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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미얀마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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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5 년 12 월 [통권 제3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34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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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에 부산 고심정사 불교대학 졸업생들과 의논이 되어 인도 불교 8대성지와 아잔타 석굴, 엘로라 석굴, 산치 대탑을 둘러보는 12박 13일 일정의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두 번째 인도 불교성지순례라 설렘이 덜했지만 처음 가는 신도들은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8대 성지 중 한 곳인 ‘상카시아’ 참배 여부였습니다. 첫 번째 인도 성지순례 때도 ‘볼 것이 없고 고생만 한다’는 주변의 여론이 많아서 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그 상카시아 성지순례 대신에 네팔의 히말라야 설산을, 에베레스트 설산은 보지 못하더라도 안나푸르나 설산 정도는 멀리서 보기라도 하는 것이 어떤가하는 의견을 대중들에게 전했습니다. 그 결과 “불교 8대 성지순례가 주목적이니 상카시아 성지를 꼭 참배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아잔타 석굴 참배를 앞두고 마침 좋은 의견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잔타 석굴을 제대로 참배하려면 아잔타 석굴 전망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아잔타 석굴로 내려가면 20분~30분이 걸립니다. 내려가면서 아잔타 1굴에서부터 25굴까지 전체를 조망하는 경치는 가히 일품입니다. 그리고 왼쪽 저 높이로는 강물이 흘러와 폭포가 되어 떨어져 밑에 소를 이루어 아잔타 석굴을 밑에서 휘돌아 나가는 경치를 파노라마처럼 보는 정경은 아잔타 석굴 순례를 더욱 감격스럽게 할 것입니다.”

 


아난다 사원 전경. 

 

그 조언을 따라 가이드에게 특별히 미리 부탁하여 아잔타 석굴 전망대에서 버스를 내려 아잔타 석굴 좌우와 하늘을 잠시 바라보며 내려가는, 저 멀리 폭포 물소리도 들리는 듯 하는 그 길은 정말 감격적이고 환상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첫 순례 때 주차장에서 내려서 올라와 아잔타 1굴에서부터 25굴까지 둘러보던 그때의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다른 대중들은 초행길이니 얼마나 감격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주지스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다른 영문은 모르고 아잔타 석굴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어서 엘로라 불교 석굴과 주변의 장대한 힌두교 석굴들에 넋을 잃었습니다. 다음에 산치 대탑을 참배하면서 2000여 년 넘는 세월동안 일부는 훼손되었지만 아름답고 생생한 모습의 조각으로 부처님의 일생이 고스란히 조각되어 있는 동문, 남문, 서문, 북문에 에워싸인 산치 대탑은 우리들에게 아쇼카 왕과 그 연인에 얽힌 얘기와 아쇼카 왕의 왕자 마힌다와 공주 상가밋다가 스리랑카 불교 포교에 앞장선 얘기는 새삼 가슴 여미게 하는 거룩한 불교유적이었습니다. 쿠시나가라, 왕사성, 녹야원, 보드가야 대탑을 순례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타지마할을 마주하고선 모두들 그 웅장하고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 듯 했습니다.

 


미얀마의 상징 쉐다곤 파고다. 

 

그리하여 드디어 ‘상카시아 성지’로 출발하였습니다. 아침 5시부터 준비하여 출발하였는데 하루 종일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넓은 들판을 달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도솔천에서 어머님이신 마야 부인을 친견하시고 100일 만에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신 곳이 상카시아 언덕으로서 옛날에는 그 사다리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하나 지금은 흔적으로 이야기만 전해오는 곳이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 저녁 늦게 도착한 성지로서는 “정말 볼 것이 없고 헛고생만 하였다.”는 불경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정사에서는 부처님이 머무셨다는 향실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부처님께서 곁에 머무시는 듯 환희를 느꼈습니다.

 

인도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신도님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인도 불교성지순례에서 아잔타 석굴, 엘로라 석굴, 산치 대탑을 참배하면서 크나큰 감격을 다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8대 성지순례는 보드가야 대탑 참배를 제외하면 녹야원 등 다 한국의 수준에서는 폐사지에 가까워 마음 깊은 곳에 부처님 유적이니 반갑고 그리운 마음 가운데 무언가 서운한 감정을 지을 수 없는 아쉬움이 가득하리라 생각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이런 서운함과 아쉬움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얀마 불교성지순례라 생각합니다.”

 

그 당부의 말 때문인지 인도순례의 주축이 되었던 분들을 중심으로 해서 지난 11월 4일 아침 10시에 부산 김해공항을 출발하여 10일 아침 5시 50분에 미얀마 불교순례여행을 마치고 김해공항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 예정은 3~40명을 모으는 것인데 많은 신도분들이 동참하셔서 신도 91명과 스님 5명, 총 96명이 미얀마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팡도우 사원에서 자리를 같이 한 고심정사 순례단원들. 


