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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두 번째 유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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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6 년 11 월 [통권 제4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39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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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23일부터 10월 3일까지 상좌 일봉 스님과 함께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로 처음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9월 2일부터 11일까지의 일정으로 동유럽과 발칸 5개국으로 두 번째 유럽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추석 직전에 떠나려 했는데 여행비가 비싸서 일정을 당겨 일봉, 일지, 일엄 등 상좌들과 함께 여정에 올랐습니다.

 

패키지여행으로 30여 명의 일행은 처음 체코 프라하에 오후 6시쯤에 도착하여 뒤도 돌아볼 새도 없이 바로 오스트리아 수도인 비엔나로 관광버스로 내달리니 패키지여행이라 30여명의 일행이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 비엔나에 도착하였습니다. 한국과의 시차가 7시간이니 9월 2일은 24시간이 아니라 31시간이 하루가 되는 긴 날로 피곤이 밀려들었습니다.

 


쇤부른 궁전 앞에 선 필자 

 

다음날 비엔나 관광에 나섰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쇤부른 궁전을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278년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1세가 초대 황제로 즉위하면서 시작되었고 1918년까지 640년간 유럽정치를 좌지우지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1740년에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여성은 왕위계승자격이 없음에도 황제의 자격으로 1780년까지 40년 동안 통치하며 오스트리아를 근대국가로 발전시켰다 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카를 6세의 장녀로 태어나 프란츠 1세와 결혼하여 5남 11녀의 1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프랑스 대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그녀의 막내딸이라는 사실을 화려한 황금으로 장식된 쇤부른 궁전 실내를 관람하면서 알고서 만감이 교차하면서 중국의 측천무후가 떠올랐습니다.

 

쉰부른 궁전 주위를 종종걸음으로 급하게 둘러보고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서 2층으로 오르니 가이드가 알프스 산맥을 넘는 말을 탄 나폴레옹을 그린 진품 그림과 저 같은 문외한에게 구스타프 클림트 미술 작가의 작품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 슈테판 대성당을 둘러보고 늦은 점심을 먹고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로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오스트리아 관광이라지만 엊저녁에 밤늦게 도착하고 오전 잠깐 몇몇 곳만 보고 떠난다 생각하니 보고 싶은 그 많은 곳을 보지도 못해 너무나 허전하고 아쉽기만 했습니다.

 

부다페스트 가기를 왜 이리 서두르나 했더니 저녁 프로그램이 부다페스트 야간 도나우강 유람선 투어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해거름에 부다페스트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유람선을 타러 올 때만 해도 주변 전경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며 길가의 가로등이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유람선을 타고 한 시간 가량 도나우강을 오르내리며 부다와 페스트 양도시의 언덕진 곳에 지어진 각종 고건축물들에 간접조명이 비춰서 보이는 야경은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클림트의 그림 _키스_ 앞에 선 필자

 

중세풍의 고건물이 간접조명에 비춰진 모습은 헛된 이름으로만 전해지는 모습이 아닌 정말 아름답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현실이었습니다. 도심의 중심에 도나우강이 흐르는데 서쪽의 부다(Buda)와 동쪽의 페스트(Pest) 지구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1839년부터 10년에 걸쳐 건설된 세체니 다리는 도나우 강에 놓인 최초의 다리가 되었으며, 이 다리 건설 이전에는 전혀 왕래가 없던 부다와 페스트를 하나의 도시로 통합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왕궁 주변을 둘러싼 부다가 과거를 상징한다면 1896년 건국 1000년을 기념해 재정비한 페스트는 상업지구로 부다페스트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부다페스트의 전경을 보기 위해 겔레르트 언덕에 올랐습니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전경은 장관이었습니다.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의 어부의 요새, 마챠시 교회를 관광하고 부다페스트 왕궁을 조망하고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웅광장을 둘러보고서는 쉴 틈도 없이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로 이동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자그레브를 간단히 둘러보고 트르기르와 스필릿을 방문하였는데 비가 와서 제대로 살펴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녁 무렵에 남쪽으로 내려와서 보스니아의 ‘네움’이라는 곳에서 묵었는데 23km 정도의 해안선을 이루고 있는 크로아티아와 크로아티아의 땅을 비집고 보스니아국의 꼬리를 박고 있는 기묘한 땅이었습니다.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모습 

 

다음날 아침(9월 6일) 아드리아해안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휴양도시 두브로브니크로 한 시간 반 동안 이동하였습니다.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의 하나이고 두브로브니크의 별칭은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합니다. 두브로브니크의 구 시가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튼튼한 성벽에 둘러싸인 채 중후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유고 내전 당시에는 유럽의 지성인들이 인간 방어벽을 만들어 건물의 폭격을 막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관광 가이드는 성안 구시가지 중심가를 지나면서 여기저기 건물 이름을 들먹거리며 한참을 설명하고 나서는 루사 광장에서 2시간의 자유시간을 가질 것이니 골목골목을 다녀 보시고 무엇보다 성벽걷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이 날은 어제와 달리 날이 쾌청하였는데 점점 더워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경치 좋다는 성벽 길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은데 다리를 다쳐서 걷기가 큰 부담이 되니 쉽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성벽을 보아하니 동문 쪽으로 올라가서 북문 쪽으로 가는데 경사가 상당히 있어 보이고 북문에서 남문으로는 경사가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몇 백 m를 가지 않아서 땀이 비 오듯 하고 속옷은 땀에 푹 젖어오고 있었습니다. 경사진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들었습니다.

