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서유기 ]
『서유기』의 불교적 독해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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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4 년 1 월 [통권 제129호] / / 작성일24-01-05 11:05 / 조회2,017회 / 댓글0건본문
강경구
동의대 중국어학과 교수
통도사 주차장에서 사찰로 들어가려면 무지개다리 하나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1937년 경봉스님이 축조한 것이다. 스님은 이 다리를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라고 명명하고 직접 글씨를 써서 표지석에 새겨놓았다. 경봉스님은 우물을 만들고 다리 세우는 일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많은 사람을 위해 복을 짓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스님이 주석하던 극락암 입구의 영지影池에도 무지개 다리가 축조되어 있다. 역시 스님이 조성한 것이다. 다만 극락암의 다리는 상징적 구조물에 가깝다.
통도사의 삼성반월교와 『서유기』
영지라는 연못 자체가 인공으로 조성된 것이고 거기에 세워진 무지개다리 역시 실제로 건너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왜 무지개다리인가? 다리의 이쪽은 이 언덕, 차안此岸이고 다리의 저쪽은 저 언덕, 피안彼岸이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는 일은 수행 이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이 다리는 수행의 원리를 보여주는 현장이 된다. 대승의 수행은 낮은 속계를 벗어나 성계聖界에 높이 올랐다가 다시 낮은 속계로 내려오는 길을 걷는다. 많은 사찰의 다리가 무지개 형태를 취한 이유가 아닐까?
그런데 일반적인 사찰의 무지개다리는 다리 아래의 무지개가 하나다. 건너야 하는 계곡의 폭이 넓지 않기 때문이다. 보물로 지정된 여수 흥국사의 홍교虹橋나 선암사의 승선교昇仙橋, 건봉사의 능파교凌波橋 등이 당장 그렇다. 그런데 통도사 삼성반월교는 다리 아래의 무지개가 셋이다. 그 계곡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삼성반월교가 세워지기 전에도 그 자리에는 무지개다리가 있었다. 무지개가 하나였던 이 다리를 철거하고 세 개의 무지개로 이루어진 다리를 새로 축조한 것이다.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자 한 스님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그것이 삼성반월三星半月이라는 다리의 이름에서 확인된다.
삼성반월교는 세 개의 별[三星]과 하나의 달[半月]이라는 뜻으로서 마음 심[心]자를 파자한 것이다. 이 다리가 물에 비친 그림자를 상상해 본다면 더 좋겠다. 물속에 거꾸로 비친 그림자로 보면 다리 아래의 무지개 공간은 세 점이 되고 그것을 둥그런 통행로가 받치고 있다. 그렇게 하여 이 다리는 마음 심[心]자의 형상을 직접 보여준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차별과 집착을 내용으로 하는 중생의 마음을 뒤로 하고 지혜와 복덕으로 이루어진 부처의 마음을 향해 나아가라는 축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삼성반월교의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것은 『서유기』와 불교의 친연성을 말하기 위해서다. 손오공은 처음 수보리 존자를 만나 불교 수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곳은 초승달[斜月]에 별이 셋[三星]인 동굴, 즉 사월삼성동斜月三星洞이었다. 사월삼성동은 세 개의 별[三星]을 초승달[斜月]이 받치고 있다는 뜻으로서 역시 마음 심[心]자를 파자한 것이다. 그러니까 통도사의 삼성반월교 다리와 『서유기』의 사월삼성동 동굴은 마음 수행의 현장을 가리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확실히 통도사의 삼성반월교는 『서유기』의 사월삼성동을 의식한 명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통도사의 용화전에도 『서유기』의 에피소드를 내용으로 한 7폭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 삼장과 손오공 일행이 서천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형상화한 것이다. 조선 말에 그려진 이 벽화는 국내에 유일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당시 『서유기』가 불교적 저작물로 널리 읽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설악산의 수렴동水簾洞이라는 이름만 해도 그렇다. 물이 많은 설악산의 계곡을 보면서 수렴동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낸 사람은 『서유기』를 즐겨 읽던 어떤 스님이었을 가능성이 99.9%다. 손오공이 사는 곳이 화과산 수렴동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서유기』가 불교의 진리를 절묘하게 문학화한 저작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불교 컨텐츠의 생산과 공연
일반 독서계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시대 생활중국어 교본이었던 『박통사』라는 책을 보면 『서유기』와 관련된 회화들이 자주 보인다. 예컨대 중국에서의 생활을 상정한 회화 중에 서점에 가서 “『서유기』를 사자”는 말이 보이고, 기타 구문에도 『서유기』에 보이는 ‘황풍요괴[黃風怪]’ ‘홍해아紅孩兒’, ‘화염산火焰山’, ‘여인국女人國’ 등의 어휘가 대화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고려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책을 살 때 『서유기』가 인기 도서였다는 말이 되고, 또 중국인과의 정서적 교류에 그것이 주된 화제로 쓰였다는 말이 된다.