 

되돌아보니 1993년 11월 4일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크고 작은 일에 정성을 쏟아부었던 무관 스님을 위시하여 당시 국장스님들과 법계성 보살님, 보살님의 도반 몇몇 분들과 7박 8일의 미얀마 성지순례를 1994년 2월에 다녀온 것이 최초의 미얀마 성지순례였습니다. 그리고 9년 전 고심정사 신도님들과의 미얀마 순례 여행, 6년 전에 동대 불교 지도자 과정을 졸업하고 미얀마 불교순례를 다녀오고 이번에 고심정사 신도님들과 불교대학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함께 네번째 순례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얀마 북부지역에 다녀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의 신심, 그리고 쉐다곤 탑에 부처님 머리카락이 보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굳건한 신심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20여 년 동안 네 번을 다녀온 미얀마 성지순례는 나름대로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여행에는 가기 힘든 짜익띠요의 황금 흔들바위까지 참배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 기억에 남는데 이번에는 일정이 빡빡하여 거기까지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처음 바간을 방문하여 금빛 찬란히 빛나는 탑상부를 바라보면서 고개가 절로 숙여지던 아난다 사원이었는데, 내부에 모셔져 있는 각각의 입상불은 그 찬란했던 온몸의 보석들은 식민시대에다 도굴당하고 금박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퇴색된 모습에 가슴이 시렸던 기억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4방의 부처님들이 금칠이 되어 있어 다행이었으나, 멀리서 본 그 아름다운 아난다 사원의 금색 빛은 사라지고 풍화된 벽돌색이 붉게 드러나 있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얀마 성지순례 때는 꼭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은 맨발로 참배케 하는, 그리고 소매 없는 옷이나, 짧은 옷을 입고는 보살님들이 성지를 참배할 수 없는 제한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뒤꿈치를 다쳐 장애 5급으로 신상이 변한 저로서는 맨발로 흙바닥을 걷는다는 것이 다치기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이만저만한 발바닥의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신도님들과 갔으니 퍼질 수도 없고 앞장은 서지 못하더라도 뒤따라서는 다녀야 했으니 바간에서의 하루는 정말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신도님들은 오랜만에 자유롭게 맨발로 땅을 밟으면서 걸으니 오히려 동심으로 돌아가 그렇게 즐거워들 하면서 힐링의 기분을 만끽하고 푸근해 하는 모습은 보기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미얀마 시골의 린야웅치 사원에 대중들의 마음을 담은 보시를 전하고 나오는 원택 스님. 옆은 사원의 부주지스님이다. 

 

인도 여행에서의 일을 경험 삼아서 “다섯 스님들이 정성들여 천도재를 지내니 성의껏 보시하십시오. 그 보시금은 그날 그곳의 가난한 절에 보시할 것입니다.”고 하여 마침 헤호 성지로 가면서 불사하는 가난한 절을 만나서 좋은 보시를 할 수 있어 저는 물론이고 신도님들도 좋아하셔서 다행이었습니다. 헤호의 성지순례는 뜻밖의 기쁨을 신도님들께서 누린 듯합니다. 만달레이에서 비행기로 30여 분 걸려서 도착하여 헤호까지 한 시간 여의 시간이 걸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점심 먹으러 나선김에 팡도우 사원에서 참배와 영가 천도를 모시고 여기저기 민속촌을 돌아보았습니다. 고양이 사원에는 뜻밖에도 미얀마 고불들이 모셔져 있어서 방문을 감사해 했습니다. 해질 무렵에 호텔에 도착하는 동안 5인승 쾌속보트를 타고 인레호수를 달리는 기분은 또한 그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랑군으로 돌아와 절에서 공부하는 학인스님 100여 분에게 신도님들께서 한 분 한 분 직접 남방가사를 한 벌씩 드리는 행사를 가질 수 있어서 정말 뜻깊었던 것 같습니다.

 

100여 명의 스님들과 80노구의 스님께서 환영사를 해주시고 주지, 부주지, 3직 스님 등이 참석 하여서 신도 대중들에게 『자애경』을 남방언어로 독송해주셔서 신도님들이 정말 기뻐하시는 좋은 기억을 담고 왔습니다.

 

마지막 날 양군에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이 아니라 팔을 머리에 괴고 휴식하시는 부처님 상의 80종호 32상의 두 발바닥에 새겨진 문양들을 경배하면서 마지막 조상천도와 가족생축과 수능 및 시험합격기원 기도를 회향하였을 때 모두들 감격해 하시는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몇 분의 보살님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 다른 조상의 영가를 모시고 미얀마의 좋은 성지에서 천도재를 올리니 너무너무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하며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랑군에 머물렀던 11월 8일 일요일은 미얀마 총선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무슨 불상사는 없을까 내심 초조하였는데 오히려 거리는 한산하고 성지순례 하느라 여기저기 다녀도 아무런 소란도 없고 오히려 음식점도 시장도 문을 닫게 하여 편안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 월요일은 길이 복잡하여 다니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총선거 덕을 우리는 톡톡히 본 것”이라며 현지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크게 다행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날씨가 흐리기는 했지만 쉐다곤 황금대탑의 순례는 모든 신도님들의 환호와 탄성과 신심을 담아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2000년의 불교의 역사와 전통을 오늘도 고스란히 지켜가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에게 한없는 존경심을 갖게 한 여행이었습니다. 앞으로 미얀마 성지순례를 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불보살님의 지혜와 자비가 항상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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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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