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돈오돈수로의 사상적 전환과 선화자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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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23 년 6 월 [통권 제122호] / / 작성일23-06-05 12:00 / 조회2,499회 / 댓글0건본문
은암당 고우스님의 수행 이야기⑳
고우스님은 만 50세가 되던 1988년부터 문수산 금봉암을 창건할 때인 2005년까지 17년 동안 각화사 서암에 주석하며 각화사 태백선원 선원장 소임도 맡았다. 봉화 춘양 태백산 각화사는 조선시대 왕조실록王朝實錄을 보관한 사고史庫 사찰로도 유명하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만들어져 어느 곳이나 사통팔달이 되었지만 고우스님이 각화사에 있을 때만 해도 오지 중에 오지가 각화사였다. 그만큼 공부하기에는 좋은 도량이었다.
태백산 각화사 서암에서 공부를 점검하다
고우스님이 각화사 태백선원 선원장을 할 때에는 수좌들 사이에는 제2 봉암사라는 이름이 있을 정도로 선풍이 성성한 도량이었다. 각화사는 태백산 높은 봉우리에서 100리나 뻗어 내려와 각화산을 만든 뒤 좌청룡 우백호로 감싸고 있는 천혜의 수행 도량이다. 오대산 월정사 조실이셨던 탄허스님이 각화사를 보고는 “다섯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국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도 이렇게는 만들기 어려운 명당”이라고 격찬한 도량이 태백산 각화사다.
각화사에서 왼쪽 산길로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서암이 있다. 암자라기보다는 토굴에 가까운 세 칸 정도 되는 집이다. 그래도 마당이 제법 넓고 또 약간의 채전도 있으니 혼자살기에는 좋은 터였다. 서암 마당에 서면 뒤와 좌우는 산등줄기가 감싸고 있고, 앞은 확 트여 멀리 청량산 최고봉이 둥글게 보이는 도량이다. 서암은 6·25전란 중에 한 보살님이 와서 판잣집을 짓고 30년 동안 살았다. 이후 한 스님이 와서 불사를 하여 암자의 모양을 갖춘 뒤에 살다가 떠나고, 1988년부터 고우스님이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다.
돈오점수에서 돈오돈수로의 사상적 전환
각화사 서암에 바랑을 풀어놓고 편안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출가 이후 스스로의 공부를 살펴보았다. 우리나라 선방이 당시에는 대개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입장에서 수행해 왔다. 그런 입장에서 1971년 심원사에서 공空을 체험하고는 돈오했다고 확신하였다. 이제 공을 알았으니 남아 있는 전생의 습기와 미세망념을 점차 없애 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 후 17년이 지난 1988년 동암에서 심원사에서 얻은 것보다 더 강렬한 깨달음을 체험한 것이다.
동암에서 ‘정혜 통류’와 ‘백척간두 진일보’를 깨닫고 보니 심원사의 깨달음은 그냥 공을 체험한 것이지 확철대오의 깨달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고우스님은 이 깨달음에 대하여 다시 공부를 점검하고 분명한 정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그동안 가까이 모셨던 서암스님, 지유스님과의 인연으로 돈오점수 공부를 지침으로 해 왔는데, 이제는 돈오돈수에 대해서도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시중에 나가서 성철스님의 『선문정로禪門正路』와 『본지풍광本地風光』 그리고 해인사 백련암에서 발간한 ‘선림고경총서’와 민족사의 ‘깨달음총서’ 시리즈를 몽땅 구해 와서 서암 책상 위에 쌓아놓고는 한 권씩 읽어 나갔다. 예전에는 선어록을 보다 막히던 대목이 더러 있었는데 이제는 술술 읽혔다. 그리고 조사어록 보는 재미가 났다.
그렇게 스님은 많은 조사어록과 불교 교리서를 보던 중, 성철스님이 스스로 “부처님께 밥값했다.”고 하신 『선문정로』를 보고는 “과연 성철스님이구나!” 하며 탄복했다. 그동안 고우스님이 참선하면서 돈오점수의 입장에서 뭔가 석연치 않던 깨달음, 견성성불에 대한 견해가 『선문정로』에는 명쾌하게 정립되어 있었다. 그것도 성철스님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태고보우 국사와 나옹스님 같은 우리나라 조사들도 한결같이 말씀하셨고, 또한 간화선을 만드신 『서장』의 대혜종고 선사나 『선요』의 고봉선사도 같은 법문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었다. 선문의 종장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것은 깨달아 부처가 된다 함은 화두가 오매일여寤寐一如되어 타파가 되어야 ‘확철대오廓徹大悟’, 무상정등각을 성취하여 생사를 해탈하여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고우스님은 훗날 “선문의 바른 견해를 제시한 『선문정로禪門正路』가 너무 좋아 열 번도 넘게 봤다.”고 하셨다. 성철스님이 고구정녕하게 알려주신 선문의 정로는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5년에 우연히 남해 용문사 염불암에서 성철스님께 “돈오점수가 맞지 않습니까?”하고 대들었던 일이 생각나서 뒤늦게 참회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고우스님은 각화사 동암에서의 깨달음을 계기로 ‘백척간두 진일보’의 뜻을 알게 되었고, 당신의 공부를 점검하기 위해 경전과 조사어록을 살펴보던 중 『선문정로』를 보고는 그동안 돈오점수하던 입장을 바꾸어 돈오돈수 안목으로 다시 화두를 들기 시작했다.
