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현대 한국의 종교인, 성철 큰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페이지 정보
원택스님 / 2016 년 7 월 [통권 제3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133회 / 댓글0건본문
지난해 봄쯤 우정사업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성철 큰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을 현대 한국 인물시리즈 네 번째로 종교분야 우표 발행을 준비하고 있으니 허락하신다면 관련 자료를 요청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을쯤 발행할 예정이라고 일을 서두르더니 막상 가을이 저물어 가는데 내년으로 발행이 연기되었다는 통고를 간단히 받게 되었습니다. “내년 언제쯤 발행되는가?”라는 물음에 “아직은 확정이 된 것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금년 들어 봄에 다시 연락이 와 가능한 상반기 중에 우표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일을 진행하면서 우표 문안에 김수환 추기경님은 ‘추기경’이라는 존칭만으로 가톨릭의 큰 어른으로 이미지화 되는데 성철 큰스님은 그냥 ‘스님’으로만 표기되니 ‘조계종 종정’이라는 직함을 표시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우정사업본부에 표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 제안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급기야는 조계종 총무원까지 연락이 닿아서 ‘조계종 종정’이라는 명칭을 표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철스님우편한장
4월이 지나갈 무렵 <월간 우표>에서 6월호에 실릴 성철 스님 우표와 관련한 글을 청탁해 왔습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고민하던 차에 문득 일타 큰스님이 정리하신 성철 큰스님의 행장 비문을 간략히 요약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스쳐 다음과 같이 글을 정리하여 보냈습니다.
퇴옹당 성철 대종사께서는 서기 1912년 4월 6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합천 이씨 가문에 태어나시니 엄부는 상언이시고 자모는 진주 강씨 상봉이셨으며 영주라 이름하였습니다.
천성이 총민하시고 안광이 남 달랐으며 다섯 살에 능히 글을 짓고 시를 쓰니 모두 천재신동이라 놀라하였습니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자치통감’을 마친 뒤로는 남에게 더 이상 배운 바가 없이 스스로 학문을 대성하셨습니다. 일찍이 소년 시절부터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모든 제자백가의 경서와 신학문을 섭렵하였으나 이는 진여(眞如)의 문에 들어가는 길이 아님을 깨닫던 즈음 한 노승으로부터 영가 스님의 『증도가』를 받아 읽고 홀연히 심안(心眼)이 밝아짐을 느꼈습니다.
20세 이후부터 불교에 심취하게 되어 지리산 대원사 탑전에서 용맹정진하기 40여일 만에 마음공부가 동정일여(動靜一如)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화두참선에 확신을 가지고 마침내 1936년 봄 25세에 가야산 해인사로 입산하여 백련암의 동산 스님을 은사로 수계득도하고 29세 때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마침내 칠통을 타파하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셨습니다. 이후로 10여년 가까이 장좌불와(長坐不臥)로 고행정진 하시니 언제나 안목이 투철하여 그 선기(禪機)를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광복 후 36세 때 1947년 가을에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높이 드니 훗날 교단정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44세인 1955년 가을에 대구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으로 옮겨 주위에 철망을 치고 10년을 동구불출(洞口不出)하시며 팔만대장경과 선종어록, 남전대장경, 물리학, 열역학, 위상 수학 등의 개론서와 각종 영문 잡지, 일본 석학들의 불교학연구 관련 신종 서적들을 섭렵하면서 도광(道光)을 깊이 갖추었습니다. 56세인 1967년 7월에 가야산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되시고 ‘백일법문’ 법회를 열어 무량중생을 화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70세인 1981년 1월에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되시어 후학들을 제접하시다 1993년 11월에 세수 82세, 법랍 58세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다비식에는 30리 밖에서부터 인산인해를 이루니 큰스님을 떠나보내는 마음의 숭고함과 애도의 장엄함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스스로 깨쳐서 우주 만법의 근본을 바로 알고 보니, 모든 중생이 부처님 당신과 똑같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절대적이고 무한한 능력만 발휘되면 모두가 스스로 절대자이고 부처입니다. 부처가 따로 있고 절대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 모두가 부처님과 같은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가졌다는 이 말씀이야말로 인류역사상 위대한 발견이라고 모두 탄복하고 칭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곧 ‘마음이 부처(卽心卽佛)’, 오직 자기 마음을 알고 마음을 깨쳐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마음을 깨친다는 것은 꿈을 깨는 것과 같습니다. 꿈속에서 깨어난 사람이 아니면 꿈을 꾸는 것인 줄 모르는 것과 같이 마음을 깨친다는 것도 실지로 마음의 눈을 떠서 깨치기 전에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성철 스님과 원택 스님1
성철 스님이 처음 출가하고부터 16년간 생식으로 지내셨으며 40여 년간 소금을 먹지 않고 소식(小食)으로 일절 간식하지 않고 광목천의 검소한 옷을 입으셨으며 사는 전각에는 단청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성철 대종사께서는 생전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은 산 물은 물” 이라는 종정취임 법어로 세상에 회자되었고 열반 후에는 “우리 곁에 왔던 부처”라는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큰 관심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평생 계율(戒律)을 엄격히 지키셨고, 깨치신 후의 십년 장좌불와의 깊고 높은 수행력과 성전암 동구불출 10년으로 상징되는 높은 학덕과 종정으로 권력에 초연한 모습이 불자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크게 공감을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우표 발행으로 ‘자기를 바로 보라’, ‘남을 위해 기도하라’, ‘남모르게 남을 도우라’ 하시던 큰스님의 가르침이 세상에 널리 퍼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시대에도 성철 대종사의 안목을 갖춘 수행자들이 나와서 국민들의 큰 정신적 의지처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월간 우표> 6월호가 발행되어 잡지를 받아 보고서 제가 썼던 ‘우리 곁에 왔던 부처님, 성철 대종사’라는 글을 읽고서는 우표 발행 취지에 맞게 썼는지 아쉬운 생각을 했습니다. 제 글에 이어 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한 글이 실렸습니다. 김 추기경님에 대해서는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제목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업 신부님이 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허 신부님의 글을 일부 인용해서 정리해 봅니다.
생전에 김 추기경님은 ‘사회는 머리가 좋은 사람들 때문에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많은 사람들로 인해 풍요로워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김 추기경님은 인간 사랑과 생명의 존엄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모든 생명은 예외 없이 존재 자체로 아름다우며 다른 모든 가치들보다 우선해서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상호 화해와 일치는 상대방도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는 귀한 생명임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면 김 추기경께서 말씀하신 대로 더 밝고 더 행복을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각막 기증으로 우리 사회에 나눔과 사랑의 정신이 확산되었고, 장기기증운동이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우리에게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메시지를 주시고 몸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작은 등불을 켜주셨습니다. 아집과 이기심으로 눈이 가려진 채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 자신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나눔의 정신으로 눈을 뜹시다.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김 추기경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진정한 유산이 될 것입니다.
성철 큰스님의 우표에 한문으로 쓰인 ‘不欺自心(불기자심), 자기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말씀과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친필이 눈에 크게 들어옵니다. 불교는 ‘수행종교’, 가톨릭은 ‘봉사의 종교’라는 메시지가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극적인 장면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두 어른을 모시고 기념우표를 제작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성철 스님 문도회’에서는 우표 18장이 담긴 전지 2000장을 신청하였는데, 우표로는 3만 6천장입니다. 성철 스님 우표가 70만장 발행된다고 하니 많은 스님들과 불자님들의 관심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