『서유기』는 어떻게 중국의 국경을 넘어 고려의 인기 도서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중국산 불교의 수입과 관련이 깊다. 불교가 거의 국교에 가까웠던 고려에는 한역된 경전과 중국화된 불교문화들이 대거 수입된다. 그렇게 수입된 불교문화의 하나로 『서유기』가 있었고, 그 흥미진진하고 신비한 모험담이 고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유기』는 불법 전파에 있어서 하나의 성공한 모델에 속한다.
불교는 중국에 들어오면서 두 측면에서 발전하게 된다. 그 하나는 불교 전문가 그룹의 발전이다. 전문가 그룹의 발전은 ‘중국불교사’의 전체 내용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불교를 신앙하는 대중들의 양적 확대이다. 위로는 황제, 아래로는 필부필부匹夫匹婦에 이르는 불교를 신앙하는 그룹이 널리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신앙 대중이라 해도 글을 읽을 줄 아는 식자층과 서민들의 수용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식자층은 번역된 불교 서적들을 수용하여 그 지적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에 비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서민 대중들은 불경과 불교를 강경講經, 즉 경전 강의의 방식으로 수용했다. 서민들을 위한 강경은 인도의 경우를 본받아 설법과 노래와 연주를 겸하는 연행 형식을 취했는데 당대에는 이것을 강창講唱이라고 불렀다. 강창은 말하고[講] 노래하는[唱] 방식으로 불법을 설했다는 뜻이다.
보통 강창에는 불경의 경문을 노래처럼 음송하는 도강都講과 그것을 대중들이 알기 쉬운 세속적 이야기로 풀어주는 속강俗講이 있었다. 이중 세속적 이야기와 환상적 비유담을 내용으로 하는 속강은 대중들을 불교로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속강을 풀어주는 속강승들이 오늘날의 연예인과 같은 인기를 구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나라 때 중국에 유학한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기』를 보면, 속강을 전문으로 하는 법사들 중에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스타 승려들의 이름이 여럿 보인다. 그중 특히 유명했던 속강승으로 문서文溆라는 이가 있었는데, 당나라의 경종敬宗 황제가 직접 흥복사興福寺에 행차하여 그 이야기 공연을 들었다는 기록까지 전한다.
그러한 스타 속강승들이 설계한 비유담들은 작은 사원에서 공연되었다. 그중 자은사慈恩寺가 특히 유명했고, 청룡사靑龍寺, 천복사薦福寺, 영수사永壽寺 등도 속강의 공연으로 이름이 높았다. 불교의 사찰이 대중들이 즐겨 찾는 극장이 된 것이다. 이후 이것을 본딴 극장들이 사찰의 밖에 세워져 대중들의 문화공간이 되는데 와사瓦舍나 구란勾欄 같은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사찰의 인기 속강 레파도리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극장에 진입하게 된다. 여기에 『서유기』의 여러 에피소드가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서유기』와 관련하여 인기 있는 에피소드들을 채록한 이야기 대본[話本]이 현재까지 남아 있기까지 하다. 송대에 결집된 『대당삼장취경시화』나 원대의 『서유기평화』 등이 그것이다. 이중 원대의 『서유기평화』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고려시대 생활중국어 교본(『박통사』)에 보이는 『서유기』인 것으로 확인된다.
