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백척간두와 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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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5 년 10 월 [통권 제3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592회 / 댓글0건본문
「고경」에서는 ‘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고우 스님은 출가 후 평생 선원에서 정진해 오셨으며, 지금도 참선 대중화를 위해 진력하고 계십니다. 화두 참선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효과에 이르기까지 고우 스님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 편집자
의단, 타성일편
화두 참선할 때 화두 의심이 순수하게 깊어지면 의정(疑情)이 됩니다. 중도 정견이 서고 화두로 체득해 나갈 때 분별망상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화두 하나에 집중해 들어가면 자연스레 의정이 됩니다. 무문 선사는 『무문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조사의 관문을 뚫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3백60개 골절과 8만4천 개 털구멍으로 온 몸을 다하여 의단(疑團)을 일으켜야 한다. 무자를 참구하되 이 무자를 밤이나 낮이나 항상 들고 있어야 한다. ‘허무하다’는 뜻으로도 이해하지 말고 ‘있다-없다’는 뜻으로도 이해하지 말라. 마치 뜨거운 쇳덩어리를 삼킨 것과 같아서 토하고 토해내도 나오지 않는 듯이 하여 이제까지의 잘못된 알음알이를 몽땅 없애야 한다. 이와 같이 꾸준히 지속하여 공부가 익어지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무자 화두와 한 덩어리가 되어 타성일편(打成一片)을 이룰 것이다.”
무문 선사의 말씀처럼 화두를 간절히 의심해 들어가면 의심이 감정이 된 의정이 되고, 이 의정이 지속되면 의심덩어리가 되어 의단(疑團)이 됩니다. 이때 화두 의심을 계속 밀고 들어가면 의단이 홀로 드러나 독로합니다. 이를 의단독로(疑團獨露)라 합니다. 화두 드는 사람과 화두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는 경지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하고요. 화두 한 생각이 하나의 조각처럼 분명하여 고요히 앉아 있거나 움직일 때도 성성합니다. 고려 말 간화종장으로 이름을 떨친 나옹 선사는 이 경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홀연히 밀어붙여 공부해 가면 화두를 들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정을 일으켜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일어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이르면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의식도 움직이지 않게 되어 모든 맛이 사라진다.”
- 『나옹어록』
또한 태고 선사도 같은 말을 합니다.
“만일 이런 진실한 공부를 쌓으면 곧 힘이 덜리는 곳에 이르게 되니, 그곳이 바로 힘을 얻는 곳이기도 하다.
화두가 저절로 성숙하여 한 덩이가 되어, 몸과 마음이 단박 비어 움직이지 않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질 것이다……부디 털끝만큼도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본래면목이 무엇인가?’ 또 ‘어째서 조주는 무라 했을까?’를 잘 돌아보아 이 말 끝에 무명을 쳐부수면, 물 마시는 사람이 차고 더움을 저절로 아는 것과 같이 되리라.”
- 『태고어록』
은산철벽, 백척간두 진일보
번뇌망상 없이 화두 의심이 순일하게 지속되어 의정이 되고, 그 의정이 똘똘 뭉쳐 의단이 되어 타성일편으로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화두 일념이 지속되면 은산철벽(銀山鐵壁)에 이르게 됩니다. 은으로 된 철벽처럼 화두가 일념이 되어 흩어지지 않고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떨어지지 않고 온전히 하나가 된 경지를 말하지요. 이 은산철벽을 다른 말로 백척간두(百尺竿頭)라 합니다. 백척이 33미터입니다. 우리가 33미터 높이의 장대 위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앞뒤 좌우 옴짝달싹할 수 없이 그냥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 같이 화두가 일념이 되어 앞뒤, 좌우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화두 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경지를 말합니다.(백척이란 말이 의미가 깊다. 속리산 법주사 미륵불이나 동화사 약사여래불도 높이가 백척이다).
