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종교사 연구에 도입된 사회경제사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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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령 / 2023 년 11 월 [통권 제127호] / / 작성일23-11-04 19:48 / 조회1,864회 / 댓글0건본문
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34 |타마무로 다이죠
타마무로 다이죠(圭室諦成, 1902~1966)는 구마모토현 아소군 다카모리(熊本県阿蘇郡高森)에 있는 정토진종 사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동양대 인도철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도쿄제국대학에 다시 들어가 국사학을 전공했다. 젊은 시절 눈에 띄는 이력으로는 대학 졸업 후, 도쿄제국대 사료편찬소에 입사했다는 점이다.
타마무로의 입사는 당시 사료편찬소 초대 소장인 츠지 젠노스케(辻善之助, 1877~1955)의 추천에 의해서이다. 츠지는 관동 대지진 이후 피해가 컸던 사료 편찬을 재건하기 위해 젊은 연구자들을 대거 기용했다. 타마무로는 이곳에서 ‘일본종교사연구회’라는 스터디 모임을 만들고 타케우치 리조(竹内理三), 가와사키 츠네아키(川崎庸之), 모리 카츠미(森克己) 등 전후 실증적 역사학을 이끌어 간 연구자들과 교류했다.
타마무로를 대표하는 연구는 『메이지유신 폐불훼석』(1939, 이하 폐불훼석)과 『장례불교』(1963)이다. 『폐불훼석』은 사료편찬소 시절 간행한 저서로 사회경제사적 방법으로 일본불교를 바라보았다. 『장례불교』는 메이지대학 교수로 재임 시절, 민속학과 고고학, 종교학을 포용한 일본종교사를 저술한 책이다. 이번 호에서는 사회경제적 방법을 종교사에 도입한 타마무로 다이죠의 시선에 대해 소개하겠다.
사회경제사 단계론에서 출발한 일본종교사
1920년대 이후 일본의 학계에는 마르크스주의가 깊게 침투해 있었다. 젊은 연구자들이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타마무로 역시 그중의 한 명이었다. 특히 경제라는 하부구조에서 역사 전체를 파악하려는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은 역사학에 뜻을 둔 젊은 연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만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 젊은 연구자들이 모두 정치적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타마무로를 비롯한 도쿄제국대학 사료편찬소에서 근무한 젊은 연구자들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에 깊이 공감했다. 이들이 스터디 모임에서 사회경제사적 방법을 이용한 역사 연구를 진행한 것 또한 당시의 시대조류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일본종교사연구회가 출간한 『일본종교사 연구』의 서문에는 당시 젊은 연구자들의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이 서문은 타마무로가 작성했는데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종교는 사회적 존재이다. 이 자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종교사 연구자들은 종교가 지닌 사회성에 대해 무관심했다. 따라서 한때 학계의 큰 문제가 되었던 불교 도래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은 시종일관 연대론으로 일관하여 민족사회의 붕괴나 고대국가의 발생 및 씨족신 신앙의 황폐 등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하지 않았다. 일본의 종교개혁으로 간주한 정토교 발생에 관해서도 단순히 정토사상과 정토신앙의 기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봉건사회의 발생과 그로 인해 야기된 기성교단의 내부 갈등과의 관련성을 음미하지 않는다. 절지단 금지 문제에 대해서도 비참한 교도 박해 사실 조사에만 정력을 쏟고, 이후의 종교 형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폐불훼석 연구도 그 동기를 사상 문제로 치부할 뿐이다. 예를 들면 사상의 근저에 가로놓인 봉건사회 붕괴기에 나타난 문제들은 관심조차 없다. 하물며 폐불훼석을 계기로 일어난 신종교 발생에 대한 문제들은 아예 인식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 『일본종교사연구』(1933) 서문 중에서
당시의 종교사 연구는 불교학자들이 불교사를, 신도학자들이 신도사神道史를 다루다 보니 교리와 사상 중심이었다. 반면, 타마무로를 비롯한 젊은 연구자들은 사회경제사적 방법을 도입해 종교사 연구의 혁신을 도모하려 했다. 『일본종교사 연구』는 목차를 씨족사회, 고대국가의 발생, 봉건제 사회, 근대사회로 분류했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단계론을 차용한 것이다.
폐불훼석에 대한 새로운 시각
폐불훼석은 타마무로 이외에도 이토 타사부로(伊東多三郎), 아베 마코토(阿部真琴) 등이 관심을 기울인 주제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폐불훼석廢佛毁釋이 일어난 원인을 근세불교가 안일했고, 승려가 타락했다는 시각이 정설이었다. 메이지유신의 성격을 둘러싼 일본 내 자본주의 논쟁이 격화되었을 당시, 타마무로와 이토 타사부로는 이 논쟁의 연결선상에서 폐불훼석이 봉건적 종교를 지양했다고 정의했다.
나아가 폐불훼석에 대한 해석을 “피상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적 해석이 아니다.”라고 기존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당시, 폐불훼석에 대한 정설은 타마무로의 스승인 츠지 젠노스케의 학설이다. 타마무로는 『폐불훼석』(1939)에서 직접적으로 츠지를 비판하지 않았지만, 사회경제사적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츠지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타마무로의 『폐불훼석』은 현재에도 많이 언급되는 명저이다. 그는 근세에 이르면 지역 권력과 사찰 사이에는 경제적 갈등이 잠재해 있었고,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결국 폐불훼석이 야기됐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사찰과 스님의 존재 자체가 지역의 경제력을 저하시켰고, 에도 막부가 사찰소유 토지를 인정하면서 지역 영주의 경제적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경제적 모순이 배경이 되어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배불론排佛論이 일어났다. 메이지유신 당시,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에서 폐불훼석이 일어난 원인 역시 지방의 경제적 모순에 기반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승려의 타락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일이며 근세에만 심했던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수행생활의 타락과 계율이 황폐해지는 것은 여러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이 시대의 타락이 상대적으로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 때문에 승려의 타락이 이 시대에 문제가 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문제의 올바른 도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메이지유신 폐불훼석』(1939) 중에서 -
타마무로는 승려의 타락 사실을 인정한 후 근세에만 왜 그것이 문제가 되었는지 묻고 있다. 그가 도출한 결론은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사찰과 승려의 압력 행사를 제거하고자 한 세력이 폐불훼석을 일으켰다고 봤다. 폐불훼석에 이어 나온 상지령上知令을 비롯한 종교정책은 새 정부가 봉건제의 토지를 몰수하고 봉건적 체제를 폐지하기 위한 수순이었다고 설명했다.
타마무로의 논리는 당시 젊은 연구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츠지의 연구성과를 수용하면서 사회경제사적 방법으로 다시 파악하고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증적 연구자인 츠지가 폐불훼석과 관련해 제시한 도덕적 판단을 타마무로는 영리하게 판단을 유보했다. 당시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승려의 윤리를 폐불훼석과 연결했지만, 타마무로의 관심은 새 정부의 봉건제 폐지 방법에 있었다.
그는 봉건제의 잔존에서 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이는 근대 일본의 봉건적 제도와 싸운 강좌파 역사학과 유사한 면이 있다. 더해서 왕정복고나 폐불훼석이 “단순히 신도神道의 부흥이라는 국수적 아름다움은 아니다.”라고 언급해 당시 세력을 강화하던 황국사관과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타마무로가 사회경제사적 방법론을 종교사에 도입한 시도는 전후 역사학의 전개에서 간과된 면이 있다. 하지만 일본불교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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