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동정일여와 오매일여
페이지 정보
박희승 / 2015 년 11 월 [통권 제3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13회 / 댓글0건본문
「고경」에서는 ‘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고우 스님은 출가 후 평생 선원에서 정진해 오셨으며, 지금도 참선 대중화를 위해 진력하고 계십니다. 화두 참선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효과에 이르기까지 고우 스님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 편집자
화두 참선할 때 공부가 잘되어 화두 일념이 되면 대체로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며 깨달음으로 갑니다. 이것이 간화선의 동중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입니다. 화두 일념이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동정일여(動靜一如), 잠이 들어 꿈을 꾸는 때에도 화두가 지속되는 것을 몽중일여(夢中一如),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도 한결같이 참구되는 것을 오매일여(寤寐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라 합니다.
그런데, 선을 모르는 분들은 오매일여나 몽중일여를 부정합니다. 일반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불교계 신문에서도 이런 주장이 공공연히 게재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만큼 우리 불교계가 선에 대하여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분들의 주장은 사람이 잠을 자면 아무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잠잘 때도 화두가 되느냐? 또, 꿈을 꿀 때도 어떻게 화두가 되느냐? 믿을 수 없는 말이라 합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이해하기 어렵지요.
하지만, 생사를 해탈한다는 깨달음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것이 상식적인 사고 안에서 해결되는 일이겠습니까? 경전이나 조사어록에는 ‘오매일여’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 선사나 간화선으로 깨치고 직접 중국으로 조사를 찾아가서 인가 받아온 태고 선사나 나옹 선사도 오매일여를 말하고 계십니다.
성철 스님도 이 오매일여를 강조하였습니다. 참선할 때 적어도 화두가 동정일여나 몽중일여가 되어야 공부한다고 봐줄만 하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철 스님은 오매일여 정도 되어야 조실, 방장의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신 기록도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 오매일여를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간화선이 도입되어 선풍이 성성하던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까지는 화두가 오매일여를 지나 깨친다는 것이 분명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태고 국사나 나옹 왕사 같은 확철대오한 도인들은 한결같이 오매일여를 지나 깨친다고 말씀하셨고, 그런 법맥과 선풍이 살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조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탄압을 받아 선풍이 쇠퇴하여 일제 강점기까지도 깨달음에 대하여 좀 모호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두 참선을 하다가 어떤 경계를 체험하고 그것을 깨달음이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바른 안목을 갖춘 선지식이 없을 경우 참선 도중에 어떤 경계를 견성이라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에 도인이라 불린 분들의 행동이나 말씀을 들어 보면, 도인은 걸림 없이 산다고 하여 막행막식하며 승속을 넘나드는 경우도 드러 있었지요. 실제, 어떤 집착도 없이 자유자재한 경지라면 다르지만, 아직도 욕망과 집착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깨쳤다고 도인을 자처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큰 소리 치는 것은 문제입니다.
성철 스님도 당시에 깨치지 못했으면서 도인 행세하는 분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기준을 분명히 하자는 입장에서 경전과 어록을 검토한 결과 조사들이 말씀하신 오매일여를 되살려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성철 스님이 화두가 자나 깨나 지속되는 오매일여가 되어야 깨친다고 한 뒤로 도인 행세하는 분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젠 참선해서 화두가 오매일여가 되어야 깨친다고 분명한 기준을 세워놓았으니 그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이 깨쳤다고 하기가 어렵지요.
자, 그럼, 깨달음으로 가는 화두 참구의 세 가지 단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동정일여
화두에 신심, 발심이 강해질수록 화두 드는 힘이 붙습니다. 화두를 생활 속에서도 익숙하게 되면 화두가 의정이 되어 공부가 깊어갑니다. 이때 화두를 계속 밀어 붙이면 화두 일념이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끊어지지 않는 동정일여가 됩니다. 즉, 앉아서 좌선할 때나 일어나 포행하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심지어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어도 화두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동정일여가 될 수 있습니다. 화두 공부인은 화두가 또렷또렷하게 지속되는 경지에서 앉아 있을 때나 움직여도 화두가 흩어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두가 동정일여가 되더라도 결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화두가 의정이 되어 동정일여에 이르렀더라도 말을 하면 주관과 객관이 벌어져 분별심이 일어나 화두 의정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화두 공부인은 동정일여가 되면 묵언하면서 식사도 줄이고 잠도 자지 말고 계속 화두를 밀어붙여야 합니다.
