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선지식들의 오매일여
페이지 정보
박희승 / 2015 년 12 월 [통권 제3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515회 / 댓글0건본문
「고경」에서는 ‘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고우 스님은 출가 후 평생 선원에서 정진해 오셨으며, 지금도 참선 대중화를 위해 진력하고 계십니다. 화두 참선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효과에 이르기까지 고우 스님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 편집자
대혜 스님의 오매일여
화두 참선을 제창하신 대혜(大慧, 1089~1163) 스님은 『서장』에서 당신이 깨치는 과정을 자세히 말하면서 꿈 속 공부와 오매일여를 강조합니다.
스님은 『서장』의 「향시랑 백공에게 답함」이란 편지에서 “깨침과 깨치지 못함, 꿈과 현실이 하나인가?” 하는 물음에 “이것은 한 조각의 인연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즉, 깨달음과 못 깨달음, 꿈과 꿈 아닌 것이 모두 연기이니 실체가 없다고 보면 하나입니다. 이것을 분별심으로 대하면 양변에 빠져 혼란이 일어나지요.
그래서 대혜 스님은 『능엄경』에 나오는 “깨친 사람은 꿈이 없다.”는 부처님 말씀으로 꿈과 현실이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도리어 세상을 보건대 오히려 꿈속의 일과 같다고 하니, 오직 꿈은 전체가 망상인데 중생이 전도되어 일상 눈앞의 일을 실제라고 생각하고, 다만 전체가 꿈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 가운데에 다시 허망한 망상으로 생각을 엮어서 분별심이 어지럽게 나는 것을 실제의 꿈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은 꿈속에서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전도된 가운데 또 전도된 것임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 대혜, 『서장』, 「향시랑 백공에게 답함」
다시 말하면, 꿈과 현실이 하나인데 착각에 빠져 분별망상으로 꿈과 현실을 나눠보아 혼란에 빠지지만, 그것은 모두 꿈속에서 꿈을 보는 것처럼 허망한 것입니다. 자신이 본래 부처인 줄 모르고 착각에 빠진 사람은 그 살아가는 자체가 꿈과 같은데 그 꿈속의 삶에서 다시 꿈 이야기를 하니 얼마나 허망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면서 대혜 스님은 당신이 서른여섯 살 때 막혔던 공부 이야기를 해줍니다. 스님은 19세에 어록을 보다가 깨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천하를 다녀 봐도 당신만큼 아는 이가 없어 보였고, 또 깨어 있을 때는 부처님께서 가르친 것을 의지하여 실천하고 부처님께서 야단 친 것은 감히 어기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깨어 있는 일상에서는 여여하니 스스로 만족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던 중 꿈에서 금은보화를 얻으면 기쁘기 한이 없고 어떤 사람이 칼이나 몽둥이로 겁박하거나 악한 경계를 만나면 두려워 떨다가 깨었습니다. 대혜 스님은 “스스로 살펴보니 이 몸이 있어도 잠들었을 때 이미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데, 하물며 지수화풍이 흩어지고 여러 고통이 성하게 일어나면 어찌 윤회를 받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러 바야흐로 처음 바쁘게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대혜 스님은 스스로 깨쳤다고 생각하며 지내다 꿈속에서 역경계를 맞아 공포심을 느끼고는 깨치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스승인 담당문준 스님이 돌아가실 때 원오 스님을 찾아가 공부를 마치라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원오 스님을 찾아가니 이렇게 말해줍니다. “네가 말한 허다한 망상이 끊어지는 때를 기다려야 너는 저절로 오매일여(寤寐一如)에 이를 것이다.” 대혜 스님도 처음이 말을 듣고는 믿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의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는 믿음을 일으켜 다시 공부를 살펴 마침내 확철대오를 합니다.
