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마당]
“오늘의 언어로 붓다와 대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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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 2016 년 12 월 [통권 제4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20회 / 댓글0건본문
울산대 철학과 박태원 교수 인터뷰
고심정사 불교대학은 매일 저녁 불자들의 열정으로 넘쳐난다. 참선으로 한 주를 시작해 각종 수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강의실은 선(禪)과 교(敎)를 겸비하기 위한 학생들의 의지가 가득하다.
박태원 교수님
수업 중에서도 특히 불자들의 관심 속에 진행되는 것이 바로 박태원 교수님의 경전반 ‘니까야’ 강의다. 벌써 1년이 다되어 가는 ‘명품’ 강의다. 현장의 열기를 함께 느끼고자 강의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2시간이 바람처럼 흘렀다. 여운이 가시기 전에 교수님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울산대로 향했다. 교수님은 1996년부터 울산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학부에서는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2학년 때 우연히 선(禪)을 접하고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선이 너무 좋아 정신없이 이끌렸다고 할까요. 그렇게 공부를 해서 ‘원효의 대승기신론 사상 평가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렇게 직업으로까지 불교 공부를 하는 복(福)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하.”
가슴 속에 담아뒀던 질문들을 교수님께 하나씩 펼쳤다.
‘니까야’ 수업은 어떤 강좌인가요?
▶ 1년 전쯤 고심정사에서 연락이 와 시작하게 된 강의에요. 제 공부의 축은 세 가지입니다. 원효와 선(禪) 그리고 니까야/아함이 전하는 붓다의 법설입니다. 붓다의 법설은 모든 불교 탐구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원효와 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깊이 음미해야하기 때문에 평소 니까야/아함의 내용을 탐구해 온 지도 30여년이 됩니다. 고심정사 경전반 강의를 통해 그간의 니까야 탐구내용을 공유해보고 싶었습니다.
강의를 위해 초기경전의 핵심 내용을 주제별로 선별해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양이 늘어나 두 권짜리 두툼한 책이 됐습니다. 열성적인 고심정사 불자들과 같이 공부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주요 공부 주제는 초기불교이지만 선과 원효 스님 사상을 함께 얘기할 수 있어서 저로서도 많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초기불교가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 사실 초기불교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관심 있던 분야였어요. 제 전공 공부를 하면서 같이 봐 왔습니다.
모든 불교의 교학과 수행론은 니까야/아함이 전하는 붓다의 말씀에서 시작됩니다. 니까야/아함의 내용 그대로가 고스란히 붓다의 말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붓다의 육성을 가장 충실히 전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원음을 직접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에 그 중요성이 있습니다.
원택 스님과 박태원 교수님이 강의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나 방법론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아요. 남방 상좌부전통의 니까야 이해나 그들이 정리해놓은 교리체계나 해석에 의거한 초기불교 이해에는 간과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문제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면서 니까야/아함을 음미해 왔고, 고심정사 강의에서 그 내용을 개진해 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니까야의 각 경전들을 주제별로 재분류하였습니다. 선별한 주제는, <고따마 싯닷따는 어떻게 붓다가 되었는가? -수행과정에 대한 붓다의 육성 회고->, <진리란 무엇인가? -붓다가 일러주는 진리의 기준->, <내 안의 세 괴물 –탐욕, 분노 무지->, <조건적으로 생각하기 –연기법과 일상의 치유->, <어떤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가? -행복의 조건적 이해->, <마음과 언어의 요술–희론->, <‘나’란 무엇인가? -‘무아’인 ‘자기’->, <마음의 수준은 어디까지 올릴 수 있을까? -네 가지 제한 없는 마음 경지(사무량심, 四無量心)->, <알아차려 몸 수호하기 –육근(六根) 수호와 정념(正念)->, <상(相)과 상(想)의 덫에서 풀려나는 두 가지 방법 -위빠사나와 사마타->, <해탈 수행의 지도리 -정념(正念)->, <해탈 수행의 최종 관문 –선정(禪定)->입니다. 각 주제에 해당하는 주요 경전들을 선별하여 가급적 현재의 관심과 언어로 풀어보려고 노력합니다. 불교교학의 전통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은 가급적 피하고 있습니다. 현재어를 통해 나의 이해를 솔직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음미하려고 애씁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 사찰의 불교대학에서 불자들을 만나는 것에 다소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울산대에서는 ‘불교철학과 실존치유’, ‘불교철학 고전선독’, ‘원효의 한마음과 지눌의 참마음’, ‘노자 『도덕경』의 세계’, ‘장자의 사상’, ‘동양문화의 이해’, ‘동양사상의 이해’, ‘붓다와 장자에게 길을 묻다’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학생 대부분은 불교에 대해 거의 모릅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불교를 강의하려면, 그들의 지적 갈증과 수준에 호응하면서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접근해야 합니다. 20여년의 강의를 통해 다양한 실험과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강의에 몰입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간의 노력이 실패하지 않았음을 확인합니다. 시험 답안지를 보아도 ‘내가 대학생이라면 이 정도로 소화하고 쓸 수 있을까?’ 하고 놀랄 정도의 우수한 내용이 많습니다.
