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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별어]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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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3 년 10 월 [통권 제6호]  /     /  작성일20-05-29 13:59  /   조회6,87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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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보림전』은 혜능-마조선사로 이어지는 조계종의 원류를 밝힌 최초의 전등록이다. 전등록의 고형(古形)인 동시에 원형인 까닭에 그 서지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책의 안팎과 주변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면서 동시에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연재물로 ‘보림별어’가 기획되었다. - 편집자 

 

누구나 미래는 궁금하다

 

누군들 미래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세계와 우리나라 그리고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은 살아 있는 한 영원한 관심사이다. 식욕, 성욕, 수면욕 다음으로 인간의 강력한 욕구 중의 하나가 앞날을 알고자 하는 ‘미래욕’이라고 강호동양학의 고수 조용헌 선생은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욕이란 결국 명예욕과 직결된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이 욕구는 인간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더불어 미래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갖가지 지혜를 동원해 왔다. 하지만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유는 미래란 늘 가변적인 것이며, 또 천기누설이라는 금기영역인 까닭이다. 

 

그래서 미래학의 언어들은 두루뭉수리한 표현과 애매모호한 중첩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알아서 알아들으라는 식이다. 그래도 그 한 마디가 주는 무게감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안심(安心)적 측면에서 참으로 유용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득(得)이 될 때도 있고 독(毒)이 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왕조의 흥망을 갖가지 언어로 예언하다

 

개인의 미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미래이다.

개인의 미래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지만 공동체의 미래 역시 개인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특히 왕조의 흥망성쇠에 관련된 유언비어성 예언설은 국가적 관심사 차원에서 수집되곤 했다. 고려 중기에는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이 유행했다. 십팔자(十八子)는 ‘이(李)’의 파자이다. 뒷날 이씨 왕조가 개국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정씨가 왕이 된다는『정감록』이 유행하였다.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은 이를 믿고 난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정씨가 군주로 등장할 때까지 계속 진행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삼재(三災)가 미치지 않는다는 십승지(十勝地) 이론은 현재도 유효하다. 팔만대장경이 보존된 가야산 일원도 십승지의 한 곳이다.

 

고려 초기의 대학자이며 ‘시무28조’를 올린 정치가인 최승로(崔承老, 927~989)는 성종에게“금계자멸 병록재흥(金鷄自滅丙鹿再興)”이라는 당시 유행하던 예언설을 수집하여 보고했다. 금계는 김씨의 계림이고 병록은 ‘려(麗)’자의 파자(破字)로 고려를 지칭한다. 신라는 기울고 고려는 흥한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글자를 분해하는 방법을 통해 간접적으로 뜻을 드러내는 것은 예언설의 정형이기도 하다. 신라의 골품제도로 인하여 빛을 보지 못한 최치원 이하 최씨의 후예들은 고려의 개국으로 중용되면서 왕조의 기반확립에 많은 공로를 남겼다.

 

금닭이 한 톨의 쌀을 물고 오다

 

김씨의 계림 즉 신라를 가리키는 ‘금계(金鷄)’라는 글자는 선종의 역사에도 등장한다. 물론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

 

금계가 한 톨의 쌀알을 물고 와서

시방의 나한승에게 공양하리라.

金鷄解銜一顆米(금계해함이과미)

供養十方羅…漢僧(공양시방나한승)

 

본래 예언하는 말이란 하나같이 아리송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코에 걸며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이 글이 처음 실린 것으로 추정되는『보림전』권7이 현재 산실된 상태인지라 그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조당집』권2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는 달마 대사에게 법을 전한 후

“내가 입적하거든 중국에 가서 크게 법약(法藥)을 베풀도록 하라”는 부탁을 한다. 그리고 위의 예언문〔讖偈(참게)〕을 함께 주었다고 전한다.

후학들은 이 예언을 해석하고자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마침내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육조혜능 선사의 법을 이은 남악회양 선사는 금주(金州) 출신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마조 스님은 시방현(什方縣) 사람으로 고향에 있는 나한사(羅…漢寺)로 출가했다. 본문의 일(一)은 마조도일로 보았다.

 

해석하면 금주 땅 출신의 큰 인물(鷄)인 남악회양 선사가 마조도일 스님을 제대로 알아보고서 그 법을 베풀어 준다(供養)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역시 선종교단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 하겠다.『보림전』은 기존 선종 역사서들과는 달리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를 27조로 자리매김하고 달마의 스승으로 위치 지웠다. 그리하여 서천(西天, 인도)의 28조와 동토(東土, 중국)의 6조를 이어주는 고리역할을 하도록 그 지위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 예언은 조계혜능 문하에서 남악회양, 마조도일의 출현을 상징적 기호로 언급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망아지 한 마리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다

 

이에 비하면『육조단경』권6의 예언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물론 남악회양 문하에서 마조도일의 등장을 알리는 예언의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다. 예언자는 반야다라 존자이다. 하지만『육조단경』은 반야다라 존자를 달마 대사에게 법을 전한 직계스승의 위치에 두진 않았다.

 

너의 문하에서 망아지가 나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일 것이다.

汝足下出一馬驅(여족하출일마구)

踏殺天下人(답살천하인)

 

마(馬)는 물론 마조를 가리킨다. 알다시피 마조 스님의 성(姓)은 마씨이다. 홍주(洪州, 강서성)라는 변방지역에서 활동하던 마조도일 선사가 선종천하를 통일하게 될 것이란 예언이다. 마조의 등장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피를 보는 사람도 여럿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을 답살(踏殺)이라고 표현했다. 유탄을 맞고 선종사 속에서 사라진 하택신회가 대표적 피해자라고 할 것이다.

 

수기(授記)는 참게(讖偈)가 되다

 

수기(授記)는 ‘미래의 약속’이다. 초기에는 기별(記別)이라고도 했다. 지금도 소식을 미리 전해주는 것을 기별이라고 한다. 경전 속의 수기는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는 내용이 주종이다. 선종은 참게(讖偈)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미래의 일을 말한다는 점에선 수기와 형식상 별다른 차이가 없다. 『보림전』의 예언대로 마조도일 선사가 등장했고 이후 선종은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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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원철 스님은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그리고 일간지와 교계지 등 여러 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로써 주변과 소통해왔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있네』등 몇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번역서에는『선림승보전』상·하가 있으며, 초역을 마친『보림전』의 교열 및 윤문작업 중이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해인사승가대학 학장(강주)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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