이처럼 화두가 은산철벽, 백척간두에 이른 경지는 낮밤 없이 화두 일념이 지속되어 오매일여에 이른 경지입니다. 이것은 깨달음 직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때도 화두를 놓지 말고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즉, 화두가 은산철벽처럼 꽉 막혀 있을지라도 백척 장대 위에 서있는 것처럼 앞뒤가 끊어져 어찌 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화두를 계속 밀어붙여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철벽을 깨듯이, 백척 장대 위에서도 목숨을 걸고 한 걸음 더 내딛는 진일보로 화두를 타파해야 합니다. 나옹 선사는 그 경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화두에 의심을 크게 일으켜 빈틈이 없게 하여
몸도 마음도 한바탕 의심덩어리로 만드세.
거꾸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 뒤집으면
겁외의 신령한 빛이 서늘히 간담 비추리.”
- 『나옹화상가송』
염화두와 사구, 그리고 활구
화두 참선의 요체는 화두에 순수하고 간절한 의심이 되는 데 있습니다. 화두를 알려 하는데 알 수가 없으니 의심해들어가 타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두가 안 되어 온갖 망상이 치성할 때 화두를 염불하듯이 되뇌는 것을 염(念)화두라 합니다. 화두를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하며 염불하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외는 것입니다. 이것은 염불하는 방법입니다. 화두는 간절히 의심해 일념을 지속하는 것인데, 염불하듯이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때는 차라리 염불하는것이 좋습니다. 염불도 일념으로 하면 삼매에 들어 깨칠 수가 있습니다. 태고 선사나 나옹 선사 모두 그렇게 법문한 기록이 분명히 있습니다. 염불이나 주력도 일념이 되게 한다면 좋은 수행입니다. 다만, 화두를 할 때는 화두하는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화두는 순수하게 간절히 의심을 지어 가야 합니다. 화두하는 데 잘 안 된다고 염불하듯이 주력하듯이 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니 이 점은 분명히 알고 해야 합니다.
화두를 참구할 때 그 화두가 순수하게 의심이 되어 가면 활구(活句), 분별하는 생각으로 논리적으로 헤아리면 사구(死句)라 합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간화선에서 화두는 양변의 분별심을 끊어 순수하게 의심을 지속시켜 선정 삼매에 들어 깨치는 공부법입니다. 화두 공부인은 화두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두가 이성적 사유분별심으로 답을 찾으려 하면 죽은 말이 되어 공부가 전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깨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화두를 순수하게 의심해 들어가야 합니다. 화두를 순수하게 의심을 지속해 가는 것을 활구 참선이라 합니다. 활구 참선을 한다는 것은 화두를 순수하게 의심을 지속하여 화두 한 생각이 일념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초심자들이 화두 공부할 때 유념해야 할 것 중 하나가 화두를 관(觀)하는 것과 의심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관한다 함은 화두를 지켜본다는 것입니다. 화두를 그냥 생각하며 지켜보는 것인데요, 이것은 화두 참선이 아닙니다. 화두는 화두 참선하는 나와 화두가 하나 되어 주관과 객관이 하나 된 삼매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화두 드는 나와 화두가 주관과 객관으로 벌어져 있으면 일념(一念)도 되지 않고 화두 삼매에 들 수가 없습니다. 화두를 관해서는 의심이 되지 않으며 의정이나 타성일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화두를 관해서는 안 됩니다. 화두는 주관과 객관이 하나 되게 의심해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화두를 참구할 때 ‘화두가 안 된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공부가 잘 되어 가는 때입니다. 화두가 정말로 안 되는 사람은 화두에 대한 생각조차 없습니다. 화두 참선을 하고자 하는데 안 된다 함은 계속해서 애쓰고 있는 것이니 이때는 된다 안 된다는 생각조차 비우고 오직 화두를 믿고 이 길만이 나를 영원히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 확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대혜 선사는 『서장』에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하라 합니다. 초심자가 참선을 시작할 때 화두는 생소하고 번뇌망상은 익숙합니다. 그런데 계속 애써서 화두가 익숙해지면 망상은 가벼워지고 낯설어 갑니다. 화두가 생활화되면 이런 변화가 옵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밝아지며 일상생활에서 지혜가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화두가 생활화되고 익숙해져 힘을 들이지 않아도 문득문득 화두가 잡히면 그 자리가 바로 힘을 얻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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