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님하, 그 물을 건너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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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4 년 1 월 [통권 제129호] / / 작성일24-01-05 10:39 / 조회2,696회 / 댓글0건본문
서종택 시인
경산시 남산면 상대 온천 가는 길에 하대리가 있고,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이 있습니다. 삼성현三聖賢이란 경산에서 태어난 원효(617~686), 일연과 원효의 아들 설총 세 사람을 말합니다. 7만 9천 평 부지 위에 450억 원을 투입하여 2015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나지막한 언덕들 사이로 산책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자라 못도 아름답습니다.
원효, 설총, 일연을 기리는 삼성현三聖賢
원효, 설총, 일연 세 사람의 자료를 삼성현 역사문화관에 다양하게 전시해 놓았습니다. 눈길을 끈 것은 ‘화엄종조사회전華嚴宗祖師繪傳’이란 두루마리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송고승전』에 있는 원효와 의상의 일대기를 일본에서 그린 것입니다. 일본 화엄종의 조사 묘에明惠(1173~1232)는 고잔지高山寺에서 이 그림을 그리게 하고 경건하게 보관하도록 했습니다.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귀중한 그림입니다.
묘에는 35년 이상 자신이 꾼 꿈들을 자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대부분은 평범한 꿈이었지만 어떤 것들은 명확하게 성적인 내용의 꿈이었습니다. 한번은 꿈에서 중국의 여자 인형을 발견했는데 인형은 고향이 그리워서 울음을 터뜨렸고, 묘에의 손바닥 위에서 살아 있는 여자로 바뀌었습니다. 묘에는 자신의 꿈을 해석하면서 그 여자를 불교를 수호하는 선묘로 보았습니다.(주1)
선묘는 한국의 승려 의상과의 정신적 사랑 이야기로 일본에서도 유명했습니다. 묘에는 원효와 의상의 종교 체험과 종교적 견해에 깊이 공감하여 두 사람을 일본 화엄종의 조사로 추앙한 것입니다.
공원 내에 무궁화동산(600평), 꽃무릇 동산(3천 평), 허브 동산(3천 평)이 있습니다. 공원 안을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쉬기도 합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득하게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시야가 멀리까지 트인 곳은 언제나 관조하는 시선을 갖게 합니다. 멀리 내다보는 즐거움을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눈’이라고 불렀습니다.(주2) 이렇게 관조하는 시선을 가질 때 인생은 한낱 꿈처럼 보입니다.
마조의 들오리 문답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에서 상대 온천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반곡지가 있습니다. 사진 명소로 유명한 곳이라 어디에서 보아도 그림엽서처럼 아름답습니다. 반곡지는 8천 평 정도의 작은 못입니다. 복사꽃이 만개하는 4월 초나 버드나무 녹음이 짙을 때가 가장 좋다고 하지만 초겨울의 반곡지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못둑에 늘어선 수령 300년이 넘은 20여 그루의 왕버들이 물에 반영되어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줍니다. 이런 풍경은 물이 없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이중 인화 풍경입니다. 호수에는 떨어진 낙엽이 떠다니고 오리들이 물살을 만들며 노닐고 있습니다. 오리가 만든 물살을 바라보면서 1,300년 전에 있었던 ‘마조(709~788)의 들오리[馬大師野鴨子]’를 생각합니다.
마조의 들오리는 『조당집』(952)과 『벽암록』(1125)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똑같으나 『벽암록』에는 백장유정이 훨씬 더 유명한 백장회해로 바뀌어 있고, 마조가 비튼 것도 귀가 아니라 코라는 점만 다릅니다. 보다 원형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조당집』의 들오리 문답입니다.
어느 날, 마조가 사람들을 데리고 서쪽 성벽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오리가 날아갔다.
마조가 말했다. “뭐지?”
정 상좌(백장유정)가 대답했다. “오리입니다.”
“어디로 갔나?”
“날아가 버렸습니다.”
마조는 갑자기 유정의 귀를 잡아 비틀었다.
“아악!”
유정은 무심결에 소리쳤다.
마조가 말했다. “아직 여기에 있네. 날아간 게 아니잖아.”
유정은 확연히 깨달았다.(주3)
정말 재미있는 한 편의 콩트를 읽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는 선문답 가운데 가장 빛나는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평범한 일상적 대화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마지막 장면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뭐지?”, “오리입니다.”, “어디로 갔나?”, “날아가 버렸습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대화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귀를 잡아 비틀자 비명을 지르고, “아직 여기에 있네. 날아간 게 아니잖아”에 이르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마조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제발 이 세계를 한쪽 면만 보지 말아라. 오리만 보지 말고, 오리를 보는 너를 보란 말이야!”
우리가 마조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이 이렇게 단순하다면 누가 열심히 수행하려 하겠습니까. 마조의 제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단순한 가르침에 대해 위화감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오설(747~818)입니다. 그도 마조의 들오리 문답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유정이 오리를 인연으로 깨닫는 것을 보고 공감하지도 않았고 찬탄하지도 않았으며 부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호기無好氣, 어쩐지 불쾌해졌습니다. 마조의 가르침에 강한 위화감을 느낀 오설은 솔직하게 그 기분을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마조는 오설에게 석두 문하로 가도록 권했습니다. 오설이 석두(700~790)에게 가서 비로소 깨달았는데, 『조당집』은 이 이야기를 전후 사정과 함께 오설장에 자세하게 수록한 것입니다.
