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갑을(甲乙)이 아닌 주인공으로 살았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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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3 년 5 월 [통권 제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9,687회 / 댓글0건본문
갑을(甲乙) 관계로 평생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출가를 해서 참선하며 살아가는 선승들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종자’들이다. 돈 안 되는 일에 평생을 쏟으니 말이다. 돈 안 되는 쪽으로는 그 삶이 잉여스럽다 하겠고 평생을 하나에 쏟는 쪽으로는 그 하는 짓이 오덕스럽다 하겠다. 젊은 시절, 그런 출가자들의 삶을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를 포함해서 주변의 수많은 갑을들을 보는데, 아주 운 좋은 몇몇 경우 말고는 대부분이 사는 게 즐겁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다. 하고 싶지 않은 일로 하루를 매우 효율적으로 보내고 그렇게 온 인생을 소진한다. 그 대가로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엄청난 업무량과 감당키 어려운 인간관계로 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늙고 병들어도 자식이 봉양해주는 시대는 지났고 그렇다고 국가에서 책임져주지도 않는다. 허망하고 억울하고 버거운 인생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했는데 ‘사바(娑婆)’라는 인도 말은 감인(堪忍), 혹은 인토(忍土)라고 번역된다. 감당하고 인내해야 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무언가를 참지 않고 지낸 날이 하루라도 있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중생의 생존 자체가 인욕의 연속이다.
부모 배정을 잘 받고 태어난 행운 덕분에 비교적 어려움 없이 살던 나도 이런 저런 전차로 사바스러운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 고된 경험이 헛되지 않아, 절에서 행사할 때 지루하게만 들리던 ‘사바세계 남섬부주 … 아무개 …’하는 축원문이 이제는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그 아무개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하루를 감내했을 테니까. 그러다 보니 갑을을 떠난 비효율적인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즐겁지도 편안치도 않다면 갑을 세상의 효율은 무엇을 위한 효율이었나?’ ‘출가를 하면 편안하고 자유로운가?’ ‘자기는 자유롭지만 사회적 민폐가 아닌가, 세금도 안 낸다던데…’ 등등의 잡생각을 했었다.
이것저것이 궁금하던 젊은 날에 몇몇 스님에게 출가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출가의 이유는 묻는 게 아니라는 절집의 불문율로 미루어 보아 선뜻 대답해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셨다. 매우 연로하신 스님 한 분은 배가 고파서, 절에 가면 밥은 먹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로 출가하셨다고 한다. 그분, 출가한 지 60년도 넘었으니 배고픈 시절이었음은 틀림없다. 한 분은 직장생활 하면서 체질에 맞지 않는 술을 날마다 마시는 것이 고역이라 출가했다고 한다. 술 못 마시는 게 약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는 곳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참 살 만하다고 했다. 한 분은 새벽에 문득 잠이 깼는데 왠지 그냥 가야할 것 같아서 기차를 탔다고 한다. 한 분은 세상이 두려워서 도피행으로 출가했다고 한다. 한 분은 출가하는 친구 바래다주러 절에 갔다가 덩달아 출가했다고 한다. 얼떨결에 출가를 해버린 셈이다.
내가 물어본 몇 분 중에는 ‘성불하려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진리를 탐구하려고’와 같은 식의 ‘모범답안’은 없었다. 출가한 이유를 듣고서 한편으로는 다겁생래의 깊은 불연(佛緣)에, 한편으로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문득’에 평생을 던진 그 결단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뭔가 무겁고 거창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내게 무겁지 않게, 솔직하게 답해주신 그분들의 내공을 짐작해볼 뿐이다. 이 중에 베스트를 꼽으라면 ‘친구 따라…’에 한 표 던진다. ‘이분, 옛날에 본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생각나게 한다. 다리에 보조기구를 달고 절뚝이면서 못된 애들에게 쫓겨 달아나고 있을 때 ‘뛰어!’하는 친구의 외침을 듣고는 목숨 걸고 달려서 결국 인생을 바꾼다. 포레스트에게는 그 친구가 선지식이 아니었을까.
출가의 이유를 들려주었던 위의 스님들이 완전한 자유를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옆에서 관찰해 보면 역시 세속의 갑을들과는 다른 것 같다. 선사, 법사, 이판, 사판으로 불법 안에서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아가지만 적어도 남의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즉 이들에게는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저기 매인 종류로 32상 80종호를 꼽을 지경인 인생들에게 이 ‘주인공’은 그저 꿈이다. 그래서 선사들의 삶에 더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옛 어록이나 역사책에는 철저하게 주인공으로 살았던 선사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서 문을 닫고 상상근기나 상대하는 종장(宗匠), 입 아프도록 자상하게 문답해주는 종장, 때로는 과격하게 몽둥이찜질과 주먹질로 친절을 떨어주는 종장, 금은방 스타일, 잡화상 스타일 등 갖가지 스타일이 등장한다. 저마다의 개성을 허물지 않으면서도 한 법을 전해주는 분들이 각 산문마다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구역 미친놈은 나야!”라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명대사가 귀에 울린다.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분들이 깨달은 내밀한 경계에는 접근불가요, 제자들을 다루는 속내와 솜씨도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화두선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듯이 어록에 전하는 그분들의 삶의 태도와 자유로운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현재를 살아가는 갑을들의 이야기도 소개할 것이다. 멋진 이야기들을 통해서 사바를 견디느라 붕괴된 멘탈을 수선함과 동시에 바깥으로 나갔던 내 주인공을 환기시킬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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