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저출가 시대와 한국불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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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6 년 8 월 [통권 제4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89회 / 댓글0건본문
한 달 전쯤 조계종 포교원과 불광연구원 주최로 연찬회가 열렸다. 주제는 ‘저출가 시대와 한국불교의 미래’였다. 연구원에서 일하는 후배가, 교계의 중차대한 문제로 기획된 자리인데 불행히도 날씨가 너무 좋아 방청객이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며, 시간 내서 와달라고 부탁하였다. “뭐? 바빠 죽겠는데 화창한 날 놀러가자면 몰라도 컴컴한 데 앉아서 쪽수나 채워달라고? 조계종에 출가자 줄어든다고 불교 망하냐?” 했다가, 스님들과 일해서 생계를 꾸려왔던 나의 삼십년치 필름이 찰나 간에 지나가며 곧 밥줄이 끊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배운 도둑질이라곤 이거밖에 없고 몇 안되는 인맥도 다 조계종 스님인데 이분들 멸종하면 나또한 무사할 수 없겠다는 연기의 법칙을 새삼 떠올리며 잿밥에 대한 걱정을 안고서 연찬회가 열리는 조계사로 향했다.
발표자 네 분에 각각 토론자가 하나씩 배정되었는데 우연인지 기획인지 발표자는 다 재가자이고 토론자는 다 스님들이었다. 큰 제목 아래 ‘승가의 위상 변화와 재가의 역할 모색’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기획인 것 같았다. 어느 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발표자가 저출가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조계종에서 올해를 출가진흥의 원년으로 정하고 출가를 권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콘서트도 열고 홍보 포스터도 찍어서 사찰과 학교에 돌리는 등 여러 가지 일을 기획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봄쯤인가, 학교 곳곳에 큼직한 포스터가 한동안 붙어 있었다. ‘행복여행 자유여행’이라는 캐치플레이즈 아래 비구 한 분, 비구니 한 분이 걸망을 지고 살짝 돌아보며 미소 짓는 사진이었다. 우선 모델 두 분이 너무 잘생겨서, 보자마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외모에 대해서 뭐라 언급하는 건, 특히 요즘 같은 시절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태도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나같이 억울하게 생긴 사람을 모델로 써야 광고효과가 더 극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지만 혜민 스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걸 보면 단지 홍보부족만이 이유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 분의 발표자는 각각 출가자가 줄어드는 문제에 대해 원인을 짚고 대책과 비전을 제시하였다. 출가자가 줄어드는 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도 아니고 사회전체와 맞물려 있는 복잡한 문제라, 짚어내는 원인과 내놓는 대책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체로 동의하는 점을 들자면, 저출산 고령화라는 시대적 문제가 불교 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종교, 다른 나라도 성직자 수가 줄어들고 있는 걸로 보아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 내부적인 원인으로는 젊은이들에게 절집의 생활방식이 맞지 않으며, 평생을 던지기에는 불교계의 이미지가 좋지 않고 믿고 따를 스승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 원인에 대해 숫자와 도표까지 동원해서 공들여 해주신 발표를 이렇게 멋대로 짧게 요약해도 되는지 죄송스럽다.
원인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감하는 분위기였으나 워낙 문제가 문제인지라 딱히 시원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사회가 변화한 만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과 사찰 운영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과, 재가자와 출가자의 역할분담과 역량강화, 다양한 전법 프로그램 개발, 출가 나이 조정과 출가 형태의 다양화 등이 제시되었다. 대책과 비전에 대해서는 재가 발표자와 출가 스님들 간에 의견이 다 일치하지는 않았다. 재가 발표자들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급한 톤으로 이야기한 데 반해 토론자로 나온 스님들은, 문제는 깊이 인식하나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하자는 쪽이었다. 제도를 바꾸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포교연구실장인 원철 스님은 걸식하는 제도에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청규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백장 스님의 깊은 고민이 있었다면서, 졸속으로 대책을 세워서는 안 된다
는 점을 강조했다.
연찬회를 보면서 좀 아쉬웠던 점이 있다. 스님들이 발표자가 되어 이 문제의 원인을 진단했으면 몸소 체험한 바에서 더 솔직하고 생생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출가를 막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는,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그들이 앞날의 주역이므로 사소한 이야기라도 흘려듣지 말고 잘 새겨서 정책에 반영하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젊은 날에 나는 신심이 부족해서 출가하지 못했다. 옛일을 상기해 보니 봉선사 불경서당에서 경전을 배우던 시절에 선배로부터 출가를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너는 왜 출가 안하냐? 남들은 다 했는데.”하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스님들을 빙 둘러 가리켰고 덕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때 출가하지 않을 이유를 꼽아보라면, 이 얼굴에 머리까지 깎아놓으면 재앙이다, 올빼미라서 새벽에 못 일어난다, 프라이팬 닦기 겁나서 달걀 프라이도 못해 먹는데 행자생활을 어떻게 견디나, 층층시하 절 시집살이는 또 어떻고 등등 지질한 이유가 백 가지는 되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신심이 부족해서인데, 이 한마디로 진단하고 흘려버리는 것은 출가자 멸종 위기의 시대에 대책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람 수 채우기 위해 마구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불교계에서 삼십년 일해 온 친구는 지방 사찰에 출장을 갈 일이 많은데 가 보면 절이 썰렁하다고 한다. 절집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두 분 스님이 살림을 도맡다 보니 감당하기가 힘들고, 그래서 어쩌다 상좌 하나 얻으면 잘 모셔야 한단다. 경력 삼십년 된 또 다른 친구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해준다. 한 노스님이 겨울에 폭설로 쌓인 눈을 치우다가 법당에서 막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부전스님에게 같이 치우자고 했더니, 젊은 부전스님이 “내가 이 절에 눈 치우러 왔느냐?”며 휑하니 돌아서버리더란다. 또 노비구니 스님 한 분은 상좌에게 가진 걸 다 물려준 후에 푸대접 받으며 산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이게 전적으로 출가자 품귀현상으로 빚어진 일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연관성은 있어 보인다. 현실을 들으면 과연 선전문구대로 출가가 자유와 행복을 위한 여행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괜히 머리 수 채워주러 갔다가 머리아파 돌아왔다. 다음날 친구랑 밥 먹다가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교랑 관계없는 친구라서 오히려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는데, 그 친구 대답은 이랬다. “뭘 걱정이야? 월급 주면 될 텐데. 요즘 애들 취직도 안 되는데 편의점보다 훨씬 낫겠네. 대접 받고 월급 받고.” 대꾸를 못했다.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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