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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돈오점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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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6 년 7 월 [통권 제3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98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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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은 본래부처가 부처되는 것이니 단박 깨침, 돈오(頓悟)입니다. 단박에 깨치니 단박에 닦는 돈수(頓修)이고요. 선은 오직 달, 즉 깨달음만을 사실로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나 방편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선의 특색입니다. 선은 중생과 부처, 깨달음과 미망 같은 대립하는 양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착각된 상대 분별의 세계일 뿐, 중도불이(中道不二)의 절대세계인 선이 아닙니다. 

 

우리가 본래부처이나 중생이라는 착각에서 살아가는 상대분별의 안목으로는 깨달음의 절대세계인 선(禪)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중에서도 돈오와 돈수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참선 수행을 오랫동안 해온 분들조차 돈오와 돈수를 정확히 알고 남에게 설명할 수 있는 분이 많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 역시 강원 공부를 하고 선방에 꽤 다녔어도 돈오점수가 옳고 돈오돈수는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방에서 어떤 경계를 체험하고 무심코 『육조단경』을 보다가 중생과 부처 양변이 무너지고 하나라는 것을 깨달아 방향 전환을 했습니다. 

 


 

 

그래서 직지, 돈오의 간화선을 하는 참선 수행자들도 스스로 본래부처가 부처되는 달 불교를 알지 못하면, 결국 교학이나 남방 위빠사나 수행법에서 말하는 중생이 세세생생 닦아서 부처, 아라한이 되는 손가락 불교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돈오와 직지의 선이 아니니 참선 수행에서 큰 진전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중생이라 생각하고 믿고 부처되기 위해 참선한다는 입장은 부처님이 깨친 중도에 정견이 서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금강산이 어디에 있는지 가는 길도 모르면서 이미 집을 나서 금강산을 가는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선(禪)에 어째서 중생과 부처, 번뇌와 망념이 있다고 보는 돈오점수 수행관이 스며들어 혼돈을 낳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미 성철 스님이 1967년에 ‘백일법문’을 하시면서 소상히 밝혀 놓았습니다(『백일법문』 하권 선종사상편)만,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돈오점수(頓悟漸修)란 무엇인가?

 

돈오점수의 입장은 부처님이 방편으로 말씀하신 경전에 일반적으로 설해져 있습니다. 때문에 남방불교에서 전통으로 삼고 있는 위빠사나-사마타 수행법에서는 중생이 수다원–사다함–아나한–아라한이라는 단계별 수행 차제(次第)가 방편으로 마련되어 있지요. 지금 위빠사나 수행은 훨씬 더 세밀한 수행체계를 말하고 있답니다. 그만큼 구체적이고 자상한 면이 장점이나 한편으로는 매우 복잡하고 단계적이지요. 

 

북방불교권에서도 교학은 중생이 부처되는 양변에서 닦아가는 입장입니다. 반면에 육조 혜능 대사가 정립한 선(禪)은 오직 깨달음세계인 본래성불과 현실극락 입장만을 진실로 보고 그 외 중생과 부처, 깨달음과 미망 등 양변은 방편, 손가락으로 봅니다. 선을 정립한 육조 스님이 중국 남쪽 변방에서 법을 펼 때, 북쪽 낙양과 장안 등에서 크게 활약한 분이 바로 점수(漸修)법을 대표하는 신수(606~706) 대사입니다. 『육조단경』에는 이에 관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수 대사는 오조 홍인 문하에서 결국 깨치지 못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점수 입장은 이후 규봉종밀(780~841) 스님에 의해 집약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보조지눌(1158~1210) 스님이 소개하였습니다. 흔히 보조 스님의 대표 저작으로 소개되는 『수심결(修心訣)』에는 돈오점수 견해가 정리된 구절이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워낙 중요한 대목이라 소개합니다.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두 문이 모든 성인(聖人)이 밟아온 길이라 하였습니다.

