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한국선의 시원, 한국인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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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룡 / 2024 년 1 월 [통권 제129호] / / 작성일24-01-05 10:33 / 조회1,658회 / 댓글0건본문
한국선 이야기 1
김방룡(충남대학교 교수)
부처님과 마하 가섭 사이에 일어났던 ‘염화미소’의 일화는 선禪의 시원과 성격을 잘 말해 준다. 이 사건을 통하여 부처님의 마음에서 가섭의 마음으로 전해진 것이 ‘선’이며, 이것이 ‘교외별전敎外別傳’이다. 그런데 ‘선리禪理’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선’이란 전해 주거나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가섭의 마음 그대로가 이미 부처인데, 무엇을 전해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한국선의 시원과 조계종
한국선의 시원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신라 승 명적도의明寂道義가 821년(헌덕왕 13) 당唐에 들어가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서당지장西堂智藏으로부터 선법을 받아 온 데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650년(진덕왕 4)에 법랑法朗이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개창자인 사조 도신道信으로부터 북종선을 전래하였다. 이는 372년(소수림왕 2)에 전진의 부견符堅으로부터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 되기 이전에 이미 지둔支遁(314~366)과 고구려의 승려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내용이 양나라 혜교慧皎가 찬한 『고승전』에 실려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도의 이전의 선의 전래에 대하여 도신의 북종선을 들여온 법랑과 그의 제자 신행信行(神行)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또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정중무상淨衆無相과 더불어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등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밝히고자 한다.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명칭에서 보이듯이 한국불교의 정체성은 조계혜능의 남종선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한국선은 ‘조사선 선풍과 간화선 수행’을 특징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나말여초 중국으로부터 선이 전래된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공통적 요소이다. 따라서 한국선에 대한 논의는 중국선과의 긴밀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선이 중국선의 영향을 깊게 받긴 하였지만, 중국 선종의 어느 한 종파에 소속된 일은 없으며 매 시기 한국불교가 처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선풍과 선사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한국선에 독자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선의 시원 및 형성에 관한 대표적인 사료는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이다. 특히 이 가운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와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그리고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는 신라 말 선의 전래와 선사상 그리고 선종의 형성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다. 이에 나타난 신라 말 선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최치원의 동인의식東人意識, 즉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에 관해 주목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최치원은 「난랑비의 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를 ‘풍류風流’라 한다. 가르침을 설한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그 내용은 삼교三敎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군생群生을 접촉하여 감화시킨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라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이고, ‘무위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하라는 것’은 노자의 종지이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는 것’은 석가의 교화와 같다.”(주1)
최치원이 말하고 있는 『선사』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지만,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을 ‘선仙’ 혹은 ‘풍류風流’를 통해 천명하고, 이러한 사상 속에 유불도 삼교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최치원은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유불도 삼교를 관통하는 사상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 진리·도道가 내재해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조사선에서 말하는 ‘즉심즉불卽心卽佛’·‘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다르지 않다. 중국으로부터 유불도 삼교를 받아들이게 된 이유가 우리 민족 고유의 심성 속에 삼교의 가르침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최치원의 주장은 ‘한국불교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서 왜 선사상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의 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 나타난 수행문화
불교 내에서 선의 시원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을 통하여 정각正覺을 이룬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도의 역사에서 살펴보면 부처님 당시 육사외도六師外道나 우파니샤드 시대 그리고 그 이전인 베다 시대나 브라흐만 시대에도 선禪과 같은 수행이 존재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그 이전 상대上代였던 모헨조다로 시대에도 좌선을 상징하는 무늬의 대리석 조각이 발굴되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선수행이 나름대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禪은 또한 인도에서만 독점한 사상도 아니다. 중앙아시아의 시나이반도에서 ‘주두성자柱頭聖者’들이 있어 이들이 말뚝에서 좌선을 하는 등의 정신문화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도 『장자莊子』에 이상적인 도인의 경지를 심제心齊 혹은 좌망坐忘이라고 한 것을 보면 선禪이 유입되기 이전에도 이미 중국인들에게 맞는 선수행법이 계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맹자가 정좌正坐를 말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 모두 불교문화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실제로 좌선과 같은 수행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종교의 기원에 대하여 엘리아데가 샤머니즘[巫]으로 정의하였지만, 무巫적인 전통 이외에 선仙 혹은 선禪의 전통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巫적인 전통이란 인류가 우주 자연의 제반 현상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에 대한 속죄·기도 등을 하면서 발생된 것이라면, 선仙혹은 선禪적인 전통이란 인간이 우주·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무巫적 전통에서 성장한 고등종교가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이라면, 선仙 혹은 선禪적 전통에서 성장한 고등종교는 불교·힌두교·도교 등이라 할 수 있다.
최치원이 말하고 있는 ‘선仙’과 ‘풍류도’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선의 시원을 밝히고자 할 때 우리는 선을 받아들인 주체가 바로 ‘한국인’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즉 한국인의 고유한 심성 속에 ‘언어도단·심행처멸’의 선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특징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선의 시기 구분
‘한국선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 개요를 설명하고자 한다. 한국선의 전개 과정에 대하여 아홉 시기로 나누어 연재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남종선 전래 이전의 선, ②남종선의 전래와 나말여초 구산선문의 형성, ③고려 전기 선사상, ④보조 지눌의 선사상, ⑤수선사 16국사, ⑥여말 선초의 선사상, ⑦조선 중기 선사상, ⑧조선 후기 이종선-삼종선 논쟁, ⑨근 현대 선사상’ 등이 그것이다.
한국선의 전개 과정을 이와 같이 구분하고서 각 시기 선사상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전후 시기 사상사적 연관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한국 선사상의 흐름과 이를 관통하는 성격과 특징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 시기 한국불교가 처한 상황은 무엇이며, 그 속에서 선종 혹은 선사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각 시기 중국으로부터 선을 수용하는 과정과 그 사상적 특징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이를 수용한 주체들이 어떠한 활동을 통하여 한국선에 적용하였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그동안 한국선에 대한 담론은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일차적으로 선과 관련한 자료가 빈약한 데에 기인하지만 선사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연재에 있어서는 매 시기 선사상을 대표하는 저술의 내용과 간행된 선서들의 현황 및 그 사상적 특징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선사상과 기타 사상의 융합이다. 이는 선교禪敎 융합, 선정禪淨 융합, 선율禪律 융합, 선밀禪密 융합 등 불교 내적인 융합과 유불儒佛 융합 그리고 유불도儒佛道 삼교 융합 등 불교 외적인 융합 등이 있다. 특히 억불 상황에 처한 조선시대의 선사상을 논함에 있어서는 유교의 사상이 선사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선사들과 유학자들 간의 교유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각주>
(주1) 김부식, 『삼국사기』 권4, 진흥왕 37년(576)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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