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 성철]
“‘완전함’ 만을 가르치고 추구하셨던 성철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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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 2014 년 10 월 [통권 제18호] / / 작성일20-05-29 14:35 / 조회6,933회 / 댓글0건본문
동의대 중문과 강경구(선근, 善根) 교수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지만 고심정사 불교대학 강의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50명이 넘는 불자들로 가득했다. 특히나 명강의로 소문난 강사의 수업이 있어서인지 불자들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넘쳐났다.
얼마 후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부산 동의대 중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경구(선근, 善根) 교수님. 교수님은 2005년 고심정사 불교대학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줄곧 불자들과 호흡을 같이 해왔다. 교수님은 앞으로 6개월 여간 성철 스님의 『신심명 증도가 강설』을 교재로 강의한다.
“신심(信心)은 불교실천의 출발이자 완결입니다. 신심은 부처에 대한 믿음, 스승에 대한 믿음을 포함하지만 우리 모두 불성을 갖춘 존재이며 우주법계가 진여의 드러남임을 믿는다는 보다 중요한 뜻을 갖는 말입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도 발심(發心)에서 구경성불(究竟成佛)에 이르기까지 수행자가 첫 번째로 가져야 하는 것이 신심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신심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는 『신심명』은 원래 중국의 총림에서 아침 예불삼아 독송하던 선문(禪門)의 헌장(憲章)이었습니다. 총림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했던 성철 큰스님에게 『신심명』은 더없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신심명 강설』에서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큰스님의 ‘깨달음의 리얼리티’에 대한 일관성입니다. ‘문학적 리얼리티’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학적 진실성이 실제적 사실의 진실성을 능가하는 힘을 갖고 있을 수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말입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큰스님에게는 ‘깨달음의 리얼리티’에 대한 전적인 몰두와 긍정이 발견됩니다.
고심정사 불교대학에서 강의 중인 모습
이로 인해 성철 큰스님은 그 허다한 설법의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이나 문자적 문맥에 구속되지 않는 명쾌함을 유지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신심명 강설』을 통해 그 문자의 의미를 가르치는 대신 진정한 참선수행의 길을 안내하고자 하십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불자들의 눈도 더불어 반짝거렸다. 그렇게 두 시간은 훌쩍 흘러버렸다.
이튿날 교수님이 있는 동의대를 찾았다. 오전 일찍부터 대학원수업 ‘중국현대문학사연구’가진행됐다. ‘본업’(?)으로 돌아와서인지 학생들과의 수업은 더 유쾌하고 진지했다. 대학원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수님과 마주 앉았다. 사진이긴 하지만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좌복이 있고 다구(茶具)들이 있고 또 수많은 책들이 있는 모습에서 연구실은 흡사 ‘법당 반, 도서관 반’의 느낌이었다.
“저는 정통 불교학자가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문학과 불교의 학제 간 연구에서 길을 찾는 불교학계의 방계 학자쯤 됩니다.
그래서 성철 큰스님은 처음부터 저에게 연구대상이 아니라 앞서 길을 걸어간 선지식(善知識)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큰스님의 모든 것을 의리(意理)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의리와 격외의 도리 간에는 분명한 단층이 존재합니다.
교수님은 시간이 될 때마다 화두를 들고 정진한다
그것을 굳이 연결하지 않아도 학문적으로 풀어놓을 수 있는 내용이 넘쳐나는 게 불교이고 성철 큰스님입니다. 무엇보다 큰스님의 알 수 없는 영역을 빈자리로 남겨놓고, 그 빈자리를 알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채우는 것이 학자로서나 불자로서 정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교수님은 당신의 현재 위치(?)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분야에서 경계를 뛰어 넘는 것이 대세인 시대에 직계니 방계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또 교수님은 어쩌면 직계보다 더 뛰어난 방계이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을 통해 알게 된 불교
“어린 시절부터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었고 한문공부도 불교 경전으로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절에서 다녔는데 아마도 공부하기가 싫어서 그랬는지 혼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108배를 했어요. 하하. 대학과 대학원 시절에도 방학 때마다 거의 매번 절에 들어가 한문도 배우고 책도 읽었습니다. 논문도 절에서 썼습니다.
