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고려시대 간화선의 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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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5 년 2 월 [통권 제2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15회 / 댓글0건본문
고경에서는 ‘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고우 스님은 출가 후 평생 선원에서 정진해 오셨으며, 지금도 참선 대중화를 위해 진력하고 계십니다. 화두 참선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효과에 이르기까지 고우 스님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간화선을 수용한 보조 국사
불교가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이고 통일신라 후기(821년)에 도의 스님이 조사선을 전하여 구산선문이 세워집니다. 혼란한 후삼국시대를 통일하여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불교를 국교로 삼아 고려시대는 찬란한 불교 정신과 문화를 창달합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듯 세상 만물은 모두 흥하면 쇠하는 법입니다. 고려시대에 불교 승단은 많은 시주로 사찰 경제가 풍족해져 스님들이 사치와 향락에 젖어들어 승풍이 쇠퇴하였습니다. 이에 고려의 뜻있는 스님들은 현실을 개탄하고 승단을 쇄신하기 위해 수행결사를 추진하게 됩니다.
고려시대 정혜결사의 주역 보조(普照, 1158~1210) 스님은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 스님의 어록을 보고 눈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 근거로 볼 때 한반도에서 간화선을 처음 접한 분은 보조 스님입니다. 보조 스님이 주도한 정혜결사는 간화선으로 승풍을 쇄신하는 결사운동이었고, 이 결사는 보조 스님 입적 뒤에 2세 법주 진각 국사로 계승되어 무려 16국사(國師)가 배출됩니다.
보조 스님은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초기 저술인 『정혜결사문』과 『수심결』에서는 조사선의 회광반조 공부법과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입적하고 6년이 지나 발견된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는 간화선의 입장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선문의 바른 견해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보조 국사 초년의 돈오점수설과 사후 유작인 『간화결의론』에 담긴 돈오돈수 입장의 차이로 혼란이 있습니다.
다수의 학자들은 초기 저작을 보조 스님의 사상으로 보고 말년의 저작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에서 보조 스님이 젊은 시절의 잘못된 견해를 노년에 바로잡은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선문염송』을 편찬한 진각 국사
보조 스님이 간화선을 한반도에 소개하였다면, 이를 전파한 분이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 스님입니다. 보조 국사가 장차 법을 전할 인물을 찾고 있던 어느 날 법상에서 대 중들에게 조주 무자화두와 대혜 선사의 무자화두 열 가지 병을 묻자, 오직 혜심 스님만이 답을 합니다. 이에 보조 스님이 법을 전하려 하나 혜심 스님은 사양하고 지리산으로 가서 참선만 하였습니다. 보조 스님이 입적한 뒤 문도와 국왕의 뜻으로 수선사 법주로 추대되었으니 혜심 스님의 나이33세였습니다.
혜심 스님은 보조 국사가 도입한 화두 참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고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간화선(看話禪)은 화두 참선법인 바 이 공부에서는 화두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혜심 스님은 옛 조사들이 깨친 일화 1125칙(則)을 모아 화두 공안집인 『선문염송(禪門拈頌)』30권을 편찬하였습니다. 일찍이 조사선과 간화선이 탄생한 중국에서도 이렇게 많은 화두 공안집이 간행되지 못했습니다. 선어록의 백미라는 『벽암록』에도 화두는 100칙에 불과합니다. 혜심 스님의 『선문염송』에는 1125칙이나 되는 화두가 정리되어 있으니 고려시대 간화선사들의 공부 열의와 수준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보조 스님과 진각 스님이 결사를 통해 승풍 쇄신과 간화선 전파라는 화두 참선법의 씨앗을 고려에 뿌렸습니다.
태고 스님, 간화선으로 깨치고 최초로 인가 받아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스님은 고려 말 스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간화선으로 깨치고 원나라 임제종 조사를 찾아가 깨침을 인가 받아온 분입니다. 지금 한국 조계종의 스님들은 이 태고스님의 법맥(法脈)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성철 스님은 태고 스님을 조계종의 종조(宗祖)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태고 스님은 13세에 가지산문 선사를 스승으로 출가했습니다. 19세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장자 가지산문 총림인 보림사에서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를 참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도를 성취하고자 용문산 상원사에서 12가지 큰 서원을 세우고 간절히 기도한 뒤 일대사인연을 성취하지 못하면 죽을 각오로 성서 감로사에서 7일 동안 단식하며 밤낮으로 용맹정진한 끝에 지견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38세에 전단원에서 동안거 결제 중에 무자 화두가 자나깨나 한결같은 오매일여(寤寐一如) 경지를 지나 타파하고 마침내 확철대오합니다.
