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심리학의 만남]
불교마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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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조 / 2023 년 10 월 [통권 제126호] / / 작성일23-10-05 11:27 / 조회2,283회 / 댓글0건본문
연재를 시작하면서 불교심리학의 정의와 분류를 다루었고, 이어서 심리학과 연관된 존재론, 인식론, 세계관, 인간관, 진리론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지난 호까지 마음에 대해서 심의식성心意識性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각각의 기능을 중심으로 심의식이 다른 기능을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심의식 이외에 성性을 추가함으로써 마음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와 식이 하나의 세트가 되어서 업을 산출하고, 이 산출된 업은 심에 저장되고, 심에서 다시 업을 산출하는 재료가 된다. 또한 성은 마음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다. 이번 호부터는 불교심리학의 세부 분류인 불교마음학, 불교심소학, 불교심리치료를 순차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불교마음학의 관점
불교심리학은 마음 자체를 다루는 영역, 마음의 기능을 중점으로 다루는 영역, 마음의 치유적 기능을 중점으로 다루는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마음 자체를 다루는 영역을 불교마음학(Buddhist mindology)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마음학이라고만 할 경우에는 마음을 주제로 다루는 영역을 다양하게 포괄해야 하는 난점이 있으므로, 마음학에 불교를 첨가함으로써 마음학의 범주를 제한한 것이다. 마음학(mindology)이라는 용어는 마음(mind)에 관한 학문(logy)이라는 의미로 연구자가 만든 용어이고, ‘마인돌로지’라는 영어 단어 역시 조어한 것이다.
불교에서 마음에 대한 논의는 불교사와 불교철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불교마음학은 이를 불교심리학이라는 범주 하에서 마음의 관점에서 새롭게 재편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관점과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심리학은 철학에서 분파된 학문이고, 불교에서도 불교철학과 관련된 논의가 불교심리학과 관련된 논의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다. 그러나 이는 시간적인 순서일 뿐이다. 논리적 순서에 따르면 마음을 다루는 영역은 불교심리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불교철학에서 주로 다루는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을 다루고 있다면, 그 영역에 한해서 불교철학의 논의는 불교심리학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불교철학 역시 불교심리학의 논의를 포함할 수 있다. 불교심리학의 주제가 되는 논의를 불교철학적 관점에서 논의한다면 불교철학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서양철학에서도 심리철학(philosophy of mind)은 철학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불교사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어서, 불교의 역사적 전개 가운데 마음을 다루는 영역은 불교심리학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불교사가 전개되면서 마음에 대한 논의가 변화하는 것은 불교심리학의 중요한 논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철학, 불교사, 불교심리학은 서로 영역을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에서 공유하는 영역을 파악하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불교사는 전통적으로 시대와 지역을 중심으로 집필되었다. 초기불교, 부파불교, 인도대승불교, 티벳불교, 중국불교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전통적인 시대적, 지역적 구분이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서 기존의 불교사를 불교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마음을 일원적一元的(monistic)으로 보는지, 다원적多元的(pluralistic)으로 보는지의 구분이다. 마음의 원래 기능에 중점을 두는지, 마음의 다양한 기능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다.
본 연구자는 불교사에 등장하는 불교유파를 마음을 일원적으로 보는지, 다원적으로 보는지에 따라서 구분하고자 한다. 이는 기존의 불교사를 바라보는 관점인 소승·대승의 관점, 시대적인 구분, 지역적인 구분과는 다른 관점이다. 이는 불교사를 시대 순, 지역별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불교사를 마음의 관점에서 분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심리학의 관점에서 불교사를 재해석하는 것, 명시적으로 마음의 관점에서 불교사를 해석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과 관련하여, 불교사를 두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초기불교, 부파불교, 유식불교로 이어지는 다원적 흐름(pluralistic theory of mind)과 초기불교, 중관불교, 선불교로 이어지는 일원적 흐름(monistic theory of mind)이 그것이다. 다원적 흐름이 마음을 세부적으로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일원적 흐름은 마음을 하나로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즉 마음을 다원적으로 파악할 것인지, 일원적으로 파악할 것인지에 따라서 두 가지 흐름이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불교심리학에서는 다원론多元論(pluralism)과 일원론一元論(monism)에 따라서 불교사의 주요 유파의 흐름을 구분할 수 있다.
초기불교는 일원적 경향성과 다원적 경향성 모두의 뿌리 역할을 한다. 부파불교의 대표적인 부파인 유부有部와 상좌부上座部는 모두 마음의 다원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심과 심소를 구분하고, 심을 89가지로 구분하는 것은 마음의 다원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유식불교는 부파불교적 경향성을 이어받으면서 팔식八識이라는 마음의 구분에 중점을 두고 있는 다원적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다원적 구분은 부파불교와 유식불교 모두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의 다원성을 강조하는 흐름에서는 마음이 발생하는 모습(jati)과 마음이 머무는 장소(bhūmi)에 따라서 마음을 다원적으로 구분한다. 또한 마음을 육식六識, 칠식七識, 팔식八識으로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은 종류와 영역에 따라서 다양한 앎이 존재하고, 마음의 이러한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다원성을 강조하는 흐름이다.
