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무아ㆍ공과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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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4 년 8 월 [통권 제1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014회 / 댓글0건본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불교의 답
불교의 근본교리는 삼법인(三法印)입니다. 부처님께서 깨친 진리의 세 도장이란 뜻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이 변하기에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변하고 나라고 할 것이 없으니 모든 집착과 번뇌를 떠나면 열반이라는 열반적정(涅槃寂靜). 이 세 가지가 불교의 기본입니다.
남방불교에서는 ‘열반적정’대신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넣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禪)의 입장에선 본래부처, 현실극락이니 ‘일체가 괴로움이다’는 견해는 착각이라 보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성을 지닌 본래부처입니다. 다만 ‘내가 있다’는 분별망상으로 괴로움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고 망상일 뿐 본래 마음은 열반적정입니다.
삼법인의 핵심은 무상(無常), 무아(無我)입니다. 이 우주 만물은 연기로 존재하니 실체가 없어 무상, 무아라 합니다. 우주 만물에 모든 것이 변하니 ‘나’라는 독립된 실체는 없습니다. 초기불교의 핵심인 무아(無我)를 대승불교에서는 공(空)이라 표현합니다.
초기불교의 무아와 대승불교의 공은 표현은 달라도 같은 뜻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도, 가르침도 하나입니다. 둘이면 법이 다르다는 말이 되니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에서 남방불교를 폄하하거나 남방불교에서 대승불교와 선을 비난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견해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는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인류세계의 모든 종교와 인문학이 이 문제에 답을 내놓았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등등. 불교는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일까요? 어떤 분은 이것을 화두로 제시한다고 합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나는 연기로 존재하니 독립된 실체로서 나는 없다, 무아·공이다’가 답입니다.
『반야심경』 맨 앞에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넌다’라는 구절이 나오지요.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오온(五蘊, 물질인 색과 정신인 수·상·행·식 다섯 가지의 연기)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시고, 이 오온이 공함을 보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무아·공이라는 것을 알면 어떤 고통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인간이 원자 덩어리 또는 60조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내가 있다’는 견해는 착각입니다.
이 착각을 깨 무아·공을 보면 괴로움을 벗어납니다. 반대로 자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면 고통도 중생도 있어 생사윤회를 반복합니다.
그런데 이 무아·공을 모르고, 자기가 있다고 집착하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무아·공을 아무 것도 없다고만 알아 허무주의가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무아·공을 ‘내가 없다’고만 알아 아무 것도 없다, 세상이 다 허망하다고만 보면 이렇게 보입니다. 불자들 중에 의외로 이것을 불교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작가 임어당(林語堂) 같은 분들도 불교를 허무주의라고 보았으니, 불교를 오해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교의 무아·공을 잘못 보았습니다. 『반야심경』에 ‘물질(色)이 공’이고, ‘공이 곧 물질(色)’이라 합니다. ‘물질이 공’이라는 면도 있지만, 그 뒤에 ‘공이 물질’이라는 면도 있습니다. 이것을 중도로 보아야 합니다. 즉, 무아·공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있다-없다가 통일되어 중도로 존재합니다. 부처님은 무아·공을 바람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은 모양이 없어 볼 수도 잡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바람 하나 없다가도 때로는 폭풍과 태풍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아·공을 없다고만 보는 것을 경계하여 ‘있다-없다’ 양변을 떠나 중도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나’와 ‘우주만물’이 연기로 존재하니 무아·공이라 하고, 이것을 중도로 보는 것이 정견(正見)입니다.
중도·팔정도·사성제·연기·무아·공은 하나
지금까지 부처님이 출가하여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난 뒤 첫 설법인 초전법륜을 중심으로 불교의 근본 교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부처님은 초전법륜에서 중도를 깨달았다는 것을 밝혔고, 그 중도의 내용이 팔정도이며, 사성제, 연기라 하셨습니다. 삼법인, 무아, 공도 다 중도와 연기에 근거한 것이니 부처님께선 초전법륜에서 불교의 핵심 교리를 다 설명하셨습니다. 이 설법을 듣고 다섯 수행자는 모두 깨달아 인가를 받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깨달은 다섯 수행자와 함께 처음으로 불교의 교단인 승가(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리고는 세속의 왕자로 돌아가지 않고 평생 걸식을 하며 영원한 행복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처님께서 초전법륜에서 설법하신 중도와 사성제, 연기, 무아, 공을 정견하면 깨달아 영원한 행복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처음 불교와 선에 입문하려는 분들이 이 교리를 낱낱이 공부하면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보입니다. 기독교는 바이블, 회교는 코란 한 권이면 되는데, 불교는 팔만대장경이 있으니 너무나 방대하고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입문자들은 부처님의 깨달음인 중도와 연기만을 정확히 이해해서 정견을 세우면 팔정도, 사성제, 삼법인, 무아, 공 등도 염주알이 한 줄로 꿰듯이 하나로 회통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인 중도 연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책이 바로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입니다. 성철 스님이 팔만대장경과 선어록을 섭렵하고 당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불교의 핵심을 정리해 놓은 책이 『백일법문』입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와 있는 불교교리서 중 가장 좋습니다. 이 『백일법문』중에서도 1권의 1~2장이 핵심인데요, 2장까지 5번 내지 10번 정도 읽으면 불교의 핵심인 중도연기가 어느 정도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면 불교가 무엇인지 알게 되어 정견이 서게 됩니다.
불교의 세계관, 연기의 바른 이해
유신론적인 종교에선 이 세계를 신이 창조했다고 합니다. 불교는 어떻게 볼까요? 불교에서는 이 세계를 누가 만든 것이 아니고, 연기법(緣起法)으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즉, 우주는 만물은 서로 의지해서 연기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연기법을 존재 원리로 보지 않고, 생성(生成) 원리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의외로 불교를 잘 안다는 분들이 그렇게 봅니다. 연기를 생성 원리로 보면 시간적인 선후 관계로 보아 생멸(生滅)연기로 봅니다. 만물이 태어났다 사라지는 생성 원리로 보면, 중생도 있고 부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이 열심히 수행해서 깨쳐야 부처가 된다고 봅니다. 또,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으니(생로병사) 무아·공이라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성 원리로 연기를 보면 오해가 생깁니다. 연기법은 우주만물의 존재원리로 보아야 합니다. 즉, 중생도 부처도 똑같이 연기로 존재하니 평등합니다. 번뇌와 보리(깨달음)도 마찬가지로 번뇌도 연기고, 보리도 연기이니 ‘번뇌 즉 보리’가 되는 것 입니다. 부처님께선 연기를 갈대 묶음이 서로 의지해 서있는 것으로 비유하여 평등한 관계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연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평등한 형제 관계로 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주 만물을 생멸연기(生滅緣起)로 보게 되면 중생과 부처, 번뇌와 지혜, 생로병사도 따로따로 있다고 보아 집착하여 중도 정견이 서지 못합니다. 반대로 만물을 중도연기로 보면, 중생과 부처, 번뇌와 지혜, 생로병사 등 일체가 연기이고 무아·공이니 실체가 없고 평등하여 우열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어떤 괴로움과 재앙도 건널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중도정견입니다.
그리하여 『반야심경』에서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고집멸도도 지혜도 얻음도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중도 정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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