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는 불상의 미학]
다문제일 아난존자의 정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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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2:59 / 조회3,250회 / 댓글0건본문
아난존자는 누구인가
지난 호에서 단석산 신선사의 미륵하생불을 중심으로 대가섭존자가 그의 오른편에 서 있는 위치규정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는 그가 석가모니의 왼편에 서 있는 도상과 분명히 다른 도상이며, 석가모니 이후 법통 승계가 석가모니→ 대가섭→ 미륵으로 이어지는 삼세불의 시간적 관계를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고려불화에서 대가섭존자의 위치에 따라 그의 역할을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미륵하생불 본존불과 그의 오른쪽에 대가섭존자가 자리하는 위치규정은 1294년 제작된 일본 묘만지妙滿寺(『고경』 제123호 사진 5 참조) 소장 미륵하생변상도와 14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치온인知恩院(『고경』제123호 사진 6 참조) 소장 변상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의 변상도에 표현된 대가섭존자는 미륵하생불의 오른편에 석가모니의 발우와 승가리를 두 손으로 들고 서 있다.
필자는 또 다른 고려불화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다. 일본 호온지法恩寺 소장 고려불화는(사진 1) 1330년 제작이며 아미타삼존도라고 알려졌다. 관음과 세지보살이 연화좌 위에 앉아 있고, 본존불 오른편에 대가섭존자가 커다란 발우를 흰색 승가리로 받치고 서 있다. 이에 필자는 대가섭존자의 위치와 그가 들고 있는 불기佛器로 보아 아미타불이 아니라 미륵하생불도상의 고려불화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지면상 호온지 고려불화는 이번 호에서 문제제기만 하고 차후를 기약한다.
이번 호에서는 석가모니의 10대제자 중 아난존자를 살펴보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한 변상도를 보면 미륵하생불의 왼편에 또 한 분의 승려 아난존자가 양손을 합장하고 서 있다.
대가섭존자와 아난존자
대가섭존자와 아난은 석가모니와 미륵하생불 좌우에 표현된다. 가섭은 노인상이고 반면에 아난은 젊은이상이다(사진 2). 이 둘의 나이 차이는 대략 30세 차이로 추측한다. 『증일아함경』 「고당품高幢品」에 의하면 아난은 석가모니가 성도한 후 6년째 되던 해 출가하였고, 이때가 6세였다고 한다.
따라서 석가모니와 아난의 나이 차이는 약 35세이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자 대가섭존자는 3개월 만에 5백 명의 아라한들을 왕사성 교외에 있는 칠엽굴에 모으고 불법승계를 위한 첫 모임을 가졌다. 대가섭존자의 주재 아래 모인 5백 아라한들은, 석가모니의 시자로서 그의 말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였던 아난으로 하여금 경經을 외우게 하고, 우팔리존자는 율律을 외어 삼장三藏 중에 이장二藏을 완성하였다. 이때 결집한 경과 율이 발전하여 4차에 걸쳐 법장결집을 하였고 후대에 성문화되었다. 이러한 성문화 작업은 아난존자의 들은 것을 그대로 기억하는 능력이 없었더라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
대가섭존자는 이러한 다문제일의 아난존자를 대중 앞에서 모두에게 말하였다. “아난 비구는 (석가모니께) 들은 것이 많아 큰 지혜를 지녔다. 항상 여래를 따르며 청정한 범행梵行을 닦았다. 불법을 듣고 그릇의 물을 옮겨 붓듯이 남김이 없다[佛法如水傳]. 부처님께서 총명하기로 제일이라 찬탄하셨다. 이에 수다라장(불경)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하니, 대중들이 침묵하였다.”
또한 『증일아함경』 권3 「제자품」에서 석가모니가 아난에 관하여 평하기를, “아난은 나의 성문 중 제 1비구로서, 때를 알고 사물에 밝아 끝까지 의심하지 않고, 기억한 것을 잊지 않으며, 다문하여 넓고 멀리 알며, 어른을 잘 섬기는 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아난은 누구인가? 아난존자는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이다. 총명하고 똑똑하여 석가모니가 55세 되는 해부터 25년 동안 부처님의 시중을 들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 제1차, 제2차 결집 기간 동안 들었던 불경을 그대로 복기하여 완성하고 사리불과 함께 교단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아난존자는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10대 제자로 간주한다. 그가 다문하여 넓게 안다는 것은 석가모니를 오랫동안 시중들며 8만 2천 법장을 듣고, 2천 법장은 다른 수행자들에게 들어 모두 8만4천 법장을 듣고 암기하였다.
『석씨원류응화사적』 가섭입정(사진 3 왼쪽)을 보면, 계족산을 등지고 대가섭존자가 앉아 있고, 그 앞에 아난존자와 아자세(Ajatasattu) 왕이 합장하고 있다. 아난과 함께 있는 아자세 왕은 빔비사라(Bimbisara) 왕의 아들이며 생몰년대가 확실치 않지만, 대가섭존자와 함께 기원전 5세기에 활동했던 인물로 추정한다. 가섭부법(사진 3 오른쪽)은 가섭존자가 제1차 법장결집을 마치고 불법을 아난에게 맡기는 장면이다 “나는 이제 몇 년 머무르지 못한다. 이제 정법은 너(아난)에게 넘기게 될 것이다. 너는 이를 훌륭히 수호해야 한다. (중략) 이에 가섭은 승가리를 지니고 자씨하생(미륵)을 기다리기 위해 계족산으로 들어갔다.” 이러한 대가섭존자의 입정은 제1차 결집 후 20년 후이다.