깨달았다면 이미 돈오한 것인데 어째서 점점 닦아야 하며, 그 닦음이 만약 점점 닦아야 할 것이라면 어째서 돈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돈오라는 것은 범부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으로 삼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이 참 법신(法身)임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신령한 지혜가 참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해서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치듯이 흘러다니다가 갑자기 선지식의 가르침으로 바른 길로 들어가 한 생각에 심광(心光)을 돌이켜서 자기의 본성을 보면, 이 성품에는 본래 번뇌가 없고, 번뇌가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서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돈오라 하는 것이다.

 

점수라는 것은 비록 본래의 성품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으나 오랜 세월의 습기(習氣)는 갑자기 제거하기 어려우므로 그 깨달음에 의지해 닦고 점점 익혀서 공을 이루고, 또 오랫동안 성인의 자질을 잘 길러나가야 성인이 되는 것이므로 점수라 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이 갖추어져 어른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은 충실하지 못하므로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성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 보조 스님 『수심결』에서

 

『수심결』에는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이 있고, 범부와 성인도 있지요? 벌써 이러면 중도불이의 선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선에는 두 문(門)은커녕 한 문도 없습니다. 그것을 조사들은 무문관(無門關) 또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합니다. 

 

또한 범부와 성인도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범부도 중도연기로 존재하고 성인도 그렇게 존재하니 하나입니다. 둘로 보면 정견이 아니지요. 그래서 돈오와 점수 두 문을 말하는 것은 선의 종지에서 어긋납니다. 또 “깨달았으나 오랜 습기(習氣)는 갑자기 제거하기 어려우니” 하는 대목도 습기를 인정하는 것이 되니 이것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선과는 다르지요? 선문(禪門)에서는 확철대오, 즉 번뇌망념이 완전히 비워진 것을 견성이라 합니다. 아직 미세하나마 뭔가 남아 있으면 돈오라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비유인 어린아이가 세월이 흘러서 성인이 되는 것과 같다고 돈오점수를 설명했는데, 이것도 어린아이와 성인이라는 양변이 있으니 선이 아닙니다. 

 

『수심결』에서 돈오점수 견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개념이 생멸연기(生滅緣起)관입니다. 생하고 멸하는 것이 ‘있다[有]’는 입장으로 연기를 보는 것이지요. 이런 연기관으로 보니 어린아이와 성인이 사람인 것은 같으나 세월이 흘러야 성인이 된다고 하는 것처럼 생하고 멸하는 것이 있고, 있으니 시간 관념이 들어 갑니다. 내가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으니 무아라는 입장이니 생로병사하는 내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내가 있으니 윤회 반복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멸연기가 아닌 중도연기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중도연기가 바로 선입니다. 즉, 범부와 성인도 중도연기로 존재하니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니 본질은 하나입니다. 어린 아이나 성인도 기능과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연기로 존재하니 실체가 없어 무아, 공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불생불멸(不生不滅), 태어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선사들이 흔히 말하는 생사일여(生死一如),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도 같습니다. 생과 사도 겉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은 연기이니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우주 만물을 중도연기로 보는 중도 정견이 선(禪)입니다. 이와 달리 우주 만물을 생멸연기로 보게 되면 생과 사, 중생과 부처, 번뇌와 지혜가 각각 있는 것으로 보아 양변을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닦아가는 점수(漸修)가 옳다는 견해에 이르게 됩니다. 불교의 수행체계로 볼 때 남방의 위빠사나와 교학의 입장에서는 돈오점수 방법으로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것대로 합당합니다. 

 

다만, 조사선・간화선을 말한다면 오직 본래부처, 현실극락 뿐이니 중도연기관이며, 돈오돈수, 대도무문, 무돈무수, 닦되 닦음이 없는 무수지수(無修之修)의 수행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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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20여 년간 종무원 생활을 하다가 고우 스님을 만나 성철스님 『백일법문』을 통독하고 불교의 핵심인 중도에 눈을 뜬 뒤 화두를 체험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불교인재원에서 생활참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유튜브 생활참선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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