처음 석두에게 간 오설은 몇 마디를 주고받은 다음 석두에게도 실망한 나머지 아무 말 없이 소맷자락을 떨치며 돌아가려 했습니다.
오설이 법당문을 막 나서려는 순간 석두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이놈!”
그때 오설의 다리는 한쪽은 문안, 한쪽은 문밖에 있었다. 무심코 뒤돌아보니 석두는 오설을 향해 손바닥을 옆으로 세워 보였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이 사내일 따름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으면 어쩌는가?”
오설은 순간 크게 깨달아 그대로 수년간 석두를 섬겼고 마침내 오설화상이라 불리게 되었다.(주4)
이 선문답도 마조의 들오리 장면 못지않게 흥미진진합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이놈!” 하는 소리에 무심결에 오설은 뒤돌아봅니다. 바로 그 순간 석두는 옆으로 손바닥을 세웠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이 사내일 따름[只這個漢]인데 그렇게 우물쭈물해서 어쩔 것인가!”
이 장면은 문답뿐만 아니라 몸짓이나 표정까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석두가 지적한 것은 한쪽 다리는 문안, 한쪽 다리는 문밖에 걸치고 있는 바로 그 찰나 오설의 모습입니다. 오설이 혹시 못 알아차릴까 봐 석두는 손바닥을 세워서 손의 측면으로 오설을 가리키기까지 한 것입니다. 너무 생생해서 우리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선사의 어록은 이처럼 생생합니다. 장면 자체를 독해하는 데는 여러 견해가 있고, 해석은 서로 일치하지 않지만, 장면 자체는 팔팔하게 약동하고 있습니다. 석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문을 넘어가는 너는 물론, 불러서 뒤돌아보는 그 순간의 너를 함께 알아차리란 말이야!” 오설은 비로소 ‘행동하는 자신과 그 자신을 뒤돌아보는 자신’을 알아차리고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깨달은 오설은 당연히 마조 곁으로 돌아가지 않고 석두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마조는 ‘오리만 보지 말고 오리를 바라보는 너’를 보라는 것입니다. 석두는 ‘너를 바라보는 너를 바라보는 찰나의 너’를 보라고 말합니다. 마조가 말한 ‘오리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려면, 그 ‘나’를 바라보는 ‘나’를 상정해야 가능합니다. 마조와 석두는 결국 지향점이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 철학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나’까지는 생각할 수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나’는 생각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마조와 석두는 ‘나’와 세계라는 존재의 심오한 의미를 그 극한까지 파헤쳐 내려간 것입니다.
마조와 석두가 말한 ‘나를 찾는 것’은 선의 영원한 화두이자 생의 신비이며 철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아이고, 이런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쉬운 것 같지만, 나 정도의 수준에서는 끝까지 따라가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님하,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천당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지금 당장 나하고 함께 천당에 가자고 하면 누가 따라가겠어요. 범부는 오직 원앙이 부러울 뿐 신선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물을 건너가자 뒤쫓아가며 말리다가 미치지 못하고, 남편이 그예 물에 빠져 죽자 여인이 절망하며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난 다음 여인도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으니 망부가라고 해도 좋고 절명시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노래인지 중국의 노래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2세기에 지은 거문고 연주자를 기록해 놓은 『금조』라는 중국 문헌에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란 노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주5)
님하,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기어이 물을 건너가네
그예 물에 빠져 죽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찌하리오(주6)
불과 16자의 짧은 노래이지만 한 글자 한 글자가 여인의 가슴에서 우러나와 천지를 울립니다. 2,000년 전의 노래가 지금 들어도 호소력이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은 이 정도 수준에서 서로 공명하면서 통하기 때문입니다.
300년 동안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왕버들이 물 위에 비칩니다. 오리가 만드는 물무늬는 나를 관통하여 수면 너머 아득한 곳으로 번져갑니다. 누구나 다 이 자리에 있고, 누구나 다 진리의 하늘 아래 있습니다. 광활한 심리적 풍경 속에서 비록 잠깐이지만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각주>
(주1) 베르나르 포르, 『새로 보는 선불교』, 운주사, 2023.
(주2)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859.
(주3) 『祖堂集』 卷第十五, 五洩章 : 有一日 大師領大衆出西牆下遊行次 忽然野鴨子飛過去 大師問 身邊什摩物 政上座云 野鴨子 大師云 什摩處去 對云 飛過去 大師把政上座耳拽 上座作忍痛聲 大師云 猶在這裏 何曾飛 過政上座豁然大悟.
(주4) 『祖堂集』 卷第十五, 五洩章 : 纔過門時 石頭便咄 師一脚在外 一脚在內 轉頭看 石頭便側掌云 從生至死 只這個漢 更轉頭惱作什摩 師豁然大悟 在和尙面前給侍數載 呼爲五洩和尙也.
(주5) 蔡邕(133~192), 『琴操』에 “箜篌引者 朝鮮津卒 霍里子高所作也(…)” 운운하는 기록이 있지만, ‘조선진’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한 확실한 고증이 없고, 가사 또한 한문으로 쓰여 있어서 과연 [공무도하가]가 우리나라 노래인지, 중국 노래인지에 대해 학계의 논쟁이 아직도 이어지는 중이다.
(주6) 蔡邕, 『琴操』 : 公無渡河 公竟渡河 公墮河死 當奈公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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