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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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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4 년 3 월 [통권 제131호]  /     /  작성일24-03-04 13:18  /   조회2,48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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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이나 교敎나 불법은 똑같은데 회창 연간(841~846)에 무종의 폐불사태로 불법이 전면적으로 타격을 받은 와중에 교종의 다른 종파는 다시 재기하지 못하고 왜 선종만이 그전보다도 더 융성하게 성황을 이루었는가?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는지 원인을 캐 보면 저 부처님 당시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밥 이야기만 해서는 배부를 리 없다

 

“선시불심禪是佛心이요 교시불어敎是佛語라.”라고 서산대사가 말씀했습니다.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을 그대로 전한 것이고,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경經은 부처님 말씀을 기록해 놓은 것이고, 선禪은 부처님 속에 든 마음을 전한 것이니 그것은 깊고 알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은 밥 얘기를 하는 것이고, 마음을 전하는 것은 직접 밥을 먹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육조스님도 늘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설식종불포說食終不飽, 밥 이야기만 천날만날 해 봐야 끝내 배부를 리 없다.”는 말입니다. 밥 얘기만 하지 말고 밥을 직접 먹어라, 이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도 결국 직접 밥을 먹어야 배가 부르듯이 스스로가 바로 깨쳐야 합니다. 밥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경經만 전공하다 보면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가지고 실제 밥 먹는 것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많아요. 그렇게 되면 밥 이야기 천날만날 해도 배가 안 부르는 격이지만, 경經 한 장 못 보았어도 밥한 숟가락 직접 떠먹는 것이 실질적으로 이익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진 1. 서산대사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

 

선과 교는 그렇게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선은 교외별전敎外別傳, 부처님 말씀을 담은 교 밖에 별도로 전한 것입니다. 교외별전이라는 것은 불교가 전해지는 중간에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부처님 당시에도 그런 사실이 있었나 하는 점을 우리가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첫 결집結集 과정에서 이것이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상수제자인 가섭존자가 대중을 모아 “부처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부처님 법문을 수집해야 안 되겠습니까?” 하고 의논하였으니, 이것이 소위 칠엽굴七葉窟 첫 결집입니다. “우리가 여러 곳에서 부처님 법문을 많이 들었는데 한두 사람이 구술해서 될 일이 아니고 서로서로 기억을 더듬어 가지고 부처님 말씀을 완전히 송출誦出해 내어 합송하기로 합시다.” 하여 후대에 전하기로 약속이 됐습니다. 

 

결집에서 쫓겨난 아난존자

 

그 대중 가운데 부처님 법문을 가장 많이 기억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아난존자阿難尊者라고 모든 대중들이 생각했습니다. 부처님 십대제자 중에 아난존자가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닙니까? 아난존자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녹음기 이상으로, 녹음기는 기계라서 혹 고장이라도 날 수 있지만 아난존자 기억은 고장도 안 나요. 한 그릇의 물을 이쪽 그릇에서 저쪽 그릇으로 전하는 것[瀉甁]과 마찬가지로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고 그대로 전할 정도라 말입니다.

 

아난존자는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다 기억했습니다. 부처님 시자를 삼십여 년 동안 했고 부처님 법회에 참석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아난존자가 출가하기 이전의 법회는 그 법문을 들었던 스님들에게서 전해 들어, 출가하기 전의 법문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난존자를 빼고는 부처님 법문을 수집할 수 없는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대중 스님들은 아난이 있으니까 부처님 법문을 하나도 누락됨 없이 잘 수집하게 되리라고 온 기대를 아난한테 걸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가섭존자가 대중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부처님 법문을 수집해야 한다. 여기는 전부 사자가 모인 사자굴인데 여우 새끼가 한 마리 있구나. 여우 새끼는 사자굴에 들어오지 못하니, 여우 새끼 저놈을 잡아내라.” 하였습니다. 대중이 모두들 누구를 여우 새끼라 하는지, 누구를 잡아내라 하는지 몰라 가섭존자에게 물으니, “아난, 저놈을 잡아내라.”는 것입니다. 대중의 기억을 다 모아도 아난 한 사람의 기억을 못 당해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아난이 없으면 부처님 법문 결집을 제대로 못할 터인데, 어쩌려고 아난을 쫓아내라 합니까?” 하고 아우성이어도 가섭존자는 “아니야, 저놈은 앵무새처럼 입만 가지고 있지. 생명이 없는 말은 소용이 없어. 쫓아내 자기가 공부를 해 깨치고 오면 함께 할 수 있지만, 결집을 못하면 못했지 아난은 절대로 결집에 참석할 수 없다.” 기어이 아난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사진 2. 라즈기르 칠엽굴. 5백 명의 비구들이 이곳에 모여 1차 결집을 했다. 사진: 계림역사기행.

