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는 지금]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지지한 일본 승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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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 2023 년 7 월 [통권 제123호] / / 작성일23-07-04 10:02 / 조회2,488회 / 댓글0건본문
세계불교는 지금 7 |미국 ⑦
미국불교사는 ‘여성불교’, ‘선원과 명상센터’, ‘미국에서 출판된 중요한 책’ 등 소개할 소재가 많다. 그런데 최근 일본이 재무장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분위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주제는 잠시 미루고 일본 스님으로 『미국불교사』에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었던 세 인물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은 과거 일본이 침략전쟁을 할 때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한 불교인들이다. 이들이 미국에서 불교 활동을 할 때는 그런 과거 흔적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랐고, 그들은 그 사실을 은폐했다.
소엔사쿠, 스즈키 다이세츠, 야스타니 하쿠운
미국에 본격적으로 불교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로 당시 미국불교계는 일본불교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이 시기에 북가주 지역에서 선화스님에 의해 중국불교가 그리고 뉴저지 지역에서는 1950년대부터 티베트불교 활동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미국의 불교무대는 대체적으로 일본 불교인들의 활동이 압도적이었다.
미국불교사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일본불교는 대략 다섯 가지 종단과 그룹이 있다. 가장 먼저 미국에 들어온 정토진종 계열, 임제종 계열인 소엔사쿠, D.T.스즈키, 조슈 사사키(로스 엔젤레스 시마론 선센터 설립자), 조동종 계열인 스즈키 순류, 임제종과 조동종을 결합한 야스타니, 마애즈미, 에이도 시마노 그리고 창가학회 등이 주요 세력이다. 이 중 로스엔젤레스 선 센터의 마애즈미는 조동종 스님이면서 야스타니 제자이기도 하다. 현재에도 조동종 계열에 속하는 스즈키 순류와 마애즈미 제자들이 미국의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불교사와 관련 깊은 일본 불교계 인사들인 소엔사쿠釈宗演(1860~1919)와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1870~1966) 그리고 야스타니 하쿠운安谷白雲(1885~1973)이 보인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그들의 행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계간지 <TRICYCLE> 1999년 가을 호에 브라이언 빅토리아가 쓴 『전쟁과 선(Zen at War)』의 내용을 길게 소개하고 야스타니 하쿠운 계보 사람들의 반응도 다루었다.
스즈키에 대해서는 2013년 10월에 <Japan Focus>에 실린 글이 있다. D.T. 스즈키와 일본 파시즘의 관계에 대해 항상 논쟁적이며 때로는 매우 감정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언론에서는 “D.T. 스즈키의 전쟁 중 글에서 죽음의 숭배로서의 선(Zen as a Cult of Death in the Wartime Writings of D.T. Suzuki)”이라는 제목의 기사이다. 이 논쟁은 D.T. 스즈키와 나치, 더 정확하게는 스즈키가 나치를 긍정적 혹은 호의적인 시각으로 보았느냐는 것이다. 이 기사도 『전쟁과 선』의 영향으로 나온 기사이다.
사실 일본의 침략전쟁 중에 한 이들의 행동에 관한 자료는 미국에는 많지 않다. 일본에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료를 모으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필자의 글도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이 글은 백조가 호수에 온 이야기를 번역하여 『이야기 미국불교사』란 이름으로 한국에서 출판된 책을 비롯하여 『전쟁과 선(Zen at War)』, 『불교 파시즘』, 일본 조동종에서 발행한 『조선 침략 참회기(일본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나)』를 주로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이 세 사람은 미국에 불교를 전파하는 데 있어 공헌도 있지만 방어적인 전쟁이 아닌 일본의 침략전쟁에도 적극적으로 찬동한 전력이 있다. 이들의 사상은 지금까지도 일본사회와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제국적 침략을 하고 반인륜적 만행에 대해서 한국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숨겨진 면모
『전쟁과 선』은 일본이 침략전쟁을 하던 시기, 이들의 행적에 관하여 폭로한 책이다. 『전쟁과 선』에서 저자 브라이언은 서양에 가장 널리 알려진 D.T. 스즈키에 대해 제1판 서문에서 “D.T. 스즈키는 서구의 많은 사람들에게 선불교의 진인眞人으로 숭배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종교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존속을 유지하는 데 먼저 힘써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중국인에 대해서는 일본이 ‘종교의 이름으로’ 처벌해야 하는 ‘다루기 힘든 야마인들’이라고 주장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숨겨져 있던 스즈키의 또 다른 면을 폭로한 것이다.
