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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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3 년 12 월 [통권 제8호] / / 작성일20-05-29 14:10 / 조회6,846회 / 댓글0건본문
『보림전』은 혜능-마조선사로 이어지는 조계종의 원류를 밝힌 최초의 전등록이다. 전등록의 고형(古形)인 동시에 원형인 까닭에 그 서지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책의 안팎과 주변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면서 동시에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연재물로 ‘보림별어’가 기획되었다.- 편집자
복건성 광화사를 찾다
복건성 천주(泉州)는 예로부터 유명한 항구도시였다. 마르코폴로가 동방제일항구라고 찬탄한 곳이기도 하다. 필자가 천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98년 가을이다. 발을 디딘 첫 만남은 항구가 아니라 천주공항이었다. 버스를 이용해 목적지인 인근의 포전(蒲田, 푸티엔)으로 갔다. 한·중·일 선수행 체험단의 상호방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광화사(廣化寺, 주지: 學誠)에 방부를 들인 것이다. 종단의 후원으로 10월 15일부터 26일 귀국할 때까지 은해사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던 도반 10여 명으로 수행단(단장: 무비 스님)을 꾸린 덕분이다. 방문객이 아니라 대중의 일원으로 함께 똑같이 예불, 공양, 운력 등 그 사찰의 일상생활을 함께하면서 10여 일을 지냈다. 인근 유명관광지도 그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함께 둘러보았다. 포전은 선어록에도 가끔 그 지명이 등장한다.
조동종의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 선사가 이곳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천주의 개원사(開元寺)는 686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하지만 선종역사 속에서 가장 유명한 개
원사는 마조 스님이 머물렀던 강서성 남창 개원사(현재 우민사)라고 하겠다.
천주는『조당집』의 고향이다
『조당집』은 복건성 천주(泉州)의 초경사(招慶寺)에서 정(瀞)과 균(筠) 두 스님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전한다. 행적은 전혀 알려진 것이 없으며 이름 역시 한 글자만 남아 있는 미스테리한 인물들이다. ‘정과 균’이라고 하니 요새 무슨 듀엣가수 이름을 연상시킨다.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1921~2006) 선생은 모르긴 해도 아마 두 인물이 고려출신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 책이 한반도에서 유일본으로 남아있는 까닭이다. 구산선문 이래로 많은 스님들이 참선공부를 하기 위하여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해동(海東)촌놈’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능력과 업적에 비해 형편없는 대접을 감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소문 없이 선종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말없이 장식해 나갔다.
동국역경원에서 발행한 조당집
『조당집』을 한반도로 옮겨오다
사학자인 민영규(1915~2005) 선생은『촉도장정(蜀道長征)』과『사천강단(四川講壇)』이라는 책을 통해 선종의 역사분야에도 일가견을 보였다. 선생은『조당집』이 한반도로 피신한 이유에 대해 ‘후주 세종의 법난’을 그 원인으로 추정했다.『조당집』은 952년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제대로 평가를 받기도 전에 955년 이 지역에는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마지막 불법사태인 후주 세종의 법난을 만나게 된다. 택일을 잘못했고 시절인연을 잘못 만난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전파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려 태조와 후주 세종은 교류가 빈번하였고 사신들의 왕래도 잦았다. 또 고려 태조는 복건성과 절강성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오월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것이『조당집』이 한반도로 전해지게 된 배경으로 추정했다.
편집자인 ‘정과 균’두 스님이 이동경로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본다면 야나기다 선생의 ‘고려스님 설’은 더욱 힘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도 이 책은 크게 유통되지 못했다. 고려 말엽인 1245년에 현재의 판본이 새겨졌다. 팔만대장경 장외보판(藏外補版)으로 남해 분사도감에서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목판에 새겨지긴 했으나 불교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조선시대라는 불운이 겹쳐 해인사 판전의 한 편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몇백 년을 지냈다. 이 책은 출생지인 복건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이주해 온 한반도에서 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인가? 그래도 잠든 시간이 천년에 이르는『보림전』에 비한다면 몇백 년에 불과한『조당집』은 그나마 나은 대접을 받은 것이라고 하겠다.
눈 있는 자들이여! 와서 보라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에『조당집』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리고『조당집』연구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가 12만장의 카드를 손수 정리하여 출판했다는『조당집 색인』3권(1980~84년 작업)은 컴퓨터가 없던 시절, 후학들의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한 일련의 공덕으로 해인사에서 1991년 6월 12일『조당집』원판 친견이라는 평생의 발원을 성취했던 것이다. 그 소감을 1993년 10월 11일 동국대 정각원 법회에서 원저자와 새긴 자를 시공을 초월하여 동시에 만날 수 있었음을 감격스럽게 밝혔다.
“이 경판이 조각된 후 700년, 이 책이 쓰여진 때로부터 천수십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완전히 없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직접 원작자와 상면하였고, 각수(刻手, 목판을 새기는 기술자) 광준(匡俊) 스님의 숨결과 끌을 때려가며 글자를 새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일본과는 달리 중국은 그때까지『조당집』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민영규 선생은 1960년 이른 봄 마이크로필름 상태의『조당집』을 호적(胡適, 1892~1962) 박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사는 그 책을 만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1962년에 세연을 다하고 말았다. 따라서 본격적인 연구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그 필름과 책상위에서 씨름했다고 전한다.
그런 선각자들의 노력이 겹쳐 1960년대에 들어와『조당집』의 존재는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료의 공유를 위해 1965년 조명기 교수의 고희 축하논문집 부록으로『조당집』영인본을 동국대학교에서 출간하여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보림전』의 안목은『조당집』으로 이어지다
선종역사서의 정통 계보는 801년『보림전』- 952년『조당집』- 1004년『경덕전등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텍스트로서의『보림전』과『조당집』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조당집』은 『보림전』에 대해 가장 많이 설하고 있으며, 또 처음으로『보림전』을 본격적인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조당집』의 서천 28조는 거의『보림전』28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다만 ‘과거7불’은『보림전』에는 없고『조당집』에서 처음 등장한다.
석가모니 역시 과거의 일곱 부처님으로부터 대대로 이어진 법을 전해 받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부처님 전생담의 선종판 버전인 셈이다. 이러한 ‘과거칠불’은『조당집』의 안목인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의 ‘과거칠불 서천28조 동토6조’의 법계설이 비로소 완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어쨌거나 결국『보림전』은『조당집』에게, 『조당집』은 다시『경덕전등록』에게 그 자리와 권위를 자연스럽게 이양하게 되었다.
장강후랑추전량(長江後浪推前浪)
세상신인환구인(世上新人換舊人)
장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의 새사람은 옛사람을 교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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