복원을 기다리는 『서유기』의 메시지
중국문학사에서는 이 이야기 대본(화본)을 백화소설의 출발로 본다. 그러니까 중국의 소설은 『서유기』와 같은 불교비유담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인도에서 수입된 불교의 설법방식은 거대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노래(운문)와 설법(산문)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변화무쌍한 서사방식은 물론이고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주제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창조된 비유담은 거의 신세계의 체험에 가까웠다.
그런데 불교의 교리를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비유담들은 사찰의 법회 공간을 벗어나 대중들의 극장으로 진입하면서 이야기만 남고 불교의 교리를 말하는 부분들이 사라지게 된다. 불교적 설법이 사라지는 과정을 역추적해 보면 대체적으로 경전의 구절을 음송하는 도강都講이 먼저 사라졌던 것으로 보이고, 다음으로 그 인물과 사건들에 담긴 불교적 원관념을 해설하는 부분들이 사라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처럼 신비한 인물들과 사건들로 채워진 이야기만 남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심오한 불법의 이치를 담은 비유담이었던 『서유기』는 신마소설神魔小說, 즉 환타지 소설로 변하게 된다. 그럼에도 역대 『서유기』의 독자들은 그 비유와 상징 속에서 심오한 사상의 흔적을 감지하곤 하였다. 불법의 진리를 탑재하기 위한 이야기의 설계가 워낙 치밀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야기의 설계가 중국의 서민 대중들을 주 타켓으로 겨냥한 것이었으므로 중국의 신화, 전설은 물론 중국적 세계관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그에 대한 불교적 독해는 물론 도교적, 유교적 해석의 흐름이 형성된다. 그래서 『서유기』의 저술 목적과 관련하여 도가에서는 내단內丹의 완성 비법을 제시하기 위해 도사 구처기丘處機가 저술한 것이라고 보았고, 유가에서는 이것을 인의예지신을 강조하는 권학용 도서라고 보았다. 이렇게 유가와 도가에서 자기식의 해석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소설에 노출된 도가와 유가의 용어들 때문이다.
다만 어느 경우라 해도 그것은 마음[心]이라는 한 글자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이 유불선儒佛仙의 마음공부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아도 『서유기』는 불교적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의 창작이 승려 현장玄奘(600∼664)의 16년간의 인도 체험을 기록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그 여정이 관세음보살이 설계한 대승의 길을 걷는 일이며, 그 내용이 진공묘유의 중도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결말 역시 서역의 석가모니불을 친견하고 불교경전을 동쪽에 전파하는 일로 귀결되며, 결국 부처의 지위에 오르는 일로 대단원을 맺게 된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확인된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중국문화의 외피에 싸여 있기는 하지만 『서유기』는 궁극적으로 불교의 진리를 전달하는 비유담의 결집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법화경』의 비유담이나 『화엄경』의 대서사는 물론이고, 『불성비유경』이나 『법원주림』과 같은 이야기 모음집의 장점들을 두루 수용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으로 우리를 불법의 세계에 젖어 들게 한다. 그렇게 『서유기』의 여정을 함께 하다 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마음을 통찰하는 마음관찰의 여행에 진입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정서를 직격하므로 추상적 사유의 과정을 건너뛰어 바로 우리의 심성에 각인된다.
다만 『서유기』의 흥미 있는 에피소드에 숨겨지듯 탑재된 불교의 진리를 다시 발굴하여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서유기』의 원형을 복원하는 일일 수 있다. 불법의 실천이라는 것이 꼭 심오한 학문적 구조물을 구축하는 일일 필요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불법을 접할 때 우리의 정서와 생활이 흔들리는 이런저런 진동[六種震動]을 느끼는 일이다. 『서유기』의 불교적 독서가 그러한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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