불교를 포함한 종교는 민족이나 국가, 성을 뛰어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민족종교의 차원을 뛰어넘어 세계의 종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선불교의 진인으로 숭배 받았던 스즈키는 종교의 역할에 대해 “국가의 존속을 유지하는 것을 최고의 의무”라고 보았다. 물론 이들뿐만 아니라 세계불교사를 보면 침략전쟁에 적극 협조한 스님들이 가끔 있는데, 이들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1894년에 시작된 청일전쟁 이후에 일본이 대륙 진출한 시기부터 일본불교계의 포교 사업은 일본 군부의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일본이 참전하는 전쟁, 청일전쟁, 노일전쟁,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일본불교의 포교 사업은 크게 확장되었다. 이 시기가 이 세 사람이 활동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미국불교사에 자주 등장하는 이 세 사람은 적극적으로 침략전쟁을 벌이는 일본 정부를 옹호하였다.
이러한 일을 적극적으로 한 소엔사쿠는 『이야기 미국불교사』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다. 미국불교사에 나타난 소엔사쿠의 계보를 보면 다이세츠 스즈키, 노겐 세자키, 소카츠 사쿠 등이 있다. 소카츠 제자가 소켄이안인데 그는 1930년에 미국에 선을 가르치는 선원인 제일선원(The First Zen Institute of America)을 뉴욕 맨하탄에 설립하였고, 이 단체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소엔사쿠의 계보가 지금도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소엔사쿠 계열에서 일본의 노겐 세자키만이 “1905년 러일전쟁 중에 일본을 휩쓴 군부의 군국주의에 대단히 실망하였다.”라고 『미국불교사』에 소개되어 있다.
스즈키 다이세츠를 미국에 등장시킨 소엔사쿠
소엔사쿠는 12세이던 1871년 어린 나이에 계를 받았다. 그는 일본 스님으로는 국제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한 스님이다. 일본불교계의 국제화의 선두 그룹에 그가 있다. 그는 1884년부터 1886년까지 케이오대학에서 공부하였고, 1887년 28세에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3년간 남방불교 수행을 하였다. 그 생활 동안 그는 힘든 스리랑카 생활을 적응하면서 남방불교를 이해하게 되었고, 스리랑카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에 일본 임제종의 대표로 참가하였다. 그의 논문을 D.T. 스즈키가 영역을 하였는데, 그 제목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과응보」였다. 그는 오픈 코트 출판사(Open Court Publishing)의 편집자인 폴 카루스(Paul Carus, 1856~1919)에게 제자인 D.T. 스즈키를 초청하도록 권유하였다. 이처럼 소엔사쿠는 일본불교계에서 일찍부터 외국으로 눈을 돌린 사람이고 스즈키를 미국불교사에 등장시킨 인물이다.
『전쟁과 선』에 따르면 그는 불교계의 사회참여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학교와 자선병원 그리고 소년원을 새우고 병사와 범죄자들 안에서 활동을 조직하고 사회의 타락을 교정하며, 삶의 모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해” 기독교의 실천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불교사』에는 두 명의 일본인 스즈키가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D.T. 스즈키이고, 다른 한 사람은 조동종 스님으로 샌프란시스코 선원에서 미국에 선 열풍을 일으킨 스즈키 순류이다. 순류는 1970년에 『선심초심(Zen Mind, Beginner’s Mind)』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스즈키 순류가 일본의 침략 전쟁에 찬동하는 발언을 하거나 앞장섰다는 기록은 아직 없다.