『교외별전』을 보면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고 20년 동안 대가섭존자가 세존의 법통을 잇고 그다음 아난에게 넘기고 있다. 그때 가섭은 모든 비구에게 물었다. “아난이 말한 바가 틀리지 않고 거짓이 없는가?’ 모두 말하기를 세존이 설법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아난존자는 정법을 승계하고 교단의 수장이 되었고, 그의 제자들은 제2차 법장결집을 주도하였다. 아난존자는 마가다국에 살다가 강가(갠지스)강에서 신통력을 보여주고 열반에 든다.
아난존자 도상과 정병
단석산 신선사 동쪽 암벽 마애상(사진 4)은 높이 5.4m이고 연화좌 위의 입상이다. 눈은 반개하였고 상호에 미소는 보이지 않는다. 왼손은 가슴 위에 놓이고 오른손은 복부 위에서 정병을 들고 있다. 기존의 연구는 ‘보살2구’ 명문과 동벽 마애상이 정병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도상이라고 하였다. 또한 단석산 마애삼존불 앞에 놓인 설명 문구는, 동벽 마애상이 상반신을 벗은 나신이라고 하였는데,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좌우 소매 부분의 주름이 표현되어 통견양식의 승려 가사를 착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필자는 동벽 마애상은 승려 두상과 통견의 가사를 두르고 있어 관음보살 도상보다는 나한상이 적합하다고 하였다.(주1)
이러한 정병을 든 나한상은 윈강 18굴 북벽(사진 5)에서도 볼 수 있다. 윈강 18굴을 보자. 북벽 본존불 왼쪽으로 보관을 쓴 보살상(사진 5 보살두상)이 서있다. 보관은 연주문을 두른 중앙메달 안에 화불이 앉아 있고 그 위에 초승달 장식이 있어 윈강석굴 초기양식이다. 그 위쪽으로 나한상들이 열을 지어 합장하고 있다. 보살두상 오른편 상단에 있는 두타제일 대가섭존자는 골신骨身의 모습이지만 상호에 두타고행을 통한 환희심의 미소가 보인다. 보살 두상 왼쪽에는 젊고 어여쁜 아난존자(사진 6)가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고, 가슴 위에 놓인 오른손은 활짝 핀 꽃 한 송이를 들고 서 있다.
윈강 18굴 북벽의 보살두상은 신체 부분이 많이 훼손되어 도상 파악이 어렵지만 윈강 18굴 북벽 본존불→가섭→미륵의 법통 승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윈강 18굴의 아난상은 보살 두상 왼편에 서 있으며 그의 젊고 아름다운 용모는 북위시대 나한상의 풍미를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은 어여쁜 승려도상은 마이지산麥積山 117굴 정벽(사진 7) 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 간쑤甘肅성 톈수이天水시에 위치한 마이지산 석굴은 중국 4대 석굴 중 하나이다. 고개를 앞으로 약간 숙인 채 선정에 든 여래불의 수인을 보자. 오른손은 훼손되었지만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하고 있다. 그의 광배 오른쪽으로 작은 승려가 왼손에 정병을 들고 오른손에는 작은 향합을 들고 서 있다. 마이지산 승려도상은 협시상이기보다 마치 여래불에 부속된 시자侍者처럼 얼굴과 몸이 여래를 향하고 있다. 여래상의 상호와 복식으로 볼 때 북위시대 석상이다.
아난이 들고 있는 정병의 의미
단석산 신선사 동벽의 나한상(사진 4)은 남벽의 대가섭존자보다 키가 큰 젊은이이며 미륵하생불 왼편에 서 있다. 또한 윈강 18굴 북벽의 승려도상과 마이지산 117굴 정벽의 승려도상과 같이 정병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병은 승려의 필수품인 18물의 하나이며, 중생들의 고통을 해소해 주는 감로수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미륵하생불 오른편에 있는 대가섭존자의 위치규정과 함께 동벽의 승려도상을 아난존자라고 해석한다면, 그가 들고 있는 정병은 무슨 의미이며 미륵하생불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까.
석가모니와 대가섭존자는 아난의 총명한 능력을 칭찬하였다. 아난은 이와 같은 능력으로 그가 들고 있는 정병 안에 석가모니의 교법을 암기하고 그 법장法藏을 받아 지녔다가, 정병 안의 내용물을 다른 그릇(미륵하생불)으로 옮길 때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전달할 수 있었다[佛法如水傳]. 이에 필자는 단석산 동벽 마애불 아난존자가 들고 있는 정병은 불법을 상징한다고 해석하였다.(주2) 즉 대가섭존자는 석가모니가 직접 그에게 준 승가리를 미륵에게 전달하여 불법의 정통성을 잇게 하고, 아난존자는 석가모니 열반 후 흩어진 법장결집을 이루어 불법을 승계한 한 장본인이다.
<각주>
(주1) 「단석산 미륵삼존불 도상 재고」, 『신라사학보 29』, 430쪽.
(주2) 「단석산 미륵삼존불 도상 재고」, 『신라사학보 29』, 4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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