고심정사 불교대학 경전반 니까야 강의 모습
고심정사 불자들은 학생들이 지닌 지성적 면모와 더불어 신행적 진정성까지 겸비하고 있어 인상적입니다. 대학생들보다 깊이 있게 소화하는 수행적 기초가 있습니다. 고심정사 불자들 특유의 강한 신행 면모가 니까야 법설의 탐구에 큰 자산으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고심정사 불자들의 열정과 탐구 자세는 저에게도 계발적 자극을 줍니다.
돈점(頓漸) 논쟁이 1980년대 불교학계에 큰 화두였습니다. 그 논쟁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보십니까?
▶ 돈점 논쟁은 불교계 내에서 굉장히 중요한 보편적 진리담론입니다. 한시적으로 ‘반짝’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주제입니다. 다만 앞으로는 다루는 방식과 내용이 성철 스님이나 지눌 스님이 구사했던 언어만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돈점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니까야, 초기불교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또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생생한 현재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지금 여기의 관심으로, 또 풍부하고 깊은 인문학적 그림을 그려가면서 접근해야 합니다. 불교 언어만으로 주변을 맴도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거듭 새로운 내용과 방법론을 추가해 갈 수 있는 관심과 역량 계발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점 논쟁을 불교적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요?
▶ 지금까지의 ‘1라운드’는 원전언어들을 분류하고 비교하면서 간단히 코멘트 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성찰적 단계로 올라서야 합니다. 승화라기보다도 돈점 논쟁을 읽어내는 수준의 버전이 달라져야 합니다. 계속 새로운 버전이 등장함으로써 돈점이 현재진행형으로 덧붙여져야 합니다. 어느 선에서 완결시킬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불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문제입니다. 과거완료형으로 다룬다면 보편화 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언어로 덧붙이고 지평을 늘려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돈점은 깨달음에 관한 논쟁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깨달음’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십니까?
▶ 지금 우리가 당면해 경험하고 있고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면서 만들어가는 삶을 ‘실존(實存)’이라 부릅니다. 깨달음은 이 실존에 필요한 근원적이고 유익한 문제 해결력이자 치유력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실존의 문제들을 불교적 해법으로 푸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근원적 보편성과 일상적 현장 치유력을 겸비해야 합니다.
강의를 하고 있는 박태원 교수님
바로 오늘의 관점에서 불교적 문제 해결력을 확보하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깨달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깨달음의 내용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불교적 깨달음’의 구체적 내용을 포착하고 구현해 갈 수 있는 능력과 준비가 많이 부족합니다. 성급하게 답을 요구하지 말고 불교인들이 공동지성과 협업으로 지속적으로 탐구해가야 합니다.
선(禪)이 지향하는 깨달음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 불교 내외의 문제가 전부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깨달음이 무엇이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개인적으로 선에 너무 큰 은혜를 입어서인지 몰라도, 니까야를 보면서도 놀란 것은 선종의 선(禪)이 확보한 생명력이 붓다와 대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선불교가 지닌 기여분은 의미심장한 바가 있습니다. 선은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불교에서 깨달음 문제는 다소 특수합니다. 한편에서는 깨달음의 문제를 선을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선종의 전통 언어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거나 일본의 메마른 선학(禪學) 이론으로 교학적 방어막을 치기도 합니다. 비판 진영이나 옹호 진영의 방식 모두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도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가 할 수 있는 몫을 하기 위해 장기간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선 폄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 우선 필요한 것은 선학 자체에 대한 탐구가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본 선학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학이 등장해야 합니다. 동시에 선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실참 과정과 그 산물이 보편언어로 전달되어야 해요.
