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묵향을 더듬다]
불교는 과학이 발달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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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 2017 년 1 월 [통권 제4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700회 / 댓글0건본문
이번호부터는 동국대 최원섭 박사님의 ‘큰스님의 묵향을 더듬다’가 새로 연재됩니다. 최 박사님은 오랫동안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원으로 일을 하며 성철 큰스님의 사상과 가르침을 연구해왔습니다.
이번 연재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성철 큰스님의 유필이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성철 큰스님의 ‘불교와 과학’에 대한 논설을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서설(序說)(주1)
가. 불합리한 신앙은 종교의 자살
“불합리하기 따문에 나는 신(信)한다.”(주2)
이 말은 기독교의 위걸(偉傑) 어-거스틴(주3)의 선언이다. 그리고 이 말은 신앙의 절대성을 표시한 말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여하(如何)히 불합리한 사실이라도 오즉 무조건 종조(宗祖)에 추종하여야 한다 함이니 이야말로 종교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며 생명선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미개(未開)한 우몽시대(愚曚時代)에 잇서서(주4)는 금과옥조가 될는지 모르지만은, 인지(人知)가 발달하고 문화가 향상하여 공중(空中)에 인공위성이 돌고 지상에 원자탄이 폭발하는 금일에 잇서서 여사(如斯)한(주5) 사고방식이 통할난지 엄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합리한 이론을 절대 신봉하면은 합리적인 결과가 발생할 것인가? 이것은 다만 맹목적인 신앙에만 긋첫지 추호도[01a] 객관적 효과는 없을 것이다.
일례로써 태양이 서(西)에서 떠서 동(東)으로 진다고 억천만 년 신봉하여도 동(東)에서 떠 서(西)에 지는 태양 자체에는 하등의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이다. 2+3=5의 합리적 사실을 2+3=6이라고 불합리한 사고방식을 세계 인류가 전부 신봉하여도 2+3=6은 절대 성립되지 않을 것은 삼척동자라도 명약관화(明若觀火)일 것이다. 그럼으로 객관적 확실성이 없는 공리공론(空理空論)은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우맹(愚盲)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일체 문제를 해결하려다가는 문제의 해결은 고사(姑捨)하고 해결의 길을 영원히 조지(阻止)(주6)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는 아편(阿片)(주7)이란 비난공격을 도저히 피치못할 것이다. 그러면 천고에 탁월한 명민(明敏)한 두뇌의 소유자인 어-거스틴갓흔[01b] 지혜인이 엇째서 “불합리하기 따문에 나는 신(信)한다”라는 삼척동자도 속일 수 없는 여사(如斯)한 우언(愚言)을 토(吐)하였는가? 여기에는 심심(深深)한 소이(所以)가 있나니 어-거스틴이 안이면 이런 교묘한 언사를 농(弄)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그는 다른 이유가 안이라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의 불합리성을 엄폐하려는 일종의 수단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일언(一言)이야말로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의 허위기만성을 여실히 폭로한 줄은 자각치 못하였을 것이다.
이 일언으로써 자교(自敎)의 절대성을 표현하려다가 도로혀 자교의 기만성만 고백하고 말앗으니 자기구제책(自己救濟策)이 도로혀 자살론(自殺論)이 되고 만 것이다.
만약 자교(自敎)에 불합리한 점이 없다면 절대로 이러한 언사는 생각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럼으로[02a] 여차(如此) 불합리한 종교는 인지(人知)의 발달에 따라 점점 그 가면이 벗기우고 그 진상이 발로(發露)되여 필경은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객관적 확실성을 토대로 하여 조리정연한 이론체계로써 조직된 종교만이 오즉 인류의 영원한 태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계에 있서서 최고 권위인 기독교가 불합리한 허위라면은 기타의 종교는 문제삼을 필요도 없이 부인 배격하여야할 것이다. 하처(何處)에 반석같흔 합리적 체계상(體系上)에 건설된 종교가 있는지 여기에 대하여서는 일체 인류가 전혀 실망(失望)하는 바이다.