도반들과 선어록 공부를 시작하다
그때 선납회禪衲會라고 선방 수좌들의 모임이 있었다. 본래 1967년 선림회禪林會로 출발했는데, 선림회가 흐지부지되고 1982년경 고우스님과 적명스님이 주도하여 선납회가 출범한 것이다. 창립 취지는 결제철에는 선방에서 열심히 정진하고 해제철에는 모여서 선어록을 공부하자는 뜻으로 만들었으나 당시나 지금이나 수좌들이 선어록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우스님은 1988년 동암에서 체험 뒤 서암에서 『선문정로』를 비롯하여 선어록을 보면서 공부에 대한 안목이 확연히 정립되었다. 그동안 선어록을 너무 소홀히 했다는 뉘우침도 있었다. 그리하여 그해 봄 선납회 도반 모임에서 우리 수좌들도 해제철에는 선어록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었다. 그랬더니 고우스님에게 주관해서 추진해 보라고 책임을 맡겼다.
그래서 고우스님은 도반들과 같이 해인사로 성철스님을 찾아뵙고 어떤 선어록을 공부하는 게 좋은지 의견을 들어보러 백련암으로 갔다. 성철스님께 수좌들이 해제철에 선어록을 공부하려는데 어떤 어록을 보는 게 좋은지 말씀해 달라고 하자 환하게 웃으시면서, “참 잘했다. 수좌들도 해제철에는 경전과 조사어록을 공부해서 사상 정립을 하고 공부해야 한다. 사상 정립도 안 된 사람들이 무슨 화두 공부가 되겠느냐? 어록 공부해서 사상 정립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뒤 “무엇보다 선종의 종전宗典인 『육조단경』을 봐야지.” 하면서 『육조단경』을 추천하셨다. 그 자리에서 그러시면 직접 강설을 해달라고 청했더니 당신은 지금 건강이 좋지 않으니 서옹스님한테 가서 부탁해 보라 하셨다.
그래서 고우스님은 당시 서울 수국사에 주석하고 계신 서옹스님을 찾아뵈러 가게 되었다. 그때 해인사 주지를 하신 분이 훗날 방장도 하시고 종정도 하신 법전法傳(1926~2014)스님이셨다. 법전스님은 “서옹스님 뵈러 서울 가는데 내 차로 가자.” 그 차를 타고 수국사로 갔다. 차를 타고 가는데 법전스님은 뒷자리에 앉아서 가부좌를 하고 내내 정진하셨다.
서울 수국사로 가서 서옹스님을 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수좌들에게 『육조단경』 강의를 해 달라고 청하니 아주 좋아하시며 흔쾌히 수락하셨다. 그리하여 흔연한 마음으로 다시 해인사로 돌아왔는데, 도착할 무렵에 수국사에서 해인사로 전화가 왔다. 서옹스님을 모시는 시자가 전하기를, “큰스님께서 해인사에서 『단경』강의를 못 하겠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하루가 안 되어 큰스님께서 입장을 바꾸신 것이다. 일이란 이렇게 뜻하지 않게 변수가 생기는 법이었다.
하는 수 없이 해인사 주지실에서 몇 사람이 둘러앉아 어떻게 할지 궁리를 하던 차에 그럼 백련암 스님께 다시 여쭤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당시 해인사 총무 소임을 보고 있던 원택스님이 백련암으로 전화를 드렸다. 전화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성철스님께서 “그럼, 일타스님 보고 하라 케라.” 하셨다. 그러자 전화기를 들고 있던 원택스님이 성철스님에게 말하기를, “그것은 수좌스님들이 알아서 정할 일이지 큰스님께서 그렇게 마음대로 하시면 되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전화로 그렇게 성철스님에게 대드는 광경을 옆에서 다 지켜본 고우스님이 원택스님께 한마디 했다.
“아니 원택스님, 그 어른에게 너무 불경하는 거 아니오?”
그런 말을 하면서 고우스님은 알았다. 원택스님이 그냥 성철 큰스님 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직언을 하는 시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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