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마음을 챙기는 식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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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3 년 6 월 [통권 제122호] / / 작성일23-06-05 10:06 / 조회2,868회 / 댓글0건본문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정성으로 마련한
이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공양기도문의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불교의 생명관과 자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 살면서 잊고 있던 불성의 씨앗을 발견하게 해 주는 소중한 기도문입니다. 불가에서 시작된 위 기도문은 종교를 떠나 일상에서도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이와같이 생명존중사상과 자비사상으로 우주의 이치를 설명하고 다양한 방편으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인도합니다.
자비로움의 원동력, 지구 살림 사찰음식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지구 살림 음식)을 쓸 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자비로운 사찰음식의 지혜를 배우고 익혔으면 하는 서원을 세웁니다. 거창한 서원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불교의 모든 것은 방편임을 깨닫게 해 주신 틱낫한 스님의 글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마음을 챙기며 베푸는 삶 속에서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원을 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하지만 정성을 다해 등불을 밝혀 부처님 오시는 길을 밝히니 가장 오랫동안 밝게 빛났다는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야기처럼 단순한 보시라도 순수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행한다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는 씨앗이 된다는 말씀이시겠지요. 자비와 기쁨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보살이 되는 길은 오직 마음 챙김에 길이 있다는 말씀에 공감하며 마음 챙기기에 기반을 둔 건강한 음식을 전하는 데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음 챙기기는 바로 매 순간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워야 할 규칙도 없고 지나치게 분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반적인 식이요법을 참고하여 먹는 것과 달리 마음을 챙기면서 먹는 음식은 결국 비폭력적이고 건강한 음식이 됩니다. 우리가 선택한 모든 것이 카르마를 생기게 하고,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이 내 몸에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청정하고 여법하며 유연한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사찰음식의 기본 삼덕을 마음에 새기고, 마음의 평화와 조화로움으로 상생할 수 있도록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님을 깨달아야겠습니다.
담락湛樂하며 살아요
봄날 끝자락에 삶이 자연이고 자연이 삶인 육잠스님의 산중생활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속에서 생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신다는 스님의 수행처는 스님의 모습처럼 담백하고 소박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분주하고 바쁘게 살고 있던 저에게 스님은 ‘담락湛樂’이라는 메시지를 안겨 주셨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평화롭고 화락하게 즐기다’입니다만 이렇게만 정의 내리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느낌을 잘 살려 해석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기억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밭에 콩을 심을 때는 한 구덩이에 콩알을 3개씩 심어서 하나는 땅속 벌레들이 먹게 하고, 하나는 새와 짐승들이 먹게 하고, 나머지 한 알만 사람의 몫이라 생각하고 심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할머니의 이 말씀이 굉장히 가슴에 와닿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들에서 새참을 드시면서도 한 번도 그냥 드시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고시레~” 라고 외치시며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주변으로 휙 던져 주시며 공존의 철학을 배우게 해 주셨습니다.
까치밥을 남기는 풍습도 마찬가지겠지요.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님을 일깨워 주고 공존하며 살아야 할 동반자로 여겼던 것입니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해 주셨던 말씀을 스님께 다시 듣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선농일치의 삶 속에서 마음밭을 일구며 겸손하게 살아가시는 모습 속에는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고, 부모님의 모습도 뒤섞여 스쳐갔습니다.
자루엔 쌀 석 되
화로가엔 땔나무 한 단
밤비 부슬부슬 내리는 초막에서
두 다리 한가로이 뻗고 있네.
양관선사의 시가 공양간 살강 위에 단정한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욕심은 부리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함을 강조하시며, 남새밭에 돋아난 더덕순과 돈나물, 그리고 알맞게 자란 엄나무순으로 점심 공양을 차려 주셨습니다. 해우소 가는 길에 똥지게에서도, 공양간 살강 위에 짧은 글 속에서도, 담담하고 소박하게 살아가고 계시는 스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나를 만나러 가는 길처럼 조금은 색다른 설렘을 느낄 수 있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곡산방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리 불려 놓은 콩으로 밥을 지으시고 반찬을 만드시는 동안 저는 도량에 핀 어여쁜 제비꽃을 따서 고명으로 올렸습니다. 더덕순의 맛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만큼 향기롭고 싱그러웠습니다. 스님의 똥지게에서 짐작하였듯이 자연의 선순환은 이토록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오월 오일 단오날에 빛깔이 산뜻하다
오이밭에 첫물 따니 이슬이 젖었으며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 볕에 눈부시다
목 맺힌 영계소리 연습삼아 자주 운다
시골 아녀자들아 그네는 뛴다 해도
청홍 치마 창포 비녀 좋은 시절 허송 마라
노는 틈틈이 할 일이 약쑥이나 베어 두소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5월령입니다. 물론 음력으로 노래하였으니 양력 6월의 노래입니다. 입하가 한참 전에 지났고 본격적인 한여름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망종과 하지의 절기이자 단오가 들어 있는 달입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앵두를 활용한 전통음식과 단오에 먹는 절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앵두편 만들기
앵두편은 대표적인 과편류의 하나입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한글 조리서인 장계향의 『음식디미방(규곤시의방)』에도 올려져 있는 앵두편은 녹말가루로 식감을 살린 조선시대판 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천이나 젤라틴을 사용하지 않아도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 있는 조선의 젤리이자 양갱과 비슷한 단묵이었습니다.
