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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동국대 불교사학을 개척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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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1:18  /   조회2,30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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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32 | 안계현

 

하정荷亭 안계현安啓賢(1927~1981)은 동국대 사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며 평생 한국 불교사 연구에 매진한 학자이다. 그는 역사학과 불교학의 방법론을 아우르는 엄밀한 연구를 수행했고, 양자의 장점을 살린 성과를 도출하여 한국불교사학의 수준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고 평가된다. 특히 신라의 정토사상에 대한 연구업적은 이후 학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불교학과 대학원 1기생

 

안계현은 1927년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서 태어났다. 1940년부터 4년 동안 경복공립중학교를 다녔고, 1945년에 춘천사범학교 강습과를 수료한 후 김포에 있는 송정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6년 9월에는 혜화전문학교에서 동국대학으로 승격 개편하며 신설된 사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처음에 전문부 사학과에 들어갔지만 1948년 문학부 사학과로 바뀌었는데 당시 김상기, 민영규 교수가 사학과의 학풍을 다지고 있었다. 1952년에 사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해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부산의 불교계 학교인 해동고등학교에서 강사를 지냈다.

 

사진 1. 하정荷亭 안계현安啓賢(1927~1981).

 

이 무렵은 전쟁으로 인해 임시로 수도가 부산으로 옮겨졌을 때인데, 동국대도 1951년 1·4 후퇴 이후 부산의 신창동으로 이전했고,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9월에 서울로 되돌아왔다. 그 사이 1953년 2월 동국대학이 종합대학인 동국대학교로 승격되면서 대학원이 신설되었는데, 안계현은 4월에 불교학과의 대학원 1기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불교학과의 대학원 강의로는 그의 지도교수였던 조명기의 한국불교사, 김잉석의 화엄학, 이홍직의 불교고고학 등이 개설되었다. 전시 상황과 급격한 변동 속에서도 그는 학업에 매진했고, 1956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고려시대 팔관회를 다룬 「팔관회고」로 동국대 제1호 석사학위를 수여했다. 이로써 그는 역사학과 불교학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구 역량을 갖출 수 있었다.

 

안계현이 학부를 다니던 시기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극심한 혼란의 소용돌이가 펼쳐졌던 때였다. 그는 1951년 5월 서울에서 충청도 온양을 거쳐 대구로 피난을 떠났는데, 동국대 불교학과 출신이자 뒤에 교수가 된 우정상,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나중에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서 조선후기 사찰의 종이 공납에 관한 논문을 쓴 이광린과 대구에서 함께 지내며 친분을 쌓았다. 이때의 인연이 그가 대학원 진학 이후 역사학의 수많은 분야 가운데 불교사를 전공하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이후 1959년에 동국대 사학과의 교수로 부임했는데, 그는 1948년에 창간된 『동국사학』의 편집 간행을 주관했다. 한편 1965년 8월부터 1966년 6월까지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 가서 해외 학계의 동향을 접하고 연구를 심화시켰다. 이때 미국의 한국학 연구 경향을 역사학과 불교학 중심으로 정리하여 『동국사학』에 실었다. 그는 한국사 관련 학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김철준, 이기백, 한우근 등 당시 학계를 주도하던 이들과 한국사연구회의 설립 및 운영에 관여했고, 진단학회와 역사학회 등에 논문을 게재했다. 

 

사진 2. 『동국사학』 9·10 합집(1966년).

 

1971년과 1980년에 두 차례에 걸쳐서 동국대 박물관장을 맡아서 2년 정도씩 겸직했는데, 1971년 문명대 등이 참여한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이 울주 대곡리에서 선사시대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하여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또 자료 집성 같은 연구기반 조성 사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불교전서』 편찬 사업의 위원이 되었고, 그 기초조사 성격을 갖는 『한국불교 찬술문헌 총록』(1976) 간행에도 참여했다. 이뿐 아니라 고려대장경 보존을 위한 경전 번역사업에 동참했고, 1970년대 중반에는 고려대장경 영인본 완간 추진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역사학과 불교학의 접목과 정토사상

 

교수로 재직하던 1975년 2월에는 동국대에서 「신라 정토왕생사상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평생 40여 편의 학술논문과 5권의 저술, 그 밖에 공저와 번역서, 연구자료 등을 펴냈다. 대표적 역서로는 『사명대사 임란기』(1979)가 있고,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한국 승군보』(1966)도 중요한 자료이다. 전자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유정의 활약상과 그에 대한 유학자 관료들의 평가를 담아낸 『분충서난록』을 번역한 것이고, 후자는 군사 면에서 본 신라불교, 고려와 조선의 승군을 다룬 것으로 조선 승군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역사학과 불교학을 겸비한 안계현의 연구 경향 및 특징은 논문과 책의 주제와 내용뿐 아니라 자료에 대한 안목과 문헌학적 접근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라의 승장勝莊이 지은 『금광명최승왕경소金光明最勝王經疏』가 현존하지 않지만 일본 학승들의 저술 등에서 인용된 내용을 모아 일부나마 재구성해서 『불교학보』에 수록한 것을 들 수 있다. 또 권상로의 미완성 작업을 이어 『고려사』에서 불교 관계 사료를 발췌 정리하여 『동국사학』에 7회에 걸쳐 실었고 나중에 책으로 간행하기도 했다.

