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가섭존자의 부인은 통 큰 집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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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4 년 7 월 [통권 제1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01회 / 댓글0건본문
금각사는 대리만족 공간이다.
교토 금각사(金閣寺, 킨가쿠지)의 정식명칭은 녹원사(鹿苑寺, 로쿠온지)이다. 안내판도 아예 “녹원사 통칭(通稱) 금각사(본래 녹원사이나 흔히 금각사로 불린다)”라고 붙여 놓았다. 경내에 사리전(舍利殿,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집)인 금각이 원체 유명한 탓에 원래이름인 ‘사슴동산 절’을 가차 없이 밀쳐낸 까닭이다. 하긴 금값을 어찌 사슴값에 비교하겠는가? 호수를 앞에 두고 서있는 금빛 찬란한 3층 전각은 그대로 금탑이다. 내 집은 아니지만 내 집 삼아서 이 집을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찍어두자는 대리만족의 인파가 늘 카메라를 앞세운 채 가득하다. 다시금 금의 위력을 실감케 해준다. 그 대열에 인근의 짝퉁이름인 은각사(銀閣寺)까지 가세했다.
일본 금각사 모습
금가루도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
욕망의 상징코드인 금을 선사들은 그냥 두지 않았다.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평범한 훈계조가 아니라 비틀기의 대가답게 역설적인 표현으로 금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라고 일갈을 날렸다.
임제(臨濟, ?~867) 선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금설수귀(金屑雖貴)나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금가루가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되느니라.
이에 질세라 조주(趙州, 778~897) 선사가 거들고 나섰다.
금불부도로(金佛不渡爐)니라
금부처라고 할지라도 용광로의 불까지 피할 수는 없다.
금불이 철불되기를 자청하다
국보로 지정된 철원 도피안사 철불은 865년 인근의 1500명 주민들이 함께 금석 같은 굳은 마음으로 인연을 맺어 조성했다는 기록까지 남아있는 불상이다. 얼마 전까지 금을 덕지덕지 바른 채 앉아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는 호분을 덧칠해 놓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2005~2007년 무렵에 뜻있는 이들이 본모습을 찾아드리고자 의기투합했다. 금을 벗겨내니 온화한 본래미소가 그대로 살아서 나왔다. 잘못된 화장으로 인하여 오히려 본래의 아름다움이 가려진 탓이다. 촌스럽던 금불이 용광로를 만나 제대로 된 스마트한 철불이 된 셈이다. 아무리 귀한 금이라고 할지라도 눈 속까지 들어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금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자기의 몸값을 더욱 올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금에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패가망신(敗家亡身)의 길임을 알았던 까닭이다.
버려야 사는 도리가 있다
에이사이(榮西, 1141~1245) 선사도 제대로 버릴 줄 알았다. 교토 건인사(建仁寺)에 머무르고 있던 어느 겨울 날 추위에 떨며 병들고 굶주린 사람이 찾아왔다. 하지만 선사 역시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운수행각승에 불과했다. 한참 궁리하던 끝에 해답을 찾았다. 본당으로 가서 정면에 안치되어 있는 약사여래상의 금박으로 된 광배(光背)를 잘라 그에게 건넨 뒤 친절하게 진심으로 위로했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본 대중들은 깜짝 놀라며 “불경(不敬)스럽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만약 부처님께서 이 같은 불쌍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당신의 팔과 다리를 잘라서라도 도움을 주셨을 텐데 광배 정도가 무슨 그리 대수란 말이요.”
쥐고 있어야 사는 도리도 있지만 버려야 사는 도리도 있음을 주변에 알린 것이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다
『보림전』 권1에는 마하가섭존자 부인의 전생담이 실려 있다. 그녀는 가난한 집시여인이었다. 여기저기 구걸하며 돌아다니던 중 어느 날 금구슬을 얻는 횡재를 하게 된다. 보통사람이라면 집을 사고 논밭을 사고 살림살이를 갖추고서 정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며 가며 힘들 때마다 들르던 사찰의 법당에 모셔진 얼굴에 흠이 난 불상을 보수하는데 그 금을 기쁜 마음으로 보시했던 것이다.〔將此金珠...而請修薄 擬飾像面〕 개금 일을 맡은 기술자가 과거생의 가섭존자였다. 그는 그 가난한 여인의 신심과 고운 마음씨에 감동했고 급기야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다음 생에 부부가 되길 함께 발원했다. 91겁 동안 빛나는 몸매(진금색 몸)를 갖추고 하늘세계에서 오래오래 함께 살았다고 기록은 전한다.
금이 용광로를 이기다
조주 선사는 “진흙으로 만든 것은 물에서 무사할 수 없고, 금으로 만든 것은 용광로에서 무사할 수 없으며, 나무로 만든 것은 불에서 무사하지 못하다.”고 하였다.(원문은 泥佛 金佛 木佛이지만 번역문에서 표현의 과격함을 일부러 순화시켰다.) 이에 대하여 조선중기 소요태능(逍遙太能, 1562~1649) 선사는 “물에 녹지 않는 흙, 불에 타지 않는 나무, 용광로에 녹지 않는 금, 그것이 바로 아(我).”라는 ‘종문곡(宗門曲)’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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