교수가 된 뒤에는 불교와 문학의 접점이라 할까, 문학에 대한 불교적 해석이라 할까 하는 영역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도 부산불교방송의 ‘무명을 밝히고’에서 『서유기와 불교』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불교와 문학의 만남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의 연구실은 부처님 향기로 가득했다
박사과정에 다닐 때 성철 큰스님의 『신심명·증도가 강설』과 『돈황본 육조단경』을 읽고 불교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백련암 삼천배가 널리 회자되고 있었는데 저 역시 무작정 백련암을 찾아가 원통전에서 절을 했습니다. 그렇게 절을 마치고 해인사로 내려가 출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행자생활을 며칠 해보니 제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결국 며칠 못 버티고 눈 내리는 겨울 새벽에 소나무 가지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불교와의 인연, 성철 스님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나 교수님이 부회장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의 경우 2005년 출범 당시부터 원택 스님과 고심정사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기에 그 출발을 알릴 수 있었다. 부산지역의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출범했지만 지금은 불교계 여느 학회보다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수님은 성철 스님과의 인연을 더 소개했다.
“큰스님께서 여러 법어집을 남기신 이유 중 하나가 선지식을 직접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저는 바로 거기에 해당합니다. 성철 큰스님을 먼발치에서 뵌 일은 있지만 진짜 만난 것은 책을 통해서였으니까요. 그때까지 경전을 얼마간 읽어보았고, 중국 근대 인순(印順) 법사의 『대승기신론강기(大乘起信論講記)』를 한 강사스님과 둘이서 차근차근 읽은 일을 계기로 기신론에 대한 책들과 자료들을 두루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뭔가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항상 알듯 모를 듯한 수준에서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큰스님의 법어집을 보면서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복잡한 지식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우연한 계기로 『선문정로』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고 또 앞으로 한참 더 하겠지만 여전히 큰스님의 가르침은 저에게 연구대상만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철 스님을 통해 불교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는 교수님에게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다. 성철 스님의 법어집 중 불자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은 무엇일까? 교수님은 지체 없이 몇 권의 책을 꼽았다.
먼저 『신심명·증도가 강설』은 참선 수행에 처음 뜻을 둔 사람이나 오래 참구해온 사람이나 항상 곁에 두고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특히 『신심명 강설』은 간략하면서도 일관되게 선수행의 요체를 거듭 밝히고 있어서 신심을 진작시키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강경구 교수님이 불자들에게 일독을 권한 책들
같은 책의 후반부를 이루고 있는 『증도가 강설』은 『신심명 강설』의 내용과 충분히 하나가 되었을 때 읽는 것이 좋다. 『신심명』이 근실하다면 『증도가』는 통쾌하다.
두 번째, 『돈황본 육조단경』의 가치에 눈뜰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단경』은 그 판본이 다양하고 유통과정에서 많은 첨삭이 가해졌다. 성철 스님은 그 과정에 후세 학인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보았다. 그에 비해 최초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돈황본 육조단경』을 통해 육조 스님의 본뜻을 직접 접할 수 있다고 보고 성철 스님은 이를 번역·평석하여 우리에게 제시했다. 이를 통해 돈오선(頓悟禪)의 핵심을 가감 없이 접할 수 있다.
셋째는 『선문정로』다. 『선문정로』는 특히 참선을 통해 일정한 체험을 한 수행자에게 효과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처음 참선에 뜻을 둔 입장이라면 2장 ‘중생불성’과 3장 ‘번뇌망상’을 먼저 읽으면 좋고, 본격적으로 수행이 깊어지는 수행자를 위해서는 6장 ‘무념정종’과 7장 ‘오매일여’등의 장이 시설되어 있다.
