제일 먼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자신만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존귀(=존엄)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리라. 그 다음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이치’는 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리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푸른 잎들이 단풍으로 물들어 온 산을 불태워 들어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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