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오래된 미래]
염불삼매와 일행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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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 2017 년 12 월 [통권 제5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9,221회 / 댓글0건본문
중국에서 번역된 선경류(禪經類) 중 염불관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 『사유약요법(思惟略要法)』,『선비요법경(禪秘要法經)』이 있다. 이 중 『좌선삼매경』은 승예의 요청으로 구마라집이 대소승 7가의 선법을 모아 번역한 것으로서, 설일체유부의 선관(禪觀)을 살펴볼 수 있다. 이미 『도지경(道地經)』, 『십이문경(十二門經)』,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등의 선경이 번역되었지만 불교수행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위진남북조 시대의 불교계에서 부파불교 선법의 핵심만 가려 뽑은 이 경전의 번역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좌선삼매경』은 오문선(五門禪)이라고 하는 선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각 개인의 특성에 따라 특성화된 다섯 가지 선법수행을 말한다. 음욕이 많은 자라면 부정관을 닦아야 한다. 화가 많은 자는 자비관을 닦기를 권하며, 어리석은 자는 사유법을, 생각이 많은 자는 호흡관을 닦기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다섯 번째로 네 부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중죄를 저지른 자도 반드시 닦아야 할 수행법으로 소개되는 것이 바로 염불관이다. 경전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 수행하는 사람은 목상(木像)이나 석상(石像) 등의 불상(佛像)이 있는 곳으로 가서 불상의 상호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 조각상에 새겨진 32상과 80종호가 명료해지면 고요한 곳으로 돌아와 부처님의 상호를 계속 관상(觀想)한다. 이렇게 마음의 눈으로 불상의 형상을 관하기를 계속하면 어느 날 문득 부처님의 형상과 빛을 여실하게 보게 된다.
이때 눈앞에 현전하는 부처님은 과거불인 석가모니불이다. 『반주삼매경』에서 아미타불이 현전하는 것과 달리 『좌선삼매경』에서 관상의 대상이 되는 부처님은 과거불인 석가모니불이다. 이때 수행자는 “내가 지금 부처님의 형상을 보았듯이 형상도 오지 않고 나 역시 가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관상을 해나가면, 한 분, 두 분, 점점 더 많은 부처님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어 마침내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세계에 계신 부처님의 색신을 보게 된다.
이러한 체험은 염불을 오랫동안 수행하는 사람만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염불관 수행자는 부처님을 눈앞에 볼 뿐만 아니라 직접 설법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부처님께 여쭈어볼 수도 있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자신이 가졌던 의문들을 해소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체험은 모두 삼매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때의 삼매가 어떤 상태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이제 염불관(念佛觀)의 염(念)은 기억이 아니라 시각화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실재하는 세계에 대한 경험과 삼매 체험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가도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동시에 어떤 대상을 관상의 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 수행법과 신앙의 대상에도 여러 가지 변용이 일어났다.
『반주삼매경』에서 관상의 대상은 서방에 존재하는 아미타불이다. 반면 『좌선삼매경』의 관불 대상은 과거불인 석가모니불이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승려들에게 부처님이 가르침을 주는 스승에서 종교적 귀의의 대상이 된 상황을 반영한다. 또한 살아 있는 부처님이 아니라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 해놓은 불상을 대상으로 하여 수행한다는 점이 새로운 특징으로, 불상의 제작이 선수행과 밀접한 관련 하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좌선삼매경』에서 처음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차이가 사라진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넘어선 부처님의 존재를 생각할 여지를 제공해 주었는데, 대승불교와 함께 염불관법의 대상인 부처님은 과거의 부처님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삼세불로 확장된다.
반야부 경전들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기원후 3세기경에 걸쳐 성립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소품계 『반야경』이 찬술된 후에 이를 확장하여 대품계 『반야경』이 찬술된 것으로 보인다. 대품계 『반야경』의 하나인 『팔천송반야경(八千頌般若經)』에서 제시하는 수행의 방법은 ‘일행삼매(一行三昧)’이다.
일행삼매란 고요한 곳에 살며 산만한 마음을 버리고 사물들의 현상에 집착하지 않으며 부처님의 형상에 정신을 집중하고 부처님의 이름을 한 마음으로 염송하는 방법으로, 수행자들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불상의 형상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계속 부처님을 염해야 한다. 만일 매 순간마다 방해받지 않고 부처님에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면 매 순간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팔천송반야경』에서 삼매 가운데 현전하는 부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이다. 『반주삼매경』의 아미타불, 『좌선삼매경』의 과거불 석가모니불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확장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특징들이 있다. 다름 아니라 일불(一佛), 이불(二佛)에서 점차 확대하여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을 삼매 속에서 본다는 것과 부처님의 이름을 일심으로 암송하는 칭명염불이라는 새로운 방법이다.
"수보리여, 그리고 더 나아가 보살마하살이 비록 꿈속에 있는 상태일지라도, 허공으로 솟구쳐서 중생들을 위하여 교법을 연설하고 그 양팔을 벌린 너비의 빛을 관상화(觀想化)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다른 세상들에서 부처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교법을 연설하는 비구들을 마술로써 만들어낸다. 이러한 방식으로 비록 꿈속에 있는 상태 일지라도 보살마하살은 관상한다. 이 또한 불퇴전의 보살 마하살이 지니는 불퇴전의 특징이라고 알아야만 한다.”
여기서 보듯이 부처님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삼매의 상태는 깨어있는 상태에서 수행할 때뿐 아니라 꿈속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불퇴전보살의 특징과 꿈, 그리고 보살마하살의 관상법을 연계한 점은 『좌선삼매경』과 『사유약요법』에 연설한 염불삼매가 초선정에 들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이는 ‘염’의 상태를 모든 의식의 상태로 확장시킨 것으로, 바로 이 때문에 ‘일행삼매’라는 명칭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후 선정수행법 발달사에 깊은 영향을 준 요소로서, 장차 살펴보게 될 중국 선종 발달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수보리여, 그리고 더 나아가 보살마하살이 비록 꿈속에 있는 상태일지라도 수백이 [모인] 집회, 수천이 [모인] 집회에서 수만의 구지나유타(俱脂那由他, 1000만×100만)가 [모인] 집회의 가운데에 있어 원형의 높은 땅에 앉아서 비구승가에 의해 둘러싸이고 보살승가의 앞에서 여래·아라한·정등각자로서 교법을 연설하고 있는 자신을 본다면, 수보리여, 이 또한 불퇴전의 보살마하살이 지니는 불퇴전의 특징이라고 알아야만 한다.”
이제 관상의 대상이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에서 더 나아가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로서 비구승가와 보살승가 앞에서 교법을 연설하는 수행자 자신의 모습이 되었다. 관법 수행이 심화됨에 따라 부처님을 관상하는 것에서 자기 자신을 관상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을 볼 수 있다. 불퇴전의 보살로서 꿈속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관상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된 삼매의 경지는 관상법의 심화 발전을 예시하고 있다.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염’, 즉 ‘sati’는 주의집중 작용 외에 기억이라는 중요한 작용이 있다. 이 작용은 초기불교의 ‘불수념’에서 시작하여 아미타불을 관상하는 『반주삼매경』의 ‘반주삼매’, 불상을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좌선삼매경』의 ‘염불삼매’, 그리고 대승불교 반야부 경전에서 나타난 ‘일행삼매’로 발전되어온 관법 수행의 원천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최근까지 남방불교의 관점에서 이해되었던 ‘sati’ 개념이 제한적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대승불교 선법이 초기불교에서 이탈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대승불교에서 ‘삼매’의 체험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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