나. 천고만경(千年古經) 중에 만세공리(萬世公理)
그러나 우주의 근본 대원리를 구명(究明)하여 합리 우(又) 합리한 만세부동(萬世不動)의 법칙으로써 조직되여 허공은 가히 붕괴[02b]식힐 수 있으나 이 이론체계는 추호도 요동식힐수 없는 영원히 진정한 종교가 삼천 년 전부터 존재하였다. 유-그리드(주8)의 기하공리(幾何公理)는 이론이 천박하여 이해가 용이함으로 고금을 통하여 일반에 공개되였다. 이 교리는 원래로 우주의 심오난사(深奧難思)한 근본원리를 토대로 한 고로 일반적 보급은 지난(至難)하고 오직 탁출(卓出)한 기개(幾箇)(주9) 지혜인에 독점되여 심산궁곡(深山窮谷)의 고경(古經) 속에 매몰되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경이적 비약으로 인지(人知)가 장족 발달한 금일에야 비로소 그 진가(眞價)의 일부를 공개케 되여 그 광명이 점차 우주를 덥게 되였으니 다름 안이라 인도의 실달태자가 개척한 우주의 원리인 불교 그것이다. 우주의 대신비를 천명한 심원한 불교 교리는 1[03a]940년대의 과학으로도 몰이해 상태에 있엇으나 1945년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원자탄이 투하되여 원자과학의 극치인 등가원리(等價原理), 즉 질량에너지 동등원리가 만방에 공인됨으로써 불교 교리의 기초인 진여상주이론(眞如常住理論)을 다소 이해케 되였다.
그리고 또한 백 인치 이백 인치 망원경이 완성되여 광대무변한 은하계 외 우주를 측정함으로써 삼천대천세계설(三千大千世界說)의 불교우주관을 인식케 되고 전자현미경으로써만이 일호(一毫)에 구억충(九億虫)이란 불교세균설(佛敎細菌說)을 규지(窺知)(주10)케 되였으니 이렇한 사실 등으로써 보아도 불교가 얼마나 광대심원(廣大深遠)한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불합리한 교리조직을 가진 종교는 과학의 발전에 따라 영원히 파멸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광대심원한 불교진[03b]리는 현금(現今) 정도의 과학으로서도 전부는 이해 못하는 바이나 장차 과학이 발달될수록 그 진가를 더 발휘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즉껏 미신이니 허위이니 온갓 비난공격을 밧든 불교가 금일 과학의 위대한 힘으로 인하여 다소간이라도 이해케 됨을 실로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 일부의 개략을 적어 보기로 한다.
주)
(주1) 이 글은 성철스님이 남기신 유필을 정리한 것이다. 성철스님의 유필은 A6크기의 작은 공책 양면에 세로쓰기로 적혀 있으며 따로 제목이 붙어있지는 않다. 전체 53쪽 분량인데 쪽마다 양면에 적혀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06쪽 분량이다. 이 글에서는 유필의 양면을 a와 b로 구분하여 //로 표시하고 줄이 바뀌는 곳은 /로 표시하였다. 유필은 대부분 한자로 적혀 있으나 한자가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은 우리말로 적었고, 한자가 필요한 말은 ( ) 안에 표시하였다. 유필의 자료로서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철자법도 유필대로 하였다.
(주2) 라틴어로는 “Credo quia absurdum.”으로 알려져 있다. 성철스님은 어거스틴의 말이라고 하셨지만, 일반적으로는 최초의 라틴 교부(敎父)인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60~240)의 말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교의 어휘와 사상을 형성하는 기초를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 테르툴리아누스는, 기독교는 계시적이므로 초이성적이거나 반이성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테네(철학)가 예루살렘(기독교)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외치며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였는데 이런 맥락에서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말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출전으로 알려진 테르툴리아누스의 「예수의 살에 관하여(De Carne Christi)」에는 “성자(신의 아들)는 죽었다. 그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믿을 만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일어났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실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중에 “불합리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믿을 만하다(credibile est, quia ineptum est).”가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주3) 라틴어 이름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스님이 기론하신 어거스틴(Augustine)은 영어식 이름. 로마령 아프리카에 있던 도시 히포의 주교(396~430)로서 교부철학의 대표자이다. 당시 서방 교회의 지도자이자 고대 그리스도교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불린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종교성과 그리스 철학의 플라톤 전통을 완벽하게 융합시켜 중세 로마 가톨릭 세계를 낳고 르네상스 시대의 프로테스탄트까지 이어졌다. 저서로는 「고백록(Confessions)」이 유명하다.
(주4) 유필에는 “잇서ゝ”로 반복부호가 쓰였지만 이 글에서는 “잇서서”로 표시하여 생략한 글자를 드러냈다. 이하 반복부호가 쓰인 곳은 별도로 표시하지 않는다.
(주5) “이러한.”
(주6) “저지(沮止)”의 잘못된 표현.
(주7) “양귀비”를 뜻하는 영어 “opium poppy”의 “opium”을 한자로 음사한 말.
(주8) 일반적으로 영어식 이름인 유클리드(Euclid)로 알려져 있다. 원래 이름은 에우클레이데스(Eucleides, ?~?). 기원전 300년 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로마 시대의 으뜸가는 수학자. 기하학 논문인 「기하학 원본(Stoicheia)」이 잘 알려져 있는데 19세기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출현할 때까지 기하학의 추론·정리·방법의 근원 역할을 하였다.
(주9) “몇몇”
(주10) “엿보아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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