 

아난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처님은 돌아가셨고, 내가 부처님 법문을 제일 많이 기억하고 있으니 이제 봐라, 법상에 앉아서 한 번 잘해 보리라.” 하고 있다가 쫓겨나게 되었으니 이런 날벼락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난존자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의 일입니다. “제가 부처님 시봉을 삼십여 년 동안 해서 부처님 말씀은 잘 기억하는데 부처님 법을 깨치지는 못했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울면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은 “내가 대법을 가섭에게 전했으니, 내가 죽고 난 뒤에 가섭을 의지해서 대법을 성취하라.”고 하시면서 부촉인 동시에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아난은 그 말을 가섭에게 전하며 “내가 사형에 의지해 법을 성취하려고 결심했고, 부처님이 유언, 유촉을 하셨는데 사형이 나를 쫓아내면 내가 누구를 의지해서 대법을 성취하라고 나를 기어이 나가라 합니까?” 하면서 사정했습니다.

 

하지만 가섭존자는 노발대발하며 “너는 개소야간疥瘙野干이야.” 하고 일갈합니다. 개소야간, 바짝 마르고 옴 오른 병신 여우 새끼라고 욕설을 해버렸습니다. 성한 여우도 아닌, 아주 바짝 마른데다 옴까지 오른 여우 새끼가 어디 사자굴에 어른거리느냐, 그러니 두말 말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소리를 지르고 멱살을 거머쥐고 저기 문밖으로 쫓아내면서 문을 확 닫아 버립니다.

 

결국 아난은 결집에 참석하지 못하고 쫓겨나서 비사리성毘舍離城으로 가서 참으로 용맹정진했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좀 있는데 상세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어쨌든 용맹정진해서 확철히 깨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가섭존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때서야 가섭존자가 인가를 했어요. 인가하면서 “네가 이만하면 부처님 법을 바로 알았으니 실제로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는 자리에서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구비했다.” 하고는 대중에게 좋은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아난을 중심으로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1차 결집 상황입니다.

 

경전 맨 앞에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아난이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고 하면서 부처님 말씀을 좔좔 구술합니다. 그리고 대가섭존자가 대중들에게 “여기 아난이 구술해 전한 내용 중에 혹 빠진 것이 있느냐?”고 물어, 대중들이 들어보고 “한마디도 빠진 것이 없다.”고 하면 만장일치가 되어, 그대로 암송하고 합송으로 전해 뒷날 팔만대장경이 되었습니다.

 

사진 3. 아난존자의 정병(윈강 18굴 북벽). 부처님의 말씀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전함을 상징한다. 사진: 고혜련.

 

교敎에 있어서만큼은 팔만대장경을 다 머릿속에 넣어 놓고 있던 아난존자도 실지로 깨치기 전에는 개소야간, 아주 다 죽어가는 바짝 마르고 옴 오른 여우 새끼라는 낙인 패를 달고 쫓겨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근본 생명입니다. 불법은 실지 근본 마음을 전하는 데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말은 마음을 전하는 방편에 불과합니다.

 

불법의 근본은 달을 보는 것

 

불법의 근본은 달을 보는 데 있는데 교敎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부처님께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보면 바보입니다. 손가락은 달을 보라는 방편이지 손가락을 보란 말이 아닙니다. 교외별전인 선禪은 실지로 달을 보는 것이고, 교敎, 즉 부처님 말씀은 손가락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내 말이 아니라 부처님이 늘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월지지指月之指,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그 손가락만 천날만날 본들 정작 달은 보지 못합니다.