특히 성철 스님은 수행과정에서 전에 없던 눈뜸을 체험한 이들을 위해 1장 ‘견성즉불’, 4장 ‘무상정각’, 11장 ‘내외명철’등을 제시하여 작은 성취에 만족하여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선문정로』에 수행의 바른 길 담겨 있어
앞서 밝혔듯이 교수님은 현재 『선문정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성철 스님이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고 자신 있게 밝힌 책이지만, 아쉽게도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큰스님께서는 대중성을 갖춘 간화선 지침서를 제공하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문정로』입니다. 아울러 당시 한국의 제방을 지배하고 있던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을 혁파하고 선문의 바른 길을 회복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내비쳤습니다.
이를 위해 성철 큰스님은 제불조사들의 언설을 적극 인용하여 돈오문을 제창하고 점수문을 비판합니다. 이 과정에서 큰스님은 그 인용하는 문장에까지 적극 개입하여 깨달음의 철저성을 강조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그 학문적 엄밀성의 부재를 문제 삼아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만 한자 문화권에서는 그렇게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옛 문장에 개입하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옛 성인들과 동일한 정신적 경계에 노닐고 있다는 증거로 이해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선지식이 현존하는 자리에서는 경전과 어록이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수행자들이 바른 안목을 갖춘 스승을 친견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선문정로』는 스승이 없는 상황에서 수행을 하면서 일정한 경계체험을 하고 있는 수행자들을 위한 자기점검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기도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원택 스님, 강경구 교수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강 교수님은 『선문정로』의 핵심은 돈오(頓悟), 무심(無心) 등의 단어에 집중되어 있고, 여기에 이르는 첩경으로 공안참구의 길이 제시되어 있다고 밝혔다. 교수님은 “큰스님은 여기에 ‘완전함’이라는 하나의 전제조건을 제시한다. 즉 철저한 견성, 완전한 돈오, 궁극적 무심이 아니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큰스님의 설법은 항상 중간에 멈추지 말고 완전한 깨달음을 향해 끝까지 노력하라는 당부로 끝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이 책에 인용된 제불조사들의 언설은 전부 성철 스님의 발언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용문에 개입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선문정로』의 인용문은 보기 드문 일관성을 유지하게 된다. 다양한 성분들이 성철 큰스님의 용광로를 통과하면서 하나로 통일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강경구 교수님이 생각하는 성철 스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일까?
“성철 큰스님께서 시종일관 강조하셨던 것은 무심(無心)의 실천과 돈오(頓悟) 정신의 부활이었어요. 선종의 가치는 교종의 번다한 이론체계와 깨달음의 단계론을 파기하고 깨달음의 과정과 결과를 무심의 실천으로 단순화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선수행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은 수행의 과정도 무심이고 그 결과도 무심인 길을 걷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돈오의 입장에서는 수행도 돈(頓)이고 깨달음도 돈(頓)이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당장 무심에 계합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큰스님께서는 돈오점수를 극력 배격합니다. 어떤 불완전한 단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기억하여 되살리는 것은 결국 유심(有心)의 조작이라서 진정한 참선과 거리가 멀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 큰스님께서는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는 하나의 쇠말뚝을 가슴에 심고 살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성철 큰스님이 보여준 보살행으로서 우리의 불교적 실천에도 변함없이 계승되어야 할 핵심 중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철 스님은 한국의 불자는 물론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참선의 가치와 깨달음의 가능성을 알도록 해준 스승이었다. 사부대중 모두가 설법의 대상이 아니라 수행과 깨달음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가르친 스승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불교정신에 투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문정로』에 보이는 문장인용의 특징에 대해 전면적인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성철 큰스님의 수증론이 중국의 그것들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볼 계획입니다. 다만 이러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언어문자와 이론의 맥락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더 큰 숙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구와 강의에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교수님은 오래전부터 참구해 온 ‘이뭣고’화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연구와 수행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획이나 예정을 따로 세울 수는 없지만 일상생활에서 항상 실상에 계합하는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또 화두에 온전히 맡겨두는 삶이 되도록 늘 노력하고자 합니다.”
교수님의 밝은 미소 속에 가을바람마저도 빠져들고 있었다. 교수님이 조만간 세상에 내놓을 연구 성과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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