“처음 듣고는 믿지 못해서 매일 내가 돌아보니, 자고 깨는 것이 분명히 두 조각이었습니다. 어떻게 감히 큰 입을 열어 선(禪)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나깨나 한결같다〔寤寐一如, 『능엄경』〕’는 것이 거짓말이라면 나의 이 병은 제거할 필요가 없겠지만, 부처님 말씀이 과연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면 이는 내가 통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뒤에 선사가 ‘모든 부처님의 출신처에 따뜻한 남풍이 불어온다’고 한 말을 듣고, 홀연히 가슴에 막힌 물건을 없애고 바야흐로 부처님의 말이 참된 말이며, 진실한 말이며, 한결같은 말이며, 속이지 않는 말이며, 거짓 없는 말이며, 사람을 속이지 않는 참다운 대자비라, 몸을 가루로 만들어 목숨을 바쳐도 가히 갚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 대혜, 『서장』, 「향시랑 백공에게 답함」
이것이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 스님이 깨달음에 이른 길입니다. 대혜 스님 역시 처음에는 오매일여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선지식의 말씀을 듣고 공부를 돌아보니 옳은 말씀이었지요. 깨어 있을 때는 여여했으나 꿈에서는 분별망상이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부처님과 조사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신 자나 깨나 일여한 경지를 투과해서 언하대오한 것입니다. 깨어 있을 때뿐만 아니라 꿈속이나 잠이 들었을 때도 일체 분별망상이 없어야 깨달음이지요.
이와 같이 깨달음을 성취한 대혜 스님은 부처님과 역대 조사스님들의 말씀이 진실되다는 것을 거듭 거듭 찬탄하며 그 길을 일러주신 대자비에 온 몸을 가루로 만들어 보답할지라도 부족하다고 감동어린 말씀을 하십니다.
고봉 스님의 오매일여
대혜 스님과 더불어 간화선사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분이 고봉(高峰, 1238~1295) 스님입니다. 대혜 스님의 『서장』 다음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간화선 교과서가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입니다. 고봉 스님은 『선요』에서 당신이 오매일여를 투과해서 깨치는 과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대의 선지식인 설암 스님을 찾아 가니 이렇게 묻습니다.
“‘낮 동안 분주할 대에도 한결같느냐?’
‘한결같습니다.’
‘꿈속에서도 한결같느냐?’
‘한결같습니다.’
‘잠이 꽉 들었을 때는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느냐?’
여기에서는 말로써 답할 수 없으며 이치로도 펼 수가 없었다. 5년 뒤에 곧바로 의심덩어리를 두드려 부수니 이로부터 나라가 편안하고 조용하여서 한 생각도 함이 없어 천하가 태평하였다.”
- 고봉, 『선요』
고봉 스님은 설암 스님을 찾아가기 전에 이미 몽중일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공부를 더 밀고 나가기 위해 선지식을 찾아간 것입니다. 여기에 이르러 설봉 스님이 잠들었을 때 공부가 어떠한지를 묻자, 고봉 스님이 꽉 막혔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화두를 타파하니 천하가 편안해졌다는 말입니다.
간화선의 대종장 대혜 스님과 고봉 스님이 공히 자나 깨나 한결 같은 오매일여를 투과하여 확철대오하였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려시대에 간화선이 전해져 우리나라에서도 화두를 타파하고 인가까지 받은 도인이 나왔지요. 대표적인 분이 태고보우 스님과 나옹혜근 스님입니다.
태고와 나옹 스님의 오매일여
태고(太古, 1301~1382) 스님은 지금 조계종에 중흥조로 모셔진 분인데, 『태고록』에서 화두 참구와 깨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화두가) 하루에 한 번도 틈이 없는 줄 알았거든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 때때로 점검하되 날마다 틈이 없게 해야 합니다. 만일 사흘 동안 법대로 끊어지는 틈이 없어,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에도 한결 같고〔動靜一如〕, 말하거나 침묵할 때에도 한결 같아 화두가 항상 앞에 나타나 있되, 급히 흐르는 여울 속의 달빛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헤쳐도 없어지지 않으며 휘저어도 사라지지 않아 자나 깨나 한결 같으면〔寤寐一如〕 크게 깨칠 때가 가까워진 것입니다.”
- 『태고록』, 「방산거사 오제학수에게 답함」
태고 스님과 같은 시대를 살다 가신 나옹(1320~76) 스님도 “공부가 이미 동정(動靜)에 간격이 없으며 오매(寤寐)에 항상 일여하여 경계에도 흩어지지 않고 넓고 아득하여도 없어지지 않는다(『나옹록』)”고 말씀하시어 화두가 자나 깨나 한결 같으면 깨달음이 가깝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간화선사들은 중국과 한국 공히 화두가 자나 깨나 한결같이 되어야 깨달음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으니, 간화선에서는 이 오매일여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