 

아난존자는 부처님 말씀을 소상하게 다 기억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달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손가락만 본 사람에게 무슨 생명이 있겠어요? 그러니 안 쫓겨나려야 안 쫓겨날 수 없었단 말입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 십대제자 중 다문제일이지만 법을 전하는 데는 가섭존자 다음에 제2조라, 가섭존자의 제자입니다. 요샛말로 하면 은사는 부처님이고 실지 법은 가섭한테 받았습니다. 부처님한테서 깨치지 못하고 법을 전해 받지 못했으니까 부처님의 법제자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섭존자한테서 욕을 먹고 쫓겨나 나중에 깨쳐 부처님 근본법을 이었으나 실지 누구 제자이냐면 가섭존자 제자입니다.

 

불법은 깨치는 데에 있지 언어문자에 있지 않다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팔만대장경 경판을 모셔 놓고 있는 해인사 법당에 앉아서 왜 교를, 경을 이렇게 천대하느냐고 혹시 대중들은 생각할지 모르지마는, 경을 실지로 바로 알려면 이렇게 말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천경만록千經萬錄 전체가 다 ‘마음자리를 바로 보라’ 이 말이지, 글자만 보고 뒷짐 지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부처님은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없습니다. 

 

『능엄경』 같은 데서도 부처님이 아난존자를 꾸짖으며 늘 하신 말씀이 이런 내용이거든요. “저 과거 무수불이 출세해서 무수한 법문을 설했는데 그 많은 법문을 네가 미래 겁이 다하도록 기억해 외운다 해도 잠깐 하루 동안 무루업을 닦는 것, 선정을 닦는 것, 참선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진 4.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장경각, 2018)의 표지.

 

좀 전에도 내가 말했지마는 “선시불심禪是佛心이요 교시불어敎是佛語라”, 선은 부처님 마음자리를 그대로 전한 것이고, 교는 부처님 말씀을 전한 것인데, 그 ‘말씀’이라 함은 부처님 마음자리를 바로 보라고 하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그 뜻을 알 것 같으면 어쨌든 달을 봐야 합니다. 손가락만 본 사람은 일평생 헛일한 사람일 뿐이요, 밥 얘기 천날만날 해봤자 배만 더 고프니 실지로 밥을 떠먹어야지, 밥 얘기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말입니다.

 

그것이 선과 교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교외별전, 교 밖에 따로 전한 것, 가섭이 아난한테 전하고 아난이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전하여 저 달마스님에까지 28대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것이 육조스님한테 전해지고, 육조스님 이후 또 큰스님들이 법을 전해 무종의 회창사태 이후에는 선종 5종이 천하에 퍼져 불교 생명선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보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거든요. 왜 그러냐면 밥 얘기 천날만날 해 봤자 배가 고프면 더 고팠지 배부를 리 없으니, 밥 얘기나 하는 쪽은 자연히 없어지고 마는 것이고, 좀 시원찮더라도 실지로 밥을 떠먹으면 자연히 기운이 생기고 배가 안 부를래야 안 부를 수 없으니 밥을 먹어 생기가 있는 쪽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살지 않을래야 살지 않을 수 없단 말입니다. 그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에 교가는 무종의 회창 사태 이후로는 전과 같은 성황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에도 교가에 큰스님들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다시 융성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선은 실지로 밥 먹는 것이요 실제로 달을 보는 것이고, 우리 불교 근본 생명을 그대로 살리는 부처님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없어질래야 없어질 수도 없고 흥성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교는 자연히 쇠퇴하고 선은 그대로 융성해 나갔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임제종 하나만 더 융성한 까닭은 임제스님 법문이 실제로 사람을 제접提接하는 데 다른 종파에 비해 독특한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이라 하면 임제스님을 대표적으로 떠올리고 선종이라 하면 임제종을 빼놓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성철스님의 책,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장경각, 2018)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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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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