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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불교윤리 ]
동물권리의 시대와 불교의 동물 49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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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  2024 년 3 월 [통권 제131호]  /     /  작성일24-03-04 11:02  /   조회1,73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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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변 공원에 나가보면 아이들과 손잡고 나온 젊은 부모보다 개나 고양이와 산책하는 어르신들이 훨씬 더 많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4에 해당하는 가정이 각종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는 통계를 봤다. 구체적인 숫자로 표시하면 대략 1,500만 명 내외의 인구가 반려동물들과 한집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반려동물 가족이 1,500만 명을 넘어섰다

 

주로 개나 고양이지만 비단뱀과 같은 특이한 종류의 생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 만큼 반려동물과 연관된 각종 산업과 시설도 날로 번창하고 있는 듯하다. 주거지 인근에 동물병원이나 동물미장원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휴가철에는 비싼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보호 시설을 갖춘 동물호텔에 반려동물을 맡기고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반려견 유치원도 있고, 반려동물이 죽으면 정성스럽게 화장해서 납골함에 보관하는 가족들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사진 1. 반려동물의 사진과 함께 영단에 올린 동물 위폐.

 

이런 가운데 일부 불교사찰에서 죽은 동물 영가를 위해 천도재를 지내거나 맞춤형 49재를 대행해 주는 곳이 생겨나고 있어 반려동물을 키우는 불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아직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반려동물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동물장례 업체와 죽은 동물들을 

위한 종교행사도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불교가 가장 앞장서 동물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위령 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동물들의 영가 사진과 이를 보관하는 전용 축생 법당을 설치한 사찰도 등장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들이 불교의 종교의례를 동물에게까지 적용하려는 적극적인 시도인지 아니면 개인 사찰들이 마련한 특별 종교 서비스 행위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사진 2. 반려동물들을 위한 납골당.

 

다만 동물 49재에서 우리는 적어도 불교가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 지위를 평등한 것으로 본다는 점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불교전통 속에서 나오는 동물 관련 논의를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초기경전에 나타난 ‘차별적 평등성’의 입장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불교에서는 인간의 열반, 즉 고통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추구하지 인간이 아닌 기타 다른 존재들의 그것을 추구하거나 도모하지는 않는다. 오직 인간의 몸을 받고 이 세상에 나왔을 때만 깨달음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경전들 속에서 불살생이나 대자대비라는 불교적 도덕 가치들은 동물들의 고통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경전 속의 언급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주1)

 

사진 3. 데미온 키온의 책 Buddhist Ethics:A Very Short Introduction.

 

이와 관련하여 이안 해리스는 동물들에 대한 초기불교의 태도를 가리켜 그것은 근본적으로 수단적인 것이었다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바 있다. 동물들에 대한 수행자들의 배려나 관심은 어디까지나 수행의 최고 목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휘된 사무량심의 이중효과적인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행자들은 동물을 포함한 자연세계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질 것을 요청받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태도는 오히려 다른 자연 존재들보다 수행자 자신의 정신적 고양을 도모하기 위한 측면이 더 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삶의 수레바퀴(bhavacakra)’ 또한 일체중생의 도덕적 평등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들 사이의 위계질서와 삶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천상계라는 서로 다른 여섯 개 영역들은 각각 독립된 지위와 본성을 부여받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는 엄연히 위계적 가치 질서가 존재한다.

 

동물들과 인간은 각각 서로 다른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불교에서는 전자보다 후자로 태어나는 것을 확실히 선호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특권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으로의 환생이 다른 영역의 존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하더라도 오직 인간만이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라는 결론에 곧바로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여섯 가지 영역으로 구분되는 삶의 수레바퀴는 존재들 간의 상징적 차별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지 인간 중심주의적인 가치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데미언 키온에 따르면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세계에 대한 불교의 태도는 복합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이기까지 하다.(주2) 그것은 무엇보다도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 세속적 고통으로부터의 완전한 해탈을 추구하는 종교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세계는 열반에 이르는 과정에서 하나의 도구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뿐 그것 자체가 곧 불교의 관심사일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주3) 초기불교의 이러한 자연관은 불교를 막연히 생명·생태·친화적일 것으로 여기던 사람들을 조금 좌절시킬지도 모르겠다.


선문헌에 나타난 ‘무차별적 평등성’의 입장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을 포함한 유무형의 모든 생명체에게도 붓다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즉 불성을 인정하고 있는 선불교의 가르침은 미래지향적 생명 평등사상의 인식과 실천에 있어서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관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관련하여 서재영은 선불교의 어록들에 나오는 선사들의 생명생태주의적 사고의 흔적들을 면밀히 추적, 정리하여 한 권의 단행본으로 출판한 바 있다.(주4)

 

사진 4. 서재영의 책 『선의 생태철학』(동국대출판부).

