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조사선(祖師禪)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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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4 년 12 월 [통권 제2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923회 / 댓글0건본문
「고경」에서는 ‘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고우 스님은 출가 후 평생 선원에서 정진해 오셨으며, 지금도 참선 대중화를 위해 진력하고 계십니다. 화두 참선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효과에 이르기까지 고우 스님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조사선이란?
흔히 선(禪)은 조사선, 간화선, 묵조선 등으로 표현합니다. 여래선이란 말도 있습니다.
표현은 달라도 선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선은 오직 본래부처, 현실극락 입장입니다. 중생과 부처, 번뇌와 지혜라는 상대적 세계는 착각일 뿐이고, 중생이 본래부처라는 절대적인 세계관이 오직 사실이고 진리이며 현실입니다. 그래서 본래부처, 현실극락, 평상심이 도, 마음이 곧 부처라 합니다.
그렇다면, 선(禪)은 하나인데 왜 여래선, 조사선, 간화선, 묵조선 등으로 불리느냐? 깨달은 조사들의 입장은 절대세계이고 모두 부처이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부처들에게 착각에서 벗어나라고 제시하는 방편이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과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여래선(如來禪)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의 선, 여래의 선이란 말입니다. 조사선에서는 부처나 조사를 같이 봅니다. 선에선 부처와 중생을 분별하지 않고 같이 보니, 조사와 부처, 중생에 차별이 없습니다.
조사선(祖師禪)이란 조사들이 전하는 선을 말합니다. 달마 대사를 비롯하여 2조 혜가 …… 6조 조계혜능 대사 이후 천하에 전해지는 선을 조사선이라 합니다.
간화선(看話禪)이란, 화두 참선법입니다. 조사선이 송나라-고려 시대에 재가 지식인들에게 확산됩니다. 선의 가치를 발견한 재가자들이 선 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만, 조사들이 많지 않을뿐더러 산중에 계시니 배우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대혜종고 선사가 조사들이 깨친 문답을 화두로 체계화시켜 그대로 참구하면 깨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화두 참선법인 간화선이 나오게 된 시대적인 배경입니다. 한마디로 간화선은 조사선이 대중화되면서 재가자들에게 제시된 참선법입니다.
묵조선(默照禪)이란, 조사선이 내려오다가 송나라-고려 시대에 굉지 선사가 제창한 선법입니다. 묵묵히 앉아 마음을 비우면 부처라는 입장입니다. 본래부처이니 분별망상을 내려놓으면 그대로 부처라는 것입니다. 주로 조동종에서 전승되는 참선법으로 지금은 일본 조동종에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선은 이름과 방법은 다양하더라도 종지(宗旨)는 본래부처, 현실극락인 것은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간화선과 묵조선도 본래 조사선에서 내려온 선법입니다. 그래서 간화선을 제대로 알려면 조사선을 알아야 합니다.
조사선은 6조 혜능 대사에 이르러 그 특징을 드러내며 천하에 전파되기 시작하는데, 이제 조사선의 특색을 살펴보겠습니다.
육조, 혜능과 신수의 게송 대결
5조 홍인 대사 문하에 교수사 신수 대사와 혜능 행자가 게송대결을 해서 혜능이 깨달음을 인정받아 6조가 되었습니다. 명문가 집안에 불교와 유교 경전까지 해박했던 교수사 신수 대사의 게송은 이렇습니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이고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
항상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이 게송은 깨달은 안목의 게송이 아닙니다. 이런 게송도 정견으로 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 게송에는 몸과 마음이 나뉘어 있고, 또한 티끌과 먼지를 인정하고 부지런히 털고 닦고 있습니다. 아직 깨치지 못하고 닦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깨친 안목으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조사선은 오직 깨달음, 즉 달만 인정하니 손가락 입장의 게송은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비록 행자이나 혜능의 게송은 다릅니다.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다.
불성은 항상 청정하거늘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이 게송은 나무니 받침대도 본래 없고, 티끌과 먼지도 본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니 불성 자리는 늘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모두 본래 부처이니 깨친 안목의 게송입니다. 깨치지 못한 손가락 입장에서는 티끌과 먼지, 그리고 중생이 있다고 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고 착각에서 벗어나면 본래 깨끗하고 부처뿐입니다. 양변을 여읜 자리는 본래 깨끗하고 우리는 본래부처입니다.