이와 달리 일원성을 강조하는 흐름에서는, 마음은 생멸하는 무아성 또는 무실체성을 가지므로 마음은 공성空性, 불이성不二性, 무자성無自性을 가진다고 한다. 인도 대승불교 중 중관불교는 일원적 경향성을 대표한다. 반야를 중시하는 초기 대승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고, 이러한 경향성은 선불교로 이어진다. 궁극적 차원에서의 마음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반야般若를 강조하는 동시에 현실세계를 긍정하기 위해서, 중관불교는 이제二諦 즉 두 가지 진리(theory of two truths)라는 구조로 마음의 일원성을 보완하고 있다.
중관불교에서 공空은 궁극적 차원의 실재를 설명하므로, 현실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제의 구분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선불교에 이르면 마음의 일원성은 더욱 강조된다. 선불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궁극적 실재와 현실적 실재가 동일하다는 차원까지 나아간다. 즉심시불卽心是佛,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구절이 이러한 경향성을 대표하고 있다. 현실의 일상적인 마음에서 궁극적인 마음을 발견하고, 나아가서는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마음은 오로지 아는 기능을 하므로, 특히 불교에서 목표로 하는 ‘앎’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일원성을 강조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맥락 아래 각 유파에서 마음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연구는 불교마음학의 주요 연구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마음의 관점에서 ‘불교사’에 등장하는 유파의 마음이론은 불교마음학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그러므로 선불교심리학 또는 선심리학, 유식불교심리학 또는 유식심리학, 아비담마심리학, 초기불교심리학, 중관불교심리학이 성립 가능하다. 불교사의 관점에서 이러한 불교마음학의 영역이 가능하게 된다.
일본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된 선심리학은 제1기 선의 심리학기(1893년 또는 1905년부터 1940년까지 약 40년간), 제2기 선과 심리학기(1950년대의 약 10년간), 제3기 조신·조식·조심의 심리학적 연구기(1960년대부터 1977년 까지 약 20년간), 제4기 선심리학기(1978년부터 현재까지 약 40년간)로 나눌 수 있다.
유식심리학은 ‘대승불교의 심층심리학’으로, 특정 종교로서의 불교의 틀을 넘어 보편타당성이 있는 이론체계이며, 현대심리학과의 대화와 통합이 가능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아비담마는 불교에서 본격적으로 마음에 대해서 다루기 시작한 유파라고 할 수 있다. 네 가지 궁극적 실재 가운데 세 가지가 마음과 관련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궁극적인 실재를 중심으로 법을 다루는 아비담마의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불교심리치료적 함의
불교에서는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원론적 관점, 다원론적 관점 두 가지로 나눈다. 그렇다고 해서 두 가지가 서로 배타적이지는 않다. 예를 들어 아비담마에서 마음을 89가지 나아가서는 121가지로 구분한다고 할지라도, 마음 자체는 하나라고 하는 일원론적 관점도 취하고 있다. 유식이 전오식에서 팔식까지 마음을 구분한다고 할지라도 마음 자체로는 하나라고 한다. 반대로 중관불교와 선불교에서는 마음을 하나라고 할지라도 세간심과 승의심, 중생심과 부처심을 구분한다. 이처럼 두 가지 관점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두 가지 관점 중 어떤 것에 더 중점을 두는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세분하여 나누는 것은 마음의 다양한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마음을 하나로 보는 것은 마음의 원래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이 서로 협업하며 불교의 궁극적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의 원래의 특징에 중점을 맞추면, 그 궁극적인 경지에 대한 기술은 될지라도 현재의 내 마음에 대한 기술이 부족할 수 있고, 현재의 마음에서 궁극적인 마음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한 앎이 부족할 수 있다. 반면 마음을 세부적으로 기술하면, 마음의 원래의 특징에 대한 앎을 놓치게 된다. 두 가지 관점에 따라 마음을 동시에 이해할 때, 현재의 마음과 궁극적인 마음을 함께 볼 수 있다.
심리치료적 측면에서 보면 일원적 관점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를 제시한다. 마음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심리치료가 될 것이다. 원래의 모습으로 바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할지라도, 원래의 모습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일깨우고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심리치료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논의와 인식이 심리치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극적 목표가 요원하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궁극적 목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 목표를 위한 징검다리로써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더라도, 궁극적 목표는 현실적 목표의 지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원적 관점은 지금 현재의 나의 마음의 상태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마음의 다양한 현현을 보여주기 때문에 나의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이로 인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바를 제시해 준다. 이는 현실적으로 추구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는 동시에 현재의 나의 마음의 위치를 점검하게 해준다. 궁극적 목표는 요원할지라도 가까이에서 성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를 정할 수 있게 된다. 원근법적인 관점에서 다원적 관점은 근거리의 세밀한 관찰이라고 한다면, 일원적 관점은 원거리의 전체적인 조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관점과 원근적 조망을 동시에 가진다면 심리치료적 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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