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신비한 경계와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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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6 년 2 월 [통권 제3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919회 / 댓글0건본문
참화두 참선할 때 공부가 조금 깊어지면 경우에 따라 신비한 경계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신비한 경계라 함은 우리의 일상 의식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다가 수행하면서 마주치는 경계(境界)를 말합니다. 꼭 화두 참선만이 아니라 염불이나 주력, 기도하는 도중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깨친 중도연기를 이해해서 정견을 세우고 화두 참선을 하는 사람은 이런 경계가 잘 일어나지 않고 또 일어나더라도 쉽게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화두를 성성하게 또렷이 챙겨나가면 경계 없이 공부가 잘 됩니다.
한 스님은 출가해서 강원 공부한 이래 평생 참선을 해왔지만, 신비한 체험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그런 체험을 한 도반 이야기를 들으면 호기심이 나서 신비한 체험을 해봤으면 하는 망상도 있었지만, 강원 공부할 때 『서장』과 『능엄경』 같은 경전과 선어록을 통해서 그런 현상과 대처법을 알고 있었기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미 입적하신 스님입니다만, 종단에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분께서 젊은 시절 발심하여 어느 암자에서 관음 기도를 하다가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네 머리에 망상이 들어 있어 공부에 진전이 없으니 그 머리를 어떻게 해라’ 하는 말씀을 하고 가셨답니다. 스님은 기도 중에 나타난 관음보살의 말을 실제 그대로 믿고는 망상을 없앤다고 당신의 머리를 어떻게 해서 많은 피를 흘리다가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답니다.
또 어떤 스님은 어느 유명한 기도처에서 기도하다가 역시 꿈에 관음보살이 현몽하여 ‘네 생식기가 수행에 장애가 되니 그걸 없애야 도를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실제 관음보살의 말씀대로 당신의 생식기를 스스로 잘라 방에 피가 낭자하여 응급실로 실려 간 일도 있습니다.
또 어떤 큰스님은 젊은 시절 한 암자에서 ‘옴마니반메훔’ 백일기도를 하다가 70일 쯤이 되자 몇 십리 밖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고 누가 언제 무슨 일로 온다는 것을 알아맞히는 신통력이 생기더랍니다. 너무나 신기한 능력이 생겨나자 스스로 견성했다는 생각이 들어 백일기도를 중단하고 선지식을 찾아가 인가만 받으면 된다고 여기저기 도인이라는 분들을 찾아가니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니 신통력은 여전한데 나를 인정하지 않으니 이것은 필시 저 선지식들이 가짜다 하는 생각이 들어 더 큰소리 치고 돌아 다녔답니다. 그러다 6개월이 지나자 신통력이 희미해지며 본래 상태로 돌아가더랍니다. 그 뒤 신통력이란 것도 경계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참회하고 다시 선원으로 가서 참선을 시작했는데, 그 뒤로는 공부에 진전이 없었다고 늘 후학들에게 경계를 조심하라 하십니다. 이것은 실화이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스님들의 체험담입니다.
그러니 만큼 이 신비한 경계를 공부로 잘못 알아 집착하면 외도가 되거나 공부에 큰 장애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경계를 마경(魔境), 즉 마구니 경계라 하는 것입니다. 화두 참선하든 염불, 주력 기도를 하든 불교 수행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런 경계에 대처하는 법을 잘 알아 두어야 하며, 늘 바른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 공부를 점검 받아야 합니다.
신비한 경계는 왜 일어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신비한 마구니 경계가 나타나는 걸까요? 참선하는 이는 화두가 또렷또렷하면 경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공부가 잘 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화두가 안되면서 번뇌망상이 치성하는 사람에게도 경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의식이 어딘가에 머물거나 집착하고 있으면 깊은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인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경계는 화두 참선에 좀 애쓰고 있으나 성성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번뇌 망념이 빈 틈 사이에서 나타납니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우리 의식을 표층의식과 잠재의식, 그리고 무의식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표층의식은 우리 일상생활의 의식을 말합니다. 이 표층의식 내면에 잠재의식이 있다고 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의식이 표층의식이라면, 잠재의식은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에 있는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표층의식과 잠재의식 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이 무의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평소에 표층의식만 인지하고 살아가는데 잠자다 꿈에 보이는 것이 잠재의식이고, 잠잘 때에 꿈틀대는 의식을 무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두 참선은 화두 하나를 간절히 의심해 들어가 일상생활의 표층의식과 꿈속에서 나타나는 잠재의식, 그리고 잠 잘 때에 움직이는 무의식까지 완전히 정화하는 공부입니다. 이것을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 또는 오매일여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화두가 성성적적 삼매로 바로 들어가서 순일한 경우에는 어떤 경계도 보이지 않고 공부가 잘 되어 갑니다. 하지만, 화두가 성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번뇌 망념이 오락가락 하는 도중에 언뜻언뜻 잠재의식과 무의식이 나타나는 경우를 신비한 경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신비한 경계’라 하는 이유는 일상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하던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런 체험을 하게 되면 신기하고 놀랍니다. 그래서 좀 신비스럽기도 합니다.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내게 상담하러 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선하는데 고양이가 나타나기도 하고 몸에 진동이 오거나 황금색 불덩어리가 보이기도 한답니다. 또 영화 필름처럼 뭔가가 자꾸 반복적으로 보이고, 관세음보살이나 부처님이 보이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참선하는 도중에 화두가 순일하지 않고 별 희한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신비한 경계라는 것도 실은 모두 다 망상입니다. 화두 참선할 때는 화두 이외에는 모두 번뇌망상입니다. 신비한 경계든 익숙한 경계든 일체가 화두를 놓쳤을 때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경계 대처법
그러므로 참선인은 반드시 화두 이외에 일어나는 모든 경계는 망상으로 보아 일체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중도연기를 이해해서 정견을 세운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과 일체 만물이 모두 실체가 없는 연기이고 무아, 공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니 실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부처든 보살이든 그 무엇이든지 있다고 집착하면 양변에 떨어집니다. 양변을 버려야 지혜가 나오고 깨칩니다.
이와 같이 중도 정견은 화두 참선에서도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참선할 때는 오직 화두만 챙겨야 하며, 화두를 놓쳤을 때 나타나는 그 어떤 신비하고 이상한 경계도 망상이니 무아, 공으로 보아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 경계에 머물고 집착하면 실재인 양 착각과 작난이 일어납니다. 특히, 부처님이나 보살님이 나타나는 경계는 현혹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선문(禪門)에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을 씁니다. 참선할 때는 화두 이외에 부처든 조사든 모두 마구니고 망상일 뿐이니 부처든 조사든 부모 생각이 나더라도 일체에 머물지 말고 오직 화두를 간절히 간절히 챙겨나가야 합니다.
대혜 스님은 『서장』에서 ‘경계’에 대하여 이렇게 엄히 경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눈앞 경계에 떨어져 주재(主宰)하지 못하고, 날이 가고 달이 깊어지면 미혹하여 돌이키지 못하고 도력(道力)이 업력(業力)을 이기지 못합니다. 마군(魔軍)이 그 틈을 타고 들어오면 반드시 그 마군에게 잡히어 죽을 때에도 또한 힘을 쓰지 못합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 대혜, 『서장』, 「이참정에게 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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