 

특히 그는 민가와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이나 동굴 같은 곳에서 참선수행을 하던 스님과 동물들 간에 일어난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자료를 찾아내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어 우리들의 지적 흥미를 자극한다. 그에 의하면 출가자와 동물들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선사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을 옆에서 함께 지켜본, 말 그대로 반려자와 같은 동물들이 있다. 이들은 종종 서로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원숭이 무리들과 벗하며 도토리와 밤을 주워 식량으로 삼았다는 위산영우, 낙낙장송의 가지 위에서 까치와 함께 살았던 조과화상, 사슴과 금낭조의 시봉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 행인선사, 암자 주변에 호랑이뿐만 아니라 이리와 사슴 떼가 뛰어놀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던 우두법융, 동물들이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는 범일국사 등의 이야기가 이런 사례에 속한다.

 

사진 5. 영천 천룡정사의 축생법당.

 

둘째, 선사들과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고 수행생활을 외호하던 동물들이 있다. 이런 유형의 사례로서는 공양미를 강탈하려는 도둑들로부터 호랑이가 공양미를 지켜주었다는 남양혜충, 호랑이를 법제자로 두었던 선각선사 등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셋째, 불법을 듣거나 진리를 설하는 동물들도 있다. 이는 똬리를 틀고 자신의 몸을 휘감았던 뱀에게 삼귀의를 일러주고 교화시킨 가비마라존자, 동시에 일곱 줄씩 읽어 내려가며 60일 만에 『법화경』을 모두 암송하자 이를 지켜본 염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경청했다는 영명연수, 항상 따르던 5백 마리의 학에게 게송을 일러주어 깨닫게 했다는 학륵나존자, 까마귀에게 설법을 한 위산영우, 원숭이의 울음과 새소리와 초목과 숲이 모두 설법을 한다고 말한 천태덕소, 제비 새끼 한 마리가 훌륭한 법문을 한다고 칭찬한 현사사비 등의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겠다.

 

사진 6. 반려동물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득 차린 영단.

 

다만 이런 선불교의 동물 이해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여섯 수레바퀴의 위계질서 속에서 파악한 테라바다 불교의 입장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점과 그와 같은 관념이 과연 현실적으로 실천가능한 행위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완벽한 이론보다 소박한 실천이 먼저다

 

경북 영천시 천룡정사의 축생법당 건립과 강원 강릉 현덕사의 동물 천도재 관련 신문기사를 읽었다. 동시에 반려동물 가족 1,500만 명 시대의 불교적 동참방법이 과연 무엇일까도 고민해 봤다. 잠정적인 결론은 이런 불교사찰의 움직임이 동물권리의 신장과 사회의식의 제고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불교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삶과 행복을 평등한 입장에서 똑같이 소중하게 다룰 것을 가르치는 종교전통이다. 이는 모든 계목의 으뜸인 불살생계에서도 그 취지가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우리 불자들은 처음부터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자비심을 베풀어야 할 도덕적 당위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앞으로 불교가 동물의 권리에 대한 교단적 차원의 관심과 더불어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다양한 방식의 종교의례나 행사를 마련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로 보인다.

 

사진 7. 반야용선에 반려동물의 이름이 적힌 위폐가 놓여 있다.

 

동물 천도재와 동물 49재의 시도는 대단히 시의적절한 포교방법이자 전법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잠재적 불교인구가 그만큼 많이 존재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갖 형태의 각종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역할과 기능을 대신할 미래의 디지털 사회에서 인류는 전통적인 의미의 종교활동보다 자신의 현실적 관심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영역에서 종교적 신념을 해석하고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점증하는 고령 인구와 출산율의 격감은 인간의 소외감과 고독을 달래줄 반려동물의 존재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친자식과 같은 반려동물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불교의식은 분명히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된다. 관련 학자들의 교학적 연구와 함께 범교단 차원의 능동적인 관심과 지원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럴듯한 말과 글의 반복보다는 일상생활 속의 이런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불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환기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각주>

(주1) Ian Harris, “Attitudes to Nature”, in Peter Harvey ed., Buddhism(London; Continuum, 2001), pp.244-248.

(주2) 데미언 키온 지음, 졸역, 『불교 응용윤리학 입문(Buddhist Ethics: A Very Short Introduction)』(2007), pp.78-80.

(주3) Ian Harris(2001), pp.249-256.

(주4) 서재영, 『선의 생태철학』(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07), 제4장, 6장, 7장 및 8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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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동국대 국민윤리학과 졸업(문학박사). 영국 더럼 대학교 철학과 방문학자 및 동국대 문과대 윤리문화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로 있다. 역저서로는 『불교윤리학 입문』, 『자비결과
주의』, 『불교의 시각에서 본 AI와 로봇 윤리』 등이 있고, 공리주의와 불교윤리의 접점을 모색하는 다수의 논문이 있다.
hnk@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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