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불멸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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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4 년 7 월 [통권 제1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913회 / 댓글0건본문
“오늘은 뭐 입고 나가지?” 아침마다 이 생각을 하기가 싫어서 대학 때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닌 적이 있었다. ‘무상이 신속하거늘 어찌 옷차림 따위에 신경을 쓰랴’하는 큰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귀찮아서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시절의 나는 패션을 공부하는 학과에 다니는 중이었다. 거기서는 뭘 입고 나왔는지가 최대 관심사였고, 하루 종일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온통 옷에 쏠려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내일 뭐 입고 나올지를 계획했다. 옷은 물론 머리핀부터 구두, 가방, 액세서리, 매니큐어 색깔, 화장 톤까지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보여주면서 서로 점검해주곤 했다. 입고 나온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수업을 빼먹고 조퇴하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이렇게 옷에 신경을 쓰고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반해서 “오늘, 니들 다~ 죽었어!” 하고 나와도 수많은 멋쟁이들 속에 섞이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옷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한 그곳, 각종 브랜드로 장엄한 패셔니스타들 사이에 있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내 패션이 가장 눈에 띄었다. 과 친구들이 나를 ‘정신이 좀 아프신 분’으로 보더니 급기야는 ‘사이코’, ‘불멸의 패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옷 때문에 주목을 받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보호색으로 몸을 감추고 싶어서 청바지와 티셔츠 몇 벌을 갖춰놓고 돌려막기 식으로 입고 다녔으나 역부족인지라 여전히 패션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았다. 무엇을 입든지, 어떻게든 옷을 가지고 사람에게 딱지를 붙인다.
그 뒤 전공을 바꿔 불교학과에 들어오니 나 같은 옷차림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멋지게 차려입고 다니는 극소수의 학우가 오히려 눈에 띄었다. 역시나 별명이 붙어 있었다. ‘팔색조’라나…. 패셔니스타들의 동네에서 패션테러리스트의 동네로 이사를 하고 나니 이제야 내 집에 온 듯 편안했다. 그런데 진정한 패션테러리스트는 따로 있었다. 과격한 헤어스타일에 회색 장삼으로 온몸을 가리고 다니는 스님들이 띄엄띄엄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분들을 보면서, “오늘은 뭐 입고 나가지? 매일 아침 이 고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스님들은 옷해탈을 누리는구나.”하고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패션을 전공하는 학과가 아니더라도, 옷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이들 공감할 것이다. 직장 면접시험에서도 지원자의 용모와 복장을 따진다. 한 친구는 직장에 새로 들어온 아랫사람이 마님 복장을 하고 다녀서 일을 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불평했다. 얼마 안가서 과연 그 신참이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렇듯 옷은 사람의 직종이나 지위, 개성을 나타내준다. 그래서 차림새만 보고도 선생님인지 영화감독인지 대강 구분할 수 있다. 옷에 대해 관심을 끊은 성직자도 바로 그 옷 때문에 뭐하시는 분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배냇저고리에서 수의가 입혀질 때까지 사람은 옷을 떠날 수 없고, 입은 옷으로 자기를 나타낸다. 그래서 옷을 제2의 피부, 제2의 자아라고 하는가 보다.
또한 ‘옷을 벗는다’는 말이 관직에서 물러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예부터 옷은 관직과 명예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 옷에 갇혀 물러날 때를 놓치고 온 국민의 혐오를 받는 사람도 가끔 있다. 그런 반면, 일찍이 옷이 감옥인 줄 알고 옷을 떠난 분이 있다. 고려 중기, 점점 쇠퇴해가던 불교계에 수행 분위기를 새롭게 일으킨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다. 그의 호가 무의자(無衣子)이다. 어떤 옷도 걸치지 않는다는, 혹은 어떤 옷도 나를 대표할 수 없다는 그 이름 속에서 그가 어떻게 살고 싶어 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난 그는 사마시에 합격하고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외롭고 답답한 마음에 ‘고분가(孤憤歌)’를 지어 속내를 토로한 적이 있다. 그 시를 읽어보면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울분이 가득하다. 그러던 그가 시를 남기고 집을 떠난다.
공문(空門)의 법을 마음속에 사모하여
찬 재 같은 마음으로 좌선을 배운다.
공명도 한 번 떨어지면 깨진 시루요
사업도 이루고 나면 놓아야할 도구일 뿐.
부귀도 한갓 그저 그런 것
빈궁도 역시나 그저 그런 것
나는 이제 마을을 떠난다네.
소나무 아래서 잠이나 자려고.
과거에 합격했으면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을 텐데 그는 출세 길을 뒤로 하고 출가를 선택했다. 출가를 하고 나서도 명성이 자자했을 텐데 승과를 보지 않았다. 고려 때 승려는 승과에 합격해야 법계를 받을 수 있고, 법계가 있어야 주지가 될 수 있었는데 그는 명리와 담쌓고 살았던 듯하다. 당시 최고 권력자 최우가 스님을 사모하여 불렀는데도 가지 않았다. 자칫 명령불복종으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거절한 것을 보면 무의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처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전국 각지를 다니며 법회를 가졌으면서도 개경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아무도 건드릴 수가 없다. 대신에 뜻대로 살았을 것이다. 그의 삶을 말해주는 시 한 편이 있다.
산에 노닐며(遊山)
맑은 계곡물은 나의 발을 씻어주고
푸른 산 빛은 나의 눈을 맑혀주네.
이 밖에 더 이상 구할 것 없어라.
꿈꾸지 않으니 영욕에 한가롭다.
淸溪濯我足 看山淸我目
此外更無求 不夢閒榮辱
옷을 입지 않는 자, 그가 불멸의 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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