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천년법맥을 미래로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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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6 년 11 월 [통권 제4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8,754회 / 댓글0건본문
한·중·일 불교우의대회가 열리다
중국 조박초(趙樸初・자오푸추, 1907~2002) 거사의 원력으로 시작된 한・중・일 불교대회가 올해(2016. 10.11.~15.)로써 19회를 맞이했다. 중국 절강성(浙江省, 저장성) 영파(寧波, 닝보) 일원에서 열렸다. 천년법맥을 미래로 이어가자는 “법유천추(法乳千秋) 일맥상승(一脈相承)”의 길을 찾아왔다. 한중일 대표들과 발표자들의 인사말과 주제발표가 있었고 동북아불교공동체의 영원함을 위한 기원법회도 열렸다. 더불어 삼국의 차(茶)문화 시연의 자리도 마련했다.
한중일 대회에서 원철 스님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지역이름 영파는 “바다가 안정되면 파도가 잔잔해진다(海定寧波)”에서 기원한 명칭이다. 예전에는 사명(四明) 혹은 명주(明州)로 불리었다. 시내 도로표지판과 안내판에는 ‘백장대로’와 ‘백장공원’이 있었다. 이 지역에서 1300여 년 전에 활동한 선불교의 거장 백장(百丈, 749~814) 선사의 이름이 살아있다는 것이 자못 경이롭다. 자칭 ‘동남(東南)의 문화수도’답다. 그런데 이 백장이 그 백장인지 의구심이 일어나긴 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는지라 있는 그대로 내 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근 바다는 누런빛이었다. 황해(黃海)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런데 항하 하류지역 바닷가도 아닌데 흙탕물인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어쨌거나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을 헤아리기로 했다.
영파 인근의 선종사찰을 답사하다
덕분에 선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사찰을 직접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설두사(雪竇寺)는 설두중현(雪竇重顯,980~1052) 선사의 『설두송고(頌古)』는 공안집의 효시이다. 뒷날 선종제일의 책이라는 『벽암록』의 저본이 되었다. 그런데 2008년 이장(怡藏) 화상이 옥외미륵대불인 거대한 포대화상을 조성하면서 미륵성지를 표방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기존의 4대 성지(관음, 지장, 문수, 보현성지)에 더하여 ‘5대 성지’까지 꿈꾸고 있다. 사찰의 정체성도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바뀌는 모양이다. 쩝.

천동선사 모습
천동선사(天童禪寺)는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 선사의 수행공간으로 유명하다. 묵조선을 주창하면서 간화선의 완성자인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에게 “삿된무리”라는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자리는 일본 임제종의 에이사이(榮西, 1141~1215) 선사와 조동종 도겐(道元, 1200~1253)선사가 선종법맥을 이어간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아육왕사(阿育王寺)는 고려의 의천(義天, 1055~1090) 국사가 대각회련(大覺懷璉, 1007~1090) 선사를 만난 곳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당송시대 선사들의 시퍼런 결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세월이 너무 흘러버린 탓이다. 그냥 ‘큰절’로 관광지 냄새만 물씬 풍겼다.
관음성지 보타낙가산을 찾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달려 주산(舟山, 저우산)으로 갔다. 이 지역의 행정명인 인구 백만명의 주산(舟山)시 캐치프레이즈는 “미려군도(美麗群島) 자재주산(自在舟山)”이었다. 아름다운 섬 동네인 주산에서 휴식을 통하여 몸과 마음의 자유자재함을 얻어가라는 의미였다. 신심자재(身心自在)를 위한 성지로 중국정부는 지혜경구(智慧景區)로 지정했다. 경치가 좋은 풍경구(風景區)인 관광지는 한번만 다녀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지혜경구는 반복해서 찾아오는 특징을 지닌다. 뿐만 아니라 다녀간 이가 주변인까지 데리고 오는 곳이다. 매년 600만 명 이상 성지순례를 온다고 한다. 이들의 편의를 위하여 기존다리 옆에 보타산(普陀山, 푸퉈산) 불교협회의 기부금으로 ‘관음대교’를 2년 전에 완공하여 쌍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복건성(福建省, 푸젠성) 사람들의 관음성지 사랑은 각별하다. 집에 모셔둔 원불인 작은 관음상을 해마다 안고 와서 함께 다녀간다. 원조관음상의 기(氣)를 재충전하는 의식을 통해 가정불의 영험을 더하고 그 가피를 입고자 하는 신앙이 그대로 남아 있는 까닭이다.
어디건 황제와 연관된 전설은 있기 마련이다. 가장 큰절인 보제선사(普濟禪寺)도 그랬다. 가운데 정문인 사천왕문은 굳게 닫혀 있다.
청나라 건륭제가 평복으로 절을 찾아왔다. 해가 기울어 이미 대문을 닫은 후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야 문을 열 수 있다는 고지식한 승려의 답변을 듣고는 할 수 없이 옆문으로 들어갔다. 기도를 마치고 궁궐로 돌아온 뒤에 교시를 내렸다. 황제도 들어가지 못한 문이니 이후에는 정문을 항상 닫아두라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옆문을 통해 들어간 이층통법당인 황금빛 거대한 원통전(圓通殿)은 “천명이 와도 비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백 명이 들어가도 휑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 평안한 공간이었다.
마당으로 나와 뒤편에서 닫혀 있는 정문창살을 통해 바깥 사람들의 오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닫혀 있는 것은 절대로 문이 될 수 없다. 설사 모양은 문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대로 벽이 된다. 문과 벽이 둘이 아니라는 ‘문벽불이(門壁不二)’의 도리를 가르쳐주기 위한 황제의 배려였다고나 할까. 뭐든지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다.
불긍거관음원을 찾다
불긍거(不肯去, 부컨취) 관음원은 20여 년 전 은해사에서 함께 공부하던 도반들과 함께 스승 무비 대강백 스님을 모시고 참배를 온 곳이다.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성지만이 지니는 기운이 느껴진다. 지극정성으로 삼배를 올렸다. 복건성 참배객들처럼 신심을 재충전했다.
『선문염송』 1107칙 ‘장경무찰(長慶無刹)’ 공안의 무대가 이 자리다. 고려스님이 관음상을 모시고 가려고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아 배에 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절을 세웠다. 관음보살은 아무런 차별적인 생각이 없을 터인데 왜 그랬는지 주변에 있는 납자가 물었다. 그러자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몸을 나타내는 것은 두루하지만 모습을 보는 이에게는 치우침이 생기느니라.(現身雖普 覩相生偏)”
여기에 더하여 법안(法眼) 선사는 뒷날 “너희가 관음을 알아?(識得觀音未)”라는 별어(別語)까지 남겼다. 물론 초기선종 역사서인 『보림전』을 이미 출판한 이후의 일인지라 이 기록을 올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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