이 게송은 비록 행자가 지은 것이나 깨달음의 안목을 드러냈기 때문에 조사선의 본래부처 입장에서 합격인 것입니다.
조사선의 전법
6조 문하에 남악 스님이 있고, 그 남악의 문하에서 마조(馬祖, 709~788)라는 걸출한 도인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구산선문의 역대 조사들은 대부분 마조 스님의 법맥을 이어왔습니다. 마조 스님의 공부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니 한 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마조 스님이 좌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인 남악 스님이 그 앞에 와서 벽돌을 갈았습니다. 마조 스님이 스승에게 묻습니다. “어째서 벽돌을 가십니까?”스승이 답합니다.
“벽돌로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 놀란 마조가 되묻습니다. “벽돌이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그러자 스승 남악 스님이 말합니다. “너는 좌선해서 어찌 부처가 되려 하느냐?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하느냐? 소를 쳐야 하느냐?” 이 말을 듣고 마조 스님은 깨칩니다.
이와 같이 조사선에서 좌선(坐禪)이란 모양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육조단경』에는 좌선을 이렇게 말합니다.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좌(坐)이며, 안으로 본성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禪)이다.”
우리는 좌선하면서도 생각이 밖으로 끝없이 움직이고 안으로도 번뇌가 일어나 어지러우면 안됩니다. 반대로 시장에 있더라도 밖으로 끄달리지 않고, 안으로도 어지럽지 않으면 좌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사선에서 좌선은 앉아서 하는 참선이 아니라 마음에 집착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조 스님의 제자 백장 스님은 ‘선농(禪農)일치’를 강조했습니다. 선 수행자들이 늘어나자 도량에 많은 선승들이 공부하고 생활해야 하니 사찰 경제도 중요해졌습니다. 자연환경과 탁발이 언제나 가능한 남방과 달리 북방은 도량이 산중에 정착했고 사계절이 뚜렷하니 먹고 사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백장 스님은 선승들에게 수행하면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유명한 청규를 제정해서 시행했습니다. 이것은 농사짓고 일하는 그대로가 선이라는 것입니다. 조사선은 이러한 전통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일상생활이 그대로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구산선문의 성립과 전파
조사선은 마조 스님 문하에 서당, 백장, 남전, 대주, 방거사 같은 88인의 인가 조사들이 나와서 강호에 선풍이 드날리게 되었고, 이 선은 통일신라와 일본, 베트남까지 이어집니다. 우리 조계종뿐 아니라 일본의 임제종, 조동종과 일본 최고의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 같은 CEO나 미국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 같은 이들도 이 조사선 전통에서 나온 인물들입니다.
우리나라에 조사선은 통일신라 후기에 도의 스님이 마조 스님의 제자 서당 선사를 찾아가 마음을 깨치고 인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6조 혜능대사가 주석한 광동성 조계산 보림사로 찾아가 조사당을 참배하고 백장(749~814) 선사를 만나 “불법이 동국으로 가는구나!”하고 전법을 부촉 받아 서기 821년에 귀국한 것에서 기원합니다. 이후 많은 유학승들이 선법을 인가 받아 귀국하여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세워지고 선풍이 전파됩니다.
당시 신라는 의상 대사가 전한 화엄종 같은 교학(敎學)과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정토신앙이 성행하는 풍토여서 처음에 조사선은 ‘마어(魔語)’ 즉 마구니말이라 하여 배척 받았습니다.
그동안 교학에서는 ‘중생이 열심히 수행해서 깨쳐야 부처가 되고, 부지런히 복덕을 쌓아야 내세에 극락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쳐 왔는데, 선은 본래부처, 현실극락을 주창하니 기이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방호족들은 환영합니다. 그들은 신라의 엄격한 중앙귀족계급 아래 무시당해 왔기에 선승들의 본래부처의 평등사상에 자존감과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선을 적극 수용하고 후원하여 구산선문이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산중에 문을 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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