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의 뒷골목]
나만큼이,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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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6 년 8 월 [통권 제4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306회 / 댓글0건본문
웅녀(熊女)는 100일을 참고서야 사람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30일만 지속하면 무슨 일이든 일상으로 연착륙한다. 고등학교 시절 낯설고 답답했던 독서실이 어느 날 집처럼 느껴질 때 그랬고, 이즈막 체중을 감량하면서 실감한다. 습관은 무섭지만 한편으론 이롭다. 한 달 동안 화를 내지 않았고 욕을 하지 않았다. 부드럽게 말했고 친절하게 대했다.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억지로라도, 웃는다. 그동안 너무 미워하며 살았다. 뭔가,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이’라는 속담의 역설적 의미는 가뭄에도 콩은 난다는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콩의 생명력은 집약과 긴축의 힘이다. 작은 것들은 속이 단단하여 잘 이겨낸다. 배포가 좁으면 배 아플 일도 적다. 진정 안심(安心)을 바란다면 무심(無心)을 이뤄야 한다. 말과 밥과 생각을 줄이는 연습으로 하루를 보낸다. 무엇보다 마음을 열어야, 마음에 물꼬를 터줘야 욕심이 빠져나간다. 남을 위한 일이 곧 나를 위한 일이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이걸 알았다. 머쓱하고 조금은 즐겁다.
요즘은 호흡을 가지고 논다. 아랫배 깊숙이 숨을 불어넣었다가 천천히 뱉는다. 마음이 일어나거나 분노가 꿈틀거릴 때마다 이러고 다닌다. 때로는 ‘옴마니반메’하고 들이마시고 ‘훔’하고 내쉰다. 버릇이 한숨이었는데, 이 녀석이 이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어차피 죽기 전까지는, 삶이란 내 몫이 아니다. 웬만하면 흐르려 한다.
보리달마의 사행(四行)이 새롭게 다가오는 날들이다. 보원행(報怨行). 원한을 갚는 삶. 세상살이가 결국은 무언가를 일정하게 먹고 빼앗고 신세지는 일이니,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억울해 할 것은 없다. 모두가 지은 만큼 받는다. 수연행(隨緣行). 인연을 따르는 삶. 목숨을 앞당겨 끝내지 않으려 한다. 무소구행(無所求行). 특별히 바라지 않는 삶. 반년 동안 빠져나간 16kg의 분노와 미련이 증명한다. 칭법행(稱法行). 그리하여 법이라 부를 만한, 법이라 불러도 되는 삶. ‘이념’이 아니라, ‘약자’가 아니라, 붓다는 ‘사실’을 볼 것을 강조했다. 나만큼이, 고통이다.
달마는 “자기의 본성을 꿰뚫어보면 그대로 부처”라고 말했다. 열심히, 나만 본다. 세속의 시비에 들뜨지 않고 남의 허물에 기웃거리지 않는 자리가 정법(正法)이다. 아, 드디어 나는 왔다.
제57칙
엄양의 한 물건(嚴陽一物, 엄양일물)
엄양 존자가 조주종심(趙洲從諗)에게 물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내려놓아라(放下着, 방하착).”
“아무 것도 없다니까요.”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거라.”
아무 것도 없다는 그 마음까지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없다는 생각도, 망념이다. 없어질까 불안해하게 되고, 있었던 때를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무심(無心)이 이뤄지면 특별한 가르침을 받아야할 필요마저 없어진다.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된다.
삶의 길은 살아있는 한 계속된다. 어디로든 이어지고 어떻게든 살아진다. 길을 잃었다 해서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 해서 잘못한 것은 아니다. ‘방하착’은 표표히 걸어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무슨 의태어 같다. 방하착, 방하착, 방하착, 발걸음에 힘을 싣는다.
제58칙
금강경의 천대(剛經輕踐, 강경경천)
『금강경』에 이르시되 “만일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서도 남에게서 멸시를 받는다면, 전생의 죄업으로 응당 지옥에 떨어져야 할 사람도 금생에 멸시를 받은 까닭에 전생의 죄업을 소멸할 수 있다.”고 했다.
성철 스님의 말씀은 하나같이 탁견이고 옥음(玉吟)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 법문이 가장 마음에 든다.
“자기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결국 저 잘난 싸움 마당에서 춤추는 미친 사람이 되고 말아서 마음을 닦는 길은 영영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이 없는 대(大)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 버리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당하는 사람, 살아나가는 길이 마음을 닦는 길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이뭐꼬』 원택 스님 엮음, 장경각, 2016
인간은 보복을 꿈꾸는 동물이다. 다른 짐승들은 오직 살려고만 하지 복수는 모른다. 당한 만큼 갚아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증오하든 말든 그는 변하지 않는다. 상대의 행위가 아니라 내가 화낸 만큼이 괴로움의 크기다. 나를 낮추면 화도 줄어든다. 실제로 경험했다. 진정으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면, 도인은 천인(賤人)이다. 깨달음을 권력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내가 물러난 자리만이 평화롭다. 삶이 미움이라면 도(道)는 미음이다.
제59칙
청림의 죽은 뱀(靑林死蛇, 청림사사)
어떤 승려가 청림사건(靑林師虔)에게 물었다.
“지름길로 질러서 가려는 학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죽은 뱀이 길에 있으니, 그대는 맞서지 말길 바란다.”
“맞서면 어떻게 됩니까?”
“죽는다.”
“맞서지 않으면요?”
“그래도 피할 곳은 없다.”
“암튼 그럴 때를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망가라.”
“어디로요?”
“깊은 풀숲에 숨으면 찾을 수 없을 거다.”
“스님께서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청림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독기가 한결같군.”
깊은 풀숲이란 청림(靑林)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공부하다가 길을 잃으면 나에게 찾아와 물으라’는 배려의 마음씨로 읽힌다. 가소롭게 핑계를 대거나 어설픈 결론을 내리지 말고. “스님께서도 조심하셔야 한다.”며 제자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한 생각 머무르고 집착한 곳이 뱀들의 무덤이다. 마음에 웅덩이가 생기지 않도록 매사 긴장해야 한다.
하나같이 영리하고 약삭빠르다. 정직하고 겸손한 삶이 도리어 개성이 되어버린 것 같은 세태다. 지름길로 가겠다는 건 힘을 덜 들이겠다는 것이고, 힘을 덜 들이겠다는 건 남의 힘을 빼앗아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손쉽게 얻은 결과는 허물어지기 쉽다. 그리고 손을 잘라서라도 손에 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중생의 욕심이다.
모두가 자기 몸통만큼만 살았다면, 세상이 이토록 아수라장이 되지는 않았으리란 생각. 쇠똥구리는 하루 종일을 기고 기어서 고작 똥을 먹는다. 아니다. 비로소 똥님을 잡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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