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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성철]
큰스님 말씀대로 보살행 실천하며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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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  2015 년 2 월 [통권 제2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75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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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환(갈선․ 喝禪) ․ 진영실(향산장․ 香山藏) 부부 






#장면1

 

새해 첫날이라고 봐줄 리 없었다. 불면석(佛面石)도 울고 갈 정도다. 가야산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이 고심원을 돌아 관음전까지 들이닥친다. 사정없이 문을 때리지만 사람들은 꿈쩍도 않는다. 

 

이 순간 세밑 한파를 즐기는 이는 오직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 한 마리뿐이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요란하게 앞으로 뒤로 옆으로 움직이며 신나는 춤을 춘다. 

 

다시 시선을 관음전으로 돌렸다. 이른 새벽 부산 고심정사를 출발한 불교대학 전・현직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매년 초에 진행하는 신년 삼천배를 하기 위해서다. 동문들은 새해부터 신심(信心)을 다진다는 생각에 흐트러짐이 없다. 

 

외할머니, 엄마와 함께 온 8살 여자 어린이, 고3 수험생이 되는 딸을 데려온 엄마, 취업 준비에 힘들어 하는 아들과 같이 온 아빠, 다른 절에 다니는 친구를 데려온 보살님 등 90여 대중들이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고심정사 불교대학 총동문회장 이인환(갈선・喝禪) 거사님은 도반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삼천배를 처음 하는 사람들과 경험자들을 묶어 같이 절을 하도록 하고 또 초심자들은 가장자리가 아닌 법당 중앙에서 정진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초심자들끼리만 있으면 절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선배 경험자들이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주면 어렵지 않게 마칠 수 있어요.” 

 

자리가 정돈되자 거사님은 부인인 진영실(향산장・香山藏)보살님과 대중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함께 절을 하기 시작한다. “지심귀명례.” 선창이 관음전을 돌아 백련암 마당 아래로 떨어지고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절은 계속됐다.

 

#장면2

 

고심정사 불교대학 경전반 수업이 열린 지난 1월 7일 저녁. 이인환 거사님은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집안에 제사가 있어 부득이하게 보살님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거사님은 도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 강의는 시작됐다. 불교대학 ‘인기강사’로 꼽히는 동의대 강경구 교수님의 수업 『신심명』・『증도가』 강설이다. 이날 강의는 성철 스님의 『신심명』에 이어 역대 조사스님들이 말한 『신심명』을 주제로 수업이 진행됐다. 

 

거사님은 “‘『신심명』은 일관된 논리로 선(禪)이나 교(敎)를 막론하고 불교 전체를 통해서 양변을 여읜 중도(中道)가 불교의 근본사상임을 표현한 총괄적인 중도총론’이라고 성철 큰스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용이 워낙 심오해 뭐라고 정리하긴 어렵지만 큰스님께서 강조하신 중도를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생각하고 듣고 있습니다.”라며 웃었다.

 

무엇을 해도 다 인연이 된 ‘불교대학’

 

이인환 거사님은 이렇게 고심정사 불교대학에서 교(敎)를 닦고 백련암에서는 실참(實參…)을 한다. 평소 절은 물론 1년에 두 차례 제주 법성사에서 아비라기도도 한다. 수행과 이론공부를 같이 하면 무엇이 좋을까? 거사님은 솔직했다. 

 


거사님 부부가 불교대학 학장 원택 스님과 함께 교훈을 살펴보고 있다 

 

“장점이 굉장히 많아요. 수행에서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상’을 내는 거잖아요. 주변에 보면 기도만 많이 하신 분이나 경전만 많이 보신 분, 봉사만 많이 하신 분 등이 많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한 가지만 하신 분들은 고정관념이 강해요. 이것은 당신들의 ‘상’으로 이어집니다. 성철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양변을 버려야 중도를 볼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실제 수행도 하면서 부족한 경전 공부도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거사님은 사실 고심정사 불교대학을 마친 지 꽤 시간이 지난 ‘졸업생’이다. 그럼에도 진 보살님과 함께 꾸준하게 수업을 듣고 있다. 