성철 스님도 출가하기 전에 절에서 혼자서 참선을 하다가 42일 만에 동정일여를 체험했다고 합니다. 성철 스님은 고향인 지리산 산청 대원사에 요양하러 갔다가 우연히 간화선 교과서인 <서장(書狀)>을 보고는 혼자서 화두를 들고서 참선을 시작한 지 42일 만에 동정일여에 이르렀습니다. 그 뒤에 해인사로 가서 동산 스님한테 머리를 깎으면 평생 참선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성철 스님은 이미 출가 전에 동정일여를 체험하였고, 출가하여 평생 참선의 길을 가서 이 시대의 대선지식이 되었습니다. 종정을 지낸 일타 스님이나 법전 스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철 스님이 이 동정일여 체험을 말씀하실 때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셨다고 합니다. 화두가 동정일여가 되면 언어와 문자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참선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체험의 세계라 언어와 문자의 이해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경지입니다.
오매일여
화두 공부가 동정일여가 되면 입지가 분명해집니다. 화두를 계속 밀어붙이면 자나 깨나 끊어지지 않는 오매일여(寤寐一如)에 이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오매불망(寤寐不忘)이란 말을 많이 썼지요. 뭔가에 큰 감동이나 충격을 받으면 자나 깨나 그 생각이 잊히지 않고 떠오릅니다. 홀어머니가 전쟁터에 보낸 외아들을 생각하는 심정, 청춘 남녀가 한창 연정이 불타오를 때의 마음처럼 밤낮 없이 그 생각이 꽉 들어차있는 심정입니다. 이와 같이 화두도 의정이 깊어지면 깨어 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꿈을 꾸거나 잠이 들었을 때도 화두 일념이 지속됩니다.
성철 스님은 오매일여를 다시 몽중(夢中) 일여와 숙면(熟眠) 일여로 구분하습니다. 몽중일여는 잠 잘 때 꿈속에서도 화두가 지속되는 경지이고, 숙면일여는 깊은 잠에 들어도 화두 일념이 계속되는 경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동정일여 – 몽중일여 – 숙면일여를 성철 스님이 제시한 화두 공부의 세 가지 관문, 화두 삼관(三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철 스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처님이나 달마대사 이상으로 큰 깨달음을 성취한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도 깊은 잠에 들어서 여전히 캄캄하면, 이는 망식(妄識)의 움직임이지 실제로 깨달은 것은 아니다. 공부를 하는 도중에 자기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잠이 꽉 들어서 공부가 안 될 때는 공부가 아닌 줄 알고 공부 됐다는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보통 공부해 가다 이상한 경계가 좀 나면, 이것이 견성이 아닌가, 성불이 아닌가, 또는 내 공부가 좀 깊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많이 일으키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공부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잠이 꽉 들어서도 공부가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잠이 들어서도 공부가 되지 않으면 아직 공부가 안 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도적놈을 잘못 알아 자식으로 삼는 것과 같아서 손해만 있을 뿐 이익은 없습니다.”
- 성철, <화두 참선법> 김영사, 70쪽.
깨달아 부처, 도인이 되려면 깊은 잠에서도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두 공부를 조금하다가 어떤 경계를 체험하고는 공부라 착각할 수 있는데, 이것을 경계하면서 거기에 머물지 말고 더 화두를 밀고 나가야 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철 스님만 오매일여를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간화선을 제창하신 대혜 스님도 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간화선으로 깨치고 직접 중국으로 가서 조사에게 깨침을 인가 받아온 태고 스님과 나옹 스님도 이것을 말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요.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