깨친 뒤 41세에 북한산 중흥사에 주석할 때 일본과 중국스님들도 찾아와 교류하였는데, 중국(원나라) 남쪽에 명안종사(明眼宗師)가 계시니 찾아가 인가를 받으라는 권유를 들었습니다. 이에 태고 스님은 조사 간화선의 전통을 따라 46세에 원나라 북경을 경유해서 절강성 하무산 천호암의 석옥(石屋, 1272~1352) 스님을 찾아가니 여러 물음에 막힘이 없자, 석옥 선사는 깨달음을 인가하는 뜻으로 자신의 가사를 주고는 “불법이 동방으로 가는구나!” 하였다고 합니다.
이로써 태고 스님은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화두 참선으로 깨치고 직접 임제종 조사를 찾아가 인가 받아 온조사가 됩니다. 그 뒤 태고 스님의 임제종 간화선의 법맥은 환암 스님을 거쳐 조선시대에 서산–사명 대사로 이어졌고, 근세의 경허–용성 법맥으로 계승되어 지금의 조계종 스님들로 이어집니다. 스님은 승풍진작에도 뜻을 두어 중국 선원의 규범집 『백장청규』와 스님들의 교육교재인 『치문(緇門)』을 구해 돌아와 우리나라에 전파하였습니다. 또한 태고
스님은 깨달음의 길에 간화선 외에도 근기에 따라 염불(念佛)도 일심으로 하면 깨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태고 스님은 당시 고려의 격변기에 국왕의 간곡한 청으로 왕사(王師)와 국사(國師)가 되어 국정쇄신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원나라 북경에서 만나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은 공민왕의 반원(反元) 자주 정책을 정신적으로 지원하였으며, 국정 쇄신을 위하여 한양 천도와 승풍 쇄신을 위해 구산선문의 통합 등을 지속적으로 조언하고 추진하였습니다.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으로 유명한 『불조직지심체요절』의 저자 백운경한(白雲…景閑, 1299~1375) 스님 또한 고려 말 간화 선사입니다. 태고 국사, 나옹 왕사와 더불어 고려 말 3대 선사로 불리웁니다. 백운 스님은 화두 참선을 하다가 어떤 경지를 체험하고 태고 스님과 마찬가지로 1351년 중국으로 건너가 석옥 선사를 만나 깨달음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석옥 선사는 깨달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정진을 멈추지 않고 더욱 더 노력하여 마침내 확철대오합니다. 이듬해에 석옥 선사가 깨달음을 인가하는 전법 게송을 보내왔습니다.
복원중인 금속활자본 직지
백운 스님의 저술로는 『백운화상어록』과 『불조직지심체요절』이 있습니다.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백운 스님 제자들이 금속활자로 찍어낸 것입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하권이 발견되어 지금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 최고 금속활자 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줄여서 『직지(直指)』라고 하는 이 책은 경전과 선어록 중에 마음을 바로 깨치는 데 가장 요긴한 문장을 모아 놓은 것으로 선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화선사의 저술이 세계 최고의 금속인쇄술로 편찬되었다는 것은 바로 고려불교의 사상문화가 세계 최첨단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태고, 백운 스님과 동시대에 활약한 고승이 바로 나옹 스님입니다. 나옹(懶翁, 1320~76)은 법호, 혜근이 법명입니다. 경북 영해에서 태어나 20세에 절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는데, 죽은 뒤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답하는 이가 없어 큰 의문을 품고 문경 공덕산 묘적암으로 출가하였습니다. 각고의 정진을 하다가 양주 회암사에서 확철대오하였고, 태고 스님처럼 원나라로 들어가 10년 동안 만행하면서 인도 스님인 지공과 평산, 몽산 등 임제종 선사들을 두루 만나 인가 받았습니다. 1371년 왕사에 추대되었고, 무학 대사에게 법을 전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나옹어록』을 간행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는 간화선이 중심 수행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신흥사대부들의 억불정책으로 일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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