 

시원찮은 발걸음으로 나선 것이 잘못이지만 나선 이상 돌아갈 수도 없어서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제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 “저 높은 계단 끝 꼭대기만 쳐다보고 저 높은 곳을 언제 오르지 걱정하며 기죽지 말자. 그래 눈을 저 높은 곳에서 거두어 지금 내 발 밑에 있는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데 집중하자. 그러면 마침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 꼭대기에 이를 수 있겠지!”하고 마음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니 한결 걸음이 가벼워지며 기운이 살아났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제일 높은 북쪽 전망대에 올라서니 주변의 아름다운 붉은 지붕의 주택들과 푸르디 푸른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경관은 압권이었습니다.

 

“힘들고 힘들다.”하고 토설하고 싶지만 꾹 참으며 걸으니 “이제는 내리막길이니 남쪽 전망대까지 천천히 가보시지요?”하고 권했습니다. “포기한다.”는 말은 접고 “한 번 가보자!”하며 나섰습니다. 마지막에 가니 또 길이 갑자기 가파라지며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멀리 보던 시선을 다시 발밑의 한 계단 한 계단에 멈추며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가려 있던 해안선이 확 트이며 넓고 넓은 아드리아해가 한 눈에 가득히 들어왔습니다. 이제 멈추고 내려오려 하니 “이제 한 구비만 더 가시면 성벽 산책을 마칩니다. 한 번 더 힘을 내시지요.”하는 상좌들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하고 한 발 한 발 완주를 목적으로 내딛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동문 쪽으로 가까워지니 안마당으로 내려가라는 안내표지가 나타났습니다.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상의 옷 역시 땀으로 푹 젖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70분이 걸렸습니다. 나중에 안내 책자를 찾아보니 성벽 둘레가 2km이며 성벽 전체를 천천히 산책하듯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2km의 성벽길을 한 시간 넘게 걸으면서 “내가 다리가 아프니 그 먼 길을 어찌 걸을 수 있겠으며 저 높은 경사진 길을 어찌 오를 수 있겠느냐 고만 생각하고 걷기를 포기하였다면 나의 오늘의 아드리아해의 감격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다음날 플리트비체 국립 호수공원으로 갔으나 비를 만나 실패하였습니다. 알프스의 서쪽인구 60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 블레드는 ‘율리안 알프스의 보석’이라 불리며 블레드 호수와 블레르 섬과 블레르 성으로 이루어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구 유고 연방대통령 ‘티토’의 별장이 이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블레르 성안에 있는 고인쇄소에서 수동으로 그림판을 한 장 찍어 기념으로 가져왔습니다.

 

다음 날은 오스트리아의 짤쯔부르크를 방문하여 구시가 광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5층 건물이 모차르트 생가라 하였는데 그냥 지나쳐 버려서 안타까웠습니다. 구시가지로 건너가기 전에 옆의 건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카라얀의 생가라고 하였습니다. 프라하에 늦게 도착하여 저녁 후 그 유명한 체코의 명물 천문시계 앞에 20시 직전에 도착하여 매시간 정시에 이루어지는 천문시계 위쪽 사방 30cm 남직한 창문 2개가 열리면서 예수와 12사도가 차례로 지나가는 퍼포먼스가 60초도 안 돼 끝나는데 그 광경을 보러 시간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환호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을 회고해보니 패키지 여행이라 짧은 시간에 넓은 지역을 다녀야 하는 제약 때문에 꼭 보고 싶은 곳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야 하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너무나 컸습니다. 동유럽의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는 관광산업이 전체의 40~60%에 이르는 문화대국이었습니다. 세밀하게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하루 10시간 가까이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관들이 동유럽과 발칸반도의 아귀다툼의 싸움은 사라지고 평화롭고 미세먼지 걱정없는 청결한 자연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끝없이 달려도 공업단지의 굴뚝 연기를 볼 수 없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느꼈던 말할 수 없는 신성으로 다가오는 마리아의 신앙은 크게 느낄 수 없었습니다. 동유럽도 성당 건축은 역시나 장엄하였습니다. 그러면 동아시아의 불교가 세계에 공헌한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무로 건축하는 목조문화가 돌로 건축하는 석조문화의 공간과 시간을 따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종교문화의 꽃은 건물이 아니라 목판대장경 문화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판대장경은 고려초조대장경(高麗初雕大藏經), 거란대장경(契丹大藏經),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북송(北宋)의 동선사판(東禪寺版) 대장경,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대장경 그리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대장경 등 20여 종의 대장경이 간행되어 불교문화를 이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완벽한 모습으로 가야산 해인사에 모셔져 있는 팔만대장경이 더 위대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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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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