 

“백련암에서 절을 하다가 우연히 불교대학 홍보책자를 보고 입학했습니다. ‘인연’이다 생각하고 바로 입학 지원서를 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절에 올 일이 많이 없어졌어요. 학생일 때는 절에서 기도도 하고 공부도 했는데 졸업생이 되면서부터는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지 못했습니다. 많이 게을러진 것이죠. 그래서 좋은 강의가 있을 때는 일부러 와서 강의도 듣고 도반님들도 만나고 있습니다. 덕분에 작년에는 원택 스님을 모시고 여러 도반님들과 함께 인도성지순례도 다녀왔습니다.” 

 

고심정사 불교대학 동문들은 지난 해 2월말 인도 부처님 8대 성지와 아잔타・엘로라 석굴, 산치대탑 등을 둘러보는 순례를 진행했다. 2년여의 준비 끝에 실현된 순례였다. 

 


인도 성지순례중 녹야원에서 자리를 함께 한 순례단원들. 뒷줄 맨 오른쪽 끝에 부부가 함께 있다 

 

이 거사님은 “보드가야의 화려함이나 룸비니의 초라함 모두 수행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고 진 보살님은 “부처님이 금강경을 설했다고 하는 기원정사에서 예불을 올릴 때 정말 부처님이 우리 순례단원들에게 법을 설하시는 것 같아 감동이 밀려왔다.”고 한다. 

 

이 거사님은 “고심정사 불교대학이 부산 최고의 명문”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작은 바람을 전했다.

“불교대학의 교훈(校訓)은 ‘신심(信心)’, ‘정진(精進)’, ‘자비(慈悲)’이고 운영목적은 ‘자기를 바로 보는 사람’,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 ‘남모르게 남을 돕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이 목표대로 불교대학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공부도 하시고 또 기도도 하시고 나아가서는 사회에 회향도 하는 불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합니다. 저 역시 마음을 보태겠습니다.”

 


이 거사님이 도반들과 함께 불교대학 강의를 듣고 있다 

 

‘백련암’으로의 환지본처(還至本處)

 

이 거사님이 이처럼 열혈불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인 진 보살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 보살님은 “친구 따라 법(法)을 만난 경우”라고 불교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고등학교 때 절친이 대학을 졸업하고 출가를 했습니다.

그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백련암에 가서 절을 하던 독실한 불자였어요.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해인사 금강굴에 가서 그 친구스님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나중에 친구스님이 저한테 일과로 108배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부터 매일 108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금강굴에 가끔 갔는데 제가 마산에 살고 있으니까 마산 정인사에 나가서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인사에 다니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부산으로 이사를 해서는 범어사에 나갔습니다. 범어사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인연이 이어져 통도사에도 다녔습니다. 통도사에서 만난 보살님 한 분이 제주 법성사에서 기도를 한다고 해요. 알고 보니 그 보살님은 백련암에서 삼천배를 하는 ‘영원한 자유’팀의 대영암 보살님 동생이었어요. 그래서 법성사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절을 하고 아비라기도를 했습니다.” 

 


불교대학 동문들이 백련암 관음전에서 삼천배를 하고 있는 모습 

 

‘백련암’과의 인연으로 절을 시작한 진 보살님은 결국 다시 ‘백련암’으로 돌아와 정진을 거듭했다. 보살님은 친구스님과 통도사에서 만난 보살님으로부터 아비라기도에 대한 ‘개요’를 듣고 법성사로 가 직접 아비라기도에 동참했다.

 

“2002년 봄이었어요. 매일 108배를 하긴 했지만 첫 아비라기도는 너무 힘들었어요. 살면서 그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내내 ‘사이비 종교도 아니고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아비라기도를 회향하면서 예불을 올리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몸과 마음이 정화됐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법성사에서의 아비라기도를 마치고 바로 백련암으로 갔다. 삼천배를 하기 위해서다. 그 자리역시 대영암 보살님이 함께 했다. 삼천배를 마치고 법명 향산장(香山藏)을 받았다.

그렇게 백련암에서의 첫 삼천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절을 했다. 주로 법성사에서 기도를 이어갔다.

삼천배 7일 기도, 21일 기도는 물론 매년 4차례의 아비라기도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절을 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원을 세우고 매일 600배 100일 기도를 시작했다. 

