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부처님오신날 즈음에 대장경에서 발견한 단어,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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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5 년 6 월 [통권 제2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244회 / 댓글0건본문
『능엄경』 주석을 읽다가 이런 대목을 보았다.
“종문의 가풍이 각각 다르기는 하나 그들이 보여준 것은 육근의 문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컨대 이조가 처음 깨닫고서 ‘분명하게 항상 안다’고 했던 것은 의근으로부터 들어간 것이고, 손가락을 세우거나 주먹을 펴 보인 것은 보는 작용을 밀밀히 맑힌 것이며, 몽둥이 맞고 아픔을 참은 것은 신근을 깨운 것이고, 귀가 먹도록 소리를 지른 것은 듣는 데서 들어가게 한 것이다. 이렇게 변태가 무궁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중생 스스로 자기 몸에서 확실하게 성품을 보게 한 것이다. 그래서 보고 듣고 지각하는 근에서 도를 얻은 자가 참으로 많다.”
宗家門庭雖別。而所示多不出於六根門頭。如二祖初悟。謂了了常知。從意根入也。竪指伸拳。密澄其見也。棒從忍痛。發覺身根也。喝至耳聾。令從聞入也。是雖變態無端。而究實令眾生自於身中親切見性。其得於見聞覺知之根者。良多也。『능엄경정맥소』(卍속장경12, 178c)
식(識)이 아니라 근(根)으로 닦으라는 것이 이 문장의 요지인 듯한데, 여기서 눈을 붙드는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변태’다. 이 맥락에서는 학인이 근으로부터 들어갈 수 있도록 조사들이 자유자재로 법을 쓰는 모습을 예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단어를 발견하고 잠시 눈을 의심했다. 궁금해서 대장경을 검색해보니 어림잡아 150개 쯤 되겠다. 그것도 익히 알려진 문헌에 광범위하게 실려 있다. 『대보적경』, 『대지도론』, 『화엄경소』 등의 경론, 『삼국유사』, 『고승전』, 『속고승전』, 『승사략』, 『오등회원』 등의 역사책, 『종용록』, 『굉지어록』, 『대혜보설』 등의 어록들이다. 대장경에 변태가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대승경론에서는 대체로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로 쓰였다. 중생의 근기에 맞게 자기 모습을 변화시켜 시현하는 불가사의한 능력이다. 중생이 불쌍해서 번뇌를 조금은 남겨두어 그 힘으로 다시 하강하여 육신 껍데기를 쓰는 모습을 변태라고 한 것이다. 선사들은 이 말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굉지 선사와 초당 선사의 법문을 예로 들어 보자.
“티끌 하나 일어나니 온 대지가 다 담겼고 꽃 한 송이 피어나니 천하가 봄이로다. 납승의 변태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언제 어디서라도 그대로 자재하여 응용에 막힘이 없을 것이다.” - 『굉지선사광록』(대정장48, 10b)
“참선하는 사람은 사구를 들지 말고 활구를 들어야 한다. 활구를 들면 임기응변에 변태를 해서 적절함을 잃지 않는다.” - 『속고존숙어요』(卍속장경68, 363b)
불교에서 변태가 이런 의미로 쓰인다니, 반전의 재미를 느낀다. 사회 통념상 어감이 썩 좋지는 않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이 단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것.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가 탈피하여 나비가 되는, 1차 변태와 2차 변태에 대해 들었던 날 너무 신기해서 일기장에 써놓고 이 단어를 언제고 꼭 한 번 써먹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어느 날 평소와 달리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하시는 엄마에게 이 단어를 써먹었다가 혼났던 게 기억난다. 세련된 요즘 엄마들이라면 같이 웃어주었을 테지만, 그땐 그랬다.
그 다음은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의 별명으로 기억된다. 그분은 애들을 때리는 교사였다. 끝이 점점 좁아지는 지휘봉을 항시 들고 다니면서 손바닥만이 아니라 팔뚝, 손등, 엉덩이, 종아리, 머리통을 가리지 않고 때려서 애들이 변태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그분의 단골 희생양이었던 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부위별로 골고루 얻어맞았다. 덕분에 그때부터 인생이 고라는 것을 알았다. 이 선생님의 별명에서 보듯, 과거에는 이 단어가 혐오스러운 대상에게 붙여지는, 입에 담기 민망한 금기어였다.
그러나 변태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사전에는 생존과 성장을 위해 한 개체가 짧은 기간 동안에 형태를 크게 바꾸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 개념은 생물학 뿐 아니라 인격의 성장이나 도를 닦아 나아가는 과정에 적용해도 잘 들어맞는다. 왕자라는 애벌레에서 출가사문의 번데기 시절을 거쳐 깨달은 자라는 나비로 비약적 성장을 하신 부처님도 대표적인 변태라 하겠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 이렇게 특이한 분은 없었나 보다. 『아함경』에 부처님의 정체와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천신이 부처님을 관찰해 오던 바, 이제껏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에 아마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부처님이 길을 가는데 이 천신이 계속 쫓아오면서 물었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아니요.” “천신입니까?” “아니요.”
“브라만입니까?” “아니요.” “다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요?”
“나는 붓다, 깨달은 자요.”
이 이야기는 부처님이 단순히 개체의 성장에 한정된 변태가 아니라 인류 정신사에 새로운 종(種)이 생겨났음을 알려준다. 천신의 눈으로도 그때까지 본 적 없던 인종이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그 뒤를 잇는 선종의 조사들 역시 부처님 못지않다.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를 소화하느라 번역과 해석이 한창이던 시대에, 해석하기를 그만두고 자기를 살아있는 텍스트로 삼은 사람들이다. 시대상을 고려하면 이 분들도 개인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부처님의 계보를 잇는 변태임에 틀림없다. 인도와 중국에서 이와 같이 빛나는 변태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대장경에서 이 단어를 검색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에 부처님을 그리며, 불교는 ‘변태의, 변태에 의한, 변태를 위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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