세종과 문종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앵두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눈에 띕니다. 문종은 일찍이 궁궐 후원에 손수 앵두를 심었다가 열매가 익으면 세종에게 바치곤 했다고 합니다. 세종이 그 맛을 보고는 “다른 곳에서 바친 것이 어찌 세자가 손수 심은 것과 같을 수 있느냐.”며 문종의 효성을 칭찬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경복궁 안에는 앵두나무가 많은데 그것은 아마도 문종의 효심을 상징하는 열매이기에 소중히 보호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시골 장독대 옆에 앵두나무는 벽사의 의미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씨간장을 보호하고 햇장을 담글 때마다 장독대 주변의 앵두나무와 봉숭아꽃이 악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앵두가 루비빛처럼 영롱하게 익으면 한 줌 따서 입안 가득히 넣고 오물오물 씹어 줍니다. 과육을 삼키고 씨앗만 남았을 때 입술 총을 발사합니다.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며 앵두편을 소개합니다.
재료
앵두 600그램, 물 3컵, 설탕 1컵, 소금 한꼬집, 꿀 1큰술, (녹두녹말 5큰술, 물 5큰술), 밤 5개.
만드는 법
1. 깨끗이 씻은 앵두는 물 3컵에 넣고 10분간 끓여 주세요.
2. 과육이 익으면 체에 올리고 껍질과 씨를 걸러 주세요.
3. 물에 녹두 녹말가루를 풀고 충분히 불려 주세요.
4. 냄비에 앵두즙과 설탕, 소금을 넣어 끓여 주세요.
5. 끓으면 녹말물을 섞어 중불로 30분 저으면서 끓여 주세요.
6. 농도가 되직하면 꿀을 넣고 잠시만 더 끓여 주세요.
7. 모양틀에 물을 바르고 앵두즙을 부어 주세요.
8. 밤은 껍질을 벗기고 두툼하게 저며서 앵두편과 곁들입니다.
TIP
- 여름 과일인 살구, 자두 등을 활용하여 만들어도 좋습니다.
- 모과, 오미자, 산사열매를 활용해서 만들기도 합니다.
제호탕醍醐湯 만들기
최영년의 ‘제호탕’이라는 한시 한 수를 읊어 봅니다.
연년척서태의방 年年滌暑太醫方
백련오매백밀탕 百煉烏梅白蜜湯
배사궁은여관정 拜賜宮恩如灌頂
선향불양오운장 仙香不讓五雲漿
해마다 더위를 씻어주는 어의의 처방
오매와 좋은 꿀을 백번 달여 만든 탕
절하며 받은 임금님의 은혜가
정수리에 물을 부은 듯하고
묘한 향기는 좋은 술에 뒤지지 않는다.
제호탕은 더운 여름에 마셨던 전통 청량음료입니다. 불가에서의 제호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라는 말로 풀이합니다. 제호醍醐라는 것은 우유의 발효 중에서도 수차례 정제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정수를 말하기도 합니다. 제호를 머리에 끼얹는다는 ‘제호관정醍醐灌頂’은 불가에서 숭고한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글자 그대로 ‘제호를 정수리에 붓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뜻하는 말입니다. 더위 먹지 않도록 제호탕을 마셨고, 더위를 먹어서 제호탕을 마셨습니다. 식욕부진과 원기회복에 제호탕만큼 효능이 좋은 것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윽한 향과 시큼한 맛이 짐의 식욕을 돋우는구나. 대신들도 한번 마셔 보시오.”
조선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단옷날 왕과 신하의 정겨운 모습입니다.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한 것은 ‘제왕의 청량음료’인 제호탕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내의원에서는 단옷날에 제호탕을 만들어서 진상하였고 임금님은 이 제호탕을 더위를 잘 이겨내라는 의미로 대신들이나 기로소에 하사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어 온 청량음료인 제호탕을 마시고 올여름은 거뜬하게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
재료
오매 150g, 초과 10g, 백단향 5g, 축사인 5g, 꿀 500g
만드는 법
1. 오매는 굵게 갈고 나머지 재료는 곱게 갈아 주세요.
2. 꿀에 버무려 중탕해 주세요.
3. 잘 저어 주면서 걸쭉해질 때까지 중탕해 주세요.
4. 백자에 넣고 보관하여 청량음료로 음용하세요.
TIP
- 오매는 푸른 매실을 따서 과육과 씨앗을 분리한 뒤, 짚불 연기로 그을려 말린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질그릇에 씨를 제거한 과육을 넣어 연기가 나지 않을 때까지 말린 약재를 말합니다. 까마귀처럼 까만 매실이라고 해서 오매라고 불립니다.
- 『동의보감』에는 “오매육 1근, 초과 1냥, 백단향·축사 0.5냥을 아울러 곱게 가루 낸 뒤 달구어 익힌 꿀 5근을 넣고 약간 끓어오르면 고루 섞어 백자기 안에 담아 두었다가 냉수를 타서 복용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진 9. 두곡산방 공양간에 걸린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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