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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능엄경』 「정맥소」가 책이 되어 나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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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6 년 12 월 [통권 제4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0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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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은 수행에 바탕이 되는 대승교학을 아우르는 경이다. 법화의 법문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화엄을 이해하는 키를 제시했기 때문에 「정맥소(正脈疏)」를 쓴 진감 선사는 이 경을 가리켜 ‘법화의 곳집이요, 화엄의 열쇠’라고 하였다. 수행 체계와 방편을 자세히 설명하고 수행과정에서 만나는 병통을 알려주기 때문에 예로부터 수행자들이 이 경을 중시했다. 그에 따르면 이 경은 크게 ‘사마타’, ‘삼마제’, ‘선나’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사마타는 대승교학의 핵심을 드러낸 부분으로서 중생의 근(根)에 본래 갖춰진 정(定)에 의해 삼마제를 닦게 하는 이치이다. 다음으로 삼마제는 사마타에 의해 세워진 이치를 바탕으로 관음보살의 길을 따라서 이근(耳根) 한 문을 택하여 깊이 들어가게 하는 방편이다. 선나는 한 문으로 깊이 들어가서 보살의 계위를 차례로 증득하여 성불하는 과정이다.

 

「정맥소」를 쓴 진감 선사는 명나라 말기 인물로, 원래는 유학을 공부했다. 그는 출가 전에 이 경을 만났고 출가한 동기도 이 경에 있었다. 그는 불교를 만난 다음부터는 유가 경전을 보려하면 채찍질을 해도 권태로운 마음이 일어났지만 불경을 대하면 정신이 맑아졌다고 한다. 불교공부를 하는 동안 집안이 몰락하고 초상도 여러 번 치르는 등 곡절을 겪다가 이 경을 만났는데,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가운데 경에 절을 하니 부처님을 직접 대한 듯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출가 전부터 이 경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나 당시 널리 유통되던 주석들을 검토해 보니 미진한 점이 많았다. 그 점을 통탄하여 ‘기필코 출가하고 오래 살아서 이 경을 해석하여 세상에 남기리라’ 발원하고 출가하였다.

 

출가 후 대승교학 전반을 탄탄히 공부하고, 기존의 주석들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주석을 펴냈는데, 이것이 「정맥소」다. 명대 스님들이 여러 분야에 다작을 남긴 것과는 달리, 그는 출가한 후 평생을 이 경에 쏟아 20년 걸려 이 소 하나만을 남겼다. 다른 스님들이 자신이 속한 학파의 틀을 가지고 경을 해석했다면 그는 오로지 경의 맥락에만 의지하여 해석했고, 따라서 이름을 ‘정맥’이라 하였다. 『능엄경』이 대승의 요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정맥소」도 대승의 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종문의 선을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관점을 세운 것이 이 소가 가진 하나의 특징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선지식들도 한결같이 사교입선에 『능엄경』 「정맥소」가 좋다고 하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강원의 강백들도 이 소를 크게 활용하면서 입을 모아 「정맥소」야말로 『능엄경』의 심오한 이치를 잘 천명했다고 평가했다. 그간에 몇 번의 번역이 시도되었으나 아주 일부일 뿐 완역이 나오지 않아 그 전모를 살펴볼 수 없었으나 이제 한 수좌의 발원과 노고로 번역을 끝내고 출간을 앞두게 되었으니, 이제라도 다행이라 하겠다.

 

「정맥소」를 번역한 역자는 1992년에 출가하여 비구계를 받은 이래 제방선원에서 30여 안거를 하고 토굴에서 여러 해를 정진한 수좌이다. 역자는 우리 불교의 간화선 전통을 보배롭게 여기며 「정맥소」를 늦게 만났다고 안타까워한다.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정맥소」는 화두선에 대한 교학적 입지를 제공한다고 평할 수 있다. 많은 불교 수행체계 중에서 왜 화두선을 최상승선이라 하는가? 한국불교 선수행자라면 이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 시원히 답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절 집안의 현실이다. 화두선에 확신을 갖지 못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심지어는 십수 년 참구한 이도 다른 방편을 찾아 헤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실로 작은 문제가 아니다. 제방의 어른들도 걱정 끝에 이런저런 대안을 모색했던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은 대승의 요의(了義)를 바탕으로 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정맥소」 완역은 그런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한국불교의 수행 정체성을 확립할 근간이 되어 줄 것이다.”

 

다음으로 역자가 「정맥소」를 만나 번역하게 된 인연을 역자 후기에서 미리 인용한다.
“망월사 선원에서 안거하던 2009년, 방선 중에 각성 스님이 강설한 『능엄경 정해』를 가까이 했는데, 그때 「정맥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겨울 안거를 마치고 부산 화엄사를 방문해 각성스님에게서 소 한 질을 얻었다. 다음 철 개심사 선원에 방부를 들이고 상하권으로 된 「정맥소」 원본과 자전 그리고 허사사전을 들고 입방했다. 참선하는 시간 외에 이소를 펼쳐보는데, 어름어름 한 대목 두 대목 한문의 울타리에 갇힌 내용이 드러나자 흥미가 일어나 견딜 수가 없었다. 함께 정진하는 도반들과 선후배 스님들 그리고 불자 대중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픈 생각이 충천하여 나의 무력함을 돌아보지 않고 번역하기를 발원하고, 방대한 문장의 바다를 헤엄쳤다.
40만 자가 넘는 원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은 간난신고의 연속이었지만 이 경은 수행자의 본분사이며 믿음을 돈발하는 특별한 경이므로 낯선 문구에 험난하다는 생각과 게으름을 부릴 겨를이 없었고 시작한 지 2년 만에 겨우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 뒤 제방선원에 방부를 들일 때마다 원고를 지고 다니며 글에 밝은 스님을 만나면 해결하지 못한 곳에 대해 묻기를 서슴지 않았다. 여러 스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무슨 재주로 이 소를 이해하고 이 일을 감당했을 것인가. 그 뒤로 2년간의 윤문작업을 더해 총 7년이 걸려 일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나는 후반 2년간 윤문작업을 맡았다. 원고지만 매가 넘는 분량인데다 복잡한 개념을 머릿속에 담은 채 긴 맥락을 정연하게 따라가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 뜨겁던 올 여름 8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석달 동안 성북동 길상사에 조촐한 역장이 차려졌다.

 

역자와 나와 국어도사인 편집자, 이렇게 셋이 하루 종일 일했다. 무엇보다도 역자가 개념과 맥락을 꽉 쥐고 있어서 믿고 따라갈 수 있었기에 일이 순조로웠다. 또한 셋이서 2년간 맞춰온 팀웍이라 소통에도 문제가 없었다. 매일 아침 국어도사의 독경소리로 시작하여, 듣고 있다가 다시 살펴볼 문제가 있으면 잠시 멈추고 토론해서 수정한 다음 고친 것을 다시 읽어 확인하는 식으로 하루하루의 작업을 끝냈다. 그렇게 석달 만에 전체 점검을 마쳤다.

 

장장 7년.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무식이 용맹인 수좌 기질에다 밀어붙이는 성격으로 보자면, 역자는 혼자 뛰는 단거리 선수다. 그러나 그 기질을 접어두고서 장거리 선수가 되어 먼 길을 달려왔다. 역자의 경전에 대한 이해력, 목표에 다가가는 집중력, 지금 우리 불교에 필요한 것을 짚어내는 안목이 이 일을 완성시킨 동력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원고가 완성되고 출판사도 정해졌으니 일 맡은 출판사가 바통을 이어받아 힘껏 뛰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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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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