스즈키 다이세츠에 대한 편향적 평가
D.T. 스즈키는 1897년 미국에 도착하여 오픈 코트 출판사가 있는 일리노이 주 라쌀에서 지냈다. 1950년대 선의 대유행(Zen Boom)의 중심에 스즈키의 책들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선을 근·현대의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서구에 널리 알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미국에 와서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강의를 오랜 기간 했다. 그의 저작은 일본어로 101책, 영어로 42책에 이르며, 2003년도에 40권의 전집이 일본의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에서 완간되었다. 스즈키가 서양, 특히 미국에 선을 널리 알린 공적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서양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스즈키에 대한 평가는 주로 긍정적이다. 대략적으로 볼 때 스즈키의 공적과 더불어 그의 과오에 대한 글을 쓴 학자로는 원영상 교수가 있고,<한겨레>, <불교신문> 등 언론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많지는 않다.
‘스즈키 다이세츠’란 단어를 검색해 보니 서강대학교 DB에서 많은 자료가 올라왔는데 스즈키에 대한 긍정과 찬양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와 관련한 논문 제목과 주제어가 무려 1,377개나 검색되었다. 여기에는 또 “1949년 일본 최고문화훈장을 받았다. 서양종교와는 다른 동양적인 직관과 선(Zen)의 신비, 영성, 깨달음 등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불교의 주요한 사상을 알리는 데 주력하였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공적만 엄청난 분량이 차지하고 있고, 침략적인 제국주의에 열광적으로 찬동한 행적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열광적으로 전쟁을 지지한 야스타니 하쿠운
『미국불교사』에는 야스타니 하쿠운安谷白雲(1885~1973)이 많이 등장한다. 한국불교계에는 두 스즈키는 널리 알려졌지만 이 야스타니 하쿠운이 얼마나 알려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야스타니 하쿠운의 흔적은 미국 도처의 선방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선의 혁신적인 특징은 야스타니 하쿠운 덕택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야스타니는 1962년 미국에 처음 방문하였다. 소엔 사쿠와 D.T. 스즈키 보다는 미국에 매우 늦게 온 사람이다.
『미국불교사』에는 ‘하라다-야스타니’ 계보라는 것이 있는데, 야스타니는 ‘하라다 다이운 소카쿠’의 제자이다. 소가쿠 하라다 다이운原田大雲(1871~1961)은 D.T.스즈키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인물인데 미국에는 방문하지 않았지만 그 제자들 때문에 『미국불교사』 책에 종종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초기의 일본이 거둔 군사적 성공을 찬양하는 것 외에도 ‘전쟁 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과정에 있는 선 수행자의 적절한 정신적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는 1944년 <다이조 젠> 7월호에 실린 글에서 “[천황의] 일억 신민들 모두가 영예롭게 죽을 각오를 할 필요가 있다. .... 적을 발견하면 반드시 죽여라. 여러분은 반드시 거짓을 무너뜨리고 참을 세워야 한다. 이것이 선의 기본 요점이다. 누군가를 죽이면 당연히 그의 피를 본다고 한다. 또한 힘센 말을 타면 가지 못할 곳이 없다고들 한다. 우리가 과거에 수행한 좌선의 목적은 이와 같이 긴급 상황에서 도움이 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하라다-야스타니’ 계보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보면 로스엔젤레스 조종동 선원을 이끌었던 마에즈미 스님, 뉴욕 다이보세쯔를 건립한 에이도 시마노가 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인 뉴욕의 Zen Mountain Monastery를 건립한 루리스님, 로체스터 선원을 건립한 필립 카플로와 하와이에서 활동했던 미국 선의 학장으로 불리는 로버트 아이트켄 등도 이 계보에 속한다.
하라다는 ‘전쟁 선’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는데, 일본의 군사행동에 대해 가장 헌신적인 선불교 지지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와 관련된 선원, 예를 들어 마에즈미스님 제자들이 세운 선원이나 루리스님이 뉴욕에 세운 Zen Mountain Monastery의 선방에 가면 이 야스타니 하쿠운의 사진이 맨 위에 있고, 그 다음 마에즈미, 루리스님 등등 사진이 걸려 있다.
나는 이런 선방에서 야스타니 하쿠운의 날카로운 얼굴 사진을 보면 그가 미국에 선을 알린 공적보다는 전쟁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스즈키가 스승인 소엔사쿠와 사상적 동일 선상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야스쿠니 하쿠운도 그의 스승과 사상적 동일선상에 있었고 더 호전적이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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