지금 사람들이 쓰는 말로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수님이 직접 제작한 교재 _주제로 만나는 부처님_
실참의 방식과 과정 및 그 성과물이 현재인들의 언어와 삶에 접속하여 설득과 공감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선어록에 나온 말들을 동어 반복하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선종 구성원들이 현재인의 언어와 삶과 만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지적으로 설득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으며 인문학적 통찰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인들을 위한 교과과정부터 사찰 기능의 재구성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진단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고승법회’와 같은 것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얼마 전 서강대 서명원 교수가 성철 스님과 군부독재정권의 ‘공진점’을 연결시킨 논문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또 최근에는 같은 내용의 영문을 한글로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평하실 수 있습니까?
▶ 학문을 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전제하는 사유의 수준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구의 균형성과 정밀성입니다. 서 교수의 글은 그런 기대에 비추어보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좀 의외였습니다.
왜 그럴까 하는 의아심마저 들었습니다. 열린 구도자라는 평을 듣는 사람의 수준이 이 정도일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서명원 교수의 논문에 대한 비판은 불교학계에서도 상당히 거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다 진지하고 과학적인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지금의 한국불교학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 한국불교학이 이제는 성찰적 단계로 가야 합니다.
‘박물관 불교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문헌 연구에 머물고 교학을 재정리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불교철학’이 정말 필요합니다. 지금까지의 불교철학은 그리 ‘불교적’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재의 실존에 접속하여 치유력을 발휘하는 힘을 싣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삶과 세상을 깊이 성찰하고 치유할 수 있는 성찰적 불교학, 성찰적 불교철학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불교학의 지향과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불교학자로서 교수님의 원력(願力)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앞으로 저는 세 가지에 중점을 두려 합니다.
첫 번째는 성찰적 불교학과 불교철학의 한 사례를 실제 저의 글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선과 원효, 초기불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글쓰기를 통해 성찰적 불교학의 구성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새로운 고전 번역양식을 제시해 보고 싶습니다.
지난해부터 한국연구재단의 토대연구 사업으로 ‘원효전서’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정년과 함께 마감될 이 연구사업을 통해 새로운 번역양식을 제시할 것입니다. 기존의 한문고전 번역양식인 현토(懸吐)형 번역은 번역자의 이해를 알기 어렵고 따라서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한 해석학적 번역 양식을 선보이려 합니다. 엄청 고된 작업입니다. 요즘 제 일상의 반을 번역에 쏟고 있습니다. 번역이 마무리되면 원효 연구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고 원효 이해 수준이 달라질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밥값은 하고 정년 마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세 번째는 그간의 탐구와 강의경험을 반영하여 니까야/아함의 붓다 법설, 원효사상, 선불교에 대해 학문적 수준을 갖춘 대중지성적 글을 써보려 합니다. 불교에 대한 성찰적 글쓰기, 철학적 글쓰기의 한 사례를 제시해보고 싶습니다.
현재 한국불교향상포럼을 이끌고 계십니다. 어떤 모임이고 또 어떤 주제들을 논의하는지 궁금합니다.
▶ 대흥사 일지암의 법인 스님과 고려대 조성택 교수님 등과 마음을 모아 한국불교의 전환기를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취지로 출범했습니다.
지난 4월 창립돼 매월 셋째 주 금요일 저녁에 포럼 형태의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삶의 문제해결과 관련된 주제와 내용’을 다룬다 △ ‘문제중심형’으로 발표한다 △ ‘자기의 생각’을 ‘의미를 명확히 한 현재어’에 담아낸다 △ 발표방식은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원칙아래 각종 발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룬 주제와 발표 내용은 향상포럼 블로그에 게시되어 있어 언제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검색창에 ‘한국불교 향상포럼’으로 찾으면 됩니다. 참여하실 분은 간사에게 연락하면 됩니다.
향상포럼의 부제는 ‘성찰과 대안’입니다. ‘성찰’과 ‘대안’의 자리를 ‘비난’과 ‘책임지지 않는 아이디어 천명’이 대신하고 있는 풍토를 극복해보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바랍니다.
교수님과의 인터뷰 역시 바람처럼 흘러갔다. 수없이 해봤지만 이렇게 집중도 높은 인터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기억이다. 앞으로 학계에서 발표될 박태원 교수님의 수준 높은 연구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고심정사 불교대학 불자들은 참 복(福)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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