 


백련암 고심원을 참배하고 있는 부부 

 

“아들 둘은 저를 따라 같이 절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거사님은 아직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우리 거사님도 부처님 법을 빨리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거사님에게는 기도에 대한 내용을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가 끝나자 거짓말처럼 거사님이 저에게 말을 꺼냈어요. ‘나도 108배 해볼까?’라고 말입니다. 정말 부처님은 간절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이 거사님은 108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련암 삼천배에 ‘도전’했다. 

 

“그때 제가 마라톤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름 운동을 하고 있어서 삼천배는 문제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어림없었습니다. 1000배도 겨우 해냈고, 1600배쯤 하니까 더 절을 못할 지경이 됐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내려와 차에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집사람이 삼천배를 마치고 차로 오는데 사실 좀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달에는 다시 실패할까 싶어 아이들은 집에 두고 집사람과 다시 삼천배에 도전해 성공했습니다. 하하.” 

 

부부가 같이 수행을 하면서 아이들도 더 즐겁게 절을 했다. 연년생인 두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4학년 때 처음으로 삼천배를 했다. 이후 백련암에서 매월 삼천배를 하는 것은 물론 방학이 되면 제주 법성사로 가 21일간 삼천배를 했다. 

 

“절을 해서인지 아이들이 반듯하게 잘 자랐습니다.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이 저의 교육 노하우를 궁금해 할 정도였습니다.

큰 애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 기념이라면서 자기 스스로 만 배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 커서 미국에 유학을 가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절을 해 온 것이 유학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부부는 애가 있는 도반들에게 절을 시켜보라고 권하는 편이에요. 저희가 나름대로 ‘재미’를 봤기 때문입니다. 절을 하면 아이 스스로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아이들이 절을 할 때는 절 외에 좋은 콘텐츠를 곁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절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합니다.”

 


삼천배를 하고 있는 거사님 부부의 모습 

 

진 보살님은 꾸준하게 절을 했다. 1200일 동안 삼천배를 하는 기도도 해냈다. “제가 법성사에서 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하루는 주지스님께서 ‘보살님에게 삼천배 100일 기도를 하라고 하세요’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주지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만 했어요. 집사람은 당연하게 주지스님 말씀을 받아들였고, 100일이 200일이 되고, 1000일이 되고, 나중에는 1200일 기도가 됐습니다. 하하.” 

 

지금은 이 거사님이 일과로 매일 300배를, 진 보살님이 매일 1000배를 하고 있다.

온 가족들이 함께 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부부는 이구동성(異口同聲)이었다. 

 

“집에 있는 세 남자의 절대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제가 절을 꾸준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절을 같이 하면서부터는 힘든 것들을 서로 알아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엄마의 기도를 많이 도와 준 아이들이 특히 고맙습니다.”(진 보살님)

“같이 수행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도반이 바로 옆에 있습니다. 서로를 비춰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앞으로도 서로를 탁마하며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 거사님)

 

“우리 수행의 근본은 성철 큰스님”

 

부부는 앞으로도 정진의 고삐를 놓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수행의 중심에는 성철 큰스님이 계시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백련암이나 금강굴, 고심정사, 법성사 모두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도량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근현대불교사에 있어서 성철 큰스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한국불교가 제대로 설 수 있었겠느냐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봉암사결사부터 성전암에서의 초인적인 정진, 해인총림 방장으로서 설하셨던 ‘백일법문’ 등은 한국불교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큰스님의 근본적인 개혁이 없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불교를 굉장히 나쁜 시각으로 바라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어느 누구보다 좋은 도반이다 

 

실제 수행에 있어서도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여러 법어집이나 가르침들을 보면 ‘불법(佛法)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진 보살님 역시 거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산에 계셨지만 수행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큰스님은 정말 진정한 수행자의 롤모델입니다. 생전에 뵙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이 거사님은 특히 성철 스님의 ‘실천행’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큰스님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보살행(菩薩行)이라고 생각해요. 큰스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신 것들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잖아요. 결국 어떻게든 행동하지 않는 수행은 무의미합니다. 큰스님의 생활 속 가르침 중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와 ‘남모르게 남을 도웁시다’에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가 나만의 것으로 끝나고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곤란합니다. 자기 수행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남을 돕고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부부와 이를 따르는 아이들. ‘가족(家族)’은 이렇게 부처님 품안에서 함께 발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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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백련불교문화재단 부장. 현대불교신문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월간 <불광> 기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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