 

사진 3. 『신라 정토사상사 연구』 (아세아문화사, 1976·현음사, 1987 재간).

 

안계현이 중시한 연구 주제는 신라불교 학장들의 교학과 정토사상, 고려의 연등회와 팔관회 같은 불교 의례를 들 수 있다. 그의 주요 연구 논문을 소개하면, 신라는 「신라인의 세속오계와 국가관」, 「원효의 저서에 보이는 인용서의 일 정리」, 「의적의 미타정토 왕생사상」, 「신라승 경흥의 미륵정토왕생사상」 등이 있고, 고려는 「팔관회고」와 「연등회고」, 조선은 「조선전기의 승군」(1972)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불교의 수용과 특질」, 「한국사에 있어서 불교의 위치」 등은 역사학과 불교학의 연구 방법론을 접목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주요 저작으로는 『신라 정토사상사 연구』(1976, 1987 재간), 『한국불교사 연구』(1982), 『한국불교사상사 연구』(1983)를 꼽을 수 있다. 『신라 정토사상사 연구』는 그의 박사논문을 보완하여 책으로 간행한 것으로, 원효, 경흥, 의적, 현일 등의 사상과 신라 정토 교학의 전반적 문제를 고찰했다. 이는 역사학의 관점과 불교학의 교리적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연구였기에 크게 주목받았고 이후 관련 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유고집인 『한국불교사상사 연구』는 불교 교학과 역사를 접목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엮어서 묶은 것으로, 삼국불교의 전개와 신라의 대중불교, 원효와 경흥의 미륵정토 사상, 의례를 필두로 한 고려불교의 연구 등으로 되어 있다. 

 

사진 4. 『한국불교사상사 연구』 (동국대출판부, 1983).

 

『한국불교사 연구』도 사후에 나온 것으로 총론을 비롯해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장 총론에서는 한국사에서 불교의 위치, 불교의 수용과 특질 등을 기술했다. 그는 삼국시대에는 불교를 정치에 활용했고 고려 말 이후에는 유불 교체로 인해 배척당했지만 불교야말로 한국 정신문화의 주류였다고 단언했다. 또 주체적 수용과 신앙의 접목, 통일적 이념을 한국불교의 특색이라고 보았다. 이어서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을 국가, 효와의 결합, 기복과 습합이라고 정의한 뒤 한국불교는 국가불교, 주술불교, 장례불교의 특색이 강하고 호국신앙과 호국불교, 토착신앙과의 습합이 현저하다고 평가했다. 

 

제2장 신라불교의 전개에서는 교학 사상, 국가관과 사회윤리, 불교 신앙을 다루었다. 신라의 대표적 사상으로는 삼국통일 이념으로서 법화사상, 모든 모순과 대립을 넘어서는 원효의 화쟁사상, 의상의 원융적 화엄사상, 원측과 유식사상, 계율과 정토사상 등을 서술했다. 또 원광의 세속오계와 같은 사회윤리, 자장의 호국이념, 정토신앙의 대중화와 밀교 등을 언급하고 정토신앙의 대중적 확산을 강조했다.

 

제3장 고려불교의 새로운 전개는 고려불교의 시각, 조계종과 오교양종, 호국신앙과 불교, 불교사서, 불교와 유학의 교류 등으로 되어 있고 불교 교단, 신앙과 의례 등을 짜임새 있게 정리해 놓았다. 그는 고려불교의 연구 방향에 대해 “사회경제사나 문화사적 배경하에서 불교사를 역사학으로 끌어올리고 사상사적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끝으로 제4장 배불하의 조선불교에서는 불교 억제책과 불교계의 동향 등을 소개하고 왕실불교와 승려의 경제활동, 불교 신앙의 대중화 등을 거론했으며, 근대기로 넘어와서는 3·1 운동과 불교계의 상황을 기술하고 주요 인물로 한용운과 이능화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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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서울대 국사학과 문학박사 학위 취득(2008). 저서로 『韓國佛敎史』(2017, 東京:春秋社), 『토픽 한국사12』(2016, 여문책),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임제 법통과 교학전통』(2010, 신구문화사)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및 한문불전 번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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