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다시 찾은 금강산 신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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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9 년 1 월 [통권 제6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120회 / 댓글0건본문
원택 스님 | 발행인
현대아산이 2018년 11월18∼19일 금강산에서 거행한 ‘금강산 관광 20주년 남북공동행사’에 사회부장 덕조 스님,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 스님과 함께 초청받아 갔다 왔습니다. 앞서 9월18∼20일 2박3일 동안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과 백두산 천지에 다녀온 지 두 달 만에 다시 금강산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신계사 대웅보전 앞에서 선 원택 스님(오른쪽)과 신계사 주지 진각 스님. 2018년 11월 19일 제정 스님 촬영
먼저 떠오른 생각은 1998년 6월16일 50대 차량에 500마리 소떼를 싣고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이어 10월26일에 2차로 소 500마리+1마리를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실어 보내며 평양에 도착했던 고 정주영 회장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1은 1,000마리로 끝이 아닌 앞으로도 계속 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한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정 회장님이 “이번 방문이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는데, 세계의 언론들은 “소떼 방북은 앞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될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튼 기념비적 사건이었다.”고 대서특필 했습니다. 이어 1998년 11월18일 ‘현대 금강호’의 크루즈선이 관광객을 싣고 금강산 장전항에 첫 입항을 했다는 뉴스에 남북 국민들이 흥분했던 모습도 되살아났습니다.
다음 해인 1999년 6월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고산 큰스님을 모시고 5백 여 명의 사부대중들이 조계종단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금강산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소납은 총무부장 소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바닷길이었지만 이번에는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육로로 금강산을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11월18일 아침6시 종로구 율곡로의 현대그룹빌딩 앞에서 출발하여 12시30분쯤 금강산 온정리에 도착해 옥류동 면옥식당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오후3시 현대아산과 북측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공동주관의 기념식이 문화회관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들은 현정은 회장님의 ‘기념사’를 옮겨 봅니다.
“20년 전 오늘 ‘현대 금강호’는 861명의 관광객을 태우고 금강산으로 첫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의 서막을 연 것입니다. 분단 50년 만에 남측 관광객이 처음 북녘 땅을 밟는다는 의미를 넘어 남북을 하나로 잇는 작은 통일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소식을 접한 남북 동포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관심이 금강산에 집중되었고, 환호와 찬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습니다. 그 많던 축하와 갈채는 꿈인 듯 연기처럼 사라졌으며, 근 200만 명이나 드나들었던 금강산에는 남측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입니다. … … 금강산을 시작으로 개성까지 남측 관광객으로 북적였으며 백두산 관광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개성 공단에서 남과 북이 함께 만든 상품은 전 세계로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남과 북을 오가던 발걸음이 멈춰선지 벌써 10년입니다. 과연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금강산 관광의 문이 다시 열릴 수 있을까요? 도대체 얼마나 더 큰 희생과 눈물이 있어야 끊어진 남과 북의 인연을 다시 이을 수 있습니까?”
현정은 회장님의 한恨과 원願이 서린 기념사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1998년 11월18일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2003년 2월14일 육로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시범적으로 열리며 발전해 갔으나, 2008년 7월 있었던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중단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금강산을 관광한 연인원은 197만 여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소납은 제정 스님과 함께 11월19일 신계사를 일행보다 먼저 들르게 되었습니다. 신계사 만세루를 지나 앞마당에서 대웅보전을 바라보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흥이 다가왔습니다. 주위 전각들의 기와지붕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들어가니, 예상했던 바와 달리 잘 관리되고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웅보전의 불보살님들에게 삼배를 올리며 무수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신계사 복원과 관련된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1999년 6월 총무원장 고산 스님 신계사 터에서 ‘복원기원 법회’ 최초 거행.
2002년 4월 『신계사지 지표조사 보고서』 조계종이 발간해 북측에 전달.
2002년 12월 북경에서 조계종(총무원장 정대 스님)과 조불련(박태화 위원장) 합의각서 교환.
2003년 7월 총무원장 법장 스님, 현대아산(주)과 신계사 복원불사 실행 합의서 체결.
12월 『신계사 남북공동 시굴 · 발굴조사보고서』 발간 배포.
2004년 3월18일 금강산에서 조계종(총무원장 법장 스님)과 조불련(박태화 위원장) 실행합의서 체결.
4 월6일 신계사 복원착공식 거행.
당시 총무원장 법장 스님을 대신해 착공식에 참석한 불국사 주지 종상 스님은 “신계사 복원으로 남북통일이 앞당겨 이루어지고 불법이 널리 퍼져 이 땅의 어둠이 빨리 걷히길 바란다.”고 기원했습니다. 2004년 6월 신계사 복원추진위원장으로 종상 스님을 추대하고, 11월에는 신계사 복원추진위원회에서 불사도감으로 제정 스님을 임명했습니다. 11월20일에는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식을 거행했습니다. 당시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참석해 “소실되었던 신계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화합과 통일의 초석을 놓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뜻깊은 자리에 남북지도자들과 사부대중이 모여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법회를 갖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고 경축했습니다.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동분서주하며 진행한 복원 불사를 후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이어서 마무리 합니다. 착공한 지 3년6개월만인 2007년 10월 13일 대웅보전 등 14동의 전각을 모두 복원하고,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낙성법회에서 “신계사 준공을 계기로 금강산을 통일의 상징으로 지켜나가고 남북 불교계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한다.”고 당부하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현대아산(주)의 ‘금강산 관광’을 기회로 남측의 조계종과 북측의 조불련이 힘을 합해 ‘신계사 복원불사’에 뜻을 함께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총무원장 법장 스님과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원력에 우리 모두 깊이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계사 복원불사’가 없었다면 민족화해와 공동번영의 역사적 현장에 불교계가 어찌 자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처음 만난 신계사 주지 진각 스님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신계사에서 남북 공동의 템플스테이를 실행해 보기를 염원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의중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새해에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하루빨리 재개되기를 불보살님께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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