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달인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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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4 년 3 월 [통권 제1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740회 / 댓글0건본문
직업의 세계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멋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그자체로 공덕이다. 한 분야의 최고가 되어 김연아처럼 온 국민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고 생활의 달인처럼 능숙한 솜씨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경우도 있다.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창의력을 기울여, 몸을 덜덜 떨면서도 태연한 척 연기를 해서 웃음을 선사한 개콘의 달인 김병만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에 질질 끌려가지 않고 일을 즐긴다는 데 있다.
직업의 세계에서 달인이 된 사람은 단지 기능적인 면만 가지고 논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하루 세 시간씩 10년 연마하여 전문가가 된다는 ‘만 시간의 법칙’으로도 설명하기 부족하다. TV 장수 프로그램 중 “수 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여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삶과 스토리를 다룬” ‘생활의 달인’에는 별난 달인들이 많이 나온다. 폐품을 환골탈태시키는 리폼의 달인, 포장지 말기의 절대지존, 35년 외길 인생 명품 수선의 달인, 봉투 접기의 전설, 밤 까기계의 대모, 자린고비도 울고 갈 절약의 달인, 페인트 통 40개를 한 번에 나르는 달인 등이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다.
신의 속도, 정확성, 깔끔한 마무리까지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만치 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갖췄다. 뿐만 아니라 ‘나의 길을 가련다’에 있어서도 불교의 수행자에 뒤지지 않는다. 아마도 전생에 하던 일이 종자 형태로 DNA에 탑재된 채 이생의 몸을 받고,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만나 그 종자가 발현되고, 가행정진의 과정을 거쳐 그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불교식으로 해석해 본다.
즉, 업의 프로그램에 따라 유전하는 중에 어떤 직업에서 특별한 능력을 얻은 사람들이다. 직업에는 그 사람의 능력과 취향, 개인의 역사가 다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흔히 듣는 ‘직업’이라는 단어가 잠깐 뇌리를 붙든다. 직분이라는 ‘직(職)’ 자에 까르마 ‘업(業)’ 자가 붙은 이유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겠다.
달인들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유전자를 부여받았다 해도 처음부터 달인의 경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김연아도 빙판 위를 우아하게 날기까지 다른 선수보다 훨씬 많이 넘어졌을 것이다. 몇 년 전에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이 김연아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 트리플 점프는 어떻게 해서 된 거예요?” 대답은 이랬다. “몰라요. 어느 날 그냥 됐어요.” 타고난 재능에 초인적인 성실성까지 더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그냥 되는가 보다. 김연아의 이 대답을 보면서 선사들이 깨닫는 장면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달인은 달인 아닌 사람에 비해 덜 힘들어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김연아가 그렇고, 하루에 엄청난 작업량을 소화해내는 생활의 달인들도 그렇다. 이 점 역시 도의 달인들과 닮아 있다. 화두를 들고 공부하다 보면 힘이 덜 드는 지점이 있다고 한다.
대혜나 고봉은 이를 ‘생력처(省力處)’라고 하였다. 이때부터는 애쓰지 않아도 공부가 저절로 되기 때문에, 그래서 똑같은 지점을 두고 ‘득력처(得力處)’라고도 한다. 힘이 덜 든다고 느끼는 순간 힘을 얻은 것이다. 그 힘을 남에게 꺼내 보여줄 수는 없지만 이때부터는 자기 힘으로 산다. 선사들이 득력처를 경험하면 자기 살림을 차리고 제자들을 이끈다. 남악회양(677~744)과 마조도일(709~788)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 기세로 무식하게 좌선하던 마조를 남악이 깨우쳐 준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 뒤로 10년을 시봉한 뒤에 마조는 대략 742년에 법을 펼치기 시작한다. 삼십대 초반에 딴 살림을 낸 것이다. 서른 살 이상 차이 나는 애송이를 가르쳐 놨더니, 이 제자가 한 번 떠나간 뒤에 코빼기도 안 비치고 소식 한 자 전해오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알면서도 좀 서운했던지 남악은 마조에게 사람을 보내서 떠 보기로 하고 분부를 내린다. “도일이가 강서에서 사람들에게 법을 설한다는데 거기 가서 틈을 보아 그가 법상에 오르거든 나가서 그냥 ‘어떻게 지내느냐?’라고 물어 보아라. 대답을 하거든 듣고 와서 그대로 전해다오.” 분부를 받은 스님이 가서 그대로 했더니 마조의 대답은 이랬다. “멋대로 살아온 지 30년 동안 소금과 간장이 부족한 적이 없었습니다.”
돈 떨어져본 적 없이 내 살림 내가 알아서 한다는 뜻이다. ‘멋대로 살아온 지 30년’이란 출가해서 스승에게 배운 세월이 아니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원래 그랬다는 뜻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마조는 삼십대 초반에 법을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대답에는 어떤 스승도 필요 없고, 당신에게 전수받은 법도 없다는 ‘불립전수(不立傳受)’의 입장이 담겨 있다. 『선문염송설화』의 저자(라고 전해지는) 구곡각운은 마조의 이 대답이 바로 그의 득력처를 보여준다고 해설했다. 스승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살림을 펼치는 자유인이 된 것이다.
생활의 달인으로 돌아가 보자. 일에 대한 숙달된 기능과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애쓰는 중이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 때문에 “더 벌어야지” 하는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면도 남아 있다. 더구나 자기 사업이 아니라면 “사장님, 오늘은 기분 나빠서 인형 눈깔 세 개만 붙이고 조퇴 할래요.”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다. 달인도 이러한데 달인이 되지 못한 사람은 말해 무엇하랴. 달인은 그래도 새우잡이 배에 끌려왔으나 다행히 마늘 까는 게 재밌는 경우라 하겠다.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누워 있기’로 달인을 선정한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나도 한번 나가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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